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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지 | 일본 나가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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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기간 | 1998년 2월 7일 ~ 2월 22일 |
대회 규모 | 72개국 2,176명 참가 |
종목 | 14개 종목, 68개 세부 종목 |
한국 선수단 규모 | 선수 38명, 임원 25명 |
한국 참가 종목 | 8개 종목 |
한국 순위 | 9위(금 3, 은 1, 동 2) |
대한민국 메달리스트
종 목 | 세부 종목 | 메달 |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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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 남자 1000m | 금메달 | 김동성 |
여자 1000m | 금메달 | 전이경 | |
여자 3000m 계주 | 금메달 | 전이경, 김윤미, 원혜경, 안상미 | |
남자 5000m 계주 | 은메달 | 김동성, 채지훈, 이준환, 이호응 | |
여자 1000m | 동메달 | 원혜경 | |
여자 500m | 동메달 | 전이경 |
아쉬움은 있지만 종합 9위로 목표는 달성
8개 종목에 3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 종합 순위 9위에 올라 톱10에 든다는 목표를 이루었다. 하지만 모든 메달이 쇼트트랙에서만 나온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이경이 여자 1000m와 3000m 계주에서 우승하여 2관왕에 올랐고, 김동성이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밖에도 전이경과 원혜경이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중 전이경의 500m 동메달은 결승전에서 두 명의 선수가 실격되어 동메달 획득자가 나오지 않자 순위 결정전에서 1위(전체 5위)에 오른 전이경이 받게 된 행운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은 아쉬움을 남겼다. 제갈성렬과 김윤만, 이규혁 등이 1990년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기대가 컸으나 한 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하였다. 이 밖에도 루지와 크로스컨트리 스키, 바이애슬론, 스키점프 등에 여러 명의 선수가 참가하였으나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한국 대표팀 이슈
여자 쇼트트랙 2연속 2관왕 이룬 전이경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 이어 또 다시 금메달 2개를 따냈고, 동메달 1개를 추가하여 한국의 역대 동계 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리스트에 올랐다. 전이경은 1995~1997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 3연패를 이루어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특히 1500m 결승전에서 중국의 양양과 마지막 순간까지 숨막히는 선두다툼을 벌이다 결승선을 앞두고 미끄러지듯 오른발을 쭉 뻗으며 스케이트 날을 먼저 통과시켜 금메달을 차지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2002년에는 IOC 선수위원에 선출되었고, 은퇴 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를 역임하였다. 또한 프로 골퍼로도 활동하였으며, 2005년에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지내는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 시도하였다.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
대회 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제갈성렬과 김윤만, 이규혁 등이 단거리 부문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계보를 이어왔기 때문에 내심 올림픽에서 큰일을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러면 쇼트트랙에 편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메달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제갈성렬과 김윤만은 이미 노장에 속했으며, 이규혁은 신예였다. 이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여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노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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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1998 나가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성적 – 동계 올림픽 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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