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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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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대표작 | 「Slippery When Wet」(1986) |
외모가 뛰어나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실력이 아니라 외모 때문에 그리되었다고 입방아를 찧는 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듀란 듀란이 그랬다.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큰 성공을 거두면 음악적으로는 아무래도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상업성과 음악성은 양립할 수 없다는 까닭 모를 편견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마이클 잭슨과 아바(Abba)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 조비(Bon Jovi)가 있다. 아마도 본 조비는 외모와 상업적 성공 두 가지 측면 모두에 해당될 듯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본 조비가 헤비메탈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라는 사실이 그들을 평가절하하는 근거가 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는 보컬리스트인 존 본 조비(John Bon Jovi)와 함께 팝 메탈의 거함 본 조비를 이끌고 있는 핵심 전력이다.
블루스를 동경하는 팝 메탈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는 1959년 미국 뉴저지주 퍼스 앰보이에서 태어났다. 본 조비의 다른 멤버들도 모두 뉴저지 출신인데 이들의 유명한 앨범 「New Jersey」는 그래서 나온 제목이다. 그는 열두 살 무렵에 처음 기타를 치기 시작해 초기에는 1960년대 블루스 록에 경도되었다.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제프 벡, 스티비 레이 본, 조니 윈터 등이 당시 그가 영향 받았던 기타리스트들이다. 이밖에 그는 재니스 조플린 같은 블루스 싱어들도 자신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에 있다는 말이다. 그는 또 클래식 음악과 스패니시 기타도 좋아했다.
1970년대 말에 리치 샘보라는 뉴저지에 기반을 둔 몇몇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머시(Mercy)는 레드 제플린이 설립한 스완송 레이블과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존 보냄의 죽음으로 레드 제플린이 해산되고 스완송 레이블이 소멸되면서 계약도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983년에 리치 샘보라는 데이브 사보(Dave Sabo, 후에 스키드 로우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의 후임으로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1984년 발표한 데뷔 앨범 「Bon Jovi」에서 〈Runaway〉가 소폭 히트했지만 아직 밴드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1985년에 발표한 2집 「7800° Fahrenheit」까지도 본 조비의 인기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6년에 발표한 3집 「Slippery When Wet」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You Give Love a Bad Name〉과 〈Livin' on a Prayer〉라는 두 개의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 곡이 나왔고,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8주간 1위를 차지하며 미국 내에서만 순식간에 1,2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Slippery When Wet」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2,8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리치 샘보라는 〈Livin' on a Prayer〉에서 토크 박스를 이용한 저 유명한 리프를 만들었고, 발라드 넘버 〈Wanted Dead or Alive〉에서는 6현과 12현 더블네크 오베이션 기타를 이용한 능란한 아르페지오를 들려주었다. 팝 메탈 밴드들의 어쿠스틱 발라드 경향성은 후에 미스터 빅(Mr. Big)과 익스트림 등으로 이어졌는데 어쩌면 리치 샘보라는 그 시작이었다.
1988년에 나온 「New Jersey」는 본 조비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한 개의 싱글 앨범(혹은 곡)만 큰 흥행을 거둔 가수)가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밴드는 성공의 중압감을 멋지게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영광의 순간을 재현했다. 역시 나란히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Bad Medicine〉과 〈I'll Be There for You〉를 비롯해 〈Lay Your Hands on Me〉 등이 앞다투어 히트하며 앨범은 다시 한 번 무난히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정복했다.
1994년에 발표한 베스트 앨범 「Cross Road」에서도 신곡 〈Always〉가 크게 히트했다. 「Slippery When Wet」과 「New Jersey」가 가져다 준 성공이 워낙 컸던 탓에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본 조비가 상대적으로 다소 침체기에 들었던 시기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이 거둔 성공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995년 앨범 「These Days」는 9위, 2000년 앨범 「Crush」 역시 9위까지 올랐고, 2002년 앨범 「Bounce」는 2위까지 올랐다. 2005년 앨범 「Have a Nice Day」도 2위까지 올랐고, 2007년 앨범 「Lost Highway」와 2009년 앨범 「The Circle」은 거푸 1위를 차지하며 본 조비의 건재를 과시했다.
리치 샘보라는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역할에 주력하면서도 틈틈이 솔로 활동을 전개했다. 솔로 작품에서 그는 본 조비에서와는 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뿌리인 블루스에 기초를 둔 플레이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팝 메탈의 제왕 본 조비에서는 아무래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솔로로서는 보다 더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 앨범 중에서는 1991년 발표한 데뷔 앨범 「Stranger in This Town」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보다는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언급되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한다.
120여 개를 소장한 기타 콜렉터
본 조비는 헤비메탈의 가장 대중적인 서브 장르인 팝 메탈의 최고봉이다. 리치 샘보라의 기타 역시 그 위치에 걸맞는 많은 장점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헤비메탈의 무거운 리프와 메탈 발라드의 부드러운 어쿠스틱 아르페지오를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가 장착한 변속 기어는 결코 튀거나 머뭇거리거나 덜컹거리지 않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리치 샘보라의 기타 실력에 대한 평가는 박했지만 최근 들어 그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분위기다. 물론 여전히 그의 기량에 대해서라면 그보다 더 뛰어난 테크니션들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본 조비와 팝 메탈이 요구하는 스타일과 연주력이라면 리치 샘보라는 단연 최고이다. 그는 밴드 내에서 존 본 조비와 함께 작사, 작곡을 거의 전담하고 있으며 가끔은 존을 대신해 보컬을 맡기도 한다.
리치 샘보라는 다양한 기종의 기타를 사용하며 120여 개의 기타 콜렉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에 그는 크래머, 잭슨, 샤벨, 해머 슈퍼스트랫 그리고 빈티지 펜더 모델과 깁슨 레스 폴 커스텀 기타까지 제작사와 기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기타를 두루 사용했다. 그의 기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Slippery When Wet」 앨범 녹음과 투어 당시 썼던 두 대의 기타, 그러니까 크래머 리치 샘보라 시그너처 기타와 플로이드 로즈 트레몰로 암을 장착한 금장의 흰색 커스텀 잭슨 기타이다. 이밖에 〈Lay Your Hands on Me〉 녹음에 사용한 크래머 저지 스타 시그너처 더블네크 기타도 유명하다. 어쿠스틱용으로는 1980년대 초반 이래로 애용해 온 오베이션 어쿠스틱-일렉트릭 기타와 마틴 어쿠스틱 기타가 주력 기종이다. 1991년 펜더사는 리치 샘보라 시그너처 스트라토캐스터 모델을 출시했다. 2000년에는 테일러사가 역시 리치 샘보라 시그너처 모델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심각한 알코올중독 문제가 리치 샘보라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그는 자주 갱생 시설을 드나들고 있으며 때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거나 진통제 없이는 고통을 이길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가끔씩은 본 조비의 투어에도 동행하지 못해서 다른 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까지 발생하곤 한다.
글쎄, 누군가는 여전히 리치 샘보라가 과연 여기에 낄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물론이다. 누가 뭐래도 그는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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