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음식으로 읽
는 한국 생
활사

전복

걱정 근심도 날려주는 산해진미

요약 테이블
분류 어패류
전복

ⓒ 깊은나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엉뚱한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더 고급일까 아니면 옛날 임금님 수라상이 더 훌륭할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떤 밥상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까?

망설일 필요도 없이 현대를 사는 중산층의 식탁이 더 좋을 것 같다. 음식의 다양함은 물론이고 식재료의 고급스러움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임금님보다 더 잘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먹을 때만큼은 임금님보다 행복하다고 느껴도 좋을 것이다.

감히 옛날 제왕보다 잘 먹는다고 망상을 품어본 이유는 전복 때문이다. 요즘은 양식 덕분에 가격이 많이 내려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복은 고급 해산물이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전복은 산해진미로 꼽혔다.

산해진미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한때 중국에서는 남방의 굴, 북방의 곰 발바닥, 동방의 전복, 서역의 말젖을 천하의 맛있는 음식으로 꼽았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공감하기 쉽지 않지만 고대에는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식재료였다. 그래서 황제가 먹는 요리였고 부자들이나 맛볼 수 있는 해산물이었다.

《삼국지》의 영웅 중에서 조조가 특히 전복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조가 죽은 후 셋째 아들인 조식이 부친을 추모하며 바친 글이 〈구제선주표(求祭先主表)〉다. 조식은 이 글에서 선주, 즉 돌아가신 임금인 조조가 전복을 무척 좋아해서 자신이 서주에 근무할 때 전복을 200개나 구해서 바쳐 올렸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얼마나 효자였는지를 은근히 자랑한 것인데 어쨌든 당시 중국에서 전복은 바닷가 마을에서 황제가 있는 중앙으로 바치는 귀중한 공물이었다. 그것도 왕에게 200개나 바쳤다고 과시하고 있으니 전복을 얼마나 귀하게 취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장남 조비는 이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황제의 위엄을 과시하는 한편 유화책으로 엄청난 선물을 보냈는데 여기에 전복 1000개가 포함돼 있었다는 기록이 《태평어람》에 보인다. 2세기 때 이야기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 그러니까 전한을 멸망시킨 인물이 왕망이다. 왕망은 1세기 때 한나라에 이어 신(新)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됐지만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결국 16년 만에 망하고 만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 안으로는 신하들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밖에서는 전쟁에서 모조리 패하니 걱정 근심으로 식욕을 잃었다. 그리하여 술이 없으면 잠에 들지 못했고 음식은 아예 입에도 넣지 못했는데 왕망이 그나마 유일하게 먹은 음식이 전복이다. 역사책 《한서》 〈왕망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후부터 전복은 걱정 근심에 빠져서 식욕을 잃은 사람의 입맛마저 당기게 만드는 진미의 상징으로 꼽혔다. 앓고 난 후 입맛을 잃었을 때 전복죽을 먹는 것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 미식가로 유명한 소동파는 전복을 먹고는 그 맛에 반해 ‘전복의 노래’라는 뜻의 〈복어행(鰒魚行)〉이라는 시를 남겼다.

고기와 영지, 석이버섯, 요리 수는 많지만
식초 바른 전복회 껍데기 속을 장식하니
귀인들이 그 맛을 진귀하게 여기는데
기름 살짝 바르면 맛이 더욱 오래간다네

전복을 좋아한 소동파는 전복 중에서도 맛있기로는 발해만에서 잡히는 전복이 으뜸이라고 했다. 고대 산해진미로 꼽힌 전복 역시 동방의 것을 최고로 꼽았으니, 바로 발해만을 포함한 우리 서해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다. 17세기 조선의 시인 이응희 역시 “어패류가 수만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우리 동방의 전복”이라고 했으니 고금을 통해서 전복은 우리나라 것이 가장 맛있었던 모양이다.

비교적 바다가 가까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복을 귀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조 때 세자의 스승을 지낸 유몽인은 밤늦게까지 세자를 가르친 후 야참으로 임금님께서 하사한 전복 한 접시를 받았다.

옥잔에 내온 술 한 잔과 쟁반에 놓인 삶은 전복 한 접시를 보며 “하늘나라의 진수성찬을 내어주신 임금님 총애가 감격스러워 눈물이 갓끈을 적신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전복이 왜 그렇게 귀했을까 싶지만 해녀들이 바닷속으로 직접 잠수해 물속 바위에 단단히 붙은 전복을 채취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도성까지 전복을 운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먹는 사람은 맛있게 먹었겠지만 잡는 사람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전복 따는 해녀의 애환을 읊은 시도 있다.

관리가 득달같이 달려와/ 신선하고 살찐 것은 회로 뜬다며/ 급하게 관아 주방으로 가져가고/ 황금빛 나는 것은 꼬치에 꿰어/ 서울 벼슬아치에게 올려보내니/ 무더기로 쌓인 석결명만/ 해녀 그릇을 채울 뿐

석결명(石決明)은 전복 껍데기다. 한방에서는 눈병 치료에 좋아 약재로 쓴다고 하지만 바닷속으로 들어가 힘들게 딴 전복은 모두 빼앗기고 껍데기만 가득 남은 바구니를 서글프게 바라봤을 해녀의 모습이 참담하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덕노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2003년 매일경제신문사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펼쳐보기

출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저자윤덕노 | cp명깊은나무 도서 소개

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의 유래와 문화,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전복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윤덕노, 깊은나무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