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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시장 이론

Market for Lemons

왜 유명 관광지나 버스 터미널 앞의 음식점은 맛이 없을까?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제품의 가격은 올라가면서 제품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 "결함 있는 차"라는 속어적 의미를 가진 ‘레몬(lemon)’에서 유래한 것으로 '레몬 시장(lemon market)'은 싸구려 저급품이 유통되는 시장을 말한다. 중고차 시장의 경우, 판매자는 자신이 파는 차가 레몬(결함있는 제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소비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레몬 시장 이론은 이런 정보 차이로 인해 물건의 품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하락하지 않아 시장 전체가 신뢰를 잃고 붕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은 정보경제학이라는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미국의 세 경제학자에게 돌아갔다.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 1940~),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1943~),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1943~)가 바로 그들이다. 스펜스와 스티글리츠의 이론에 대해선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선 애컬로프의 레몬 시장 이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애컬로프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시절 경제적으로 빠듯한 형편이라 중고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근거로 중고차 시장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1967년 「레몬 시장: 품질 불확실성과 시장 메커니즘(The Market for Lemons: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Mechanism)」이란 제목의 13페이지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했지만, 세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너무 하찮은 주제에 관한 논문이라는 게 주요 이유였다.

애컬로프는 3년이 지난 1970년에서야 『경제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이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 논문은 이후 40여 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경제 논문이 되었으며, 결국 애컬로프에게 노벨상까지 안겨주게 된다. 이 논문의 영향력에 힘입어 5년 후 미국 정부는 '레몬법(Lemon Law)'을 제정했다. 물론 '레몬 시장'이나 '레몬법'은 은유적 표현인데, 잠시 lemon에 대해 영어 공부를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lemon은 "결함 있는 차"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독한 신맛 때문일까? lemon이 과일 이외의 용법으로 쓰일 땐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불쾌한 것(일, 사람), 시시한 것, 맛(재미)없는 것, 불량품 등등. 불량품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에 많이 쓰인다. Her car turned out to be a lemon(그녀의 차는 알고 보니까 형편없는 것이었다). He is a dead lemon(그는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이다).

'레몬 시장(lemon market)'은 싸구려 저급품이 유통되는 시장을 가리킨다. 한국 신문에서조차 「레몬 마켓은 옛말…새 차보다 잘 나가는 중고차」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올 정도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말이다. 경제학자들이 굳이 '레몬 시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해 장하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몬의 품질을 알기 위해서 레몬의 껍질을 벗겨 보아야 하는데 레몬 껍질을 벗겨 보고 살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수박을 살 때 수박을 갈라 보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두드려서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나면 잘 익은 수박으로 생각하고 사지만, 맑은 소리가 나는 수박이 항시 잘 익은 것은 아닌 것과 같은 비유다."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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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레몬법(Lemon Law)'은 불량품의 교환이나 환불의 청구 권리를 정한 법을 말한다. 미국에서 연방 차원 레몬법의 정식 명칭은 '마그누슨-모스 품질보증법(Magnuson-Moss Warranty Act)'이며, 각 주별로 다양한 주법(州法)이 있다.

'레몬 사회주의(lemon socialism)'는 기업 파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업에 대한 구제 금융을 하는 등 정부가 민간 영역에 개입하는 정책을 조롱하는 말이다. 시민운동가인 변호사 마크 그린(Mark J. Green, 1945~)이 1974년에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뜻의 말로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기업 복지(corporate welfare)', '부자에겐 사회주의 빈자에겐 자본주의(socialism for the rich and capitalism for the poor)'라는 말도 쓰인다.

The answer is a lemon(그런 어리석은 질문에는 대답이 필요 없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로, 영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레몬의 톡 쏘는 자극적인 신맛을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독설에 가까운 반응에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제 애컬로프의 레몬 모델로 돌아가자.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그것이 레몬(겉만 멀쩡한 차)인지를 알지만, 사는 사람은 일부 중고차들이 레몬이라는 것을 알아도 자신이 사는 차가 레몬인지는 알지 못한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이른바 '정보 불균형(information asymmetry)' 또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매자는 자신이 사는 차가 레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가격을 지불하려고 하는데, 이런 가격은 레몬에 지불하기에는 높은 가격이면서 시장에 나오는 더 나은 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반면 질이 더 나은 차의 소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파는 레몬에 형성된 가격으로 자신의 차를 팔기를 주저한다. 그러면 더 나은 차는 시장에 덜 나오게 되고, 레몬의 수는 늘어난다. 중고차 시장 이용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될수록 레몬을 감안해 기꺼이 지불하려던 가격에 대해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며,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중고차 시장은 사라질 수 있다.

독일 경제학자 하노 벡(Hanno Beck)은 『일상의 경제학』(2004)에서 '중고차를 살 때 레몬 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앞으로 중고차를 살 때는 항상 이 판매점을 통해서 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판매자가 공정한 거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둘째, 같은 지역에선 입소문이 쉽게 나기 마련이므로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자리 잡은 중고차 판매자를 찾는다. 셋째, 중고차 판매자에게 1년 동안 보증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정직한 판매자라면 보증 서비스를 약속할 것인바, 판매자가 그렇게 하겠다면 자동차를 사되 보증 서비스는 포기해도 좋다. 이런 방법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모두 다 정보 불균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유명 관광지, 기차 역전, 버스 터미널 앞의 음식점이 맛이 없는 이유도 정보 불균형 때문이다(물론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일 뿐 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라는 걸 분명해 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런 음식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곳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음식점에 관한 정보가 없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좋은 식당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모른 채 그저 바로 눈앞의 음식점을 찾게 된다. 물론 값은 비싼 대신 맛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음식점으로서도 손님의 대부분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 그들을 계속 오게끔 만들어야 할 동기가 약한 편이다.

정보 불균형에 관한 한, 보험 시장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보험 가입자가 사고를 잘 내는 경향이 있는지, 유전병에 걸리기 쉬운지, 자살을 고려하고 있는지 보험회사는 잘 모른다. 사람들은 위험이 더 많은 사람과 같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가입자의 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가입자의 기대 수명은 낮아지게 되고, 보험료는 더 올라가게 되며, 이런 보험은 기대 수명이 보통인 사람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위험도가 낮은 보험 가입자는 보험 시장에서 퇴장하고 높은 사고율을 가진 보험 가입자만 시장에 남아 균형이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고율이 낮은(보험회사에는 양질의) 보험 가입자는 시장에서 제외되고, 사고율이 높은(보험회사에는 불량한) 보험 가입자만이 보험에 가입하는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현상을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 한다. 역선택은 "능력이 있는 사람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 능력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고 능력이 없는 사람만 남게 되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2013년 11월 미국의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 홈페이지에 잠재적 보험 가입자가 한꺼번에 몰려 과부하가 걸린 것과 관련해 제기된 우려 중의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다. 건강한 이들은 오바마케어 가입을 서두를 이유가 없지만, 중증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은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오바마케어에 가입할 것이니 오바마케어 가입자 집단은 평균보다 훨씬 중증질환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레몬 시장 이론의 기반이 되는 정보 불균형은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전부는 아닐망정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중고차 구매자는 인터넷을 통해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를 속이는 판매자는 인터넷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에도 레몬 시장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2012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중고차 피해 상담은 1만 건이 넘었다. 예컨대, 18만 킬로미터 뛴 차라고 샀는데 실제 주행거리가 34만 킬로미터 이상이었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차를 판 매매업체는 나 몰라라 하는 게 관행으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일본엔 '중고차 조작'이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 업체 간 경매 시스템으로 유통 단계를 늘린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에선 유통 단계를 줄이고 직거래로 가는 게 유행인데, 유통 단계를 늘리면 유통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장점이 있다. 일본은 '소비자 → 중고차 매입 회사 → 경매장 → 중고차 판매 회사 → 소비자' 구조가 정착되었는데,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면서 차에 대한 정보를 한 업체가 독점할 수 없어 시장이 오히려 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즉, 정보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셈이다.

정보 불균형이 비교적 없는 농산물 유통은 여러 단계를 거쳐 농산물 가격을 크게 올리면서 정보 불균형이 심각한 중고 자동차는 직거래로 가 불신을 조장하는 현 시스템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가 한국의 관(官)과 민(民)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정보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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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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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윤희, 「[Weekly BIZ] 의사는 처방을 팔고 교사는 지식을 팔아…우린 모두 세일즈맨」, 『조선일보』, 2013년 10월 12일.
  • ・ 김영훈, 「가락시장처럼 경매에 부치니…일본선 '중고차 조작' 없다」, 『중앙일보』, 2013년 7월 2일.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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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문법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사람들마다 생각의 내용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자 다른 생각의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과 ‘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공..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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