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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채소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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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먹는 음식이나 별다른 뜻 없이 하는 행동에서도 곰곰이 따져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이유를 발견할 때가 있다. 우리는 고기나 생선회를 먹을 때 주로 쌈을 싸서 먹는다. 손바닥에 상추를 놓고 그 위에 깻잎을 포갠 후에 고기나 회를 얹어 쌈장을 발라 먹는다.
상추에다 깻잎까지 얹어 먹는 우리의 유별난 식습관은 유난히 쌈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육류나 생선을 먹을 때 채소를 곁들여 영양학적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쌈이라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쌈 싸 먹는 재료가 달라지는데 특히 깻잎이 그렇다. 식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예컨대 밥을 먹을 때는 상추를 중심으로 쑥갓을 비롯해 각종 채소를 더해 쌈을 싸지만 깻잎은 잘 넣지 않는다. 고기를 먹을 때는 상추와 함께 깻잎에도 싸지만 굳이 깻잎이 없더라도 크게 허전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생선회를 먹을 때 깻잎이 없으면 무엇인가 빠진 것 같다. 2퍼센트가 모자란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 그럴까?
사실, 생선회를 먹을 때 깻잎과 함께 먹는 식습관은 뿌리가 무척 깊다. 또 한의학적으로도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 책으로, 1406년 세조 임금의 주치의인 전순의가 편찬한 《식료찬요》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깻잎은 좋지 않은 냄새를 제거해줄 뿐만 아니라 속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했고, 소화를 도우며 속을 따듯하게 만들어 몸을 보호한다고 했다. 고기나 생선회를 먹을 때 누린내와 비린내를 없애주는 역할은 물론이고 특히 차가운 생선회를 먹을 때 소화를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옛날 의학서에 깻잎과 생선이 어울린다고 했는데 생선을 먹다가 탈이 나면 아예 깻잎으로 치료를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물고기를 먹고 중독됐을 때 해독하는 법을 적어놓았는데 깻잎이 특효라고 했다. 중독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배탈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
이규경은 생선 중에서도 특히 게를 지나치게 먹어 배탈이 날 경우 깻잎을 먹으면 즉시 낫는다고 하면서 실제 임상 실험 사례까지 소개해놓았다. 중국 송나라 임금인 효종이 게를 너무 많이 먹어 탈이 났는데 깻잎을 갈아 먹으니 설사가 바로 멈췄다는 것이다. 숙종 때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도 생선을 먹다 탈이 났을 때 깻잎으로 즙을 내 마시면 바로 해독이 된다고 했다. 깻잎과 생선을 찰떡궁합으로 여긴 것이다.
사실 물고기를 먹을 때 깻잎을 함께 먹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기원전 2세기 때 한나라 시인은 잉어회는 깻잎에 곁들여 먹으면 좋다고 노래했고, 송나라 때 간행된 《적성지》라는 책에서는 생선을 먹을 때 깻잎을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술 깨는 데도 좋다고 했다. 명나라 때 농업서인 《농정전서》에도 깻잎은 날로도 먹는데 생선과 함께 국을 끓이면 맛이 좋아진다는 구절이 있다.
깻잎에 관한 중국 고문헌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찾을 수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깻잎으로 김치를 담그면 향기롭다고 했으니 명나라 때는 중국인들도 우리처럼 깻잎을 간장이나 소금에 절인 장아찌로 먹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중국인들은 다르다. 깻잎을 먹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깻잎 먹는 모습을 보면서 냄새 나는 채소를 어떻게 먹느냐며 질색을 한다.
생선회를 깻잎에 싸 먹는 것은 동양에서 약 2천 년 전부터 내려온 식습관인데 요즘 다른 아시아 사람들은 깻잎을 날로 먹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중국, 동남아, 서양 사람들은 한국 음식에 웬만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깻잎을 잘 먹지 못한다. 익숙하지 않은 깻잎 향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향기가 강한 고수, 즉 향채(香菜)는 맛있게 먹으면서 고수보다는 향기가 훨씬(?) 약한 깻잎을 냄새가 난다며 먹지 못하는 외국인을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고수를 못 먹는 우리를 보면서 외국인도 똑같은 말을 하니까 피차 입맛이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어쨌든 깻잎 같은 작은 채소 하나를 놓고서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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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의 유래와 문화,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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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깻잎 –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윤덕노, 깊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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