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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술가의 지
20세기 미술의 성지

세탁선

Le Bateau Lavoir

피카소가 살던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라비냥 가 13번지, 테르트르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리 잡은 ‘세탁선(Le Bateau Lavoir)’이었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형상이 마치 센 강가의 빨래터로 쓰이는 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시인 막스 자코브가 ‘세탁선’이라는 이름이 붙였다. 귀가 맞지 않아 흔들거리는 문에 피카소는 ‘시인들의 집합소’라고 썼다.

무려 서른 개가 넘는 스튜디오가 있었지만 수도는 하나뿐인 이 남루한 집에 수많은 예술가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었다. 피카소, 후안 그리스, 조르주 브라크, 기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인 마리 로랑생, 막스 자코브,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키스 반 동겐이 가장 어린 하숙자로 머무르고 있었다. 동겐은 야수파 화가로 거리의 부랑자와 댄서들을 강렬하게 그려냈는데, 훗날 몬테카를로의 대저택에서 풍요롭게 살 때도 몽마르트르 언덕의 이 남루한 거처를 무척 그리워했다고 한다. 부유한 장 콕토가 대저택을 두고 이따금 들렀고, 피카소의 친구 모딜리아니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마키’라는 집에서 내려와 이따금 들어서곤 했다.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지만 예술가끼리 나누는 열정만큼은 더없이 뜨겁고 아름다웠던 곳, 테르트르 광장으로 오르는 수많은 계단의 중간쯤에 엉거주춤 자리한 ‘세탁선’. 추락할 수도 있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도 있는 자리, 절묘한 위치다. 다행히 ‘세탁선’에 머물던 예술가들은 대개 영광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 20세기 예술사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혹은 반 동겐처럼. 위대한 보헤미안의 집합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던 ‘세탁선’이 21세기 예술의 성지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탁선은 1970년대에 화재로 없어지고, 지금은 ‘LE BATEAU LAVOIR’라는 현판을 달고 쇼윈도에 간단히 역사적 사실만 전시해 놓은 상태로 복원되어 몽마르트르의 언덕을 지키고 있다. 어지간히 눈썰미 있는 여행자가 아니고는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몽마르트르의 벨 에포크를 열었던 역사적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세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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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집필자 소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집필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방송작가. 지은 책으로는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오늘의 오프닝》,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은 없어》, 《위로》, 《나를 격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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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지도
예술가의 지도 | 저자김미라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예술가들은 서로 영향을 받는다. 같은 시대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서도 예술가들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7명의 생애를 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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