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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더 기타리스

조니

Johnny Marr

브릿팝의 시조, 그 쟁글거리는 기타 톤

요약 테이블
출생 1963년
국적 영국
대표작 「The Queen Is Dead」(1986)
조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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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팝(Britpop)의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미스(The Smiths)를 만나게 된다. 영국 록 역사상 가장 뛰어난 송라이팅 콤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조니 마, 모리세이 콤비가 이끌었던 스미스는 1990년대 영국에서 브릿팝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 시조 격으로 다시금 조명되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같은 시기 미국에서 그런지의 시대가 왔을 때 닐 영과 R.E.M이 주목받았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모리세이와 함께 짝을 이루며 비틀스의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콤비 이후 가장 우월한 작사, 작곡 콤비로 주목받은 조니 마는 기타리스트로서 갖는 위상 또한 상당한 인물이다. 소위 브릿팝 스타일의 기타 사운드를 만들어낸 원조격으로 수많은 브릿팝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음을 순순히 실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니 마는 2010년 영국 BBC가 선정한 '최근 30년간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에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순위에서도 51위에 올라있는데, 전통적으로 브릿팝 기타리스트에게 몹시 인색한 「롤링 스톤」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높은 순위이다. 브릿팝 기타리스트로서는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조니 그린우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자리이다.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울리는 기타 소리

조니 마는 1963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세 살 무렵 기타를 처음 잡았지만 그때만 해도 자신이 뮤지션이 되어 밴드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시티 입단을 위해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통과하지는 못했다. 운명은 축구선수 조니 마가 아니라 기타리스트 조니 마를 예정해 놓았던 것이다.

십대 시절부터 꾸준히 곡 작업을 해온 조니 마는 1982년 모리세이를 만나 스미스를 결성했다. 두 사람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했는데, 모리세이의 시적인 가사와 비음 섞인 팔세토 목소리는 조니 마의 뛰어난 작곡과 개성 넘치는 기타 사운드에 의해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스미스는 1983년 데뷔 싱글 〈Hand in Glove〉를 발표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84년에는 데뷔 앨범 「The Smiths」를 발표했는데 UK 앨범차트 2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싱글로는 〈This Charming Man〉이 인기를 끌었으며 〈What Difference Does It Make?〉에서 들려준 인상적인 기타 리프도 주목을 받았다. 그해 말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Hatful of Hollow」에 수록된 〈How Soon Is Now?〉에서의 기타 연주도 중요하게 기억된다. 그는 이 곡에서 두터운 앰프 트레몰로를 이용해 관습을 벗어난 신선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1985년에 나온 정규 2집 「Meat Is Murder」는 한 계단 더 전진해 UK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미국을 누빈 장기간의 순회공연을 마치고 1986년 발표한 앨범 「The Queen Is Dead」는 모두가 인정하는 밴드의 최고작이다. 「스핀」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1위에 올린 것을 비롯해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등 영국의 많은 음악잡지들이 이 앨범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앨범의 수록곡으로는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등이 유명하다.

조니 마와 모리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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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가 흘러갔다. 스미스는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 최고의 팝 밴드가 되어갔다. 조니 마는 영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각광받았고 많은 미디어들이 그를 차세대 록 기타의 신으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절정의 순간에 조니 마는 스미스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더 이상 스미스 안에서 모리세이와 함께 경력을 이어가기를 원치 않았다. 1987년 조니 마는 밴드를 떠났고 스미스는 해체되었다. 그는 어쩌면 조금 더 편안한 자리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스미스를 떠난 후 그는 폴 매카트니,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 브라이언 페리 등 수많은 뮤지션들의 뒤에서 묵묵히 기타를 쳐 주었다. 절대로 앞에 나서지 않고 그저 뒤에서.

스미스 해산 이후 가장 뚜렷한 조니 마의 행적은 뉴 오더(New Order) 출신의 보컬리스트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와 함께 했던 밴드 일렉트로닉(Electronic) 활동이다. 버나드 섬너와 조니 마의 조합은 그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끄는 조합이었다. 일렉트로닉은 1991년 데뷔 앨범 「Electronic」에서 〈Getting Away with It〉을 히트시키며 만만찮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니 마는 2008년 이후부터는 인디 밴드 크립스(The Cribs)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대중의 시야에서는 약간 빗겨나 있다.

기타 영웅이 되지 않기 위한 십계명

조니 마는 스스로 기타 영웅이 되기를 거부했고, 기타 영웅을 혐오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1990년 「기타 플레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기타 영웅이 되지 않기 위한 십계명'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매우 성공적인 밴드에서 탈퇴하라, 그리고 다른 인기 밴드들로부터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라.
②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기타 솔로를 피하라.
③ 싱글노트 리프 연주는 가능하면 하지 마라.
……(중략)……
⑨ 어디서나 가능한 팝음악의 관행들을 위배하라.
⑩ 기타 영웅주의를 강력히, 그리고 자주 비난하라.

조니 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원치 않던 조니 마의 리켄바커 기타와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가 만들어내는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스미스 음악의 핵이었으며 향후 브릿팝의 상징이 된 기타팝 사운드의 도래를 예고한 이정표였다.

팬더 재규어 기타를 들고 「기타리스트」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던 조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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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는 많다. 특히 스미스의 후예임이 분명한 맨체스터 출신의 후배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대표적으로 스톤 로지스(Stone Roses)의 존 스콰이어가 그를 가장 크게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로 꼽았고, 오아시스(Oasis)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의 언급은 아예 노골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니 마의 연주는 너무나 독특해서 도대체 따라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영향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는 빌어먹을 마법사(fucking wizard)이다."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 수 있을까?

스미스가 영국 음악계에 남긴 흔적은 특별하다. 스미스는 영국 주류음악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인디뮤직 씬의 중요 밴드로 평가받는데, 그것은 앞서 언급한 조니 마의 기질과 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솔로 연주를 하지 않으면서도 독보적 기타리스트가 된 조니 마, 그것은 어쩌면 불가사의이지만 그만큼 번뜩이는 그의 재능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영국에 스미스가 있었고, 그 때 그 곳에서 브릿팝은 태어났다. 누군가는 또 비틀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The Queen Is Dead」(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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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서 집필자 소개

1970년 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지독한 라디오 키드, 팝송 키드였다.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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