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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국

조강지처 내쫓고 먹는 아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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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국류
아욱국

이미지 제공 -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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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전령사는 여럿 있지만 그중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가을 음식의 대명사로 많은 사람들이 전어구이를 꼽지만 사실 아욱국에서도 가을 정취가 듬뿍 느껴진다. 된장 풀고 아욱 넣어 끓인 아욱국을 보면 군침이 절로 돈다.

그 때문인지 민간에 떠도는 속설만 놓고 보면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아욱이다. 옛날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보면 전어가 아무리 맛있어도 아욱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을 아욱국은 문 닫아걸고 먹는다”고 했다. 이웃과도 나눠 먹기 싫다는 것이니 맛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전어 맛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가을 아욱국은 자기 계집도 내쫓고 먹는다”는 대목에서는 전어가 무색해진다.

조강지처는 먹을 것이 없어 술지게미와 쌀겨를 나누어 먹으며 가난을 함께했던 아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고 애틋해 평생을 해로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런데 아욱국을 보면 눈이 뒤집혀 조강지처마저도 내쫓고 혼자 먹었다는 것이다.

소심하게 며느리 친정 보낸 사이에 눈치 보며 몰래 구워 먹는 전어와는 격이 다르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마누라까지 내치고 우선 먹는 아욱국과는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욱국은 아무하고나 함께 먹는 음식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 막내딸이다. 그런데 속담에 “가을 아욱국은 막내 사위에게만 준다”고 했다. 조강지처도 내몰고 먹는 아욱국이지만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을 데려간 사위에게만큼은 특별히 나누어 주던 음식이다.

가을 아욱이 얼마나 좋은지 아욱국과 관련된 속담은 계속 이어진다. “아욱으로 국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아욱국 때문에 포동포동 살이 쪄서 외짝 문처럼 작은 문으로는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니 사실 요즘 세상에서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다. 일 년 다이어트가 도로 아미타불이 될 판이니 숟가락을 들었다가도 기겁을 해서 다시 내려놓아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아욱의 영양가가 그만큼 높다는 소리다. 따지고 보면 된장 풀고 아욱 넣어 맛있게 끓인 아욱국에 밥 말아 먹으면 따로 보약이 필요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에는 아욱을 파루초(破樓草)라고 했다. 한자를 보면 깨뜨릴 파(破), 정자 루(樓), 풀 초(草)이니 ‘정자를 허물고 심는 풀’이라는 뜻이다. 그까짓 아욱 하나 심는데 왜 멀쩡한 정자를 허무는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욱이 파루초가 된 사연이 있다. 옛날 어느 양반집에서 봄에 채소를 심는데 안방마님이 하인에게 한마디를 했다.

“쓸데없이 다른 채소 많이 심지 말고 이왕이면 아욱을 심어라.”

그러자 하인이 물었다.

“이미 씨앗을 다 뿌려 심을 밭이 없는데 어찌하오리까?”

마님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서방님이 아욱을 몹시 좋아하시니 심을 밭이 없으면 저기 정자를 허물고 그 터에다 아욱을 심어라.”

아욱의 별명, 파루초는 이렇게 얻어진 별명인데 옛날부터 아욱은 양기를 보충하는 작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니 안방마님이 서방님 핑계를 대며 정자까지 허물고 그 터에 아욱을 심으라고 한 것이다. 마님이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아욱이 양기를 보충해주니 정력에도 좋다고 믿은 것 같은데 하릴없는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실없이 낄낄대며 만들어낸 이야기만은 아니다. 14세기 초, 중국 원나라 때 왕정이 쓴 《농서(農書)》에 아욱은 양기를 북돋워주는 채소인 양초(陽草)라고 했고, 채소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채소라고 했으니 안방마님이 앞장서서 정자를 허물고 그 터에다 아욱을 심을 만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욱을 심고 보니 문제가 자칫 심각해질 수 있다. 양기를 보충해서 정력에 좋은 채소라서 봄철, 안방마님 주도로 정자까지 허물고 그 터에다 아욱을 심었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 거둔 아욱으로 국을 끓여 내었더니 서방님이 조강지처 내쫓고 혼자 먹겠단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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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2003년 매일경제신문사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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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저자윤덕노 | cp명깊은나무 도서 소개

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의 유래와 문화,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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