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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한반도 남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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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248,703 (2024) |
면적 | 10,538.84㎢ |
행정구역 | 8개시 10개군 315개 읍·면·동 |
사이트 | http://www.gyeongnam.go.kr/ |
요약 대한민국 남동부 일대를 아우르는 행정구역.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경상남도가 발족되었다. 이후 행정구역의 통폐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8개시 10개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산지와 태백산맥 말단부의 동부고지와 낙동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남동연안공업지대로 대표되는 중화학공업과 수산업이 주요 산업이다. 한려해상·지리산·가야산·덕유산 국립공원과 유서깊은 명승지들이 많다.
한반도 남동부에 있는 행정구역. 전체적으로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산지와 태백산맥 말단부의 동부고지, 낙동강 연안의 중앙저지로 이루어진다. 예로부터 부산과 더불어 남쪽의 관문 구실을 했으며, 남동임해공업지대가 완성된 오늘날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각종 산업활동을 통한 해외진출의 발판으로서 큰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8개시 10개군 314개 읍면동으로 되어 있으며, 도청소재지는 창원시 대방로이다. 면적은 1만 538.84㎢로 남한 총면적의 10.5%를 차지하여 경상북도·강원도·전라남도 다음으로 넓다.
연혁
삼한시대에 북동부는 진한, 남서부는 변한에 속했으며, 그후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6가야가 할거하여 가야문화가 일어났다. 삼국시대에는 532년(진흥왕 24) 신라에 합병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 양주와 강주가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95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주 관할의 영동도와 진주 관할의 산남도에 들어가게 되었고, 1106년(예종 1)에는 경주·상주·진주 관할의 지역이라 하여 경상진주도로 합쳐졌다.
1171년(명종 1) 경상주도와 진합주도로 나뉘었다가 1186년(명종 16)에 2도가 합쳐지면서 경상진주도로 다시 개칭되었고,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314년(충숙왕 1)에 경상도라는 지명이 확정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경상도는 1413년(태종 13)에 8도의 하나가 되었는데, 초기에는 삼포를 중심으로 일본과의 접촉이 잦았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7년 동안 특히 많은 피해를 입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에는 대구·안동·진주·동래의 4곳에 관찰부를 두었는데, 오늘날의 경상남도는 진주부와 동래부 이외에 대구부의 일부를 포함한다. 1896년(고종 33)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남도를 따로 떼어 진주에 관찰사를 두고 29개군을 관할하게 했다. 1914년 부군 폐합으로 경상남도는 부산·마산의 2개부와 19개군으로 개편되었고, 1925년에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1931년에 읍면제가 실시됨에 따라 같은 해에 진주를 비롯하여 김해·울산·진해·통영(충무)·삼천포가, 1936년에는 장승포, 1937년에는 거창, 1938년에는 고성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9년에는 진주와 하동이 각각 부와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2년에는 진영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방 후 1949년에는 종래의 부가 시로 개칭되었고, 1955년에는 진해와 충무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1956년에는 삼천포와 사천이 각각 시와 읍으로 1960년에는 창녕이 읍으로, 1962년에는 울산이 시로, 1963년에는 남지와 삼랑진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는 한편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분리되었다.
이어서 1973년에는 동래군과 양산군이 합쳐지는 한편 하남이 읍으로, 1979년에는 의령·가야·양산·신현·남해·산청·합천이, 1980년에는 기장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신도시로 건설된 창원은 1980년에 시가 되었으며 이때 창원군이 의창군으로 개칭되었다. 1981년에는 김해가 시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는 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옮겨졌다. 1985년에는 장안이 읍으로, 1989년에는 밀양과 장승포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1991년에는 의창군이 다시 창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국가경쟁력 강화, 그리고 행정의 효율을 위해 도농통합 형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이 이루어졌다. 1996년 양산군이 도농복합형태의 양산시로 승격되었다. 1997년 울산시는 광역시로 승격·분리되었다. 2000년 김해시 장유면 일부가 부산시 강서구로, 부산시 강서구 일부가 김해시로 편입되었다. 2001년 마산시 합포구와 회원구가 폐지되었고, 2010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었다.
인구
일제강점기하에서 현대적인 인구조사가 최초로 실시된 1920년에 179만 9,000명이었던 인구는 1935년에 224만 8,000명으로 늘어났으며, 1944년에는 241만 6,000명을 기록했다. 8·15해방 후 해외동포의 귀환으로 1949년에는 266만 1,000명으로 인구가 급증했고,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의 정착으로 1960년에는 최고 418만 2,000명을 기록했다. 이후 1963년에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분리됨에 따라 일시적으로 약 110만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농민의 이농현상으로 인구가 해마다 약간의 감소를 보였으나 울산·마산·창원 등 신흥공업도시의 성장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가 지속되었으며, 1966년의 인구조사에서 317만 6,000명으로 나타났던 인구는 1996년에 394만 7,000명을 기록하다가 1997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분리되면서 303만 2,000여 명이 되었다. 이후 2000년 310만 8,674명, 2005년 318만 7,110명으로 증가했다. 2010년에는 317만 154명으로 감소하였다가 2024년 324만 8,703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2020년 기준 경상남도 전체 인구에 대한 시급 도시인구율은 84%, 읍급 도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인구율은 96%로 도 중에서는 경기도 다음으로 높다. 2010년 마산·진해·창원이 합쳐져 통합된 창원시를 이루었는데, 2024년 기준 인구 100만 8,228명을 기록하면서 경상남도 전체 인구의 약 31%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김해시(53만 3,710명)·양산시(35만 5,347명)·진주시(34만 520명) 순으로 높은 인구비율을 차지한다.
연혁
삼한시대에 북동부는 진한, 남서부는 변한에 속했으며, 그후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6가야가 할거하여 가야문화가 일어났다. 삼국시대에는 532년(진흥왕 24) 신라에 합병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 양주와 강주가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95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주 관할의 영동도와 진주 관할의 산남도에 들어가게 되었고, 1106년(예종 1)에는 경주·상주·진주 관할의 지역이라 하여 경상진주도로 합쳐졌다.
1171년(명종 1) 경상주도와 진합주도로 나뉘었다가 1186년(명종 16)에 2도가 합쳐지면서 경상진주도로 다시 개칭되었고,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314년(충숙왕 1)에 경상도라는 지명이 확정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경상도는 1413년(태종 13)에 8도의 하나가 되었는데, 초기에는 삼포를 중심으로 일본과의 접촉이 잦았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7년 동안 특히 많은 피해를 입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에는 대구·안동·진주·동래의 4곳에 관찰부를 두었는데, 오늘날의 경상남도는 진주부와 동래부 이외에 대구부의 일부를 포함한다. 1896년(고종 33)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남도를 따로 떼어 진주에 관찰사를 두고 29개군을 관할하게 했다. 1914년 부군 폐합으로 경상남도는 부산·마산의 2개부와 19개군으로 개편되었고, 1925년에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1931년에 읍면제가 실시됨에 따라 같은 해에 진주를 비롯하여 김해·울산·진해·통영(충무)·삼천포가, 1936년에는 장승포, 1937년에는 거창, 1938년에는 고성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9년에는 진주와 하동이 각각 부와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2년에는 진영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방 후 1949년에는 종래의 부가 시로 개칭되었고, 1955년에는 진해와 충무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1956년에는 삼천포와 사천이 각각 시와 읍으로 1960년에는 창녕이 읍으로, 1962년에는 울산이 시로, 1963년에는 남지와 삼랑진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는 한편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분리되었다.
이어서 1973년에는 동래군과 양산군이 합쳐지는 한편 하남이 읍으로, 1979년에는 의령·가야·양산·신현·남해·산청·합천이, 1980년에는 기장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신도시로 건설된 창원은 1980년에 시가 되었으며 이때 창원군이 의창군으로 개칭되었다. 1981년에는 김해가 시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는 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옮겨졌다. 1985년에는 장안이 읍으로, 1989년에는 밀양과 장승포가 시로 승격되었으며, 1991년에는 의창군이 다시 창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국가경쟁력 강화, 그리고 행정의 효율을 위해 도농통합 형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 울산시·울산군, 진주시·진양군, 충무시·통영군, 장승포시·거제군, 밀양시·밀양군, 창원시·창원군 일부, 마산시·창원군 일부, 김해시·김해군, 삼천포시·사천군이 통합되어 각각 울산시·진주시·통영시·거제시·밀양시·창원시·마산시·김해시·사천시가 되었다. 1996년 양산군이 도농복합형태의 양산시로 승격되었다. 1997년 울산시는 광역시로 승격·분리되었다.
자연환경
지질·지형
지질은 경상분지의 남부에 위치하여 약 80%가 중생대 후기에 육성층으로 퇴적된 경상계(慶尙系)의 지층으로 덮여 있다.
경상계는 하부의 낙동통(洛東統)과 상부의 신라통(新羅統)으로 구분된다.
낙동통은 셰일·사암·역암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진주에서 산청을 거쳐 합천까지 북북동방향으로 띠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진주지방에서는 낙동통의 두께가 1,000m에 이르기도 한다. 신라통은 이암·사암·역암·분암·응회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동통 동쪽의 대부분을 덮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화산활동에 의한 안산암·유문암·응회암 등의 화산암이 넓게 분포하고 퇴적암은 그 사이에 끼인 상태로 존재한다.
한편 서쪽의 지리산 일대에는 지리산편마암복합체의 변성암류와 더불어 화강암이 분포한다. 이밖에 중생대말에 관입한 불국사화강암이 곳곳에 소규모로 노출되어 있다. 이 암석은 건축재·비석재 등으로 많이 쓰이며, 이와 관련된 석영맥에서는 납·아연·구리가 금과 함께 산출되기도 한다.
지형은 서쪽에 우뚝 솟아 있어 전라북도 및 전라남도와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 소백산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산맥을 따라 지리산(智異山 : 1,915m)을 비롯하여 덕유산(德裕山 : 1,614m)·남덕유산(南德裕山 : 1,508m)·대덕산(大德山 : 1,290m)·백운산(白雲山 : 1,279m) 등의 고봉들이 열지어 있고, 대덕산에서 동남쪽으로 갈라져나온 소백산맥의 지맥에는 가야산(伽倻山 : 1,430m)과 수도산(修道山 : 1,317m)이 솟아 있다. 육십령(六十嶺 : 734m)과 팔량치(八良峙 : 513m)는 예로부터 소백산맥 양쪽의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이어주는 주요고개였다.
태백산맥은 경상남도에 이르러 현저히 낮아지지만 밀양의 천황산(天皇山 : 1,189m)과 양산의 원효산(元曉山 : 922m)을 중심으로 동부고지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산지와 동부고지 사이에는 낙동강(洛東江) 연안의 중앙저지가 펼쳐진다.
낙동강은 경상남도에 이르러 황강(黃江)·남강(南江)·밀양강(密陽江)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하는데, 매년 홍수피해를 크게 일으켜왔으나 1969년에 남강 댐, 1976년에 안동 댐이 건설됨으로써 그 피해가 다소 완화되었다.
서부산지의 남강 상류지역은 비가 많이 내려 낙동강 하류의 저지대에 상습적으로 심한 홍수를 일으켜왔는데, 진주의 남강 댐은 홍수시에 남강 상류의 물을 유역변경에 의하여 남해안의 사천만으로 직접 방류하도록 건설되었다.
낙동강 연안에는 곳곳에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남에서 진영에 걸친 낙동강 양안의 하남평야(河南平野)와 대산평야(大山平野), 그리고 낙동강 하구의 김해평야(金海平野)가 가장 넓다. 김해평야는 낙동강 삼각주로 형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충적평야로서 지금은 거의가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이들 평야에서는 일찍부터 낙동강 물을 양수하여 농업용수로 써왔다. 낙동강은 조석(潮汐)의 영향이 삼랑진까지 미쳤으나 부산지역의 용수공급을 위하여 1987년에 완공한 낙동강 하구둑으로 인하여 그 영향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밖의 하천으로는 전라남도와의 도계를 이루면서 남해안의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이 있다. 남해안은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섬이 많다. 해안선의 총길이는 2,166.9㎞이다. 유인도 78개, 무인도가 349개에 이르며(울산광역시 분리 이전), 거제도와 남해도는 각각 우리나라 제2위와 제4위의 큰 섬이다.
기후
남해에 면해 있어 전체적으로 기후가 따뜻하다.
연평균기온은 11~14℃로 해안지방에서 내륙지방으로 감에 따라 낮아지는데, 제주도 다음으로 높다. 8월평균기온은 24~25.5℃로서 산지를 제외하면 해안지방보다 내륙지방이 약간 높지만 1월평균기온은 해안지방이 0~2℃, 북쪽 내륙의 거창·함양·합천 지방이 -2~-3℃로서 지역적인 차이가 크다. 남해안과 도서지방은 특히 겨울이 따뜻하여 동백나무·비자나무·탱자나무·팽나무·후박나무 등의 난지성 상록활엽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연평균강수량도 해안지방이 1,500㎜ 내외이고, 경상북도에 인접한 북부내륙의 합천지방이 1,287.2㎜로 지역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하동과 남해를 중심으로 하는 섬진강 하류지방은 연평균강수량이 1,600㎜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최다우지를 이루고 있다. 연강수량의 50~60%가 여름철에 내리며, 해안지방은 태풍이 통과할 때 심한 풍수해를 자주 입는다. 1959년 9월에 태풍 사라호가 김해지방을 강타했을 때는 사망자 및 실종자 849명에 이재민이 37만 명이나 발생했다.
인구와 도시
인구
일제강점기하에서 현대적인 인구조사가 최초로 실시된 1920년에 179만 9,000명이었던 인구는 1935년에 224만 8,000명으로 늘어났으며, 1944년에는 241만 6,000명을 기록했다. 8·15해방 후 해외동포의 귀환으로 1949년에는 266만 1,000명으로 인구가 급증했고,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의 정착으로 1960년에는 418만 2,000명을 기록했다. 이후 1963년에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분리됨에 따라 일시적으로 약 110만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농민의 이농현상으로 인구가 해마다 약간의 감소를 보였으나 울산·마산·창원 등 신흥공업도시의 성장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가 지속되었으며, 1966년의 인구조사에서 317만 6,000명으로 나타났던 인구는 1996년에 394만 7,000명을 기록하다가 1997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분리되면서 303만 2,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이후 도시 인구 증가에 따라 2000년 310만 8,674명, 2005년 318만 7,110명으로 증가했다. 2010년에는 317만 154명으로 감소하였다가 2024년 324만 8,703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인구밀도는 326명/㎢으로 도 중에서는 경기도·충청남도·전라남도 다음으로 높다. 산청군·합천군·함양군 등의 서부산지 지방은 인구밀도가 대략 40~60명/㎢ 으로 도내에서 가장 낮다.
도시
2020년 기준 경상남도 전체 인구에 대한 시급 도시인구율은 84%, 읍급 도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인구율은 96%로 도 중에서는 경기도 다음으로 높다. 1960년대 이후 신흥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대도시로 발전한 마산과 1970년대 후반부터 신공업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 창원, 오랜 지역도시 진해가 2010년 통합되어 창원시를 이루었는데, 2024년 기준 인구 100만 8,228명을 기록하면서 경상남도 전체 인구의 약 31%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김해시(53만 3,710명)·양산시(35만 5,347명)·진주시(34만 520명) 순으로 인구가 많다.
이밖에 진주와 김해가 다소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양산시는 부산의 위성도시로서 근래에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다른 시급 도시와 군의 인구는 정체상태에 있거나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5만 명을 넘는 군은 함안군(6만 1,361명), 창녕군(5만 8,285명), 거창군(6만 266명) 뿐이다. 반면 의령군(2만 5,978명)은 인구 3만 명이 되지 않는다.
산업과 교통
농업
농경지의 총 면적이 1,569.78㎢로 전체면적에 대한 경지율이 14%에 이른다. 경지면적에 대한 논의 비율은 62.4%로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우세하다(2013). 과거에는 쌀·보리의 주곡농업에 편중했으나, 오늘날에는 채소·과수·화훼의 재배와 더불어 소·젖소·돼지·닭 등의 가축사육이 활기를 띠어 영농의 다각화와 농가의 소득증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국적인 도시화와 공업화에 밀려서 농가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이때문에 호당경지면적은 늘어나고 있다. 1969년에 221만 4,000명이던 농가인구와 0.72㏊이던 호당경지면적이 1994년에는 각각 65만 명과 1.07㏊로 감소 및 증가를 보였다. 2013년 기준 2만 3,568명의 농가인구가 있다.
쌀은 가장 중요한 농산물로서 전국 생산량의 약 11.7%를 차지하며, 겉보리는 전국 생산량의 7.5%가 생산된다. 겨울이 따뜻하여 여러 종류의 채소가 비교적 고르게 생산되는데, 대도시 근교에서는 논에서도 많이 재배되므로 경지이용률이 전국적으로 높다. 과일 중에서는 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며, 진영지방의 단감이 특히 유명하다.
단감은 재래종 감과는 달리 과수원에서 재배되는데,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이밖에 김해 지방의 배, 밀양·삼랑진 지방의 포도·배, 진주·거창 지방의 복숭아·사과가 중요하다. 가축 중에서는 경상북도와 더불어 일반 농가에서 한우가 많이 사육되며, 젖소·돼지·닭은 대도시 근교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수산업
어장인 남해는 연중 수온이 높아 어종이 다양하고 각종 패류와 해조류가 풍부하다. 남해의 어족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어군을 이루지 않고 분산적으로 회유하기 때문에 일시에 대량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어로활동이 연중 고르게 이루어져 어업경영이 비교적 안정성을 띤다. 어획고는 해마다 변동이 심한데, 2013년에는 52만 4,554t을 기록했다.
통영·삼천포·진해·장승포 등의 어항을 중심으로 멸치·고등어·갈치·쥐치·도미·정어리·가자미 등 난류성 어류가 주로 잡히며, 이 가운데서 멸치는 남해어장의 대표적인 어종이다. 한편 거제·통영·한산도 일대의 해역은 청정수역(淸淨水域)으로 지정되어 수산양식이 활발하다. 수산양식물로는 굴이 가장 중요하여 전국 굴양식 어획고의 77.8%를 차지했고, 최근에는 방어의 양식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진해만은 특히 해수오염이 심하여 양식업은 물론 연안어업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어가인구도 농가인구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도시화와 공업화에 밀려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어가인구는 3만 2,307명으로 전체인구의 1.0%에 불과하며, 반농반어의 겸업이 많아 전업농가의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광업
규석·납석·고령토·운모석 등이 산출되나 고령토를 제외하면 생산량이 보잘것없다. 도자기의 원료로 쓰이는 고령토는 산청·하동뿐만 아니라 밀양·양산·고성·함양·합천 등의 지역에서 고르게 생산된다. 2013년의 광업 종업원수는 413명, 가행 광구수는 110개 광구에 불과하여, 도 중에서는 제주도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공업
울산정유공장이 1960년에 최초로 건설된 이후 1970년대말에 이르기까지 울산에서부터 온산·부산을 거쳐 창원·마산·진해·거제·진주를 연결하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이른바 남동임해공업지대가 형성됨으로써 공업의 발달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공업의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그 제품을 수출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으로서는 부산과 그 주변의 임해지역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해외로 진출하는 데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2013년 기준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전국의 16.8%로 시·도를 통틀어 경기도 다음으로 높고, 종업원수는 34만 2,259명, 전국의 15.2%로 경기도·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 다음으로 많으나, 사업체수는 7,078업체로 전국의 2.0%에 불과하다. 이것은 경상남도의 공업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음을 뜻한다.
창원의 기계, 온산의 유정제·비철금속제련, 진해의 비료, 진주의 농기계 등 경상남도의 공업을 대표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공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이들 중화학공업은 모두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도내의 경우 종업원수에서는 78.0%, 부가가치에서는 84.3%에 이르며, 전국적으로는 각각 17.6%와 21.7%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마산과 김해는 섬유공업, 통영과 사천은 수산가공업이 활발하다. 전통공업으로는 통영의 나전칠기, 의령·진주의 한지공업이 유명하다.
공업의 발전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삼랑진양수(60만kW)·남강(1만 3,000kW) 등의 수력과 영남(40만kW)·사천(112만kW) 등의 화력 및 고리(313만 7,000kW)의 원자력을 합한 총 527만kW의 발전설비가 갖추어져 있으며, 이는 전국의 33.7%(울산광역시 분리 이전)에 해당한다.
교통
고속도로는 488㎞, 일반국도 1,553㎞, 지방도 2,413㎞, 시·군도 8,597㎞로서 도로총길이가 13,053㎞에 이르며, 포장률이 71.4%이다(2013). 도로길이는 경상북도보다 다소 길며 포장률도 앞선다. 경부고속도로와 88올림픽 고속도로는 도의 동쪽과 주변부를 지나기 때문에 도내의 지역간을 이어주는 도로로는 남해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가 더 중요하다.
거제도와 남해도도 연륙교의 건설로 육지와의 육상교통이 편리해졌다. 경부선·경전선·동해남부선·진해선·진삼선 등의 철도망도 육상교통에서 큰 몫을 당담하고 있다. 밀양·마산·진주 등은 여객과 화물을 많이 취급하는 역들이다. 해안과 도서지방은 부산·마산·통영·여수를 기점으로 운항되는 많은 정기여객선에 의하여 이어지며, 울산-서울, 사천-서울 간에는 항공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교육·문화·관광
교육기관으로는 2023년 기준 유치원 683개소, 초등학교 510개교, 중학교 265개교, 고등학교 191개교, 경남대학교·경상국립대학교·영산대학교·창원대학교·인제대학교·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가야대학교 김해캠퍼스·부산장신대학교·창신대학교 등이 있다.
2023년 기준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26개소, 병원 133개소, 특수병원 28개소, 의원 1,659개소, 요양병원 129개소 등이 있으며 총 병상수가 6만 4,416개 병상에 이르러 도 중에서는 경기도 다음으로 의료기관과 의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병상의 상당 부분이 창원·김해·양산·진주에 집중되어 있다. 공공도서관은 75개관으로 총좌석수가 2만 4,710석, 장서수는 9,684,787권이다.
문화재는 2023년 기준 국보 14점, 보물 186점, 사적 68개소, 천연기념물 46종, 중요무형문화재 19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900점, 무형문화재 41점, 기념물 267점, 민속문화재 21점 등의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689점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 밀양의 아랑제, 진해의 군항제, 통영의 한산대첩기념제, 거제의 옥포대첩기념제, 산청의 지리산평화제 등이 있다.
각종 관광자원 또한 풍부하여, 한려해상·지리산·가야산·덕유산 등의 국립공원 외에 유서깊은 명승고적으로 김해의 김수로왕릉, 통영의 충렬사, 진주의 촉석루, 합천의 해인사, 양산의 통도사, 밀양의 표충사 등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해도의 상주해수욕장은 여름철에 멀리 부산으로부터도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곳으로 금산(錦山, 701m)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경치가 수려하다.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진 거제의 해금강도 유람선으로 즐겨 찾는 곳이다.
창녕의 부곡온천(釜谷溫泉)은 1973년에 평균수온 70℃의 국내 최대 유황온천이 발견된 이래 1979년 연수·학습·휴양·위락·스포츠 시설과 식물관,대공연장 등을 갖춘 부곡하와이 리조트가 개관하면서 인근 온천시설과 함께 전국적인 휴양 및 위락 지역으로 명성을 얻었다. 2017년 5월 부곡하와이는 누적된 경영악화로 폐업했으나, 기존 온천숙박시설은 창녕스포츠파크, 창녕국민체육센터 등과 연계되어 스포츠 관련 동계 전지훈련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역개발
1960년대의 울산공업단지, 남강다목적댐 건설에 이어 1970년대초에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조성됨으로써 근대화의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향후 10년 동안의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기간(1972~81)에는 울산·마산의 임해공업단지가 확대·개발되고 창원·온산·거제·양산·진주 등지의 대규모 공업단지가 건설되는 한편 공업의 내용이 확충됨에 따라 남동임해공업지대의 골격이 형성되었다.
또한 교통망의 정비에 힘을 기울여 기존의 경부고속도로 외에 남해(부산-순천) 및 구마(대구-마산)고속도로가 신설되고 주요 간선국도들이 확장·포장되었다. 또한 무질서한 시가지 확장을 막기 위한 개발제한구역이 설정·관리되기 시작하고 가야산·덕유산국립공원이 추가로 지정되는 한편 수자원보전책이 강구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82~91)에 입각하여 종래의 거점개발방식을 지양, 다음과 같은 목표하에서 지역개발이 추진되어왔다.
첫째, 쾌적한 생활환경의 조성, 생산기반의 안정적 확보, 환경의 보전 등을 통하여 생활과 생산 및 자연환경 간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 둘째, 정주권의 개발로 인구의 지방 정착을 유도하는 동시에 농민의 소득증대를 위하여 복합영농기반을 확충한다. 셋째, 주민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도시 및 사회간접자본을 정비·확충한다. 넷째, 관광휴양지를 개발하고 지방문화를 진흥하는 것 등이 기본목표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7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추진해온 경상남도 지역개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산·진해·창원·함안·창녕·의령 등 3개시와 3개군으로 구성된 도중심권을 행정·경제·사회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마산·진해는 상업·유통·행정·관광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밖의 농촌지역은 농산물 생산의 배후지 및 관광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김해시·양산시·밀양시를 포함하는 부산배후권은 부산의 위성도시로 육성, 대도시로 농산물 공급, 부산으로부터 분산되는 공업의 유치, 지방공업지역과 관광지의 개발 등이 주요 과제로 추진되어왔다. 통영시·거제시로 구성된 거제권은 공업기지·관광위락지·수산물공급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특히 통영시는 교육·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며, 진주시·하동군·고성군으로 이루어진 진주권은 문화·예술의 중심지, 내륙지방의 성장거점, 농산물의 집산지 및 가공지, 관광지 등으로 개발해왔다.
또한 사천시·남해군으로 구성된 사천권은 수산물의 집산지 및 가공지, 지방공업지역, 서부지방의 경제사회중심지 등으로 육성해왔다. 그리고 거창·합천·함양·산청의 4개군으로 편성된 거창권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서 자연보전과 아울러 관광개발과 농산물집산기능의 강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농촌중심도시로 육성하여 정주체계를 확립하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향후 개방화·국제화에 대비한 대외지향적 국제교역전진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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