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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이 있는 재화를 소비해 자신과 타인을 차별화하고,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소비 행태. 자신이 가진 상품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 외면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수에 동조하려는 편승 효과의 반대 개념으로,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어 백로 효과라고도 한다. 명품이나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 등이 대표적이다.
1920년대의 미국은 물질적으론 풍요로웠지만, 정신은 빈곤했다. 1922년에 간행된 『미합중국의 문명』을 공동집필한 20명의 지식인은 "오늘날 미국의 사회적 삶에서 매우 흥미롭고도 개탄할 사실은 그 정서적·미적 기아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독설형 저널리스트인 헨리 루이 멩켄(Henry Louis Mencken, 1880~1956)은 자기만족에 빠진 미국의 청교도적 중산층의 속물근성(snobbery)을 겨냥해 "컨트리클럽에 우글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야만인들, 저 영국 귀족을 흉내내는 골판지 상자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각주1)
1920년대를 지배한 속물근성은 문학작품에도 반영되었다. 고발의 성격을 띤 반영이었는데, 이 방면의 선두 주자는 미국인의 물질 만능주의와 순응주의를 날카롭게 묘사한 해리 싱클레어 루이스(Harry Sinclair Lewis, 1885~1951)다. 루이스가 1922년에 발표한 『배빗(Babbitt)』의 주인공인 배빗은 자신이 속한 골프클럽의 지위가 첫째가 아니고 두 번째라는 점에 언짢아하는 사람이었다. 『배빗』은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실감나게 표현한 덕에 이후 속물적이면서 거만을 떠는 사람은 누구든지 '배빗'으로 불렸다. 오늘날의 배빗은 어떨까? 조지프 엡스타인(Joseph Epstein)은 『미국판 속물근성(Snobbery: The American Version)』(200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월감이란 BMW 740i에 앉아 자신이 가난한 속물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빨간 신호등 앞에 멈췄을 때, 내 차 옆에 선 촌티 나는 캐딜락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조용히 음미하는 것이다. 또한 내 딸이 하버드에서 미술사를 전공할 때, 방금 인사 받은 여자의 아들이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한다는 이야기를 기껍게 들으며 느끼는 조용한 기쁨이다."
영국의 보건학자 리처드 윌킨슨(Richard G. Wilkinson)은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The Impact of Inequality: How to Make Sick Societies Healthier)』(2006)에서 "속물근성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거나 높이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낫다고 주장하기 위해 차별점을 만들어내고 이를 활용하는 전략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전 세대만 해도 계급은 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구분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는 여타의 문화적 측면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됐다. 서열 체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방법들을 고안해왔다."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방법들 중의 하나는 "난 남들과 달라"라는 태도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제품은 절대로 사지 않으려는 심리, 즉 "자기만이 소유하는 물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 행태"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 즉 희소성이 있는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더욱 만족하고 그 상품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 소비를 줄이거나 외면하는 행위인데, 이를 가리켜 '속물 효과(snob effect)'라고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속담이 그런 심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해서 '백로 효과'라고도 한다. 한정판이라는 뜻의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류층과 상류층은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중류층이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삶의 문법에 따라 상류층을 쫓아가면 상류층은 기분 나쁘다며 다른 곳으로 숨는다. 예컨대, 20세기 초에는 화장품의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 여성들만 사용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말쯤에는 화장품의 값이 저렴해지자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까지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면 상류층이 아니라 노동계층이라는 표시가 되었다. 이에 상류층 여성들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그들은 화장품을 계속 사용하기는 했지만 훨씬 더 절제된 방법으로 사용했으며 세련되고 비싼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중하층 여성들과의 차별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오늘날 유행의 사이클이 빨라진 것도 그런 숨바꼭질 놀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류층은 중류층이 쫓아오면 숨어버리고, 중류층이 상류층이 숨은 곳을 찾아내면 얼마 후 또 다시 숨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낸시 에트코프(Nancy Etcoff)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류층은 패션 추구자들로, 그들 중 가장 보수적인 사람도 특정 스타일을 입도록 이끌리게 된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 스타일이 너무 유행이라 그것을 입지 않으면 관행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그들을 모방하는 중류층으로 오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한 패션이 그들에 의해 도입되자마자 그들이 그 패션을 포기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소비사회는 물질로 자신을 내세우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든 점도 있다. '물질의 평등'이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명품(luxury)'이라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랠프 로런(Ralph Lauren)의 폴로(Polo) 선수 도안, C자를 맞대어 놓은 샤넬(Chanel)의 도안, 구치(Gucci)의 G자 도안, 루이뷔통의 머릿글자 도안 같은 등록상표들은 높은 가격을 뜻하는 신분 상징물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그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의미가 퇴색하게 되자 디자이너들은 가격을 올리고 로고를 작게 만들기 시작했다.
값이 비쌀수록 명품의 로고는 더 작아진다. 명품을 찾는 중류층이 많아진 탓에 생긴 차별화 욕구로 빚어진 결과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면 왜 비싼 돈을 주나? 그러나 안심하시라. 자기들끼리 그리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능력이 대접받기 때문에 이건 아주 재미있는 수수께끼 놀이가 된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노노스족이다.
노노스족(nonos族)은 'No Logo, No Design'을 추구하는,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품을 즐기는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2004년 프랑스 패션회사 넬리로디(Nelly Rodi)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명품의 대중화'에 대한 상류층의 반발이 노노스족을 낳게 했다. 루이뷔통이 'LV'라는 널리 알려진 로고를 2005년 추동 제품부터 거의 쓰지 않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명품잡지 네이버 VIP 마케팅 팀장 이기훈은 "부자들은 '구별짓기'를 하고 워너비(wannabe, 추종자)들은 '따라하기'를 한다"며 "여행을 하더라도 부자들은 구별짓기 위해 워너비들도 갈 수 있는 발리보다는 쉽게 가기 어려운 몰디브나 마케도니아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진짜 부자들은 '10개 한정판매' 등과 같은 특별한 물품, 즉 '명품 중의 명품'을 원하며, 일반적인 명품에 대한 선호도는 오히려 추종자 그룹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부자들의 여행지』 같은 책도 출간된다. 이는 패키지여행을 벗어나 특별한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몰디브, 피지, 뉴칼레도니아 등 고급 리조트 45군데를 소개한 책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편승 효과를 따르면서도 속물 효과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런 물적 기반 없이 속물 효과를 실천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처음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그 어떤 흐름에 편승을 하다가도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상승하면 남들과 다르다는 '구별짓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속물근성에 투철해지기 마련이다. 이건 바뀌기 어려운 인간의 속성인바, 우리 인간이 원래 그렇다고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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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프레데릭 루이스 알렌(Frederick Lewis Allen), 박진빈 옮김, 『원더풀 아메리카』(앨피, 1931/2006), 298쪽.
- ・ 싱클레어 루이스, 이종인 옮김, 『배빗』(열린책들, 1922/2011), 63~64쪽.
- ・ 리처드 윌킨슨(Richard G. Wilkinson)·케이트 피킷(Kate Pickett), 전재웅 옮김, 『평등이 답이다: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이후, 2010/2012), 205쪽.
- ・ 리처드 윌킨슨(Richard G. Wilkinson), 김홍수영 옮김,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후마니타스, 2006/2008), 200~201쪽.
- ・ 김광현, 『기호인가 기만인가: 한국 대중문화의 가면』(열린책들, 2000), 217쪽; 김헌식, 『K팝 컬처의 심리』(북코리아, 2012), 93쪽; 황선아, 「상상덩어리 위트 패션의 힘」, 『동아일보』, 2013년 7월 4일.
- ・ 존 리겟, 이영식 옮김, 『얼굴 문화, 그 예술적 위장』(보고싶은책, 1997), 97쪽.
- ・ 낸시 에트코프, 이기문 옮김, 『미(美): 가장 예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살림, 2000), 260쪽.
- ・ 제임스 B. 트위첼, 최기철 옮김, 『럭셔리 신드롬: 사치의 대중화, 소비의 마지막 선택』(미래의창, 2003), 158~159쪽.
- ・ 조풍연, 「'노노스' 제품 잘 팔린다」, 『세계일보』, 2005년 2월 19일, A18면.
- ・ 이지은, 「'마이카'는 BMW 재테크는 해외펀드, 여행은 몰다이브로: '귀족 마케팅'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강남 부자' 라이프스타일」, 『신동아』, 2004년 10월호, 246~255쪽.
- ・ 「신간소개: 부자들의 여행지 발간」, 『매일경제』, 2006년 8월 21일, B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