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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각의문법

인정투쟁 이론

왜 우리는 ‘SNS 자기과시’에 중독되는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는 이론이다. 인정투쟁 이론에서 인간의 삶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의 연속으로 설명된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처음 제시했으며 이후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대중화되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한 자기 과시가 일상화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가상의 인정투쟁과 관련해 논의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맛에 세상을 산다. 삶은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 줄여서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가 잘 지적했듯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사람의 인정에 대한 갈구"다.

이젠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상식이지만,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이걸 좀 어렵게 설명했다. 헤겔의 '인정투쟁' 개념은 미국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1863~1931)와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1949~)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지만, 이 개념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일본계 미국 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야말로 '인정의 욕구'가 모든 사람에게 충족되는 사회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후쿠야마의 의도엔 논란이 있을망정, 다음과 같은 진술에 공감하긴 어렵지 않다.

Georg Friedrich Wilhelm Hege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우리가 노동을 하고 돈을 버는 동기는 먹고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인받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나 인정을 상징하게 된다.……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려고 파업하는 노동자는 단순히 탐욕이나 물질적인 혜택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파업은 자신의 노동을 다른 사람의 노동과 비교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으려는 일종의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업 왕국을 꿈꾸는 기업가는 자신이 벌어들인 수백만 달러를 마음껏 쓰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창조자로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인정투쟁은 그 목표가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인정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권력투쟁과는 다르다.각주1)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삶이 권력투쟁과는 다른 인정투쟁이라면, 세상이 살벌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전쟁터가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인정을 해주고 인정을 받는 일에 꼭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도 아닐 텐데, 왜 세상은 돈에 미쳐 돌아가는 걸까? 인정의 기준이 다양화되지 못한 가운데 돈 중심으로 획일화되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근저엔 무엇이 있을까?

인간에겐 '대등 욕망'과 '우월 욕망'이 있는데, 우월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지배 욕망'으로 변질될 경우, 상호 인정의 평화공존이 깨지고 만다. 이와 관련, 미국 교육자 로버트 풀러(Robert W. Fuller, 1936~)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또 필요로 하는 것은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인정은 유한한 자원이 아니라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원이다. '당신을 알아가는' 게임은 제로섬게임, 즉 내가 얻는 만큼 너는 잃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수학에서 말하는 비(非)제로섬게임, 즉 양측 모두 처음보다 더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 게임이다."

세상이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풀러의 꿈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인정의 통속화'가 인정투쟁을 타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노명우는 악셀 호네트가 1992년에 출간한 『인정투쟁』의 부제가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오늘날 인정투쟁의 타락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정의 통속화가 극한까지 진행되면, 인정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인정받았음이 타인의 '눈에 들었다'와 동일하게 느껴지는 한, 사람은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과 눈도장을 구걸하는 사람으로 양분되기 마련이다."

권력을 지닌 사람은 소수의 권력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권력의 주체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거나 이름 없는 대중일 수도 있다. 그렇게 통속적으로 변질된 '인정' 개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SNS다. 과거엔 자기과시를 위해선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 했고, 또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SNS는 그런 번거로움을 일시에 해소시켜준 '혁명'이나 다를 바 없다. '인정 욕구'에 굶주린 사람들이 SNS에 중독되지 않고 어찌 견뎌낼 수 있으랴.

미국 사회학자 던컨 와츠(Duncan Watts, 1971~)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성공엔 '노출증(exhibitionism)'과 '관음증(voyeurism)'이 큰 역할을 했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동시에 그만큼 남들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다는 것이다.

SNS가 젊은층에게 압도적 인기를 누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정체성 만들기에 집중할 때인 젊은층은 크게 달라진 환경에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표현에 적극적인데, 바로 이런 정서가 SNS의 폭발적 성공을 견인했다.

한국의 페이스북 이용에서 '인맥 과시용 친구 숫자 늘리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선일보』(2013년 7월 29일)는 "허울뿐인 '먼 친구'가 유행하는 이유는 페이스북 이용자들 사이에서 친구 추가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친구가 많을수록 인맥이 넓어 보인다는 생각에 친구 요청은 무조건 수락하고, 무작위로 검색된 이용자들을 추가한다. 글로벌 인맥을 과시하려고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친구 요청을 보내기도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함부로 사생활을 공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먼 친구'로 설정하는 것이다. 국내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미국인 조나단 캠벨(21) 씨는 '한두 사람을 먼 친구로 설정할 수는 있어도, 친구 숫자를 늘리려고 일부러 '먼 친구'를 맺는 모습은 한국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적(人的) 자본에 대한 지나친 과시욕이 사이버 커뮤니티로 번져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어디 인맥 과시뿐이랴. "자신의 페이스북에 꾸준히 맛집 관련 사진을 남기는 조 모(35) 씨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조 씨가 알지 못하는 맛집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온 사진을 올리면 괜한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조 씨는 '친구의 페이스북에 여기가 어디냐고 댓글을 남겼더니 웬만한 사람은 다 가본 곳인데 왜 모르느냐고 은근히 핀잔을 주더라'며 '유행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봐 지금은 억지로라도 사진을 올리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끈 'SNS 백태'라는 게시물은 이렇게 말한다. "미니홈피-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다. 페이스북-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블로그-내가 이렇게 전문적이다. 인스타그램(사진공유SNS)-내가 이렇게 잘 먹고 다닌다. 카카오스토리-내자랑+애자랑+개자랑. 텀블러-내가 이렇게 덕후(오타쿠)다" 등.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다. 그러려면 청중이, 관객이 필요하다. SNS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가 인생의 주인공임을 말하고, 서로의 청중이 되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진짜 주인공이 아니고, 누구도 진짜 청중이 아닌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이 공간이 서글프다."

이와 관련, 양성희는 「우리는 왜 SNS에 중독되는가? 아마도 온라인 인정투쟁 중」이라는 『중앙일보』(2013년 8월 17일)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SNS에 만연한 편가르기식 설전에 지쳐 활동을 접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떠날 때도 조용히 사라지기보다는 '퇴장의 변'을 밝힌다. 막상 완전히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대부분 금세 돌아온다. 이런 '중독자'들 덕에 페이스북 사용자만 이미 전 세계 11억 명이 넘는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내 자랑', '내 과시'다. SNS가 바로 '온라인 인정투쟁'의 장이란 얘기다."

우리가 좀 심하긴 하지만, SNS가 '온라인 인정투쟁'의 장으로 활용되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13년 8월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대개 페이스북에는 직장에서 성공담이나 귀여운 아기 사진, 멋진 여행 등 행복한 순간을 올리기 때문에 그런 걸 보면 화가 나거나 외로움을 느껴 결국 행복감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SNS를 포기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나도 남들의 부러움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올리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SNS에 더욱 중독되어야만 하다. 인정투쟁은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데 무얼 망설이랴! 그러나 남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면 '비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

댄 그린버그(Dan Greenberg)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법(How to Make Yourself Miserable)』(1987)에서 비참한 삶의 원인은 '비교'에 있다고 말한다. 미국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은 "우리가 더 없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일을 혼자 하긴 어렵다. 사회적 차원에서 인정의 기준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정의 기준이 권력과 금력 중심으로 미쳐 돌아가는 사회에선 정치마저 그런 문법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정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場)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인정투쟁의 문법을 교정하는 일이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왕성하게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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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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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문법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사람들마다 생각의 내용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자 다른 생각의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과 ‘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공..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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