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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계몽의 계몽’과 비판적 근대 정치 기획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요약 테이블
출생 1724년
사망 1804년
대표작 《순수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놓은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 Amano/wikipedia | Public Domain

칸트의 생애와 현재성

오늘날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급속한 세계화 추세는 200여 년 전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17~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추구하던 ‘세계 시민’의 이념이 칸트에게서 완결된 사상으로 종합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칸트가 꿈꾸던 국제 공법으로서의 인권, 세계 공론, 세계 시민 사회 등이 마침내 구체적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한 오늘날 세계 시민적 상태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가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듯싶다.

칸트는 1724년 4월 2일에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가 프랑스 혁명 5년 후인 1804년 12월 2일에 80세의 나이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영면했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수학, 신학을 공부한 후 31세 때인 1755년에 교수직 자격 논문을 제출해 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이후 15년 동안 사강사(私講師)로 활동하다가 44세 때인 1770년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담당 교수가 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산 칸트의 철학은 통상 두 단계로 구분된다. 1770년 초까지의 ‘전(前)비판철학’ 단계와, 그의 주저 《순수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1790)을 통한 ‘비판적’ 또는 ‘선험적’ 관념론의 완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비판철학’ 단계다. 그의 철학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세계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이행은 일부 유럽에서는 이미 종결된 상태였고 프랑스에서는 1789년의 대혁명으로 정점에 도달한 바 있다. 그의 철학은 이 역사적 운동의 추상적인 철학적 표현인 셈이다. 고로 마르크스는 그의 철학을 ‘프랑스 혁명의 독일 이론’으로 규정한 바 있다.

칸트는 매일 오후 늘 같은 시각에 어김없이 산책을 했고, 루소를 탐독하다가 딱 한 번 산책에 지각했다고 한다. 그의 산책 시간이 너무나도 정확해 주민들이 산책하는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그의 철학 사상의 치밀성과 정확성을 상징하는 일화다. 그러므로 그의 ‘비판 전후(前後)’의 철학이 모두 자연과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칸트의 정치사상은 2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아니, 오히려 오늘날에야 좀 더 분명한 현재성을 얻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칸트는 ① 주권의 절대성에 대한 과도한 용인과 이로 인한 논리 구성의 모순성, 가부장주의 등 당대의 조건에 제약된 사상적 한계성 ② 정치적 낭만주의와 민족주의의 발호, 제국주의, 세계대전, 남북 대립 등 험난하고 참혹한 역사 진행에 대한 예견력 부족과 순진한 낙관주의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비판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하버마스가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개념적 난점’과 ‘우리의 역사 경험과의 불일치성’을 들어 비판하면서각주1) 현재의 세계 상황에 비추어 ‘재(再)정식화’하려고 시도한 것각주2) 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칸트가 시공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 같아서 학술적으로 개운치 않게 느껴진다. 나아가 하버마스의 이러한 비판적 재정식화 시도는 일정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칸트의 논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몇 가지 결정적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것으로까지 느껴진다.

칸트는 이성의 ‘질풍노도’ 시대를 풍미한 계몽주의의 비판적 종합자이고 동유럽의 최후의 계몽주의자다. 감상적·복고적 낭만이나 눈앞의 ‘민족 국가적’ 추세에 함몰되어 점차 세계 시민과 국제 연합의 기획으로부터 거리를 취하고 ‘민족’ 이념에 조공을 바침으로써 오늘날 사상적 파산 선고를 당한 헤르더(J. G. von Herder), 헤겔,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 등 이른바 ‘현실주의적’ 후진들과 달리, 칸트는 낙관주의(결코 순진하지만은 않은)와 그것의 장대한 미래 지향적 구상의 날개를, 역설적으로 민족주의의 발호에 대한 예견력이 부족했던 탓에 오히려 과감하게 펼칠 수 있었다. 그가 그간의 무수한 세계사적 대사건들을 큰 걸음으로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21세기적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때문이다.

하버마스의 비판적 ‘재구성’ 시도 역시 칸트의 이러한 생명력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버마스가 이미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참여 공중의 반응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세계적 공론장 현상을 확인한바, 이 세계적 공론장은 오늘날에야 비로소 세계 시민적 의사소통의 연관 속에서 정치적 현실이 되고 있다.……세계 시민적 상태는 우리가 아직 이 상태로부터 큰 괴리감을 느끼고 있을지라도 이제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시민적 지위와 세계 시민적 지위는 이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어가고 있다.”각주3)

물론 이러한 세계 해석과 칸트 해석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가령 한때 유행한 리오타르(J.-F. Lyotard) 등의 탈근대적 세계 해석각주4) 이 그러한 반론에 속한다. 그러나 이 반론들은 모두 출발점이 매우 허약하다. 한때 헤겔주의자였던 리오타르든 푸코(Michel Foucault)든 헤겔의 민족 국가론 및 현실주의적 국제 정치관을 근대적인 것으로 보고 출발했기 때문에 민족 국가의 해체를 ‘탈근대적’ 현상으로 오해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민족 국가의 주권을 ‘지상의 절대 권력’으로 보는 헤겔의 국가 이론과 세계사의 이념은 서구 계몽주의에 반대하던 독일의 ‘정치적 낭만주의’의 민족 개념에서 유래하는 반계몽성을 기괴하게 자기의식적 이성의 논리로 포장, 은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강화되고 있는 국제연합(UN)각주5) 이 민족 국가를 약화시키고 유럽연합(EU)이 유럽의 민족 국가를 더욱 결정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한편, 국경과 주권을 신성시하던 영토 국가는 세계화 속에서 국경이 애매한 개방적 ‘프런티어 국가’각주6) 로, 단일 민족적 국민은 더욱 ‘잡종 국민(mongrel nations)’각주7) 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속에서 세계 시민적 국제 연합 기획에 반대하던 헤겔의 민족주의적 국제 정치관과 민족 국가적 세계 해석은 이제 시대착오로 전락하는 반면, 칸트의 세계 시민적 국제 정치관의 정당성은 더욱 배가하고 있다.각주8)

이것은 리오타르가 주장하듯이 ‘탈근대’가 아니라 바로 칸트적 의미의 근대화다. 헤겔이 사실상 성립한 민족적 주권 국가들의 역사적 우연태(偶然態)를 절대화할 정도로 우연성과 절대성의 차이를 해소시킨 반면, 칸트는 역사적으로 우연히 성립한 것을 우연적인 것으로 놓아두고 ‘규제적 원리(regulatives Prinzip)’의 척도에 따라 ‘사실 대항적(kontrafaktisch)’으로 세계 시민 상태의 이상을 국제 관계의 근대화의 궁극 목표로 진지하게 기획했던 것이다.각주9)

이런 까닭에 칸트의 세계 시민적 계몽 이념은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현 상황의 불투시성을 뚫는 역사의 향도로서의 ‘규제적 원리’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8세기 말의 ‘낡은’ 칸트 사상이 오늘날 다시 ‘새롭게’ 논구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하에서는 일단 포스트모던적 해체론과 냉소주의에 맞서 칸트의 합리성 이념과 해석학적 방법의 간략한 재건 논의를 전제로 계몽주의적 정치철학을 분석하고 이어서 이 계몽주의적 정치 이념을 완결하는 칸트의 세계 시민과 영구평화적 국제 연합론을 논하고자 한다.

‘합리성’ 이념과 ‘방법’의 문제

근대 계몽주의가 대변한 합리주의는, 인간의 주관적 이성을 기준으로 미신적 몽매와 무지, 맹신과 굴종에 싸인 객관적 현실을 비판, 계몽하고 이 비판의 척도인 이성을 인간의 주체성 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인본주의 이념을 한 축으로 삼는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 합리주의는 인본주의와 표리 관계로 결합된, 인간의 이성을 다시 인간의 이성으로 비판하는 이성 비판적 자기반성, 즉 ‘자기 계몽’의 이념을 또 다른 축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근대적 계몽 이념은 현실 계몽과 자기 계몽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적 이념인 것이다. 여기서 ‘자기 계몽’은 ‘이성의 이성적 비판’, 즉 ‘계몽의 계몽’각주10)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계몽 기획은 주관적·객관적 삶의 합리화와 인간 해방의 단호한 추동 기획으로 등장했으나 동시에 이에 대한 자기반성적 비판 기획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었다. 몽테스키외, 디드로, 메르시에(L.-S. Mercier) 등 수많은 초기 계몽사상가들도 이성적 계몽 기획이 비(非)이성에 복무할 위험에 대해 우려하고 ‘이성의 이성적 비판’을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후기 계몽주의에 이르러 루소의 경우처럼 감상주의적 낭만으로 일탈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수공업 도시를 아쉬워하고 중농주의적으로 자연을 동경하던 루소는 길드적 수공업 체계에서 부르주아 체제로의 신기원적 전환을 바로 ‘대타락’으로 규정하고 자포자기했다.각주11) 그러나 계몽의 과정은 이러한 루소의 감상적 자포자기와 이념적 반동화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이어진다. ‘현실의 이성적 비판’과 ‘이성의 이성적 비판’ 또는 ‘현실 계몽’과 ‘자기 계몽’의 이중 구조를 핵심으로 하는 계몽 이념은 칸트 철학에서 비판적으로 종합된다. 칸트는 루소의 이 복고적 감상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이성의 이성적 비판’의 원칙 아래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볼프(Christian Wolff) 등의 이성 교조적 합리주의와 흄의 경험론적 회의주의를 둘 다 비판, 종합했다.

칸트의 이성은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 만약 이성교조주의가 전제하듯이 이성이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라면 이성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교조, 즉 비이성으로 전락한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자신의 지식만을 교조화한다면 과학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이런 까닭에 칸트는 이성적 현실 비판(계몽)과 이성 비판(계몽의 계몽)을 상호적 전제로 정립한다.

칸트는 이 이성적 계몽의 전제로서 이성 비판을 수행한다. 그의 3대 이성 비판서(《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는 계몽주의가 이성을 성역화한 것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저작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근대적 계몽과 합리성 이념을 이성교조주의로 배격하는 것이 얼마나 근거 없는 일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근대적 이성은 ‘이성의 이성적 비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비이성적(감상주의적·신비적)비판’을 배제할 뿐이다. 근대적 계몽 이성의 이념은 애당초 ‘현실의 이성적 비판’과 ‘이성의 이성적 비판’의 통합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합리주의에 대한 탈근대적 비판 항목에는 근대적 이성을 ‘성역화된’ 이성으로 무고하던 근거 없는 오해뿐만 아니라 단일이성중심주의, 즉 ‘이성 독재’ 운운하는 비판도 들어 있다. 인식 주체와 인식 객체의 독백적 관계를 전제하는 인식적 이성은 본질적으로 생산 수단 중의 하나인 ‘인식적 도구’라는 의미에서의 ‘도구적’ 이성(=진리)이고 인간의 모든 감정, 정서, 양심, 취향 등을 배격하거나 이 도구적 이성(진리성)의 휘하에 위계적으로 굴복시키는 ‘합리주의적 고문과 테러’를 가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를 거쳐 볼프를 잇는 이성교조주의는 인간을 감정도 양심도 없는 일종의 기계로 환원하는 기계론에 지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헤겔은 취향과 도덕적 양심을 배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철학적 인식왕의 전체주의적·포월적(包越的) 이성에 굴복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감상주의자 루소의 방황과 혼미를 거친 후기 계몽주의의 비판적 완성자인 칸트는 결코 감성, 취향, 양심의 권리를 경시하지 않았다. 인식(진리)의 문제를 다룬 《순수이성 비판》, 도덕적 양심의 문제를 다룬 《실천이성 비판》, 감성 및 취향의 미학적 문제를 다룬 《판단력 비판》은 별개의 영역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다. 순수이성(진), 실천이성(선), 미학적 판단력(미)은 순수이성을 중심으로 위계화될 수 없는 ‘이성의 근대적 분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분화와 탈중심적 사고에 칸트 사상의 근대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와 관련해 ‘단일 이성의 독재’ 운운하는 것은 근거 없는 것이다. 이러한 탈근대론적 비판은 칸트 이후의 사상 조류, 즉 민족주의적 자본주의 광풍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헤겔 이래의 사상 조류에나 적합한 것이다. 헤겔과 그의 후예들은 ‘이성의 분화’와 ‘다기화’각주12) 라는 근대적 진보를 애도하며 이것을 고대 희랍에서처럼 하나의 이성으로 통합하거나 위계화하려는 복고적 시도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칸트에 의한 ‘이성의 탈중심적 구분’이 베버가 염려했듯이 여러 ‘가치들(진선미)’이 서로를 야만적으로 유린하며 제멋대로 날뛰는 탈근대적 ‘해체’와 개별적 가치들의 상호 무관한 각질화와 충돌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취향의 미학만이 아니라 미학적 원리에 입각한 진선미의 조화, 즉 ‘적절성(Angemessenheit)’ 관계를 논하는 목적론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적 의미의 이 상보적 ‘적절성’ 관계는 한 가치의 포월적 중심성을 허용치 않으면서도 각 가치들의 야만적 상호 파괴와 각질화를 막아주는, 가치들의 ‘내적 관계’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탈근대론의 정력적인 추종자도 탈근대적 ‘해체론’의 자체 정비 차원에서 다시 칸트의 이 ‘적절성’ 개념을 도입하면서, ‘탈근대’는 오해를 유발하는 ‘너무 큰’ 술어로서 오늘날은 차라리 ‘급진적 근대(radikale Moderne)’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반성하고 있다. 탈근대론의 핵심적 요구, 즉 다양성과 특수성의 존중과 포월적 이성관의 폐기는 바로 200여 년 전의 칸트의 요구이고, 따라서 ‘탈근대’라는 말도 무대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각주13)

지금까지 오해 속에서 무던히 비판받아온 칸트의 합리성 이념을 재건한 데 이어 이제 그동안 맹박의 대상이 되어온 그의 방법론, 즉 인간학적 해석학(anthropologische Hermeneutik)을 다룰 필요가 있다. 푸코 유형의 이성 비판은 이들이 근대적 이성의 자기만족적, 테러적 지위를 정초해준 것으로 간주하는 인간학적 방법을 근저에서 붕괴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칸트를 잇는 해석학은 그간 인간학이 남긴 직관만을 받아들이고 인간학에서 벗어나는 자체 발전을 거듭했고 급기야 언어학적 패러다임 전환을 수행했으며, 따라서 저 야심찬 ‘인간학적 해석학에 대한 비판’은 낡은 것이고 동시에 빗나간 것이다.

인간과학은 이념상 ‘이해(Verstehen)’에 기반을 둔 해석학을 당연한 방법으로 삼았다. 이것은 이성적 휴머니즘과 인간 해방의 유토피아가 근대 인간과학의 방법에 깊이 침전된 결과였다. 계몽 이념과 내재적으로 결합한 이 해석학적 방법론은 ‘타고난 인간 본성’을 인간학적으로 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 상의 모든 사회와 역사를 보편적으로 이해, 해명하는 보편주의적 주체(의식)철학과 역사철학으로 응결되었다.

‘인간화된 사회’라는 유토피아는 기존의 사회를 이 사회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신의 내면적 능력, 욕구, 아이디어를 밖으로 대상화한 것으로 이해하는 틀 안에서만 정초될 수 있다. 즉 인간 해방의 유토피아는 사회적·문화적 의미의 객관화(대상화)를 인간 및 인간의 욕구와 소망, 인간의 자기 해석과 합리성으로 환원하는 인간과학의 근본적 방법을 지향한다. 인간과학이 사회적 제(諸)관계의 인간화 이념을 가능케 하는 사유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휴머니즘을 정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학의 방법 자체가 휴머니즘적 유토피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 기획에 대한 이 간략한 기술만으로도 계몽주의의 유토피아적 휴머니즘과 인간학 간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음이 드러난다.

사람이 사는 온 세상을 대상으로 삼는 고전적 인간과학의 좌우명은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구호로 요약될 수 있다. “인간과학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멸시받는 사회 안에서도 자기의 열망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적인 어떤 것도 인간에게 낯설지 않다고 선언하고 이로써 민주적 휴머니즘을 정초한다.” 인간과학은 인간화된 사회의 정치적 유토피아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연구 행위 속에서 ‘모든 분리와 생경성’을 극복함으로써 ‘인류의 전체성’을 산출하는 방법론적 유토피아를 추구한다.각주14)

이런 까닭에 푸코는 인간과학에 내재한 유토피아의 핵심적인 구조의 특징을 ‘연속성’의 개념으로 규정했다. 이 연속성은 개별적인 역사적 과정의 운행 모델이면서 동시에 인간과학의 포기될 수 없는 요청이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과학을 “재(再)인정의 위로적 유희”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지식은 ‘재현’이다.각주15) 차이들 간의 연속성은 이것들이 매번 인간적 의미의 객관화인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과학의 객체들 속에서 이 객체들 속에 대상화된 인간적 자기 이해를 발견하는 것은 의미 이해를 위한 인간과학적 ‘해석과 주석’의 과업이다. 그리하여 의미 이해는 “흔적들이 말하도록 만들기 위해” 유일무이한 일회적 ‘기념비들(Monumente)’을 해석 가능한 ‘기록들(Dokumente)’로 바꿔놓는다.각주16)

푸코에 의하면 인간 분석학으로서의 인간학은 근대적 사고 속에서 “본질 구성적”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우리는 상당 부분 이 인간학에서 해방되지 않았다. 인간학은 본래, 인지론적 ‘재현(Repräsentation)’ 모델이 독자적으로 종합과 분석의 유희를 결정할 힘을 상실하는 순간부터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이 경험적 종합은 ‘나는 생각한다’의 주권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추구되어야 했다. 이 종합은 이제 바로 저 주관적 절대 주권성이 한계에 직면하는 그곳에서, 즉 ‘살고 말하고 노동하는 개인’의 유한성과 의식의 유한성인 ‘인간의 유한성’ 속에서 찾아져야 했다. 푸코는 칸트가 자신의 전통적 삼지(三枝) 공식에 마지막 물음을 덧붙였을 때 이미 그것을 정식화했다고 본다. 칸트는 세 개의 비판적 물음(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나? ②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③ 나는 무엇을 소망해도 되나?)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덧붙인 것이다.각주17)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물음은 19세기 초 이래 유럽적 사고를 지배한다. 푸코에 의하면 이 물음은 슬그머니, 그리고 미리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의 혼합을 저질렀다. 철학은 이 칸트적 전환 속에서 “새로운 수면”을 발견한다. 이 수면은 데카르트식의 교조적 합리주의의 수면이 아니라 칸트의 ‘인간학적’ 수면이다. 근대 철학의 인간학적 구조는 교조주의를 분할하는 데, 즉 교조주의를 서로 지탱하고 서로 제한하는 두 개의 상이한 부분으로 분할하는 데 있다. 인간이 본질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취급하는 ‘전비판적 분석’은 슬그머니, 일반적으로 인간의 경험에 주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학으로 변한다.각주18)

역설적으로 “수면을 각성으로 느끼는” 이런 칸트적 수면으로부터 깨어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저 “인간학적 사각형”을 근본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푸코는 니체의 체험을 ‘인간학의 근절’의 첫 시도로 평가한다.각주19) 문헌학적 비판을 통해, 생물학주의의 특정한 형태를 통해 니체는 인간과 신이 같이 속하는 “후자의 죽음이 전자의 죽음과 동의인”, 초인의 예언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죽음의 임박”을 뜻하는 지점을 재발견했다. 회귀의 발견이 철학의 종말이라면, 인간의 종말은 철학의 시초로의 회귀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는 “사라진 인간의 공허 속에서만” 사고할 수 있다. 푸코에 의하면 이 공허는 결함도 아니고 채워져야 할 틈새도 아니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학적 해석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의 ‘체계’ 또는 ‘구조’는 이제 그 어떤 인간학적 접근도 거부하고 객관적 ‘설명’만을 허용한다. 인간적 의도 및 의미와 무관한 ‘구조’와 ‘체계’의 이 자립적 발전 경향에서 비롯된 해석학적 방법의 한계에 대한 지각이 가다머(H.-G. Gadamer)를 잇는 하버마스의 비판 이론에서도 지속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푸코는 이 통찰을 ‘문제 삼기(Problematisierung)’의 개념으로 주제화하고 있다. 즉 이해를 통해 해독되지 않는 ‘구조’의 생경성과 소외의 체험은 이해 주체와 이해 대상 간의 원칙적 연속성 관념을 뒤흔든다. ‘문제 삼기’의 투입 지점은 생경한 대상과 자기의 의미 지평 사이에 벌어진 틈새다.각주20) 여기까지의 푸코의 주장은 적절하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푸코는 인간학적 해석학의 폐기를 계기로 휴머니즘과 인간 해방(사회의 인간화)의 이념마저 부정한다. 바로 여기에 푸코의 근본 오류가 개재한다. 칸트의 인간학이 과학 이전의 ‘선험적 이야기’로 폐기된다 하더라도 해석학은 탈(脫)인간학적 차원에서도 재건될 수 있고, 따라서 인간화의 이념도 새로운 토대에서 복권될 수 있다. 사회는 인간의 주체적 의지와 의미를 벗어나서는 상징적으로 재생산될 수 없는 하버마스적 의미의 ‘생활 세계’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에 다루어질 ‘이성의 공론적 사용’에 관한 칸트의 논의에서 드러나겠지만, 칸트는 일면적으로 인간학에 사로잡힌 주체철학자도 아니다. 계몽 과정에서 칸트가 중시한 언어 능력 있는 사람들의 대중적 의사소통(‘펜의 자유!’)을 통한 생활 세계의 상징적 재생산은 객관적 체계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생활 세계의 ‘내적 제한 조건’이다. 생활 세계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없고 오직 현실적·잠재적 참여자의 관점에서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생활 세계는 “사실 대항적(kontrafaktisch)인 타당성 주장들의 사실적 인정”을 중심으로 집결한 현상들에 속하기 때문이다.각주21)

상징적 재생산의 과정은 객관적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소통적 행위의 ‘가상적 참여’를 통해서만 해명될 수 있다. 체계 관점과 생활 세계 관점의 분리는 (복잡한) 체계와 (토론적으로 합리화된) 생활 세계의 부분적 분리를 반영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라 보편적 이해 가능성의 해석학적 유토피아는 생활 세계에 한정되지만, 동시에 ‘사실 대항적’ 타당성 주장들이 사실적으로 인정된다. 이와 같이 해석학적 보편성 이념, 즉 연속성 이념은 ‘비과학적인’ 인간학적 토대와 역사철학적 토대를 떠나서도 논증 가능하고 또 인간과학적 과학성으로 논증된다.

생활 세계에서 분리된 물질적 재생산 체계는 이 체계의 참여자에게, 해석학적 자세를 취하는 인간과학적 해석자에게 ‘낯선 것’이다. 이 물질적 재생산의 복합적 체계 때문에 직접적 참여의 정치적 유토피아가 약화될 뿐 아니라, 보편적 이해 가능성의 해석학적 유토피아도 삭감된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는 삭감될지언정 폐기되지는 않는다. 객관화 자세를 취하는 관찰자의 ‘기능주의적 설명’으로는 부족한 생활 세계의 상징적 재생산 과정이 분리된 영역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해석학의 보편성 주장은 이 영역 안에서 사실 대항적으로 관철된다. 따라서 인간학이 품었던 ‘인간화’의 유토피아적 직관도 사실 대항적 정초를 얻는다. 게다가 생활 세계의 관점은 하버마스에 의하면 체계에 대해서도 ‘방법적 우월성’을 갖는다.

이 말은 물론 부분적·제한적인 의미에서다. 체계의 기능적 연관이 생활 세계에 대한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지 ‘식민화’ 역할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생활 세계의 관점에서만 가능하고, 따라서 하버마스는 생활 세계에 대한 체계의 침범을 견제하는 사회 운동을 기안하고 있다.각주22) 또한 나아가 생활 세계의 의사소통적 논리의 관점에서 체계 자체의 세력 관계의 정치적 재조정도 가능하다. 이런 한에서 정치(학)적 유토피아의 과학적 기초도 여전히 진정성(authencity)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가 다른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계몽사상의 구성 ‘방법’으로 도입한 인간학적 해석학이 인간학적 형태에 있어서는 오늘날 견지될 수 없을지라도, 이 해석학이 품었던 인간 해방적 계몽 이념은 인간학의 비과학적 선험성을 벗어던진 새로운 ‘의사소통적 해석학’을 통해 다시 계승될 수 있다.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과 생활 세계론은 인간학을 ‘방법’으로서 폐기하면서도 인간학이 의도한 해방적·비판적 직관의 새로운 과학적 재건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칸트의 계몽 이념

칸트는 하버마스처럼 인간학적 해석학을 언어학적 패러다임의 해석학으로 전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다른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계몽의 수행을 공개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이성의 공론적 사용(öffentlicher Gebrauch von Vernunft)’각주23) 과 결부시켰다. 이로써 칸트는 스스로 인간학적 의식(주체)철학의 질곡을 부분적으로 뛰어넘어 오늘날 현대 해석학과 인간과학이 의존하고 있는 언어 행위론적, 간주체적 패러다임에 방법상 가장 가까이 접근한 계몽철학자가 된 셈이다.

일단 칸트는 ‘계몽(Aufklärung)’을 “인간이 자기 귀책적(歸責的) 미성년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미성년성’은 학문, 예술, 종교, 정치 등 모든 인간 활동 분야에서 “타인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을 뜻하고 ‘자기 귀책성’은 이 미성년성의 원인이 “오성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지도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결의와 용기의 결여”에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가 계몽의 구호다”. 자연이 일찍이 인간들을 타인의 지도로부터 자유라고 선언한 후에도 “타성과 비겁”은 그렇게 많은 다수의 인간들이 ‘기꺼이’ 종신토록 미성년으로 남아 있고 또 그렇게 쉽사리 후견인에게 의탁하는 원인이다. “미성년이라는 것은 그렇게 마음 편한 것이다.”각주24) 칸트는 여기서 이성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다른 윤리적 미덕인 결의와 용기, 악덕인 타성과 비겁 등을 같이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이성만을 절대시하는 교조적 합리주의자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각주25)

말하자면 칸트의 계몽 개념은 자기 귀책적 미성년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자기비판과 미성년성을 강제하는 지배 체제에 대한 이성적 비판의 개념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계몽’과 ‘비판’은 동의어인 것이다. 문제는 비판의 척도가 이 자기의 ‘이성’이라는 점이 먼저 비판적으로 탐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칸트의 ‘계몽’, 즉 ‘이성적 현실 비판’은 ‘이성적 이성 비판’, 즉 3대 이성 비판(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는 이성적 현실 비판과 이성적 이성 비판의 이러한 이중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아가 그는 칸트가 “비판적 운동 전반을 ‘계몽’으로 기술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각주26) 칸트가 해방의 비판적 기획에, 계몽에 앞선 예비 과업으로서 “인식의 인식”을 부과한 것으로 오해했고, 결국 칸트의 ‘계몽’과 ‘비판’이 상호 대립된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다.각주27)

나아가 칸트는 대중의 계몽적 용기의 부족을 선각자들의 글쓰기로 형성되는 자유 공론의 해방적 권력으로 ‘서서히’ 타파하고자 한다. 칸트가 계몽의 수단으로 공론을 설정한 것은 그의 계몽 기획에서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푸코는 말년에 칸트를 재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계몽 기획에 담긴 이 공론의 의미를 주목하지 않고 가볍게 지나침으로써각주28) 끝내 바른 계몽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채 마침내 다시 허무주의적 댄디즘에 굴복하고 만다.각주29) 칸트는 진위(眞僞)의 양가치성 때문에 자유 공론을 경시한 루소나 헤겔과 달리각주30) 공론의 해방적 역할을 긍정했던 것이다.

물론 칸트가 하버마스의 지적대로 18세기적 제약 속에서 글 쓰고 말하는 공론이 나중에 겪을 현대적 구조 변동을 예상하지 못한 역사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다.각주31) 그러나 공론이 철저한 이미지적·영상적·경제적 구조 변동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적 이성을 깡그리 위조한다는 아도르노(T. W. Adorno)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문화 산업’ 테제는 지극히 일면적으로 과장된 것이다. 공론은 오늘날 근본적 구조 변동 이후에도 여전히 ‘양가치적’인 것이고 소통적 이성의 해방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각주32) 그렇다면 칸트가 공론장의 구조 변동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계몽 이념을 재건하는 데 하등의 장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계몽 이념은 공론장의 현대적 구조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견지될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의 공론적 활용이 계몽의 유일한 방법임을 갈파하고 이 공론을 계몽주의적 근대 기획의 근본 요소로 정립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미성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차라리 마음 편한 면이 있다. 따라서 “개인적 인간들이 거의 자신의 천성이 되어버린 미성년성에서 스스로 탈피하는 것은 어렵다.……자기 정신을 스스로 가공함으로써 스스로 미성년성에서 탈피해 확실한 행로를 가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오직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용기 있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사람이 소수라는 사실에 굴하지 않고 칸트는 루소에게서 무시된 의사소통적 공론의 계몽적 기능을 강조한다.

“차라리 공중이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은 가능하다. 아니, 공중에게 자유만 주어진다면 그것은 거의 불가피하다. 미성년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진 뒤 각 인간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그리고 자율 사고의 사명에 대한 이성적 존중의 정신을 자기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몇몇 자율적 사상가들이 심지어 대중의 후견인들 가운데에도 늘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공중의 오류나 편견은 공중의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지도자들의 오도와 선동으로 주입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후견인들에 의해 미성년성의 굴레 아래 들어가게 된 공중은 “그 어떤 계몽에도 무능한 후견인들”에 의해 선동되는 경우 뒤에 가서 다시 이 후견인들을 그 굴레 아래 들어가도록 강요함으로써 보복한다.

따라서 “편견을 심는 것은 아주 유해한 것”이다. “편견은 나중에 이 편견의 원작자 또는 이자의 후손에게 보복한다.” 공중은 “오로지 서서히” 계몽된다. 급격한 혁명을 통하면 아마 개인적 전제와 압제로부터의 이탈은 이룩되겠지만, “사고방식의 진정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혁명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편견들은 낡은 편견과 함께 “사려 없는 거대한 무리”의 행동 지침이 되고 말 것이다.각주33) 칸트는 여기서 혁명으로 사회를 전복한 프랑스 자코뱅파와 현대 공산주의자들의 도덕광신주의적 혁명 테러와 스스로 이 테러의 제물이 되는 그들의 자멸을 예언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계몽을 위해서는 자유, 그것도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무해한 것, 즉 자신의 이성을 모든 부분에서 공론적으로 사용할 자유 외에 다른 것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측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떠들고 따지지 말아라(räsonniert nicht)!”다. 장교는 ‘따지지 말고 훈련해라!’, 성직자는 ‘따지지 말고 믿어라!’, 이른바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은 ‘맘대로 떠들고 따져라, 그러나 복종하라!’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도처에 자유의 제한”이 있다. 따라서 칸트는 ‘계몽을 가로막는 제한’과 ‘계몽을 가로막지 않는 제한’을 구분한다. 계몽을 위해서 “이성의 공론적 사용”은 “언제든” 자유로워야 하고 오직 이성의 이 자유로운 공론적 사용만이 사람들에게 계몽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성의 공론적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계몽을 가로막는다. 반면, “이성의 사적(私的) 사용”은 종종 매우 협소하게 제한되더라도 계몽의 진보에 특별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성의 공론적 사용”이 어떤 인간이 “식자(識者)로서” 공중 전체를 상대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인 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은 어떤 인간이 자신에게 위임된 시민적 “직책” 또는 “직위”에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직책과 직위가 공공 목적을 수행하는 필수적인 기제의 한 부분인 한에서 지시에 수동적으로 응해야 하는 이 자리에서 떠들고 따지는 것은 물론 허용되지 않는다. 이 자리에 있는 한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적 특수 권력 관계에서 상명하복의 의무를 진 직책자라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가 “세계 시민 사회(Weltbürgergesellschaft)의 구성원”으로서 “자기의 이성적 정신”에서 공중을 글로 대하는 “식자의 자질”을 발휘해 자기 직무의 교란 없이 물론 말하고 따질 수 있다. 칸트는 여기서 이성적 정신에서 공익을 사심(私心) 없이 논하는 ‘식자의 자질’을 세계 시민의 지위와 결합하고 있다. 말하자면 계몽은 공론과 결부될 때 세계 시민의 지위를 논리적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가령 직책에 임명된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한낱 사적 사용에 불과하고 이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성직자도 “본래적인 공중, 즉 세계에 대고 글로써 말하는 식자로서” 자신의 이성을 공론적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명의로 말하고 따질 “무제한적 자유”를 향유한다.각주34) 여기서 공중의 ‘세계’는 오늘날 공론장Ö(ffentlichkeit)을 뜻한다.각주35)

칸트는 성직(聖職) 문제에도 관심을 돌린다. 성직 사회에서 “인민의 후견인들 자신이 다시 미성년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면, 이것은 부조리의 영구화로 치닫는 부조리”다. 그러나 성직 사회가 고위 후견 체제를 매개로 인민에 대해서도 후견 체제를 운용하기로, 그리고 이것을 영구화하기로 맹약할 권리가 있는가? 칸트는 이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점진적 계몽과 인류를 영원히 격리시키기 위해 체결된 이 계약은 “단적으로 무효”다. 인간 본성의 본래적 규정이 “계몽의 진보”에 있기 때문에 이런 계약은 “인간적 본성에 반하는 범죄 행위”다.

따라서 군주가 공론을 검열하고 간섭하면서 “황제는 문법학자보다 높지 않다”라는 비난에 대비해 이러한 검열을 자신의 최고 통찰을 구실로 행하는 경우나, 또는 군주가 자신의 나라 안에서 자신의 신민들에 대한 폭군들의 성직 전제주의를 지원할 정도로 자신의 최고 권력을 낮추는 경우에 군주는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각주36)

칸트는 마지막으로 시대적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아니라고 자답한다. 우리는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 중”인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인간들의 상황이 그렇듯이, 사태를 전반적으로 보면 (종교 문제에 있어서) 타인의 지도 없이 자기의 오성을 안전하게 잘 사용할 위치에 있거나 이 위치에 있을 수 있기에는 너무 미흡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수준까지 자유로이 작업할 영역이 이제 열리고 “일반적 계몽 또는 자기 귀책적 미성년성에서의 탈피를 막는 장애들이 점차 적어지고 있는” 징후는 명백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당대를 “계몽 중인 시대”로, 나아가 “프리드리히의 세기”로 규정한다.

이로써 칸트는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을 북돋운다. 종교 문제에서 인간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관용’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로 간주하는 군주는 계몽된 인물이자, 인류를 미성년성에서 탈피시키고 각 개인이 양심 문제에서 자기의 이성을 사용하도록 각 개인을 해방한 인물로서 세상과 후세에게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각주37)

칸트에 의하면 학문·예술 분야의 경우에는 어떤 지배자도 이 분야의 계몽을 간섭, 후견하는 데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칸트는 계몽의 주요 논점을 특히 종교 문제와 관련시킨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럽게 주제를 전환해 계몽을 당대의 정치적 핵심 문제에 적용한다. 종교 분야에서의 계몽을 촉진하는 국가 원수의 사고방식은 더 전진해 “자신의 입법과 관련해서도 신민들이 그들의 이성을 공론적으로 사용하는 것, 입법의 보다 나은 채택에 관해 자신의 생각들을, 심지어 이미 주어진 입법에 대한 허심탄회한 비판과 함께 세상에 공개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각주38)

이러한 입법의 계몽을 넘어, 칸트는 합법적 저항권 개념을 변형해 공론을 통한 계몽을 통치자의 일상적 정치 행위와 조치에 적용된 저항권으로 간주한다. 일단 그는 저항권을 헌법에 규정해 법적 권리로 만들자는 주장은 기존의 국가 원수와 저항 세력의 지도자인 잠재적 국가 원수를, 즉 적어도 두 명 이상의 국가 원수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 저항권이 비록 법제화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임을 인정하면서, 저항권을 원수에 대한 강권적 저항의 권리가 아니라 이성적 반대와 비판이라는 언론의 자유로 재정립한다. 저항권의 이러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칸트는 어떤 형태의 저항권도 부인하는 홉스를 탄핵한다. 국가 원수는 지배 계약에 따라 인민에 대한 어떤 의무도 없고 따라서 시민에게 어떤 짓을 해도 불법을 행할 수 없다는 홉스의 주장은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각주39)

칸트에 의하면 반대로 시민은 지배자가 “시민에게 불법을 저지르려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자신의 의견에 입각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법을 판단할 권리, 저 전제에 따라 오류로 인해 또는 최고 권력의 법률로 인해 생겨나는 일정한 결과의 무지에서 야기되는 불법을 판단할 권리”를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시민은 통치자의 처분들 가운데 공동체에 대한 불법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의견을 “공론적으로 발표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통치자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원수가 실수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거나 원수가 사실에 대해 무지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원수가 “천상의 영감으로 은총 받은” 존재요 “인류를 초월한” 존재라는 망상과 같다.

이에 맞서 칸트는 “펜의 자유(Freiheit der Feder)”를 “인민 권리의 유일한 수호신”으로 치켜세운다. 이 펜의 자유마저 부정하는 것은 (홉스처럼) 최고 명령권자의 관점에서 시민의 모든 권리 요구를 박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반적 인민 의사를 대의(代議)한다는 전제에 따라 통치자가 시민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원리에도 불구하고 통치자가 불법임을 안다면 결코 저지르지 않을 그런 불법에 관한 정보를 통치자에게서 박탈함으로써 그를 자기모순에 빠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자율적 사고와 허풍 치는 사고(Sebstund Lautdenken)”로 나라가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국가 원수에게 주입하는 짓을 국가 원수에게 “자기의 권력에 대한 불신”과 “자기 인민에 대한 증오”를 야기하는 몹쓸 짓으로 규탄한다.각주40)

칸트는 원리적 전제에 따라 국가 원수의 불법을 공중을 향해, 아니 세계 시민 사회를 향해 공론적으로 비판하는 언론 자유와 자유 공론을 양도할 수 없는 자연법적 천부인권이요 근대 시민 정치의 근본 원리로 규정한다. “각 공동체에는 (전체를 겨냥하는) 강제 법률에 입각한 국가 헌정 기제에 대한 복종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유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각자는 일반적 인간 의무와 관련된 사항에서 이 강제가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적법하다는 사실을 이성에 의해 확신하게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 정신을 금한 채 단순한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은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결사를 결성하도록 유인하는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특히 인간 일반과 관련된 사항을 서로 알리는 것은 인류의 자연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알리고 의견을 나눌 “자유”가 장려되면 비밀 결사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정부가 “자유의 정신”이 표명되도록 하는 것은 정부가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의도를 촉진하는 정보를 얻는 길이다.각주41)

칸트는 이 공론적 계몽 이념을 특정 국민에 국한해 기안하는 것이 아니라, 상술한 바와 같이 공론적으로 투입되는 인간 이성의 자연법적 보편성에 입각해 세계 시민적으로 정초한다. 따라서 논리 필연적으로 계몽과 공론은 일국적(一國的) 계몽과 공론뿐만 아니라 세계 계몽과 세계 공론도 지향한다. 칸트는 이러한 논리적 필연성 위에서 시민 사회의 일국적 특수성과 주권 국가들 간의 자연 상태를 뛰어넘는 세계 시민적 평화 연합 체제의 도래를 논한다. 칸트는 이 이념이 일거에 실현될 것으로 공상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권 국가적 갈등과 항구적 전쟁 상태 앞에서 이념적으로 좌절하지도 않았다. 이상주의자 칸트는 동시에 너무나도 냉철한 낙관적 현실주의자였다.

국제 사회에 세계 시민적 상태가 도래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시민적 자유, 즉 인간 해방의 조건을 완성한다. 이러한 해방의 사상적 맹아는 칸트 당대에 이미 싹텄다. 그에 의하면 이 자유의 사상적 맹아는 인민의 자유로운 실천 감각과 행위의 자유를,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구현하는 시민 정부의 등장을 촉진한다.

보다 높은 정도의 시민적 자유는 인민의 정신적 자유에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자유에 극복할 수 없는 제한을 가한다. 이에 반해 더 낮은 정도의 시민적 자유는 자신을 모든 능력에 따라 확장할 공간을 인민의 정신에 마련해준다. 자연이 이 단단한 껍질 아래 지극히 조심스럽게 보살피던 맹아, 즉 자유 사고의 성향과 소명을 발아시켰다면, 이 자유 사고의 성향과 소명은 점차 (행위할 자유에 대한 인민의 능력을 점차 형성하는) 인민의 감지 방식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고 종국에는 기계 이상의 존재인 인간을 그 존엄성에 맞춰 대우하는 것을 유익한 것으로 간주하는 통치 원칙에도 영향을 준다.
Beantwortung der Frage : Was ist Aufklärung각주42)

이 자유 사고는 판단의 근거를 자신의 이성에서 구하는 계몽의 시작이고 인류의 공론은 이러한 계몽을 촉진하는 세계 시민적 정치 기획이다.

칸트의 시민 정치론과 반전론

계몽주의의 철학적 출발점이 천부인권적 자유를 향유하는 ‘인간’이라면 그 정치사상적 중심 개념은 시민이다. 이 시민 개념은 혈통적·신분적·인종적·종교적·경제적 차이를 초월한 만인의 인본적 자유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인본적 보편주의, 즉 세계 시민 이념과의 연속성 속에서 정의된다. 특정 국가의 시민 공동체, 즉 국민(nation)은 특정한 지역, 즉 영토를 경계로 하여 연합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개방된 지연적(地緣的) 정치 공동체, 즉 추상적·보편적 인류를 지연 공동체적으로 구체화한 인류의 정치적 부분 단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국가의 시민은 인류를 향해 개방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이 국가에 소속되어 기본 인권뿐만 아니라 이 국가에 대한 참정권도 향유하는 능동적 정치 주체다.

따라서 계몽주의적 정치 기획을 종합, 완성한 칸트는 “① 인간으로서의 각 사회 구성원의 자유 ② 피치자(Untertan)로서의 각 사회 구성원의 평등 ③ 시민으로서의 각 공동체 구성원의 자율성”을 시민적 체제의 ‘선험적 원리’로 제시한다. 공동체의 헌정 체제의 구성 원리인 인간으로서의 자유의 원리는 “아무도 자신이 다른 인간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하기를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즉 각인은 가능한 일반적 법률에 따라 모든 사람의 자유와 부합될 수 있는 유사한 목적을 추구할 타인의 자유(즉, 타인의 이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행복을 자신에게 좋다고 느껴지는 방식으로 추구해도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논하는 바로 이 대목에서 칸트는 홉스의 절대주의 국가관을 비판하면서 자유를 기준으로 ‘가부장 정체(väterliche Regierung)’와 ‘조국 정체(vaterländische Regierung)’를 구분하고 있다.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호의와 같은 인민에 대한 호의의 원리 위에 세워진 정부, 즉 신민들이 무엇이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유익, 유해한 것인지를 가릴 수 없는 미성년적 어린이로서 단순히 피동적 자세를 취하도록 강제되어 자신들이 어떻게 행복해야 하는지를 단순히 국가 원수의 판단으로부터, 그리고 이 원수가 이것을 바라는 것도 단지 이 원수의 선으로부터 기대해야 하는 가부장 정체(imperium paternale)는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전제(專制) 체제……다.”각주43)

칸트는 다른 곳에서 전제 체제를 간명하게 “자유 없는 법률과 권력” 체제로 정의한다. 반대로 “자유와 법률이 있는 권력” 체제는 공화정으로 규정하고 오직 이 공화정만이 “참된 시민 헌정”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각주44) 따라서 ‘가부장 정체’와 구별되는 ‘조국 정체’란 바로 ‘공화국’을 뜻한다. “권리 능력 있는 인간을 위해서, 동시에 지배자의 호의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정부”는 “가부장 정체가 아니라 조국 정체다”. 따라서 “각인이 공동체를 자신의 무조건적 임의에 굴복시켜 사용하는 것을 자신의 권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각인이 오로지 각인의 권리들을 공동의지의 법률로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어머니의 품으로 또는 나라를……아버지의 땅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애국적이다”. 이 자유의 권리들은 인간으로서의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유한 것이다.각주45)

인간의 자유를 구현하고 따라서 구성원의 자연스러운 애국심을 고취하는 이 ‘조국 정체’의 질서는 신의 의지나 관습, 전통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자신의 입법에 의해 창설된다. 따라서 시민의 입법적 이성에 의해 창설되는 공화국은 의사소통과 공론적 합의(즉 ‘이성의 공론적 사용’과 ‘펜의 자유’)에 의해 구성되는 철저한 세속적 질서다. 인간의 권리가 생명과 자유에 본질을 두고 있다면, 이 생명과 자유의 공동체적 보존과 실현을 위한 시민의 권리는 입법권에 본질을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입법에서 투표권을 가지는 사람은 시민이라 한다”. 말하자면 “시민”이란 곧 공동체의 자립적인 성원으로서의 “공동 입법자(Mitgestzgeber)”다. 이 투표권에 필요한 유일한 자질은 “그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자질”, 즉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율성”이다.각주46)

말하자면 시민의 입법자적 지위는 시민의 자율성, 주체적 독립성에 근거한다. 다시 입법자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 시민의 자율성은 인간의 자연권적 자유의 이념에서 도출된다.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는 일반적 준칙의 범위 내에서 나의 행복을 나의 방식대로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천부적 자유는 “내가 동의를 줄 수 있는 법률 외에 어떤 외적 법률에도 복종하지 않는 권능”을, 뒤집으면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법률을 오로지 자신의 의사로만 만든다는 자기 입법의 원칙을 내포하기 때문이다.각주47)

그런데 바로 이 시민적 자율성과 자기 입법의 자격에 대한 판단에서 칸트는 가부장주의적·프티부르주아적 시대 제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칸트에 의하면 “어린 미성년자가 아니고 여성이 아니라는 자연적 자격 외에” 자기 자신의 주인일 사회적 요건은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허락함”, 즉 신역 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물건의 양도”를 통해서 먹고살 수 있는 “그 어떤 소유(Eigentum)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소유”는 토지나 부동산 같은 재산 소유만이 아니라 능력(공예, 수공 기능, 학문·예술적 역량)소유도 포함한다. 즉 시민이란 “공동체 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봉사하지 않는” 사람이다.각주48)

시민 개념의 규정에 나타난 칸트의 가부장주의적 측면은, 미성년자의 연령 범위도 따져봐야겠지만 무엇보다 여성을 ‘자연적’ 자격의 미달자(“여성이 아니라는 자연적 자격” 운운)로서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하지만 이 대목을 과장해 근대 계몽 기획이 ‘원리적’으로 여성 억압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이다. 칸트의 이 남존여비적 사고는 계몽의 원리(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가 아니라, 근세 초의 가부장주의적 생활 경험의 교란 탓에 이 원리를 여성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적용하지 않은 비일관성과 자가당착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추상적 원리의 계몽 이념과 상치되는 이런 유의 가부장제적 잔재는 루소의 《에밀》 5부 ‘소피(Sophie) 편’(여성의 수줍음과 남성에 대한 복종심 주입에 관한 여성 교육론)에서도 잘 드러난다.각주49) 또한 루소와 칸트 시대 이후에 쓰인 여러 저작에서도 유사한 가부장적 기안들이 등장한다. 가령 처녀성을 고이 간직한 신붓감을 길러내려는 벤담(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의 여성 기숙학교 설계각주50) 에서도 등장하고 여성에게서 학문, 예술, 이념 능력을 부정하고 여성의 수동성과 주관성을 예단하는 헤겔의 ‘여성 식물론’각주51) 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탈근대론적 여성 이론가들이 그러듯이 이런 사실을 근거로 계몽 또는 근대의 일반적 본질을 가부장적 기획으로 성급히 규정짓는 것은 분명 잘못된 추리일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프랑스 혁명 헌법의 한 기안자인 콩도르세(M.-J.-A.-N. de Caritat Condorcet)는 저 시민의 개념을 다룬 칸트의 《이론에서는 옳은 것이 실천에서는 옳지 않다는 속설에 대하여(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ur die Praxis)》와 같은 해(1793)에 쓴 《인간 정신의 진보의 역사적 서술 기안(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에서 흑백 평등만이 아니라 남녀 평등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편적 행복에 가장 중요한 인간 정신의 진보의 항목에 양성 간에 권리의 불평등을 만들어놓은 편견의 완전한 제거를 집어넣지 않을 수 없다. 이 불평등은 이 편견을 조장한 저 성(남성)에게조차 파멸적인 것이다.

이 불평등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양성 간의 육체적 차이나 가령 이지력, 도덕적 감수성 등에서 발견되는 양성 간의 상이성 속에서 찾을 것이지만, 이것은 다 헛된 짓이다. 이 불평등은 강권의 남용 외에 다른 어떤 원천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인데, 훗날 사람들이 이것을 궤변으로 변호하려고 헛되이 시도해왔을 따름이다.”각주52) 200여 년 전의 콩도르세의 이 여성관은 가히 21세기적이다. 따라서 근대 기획 일반의 가부장적 본질을 추론하는 탈근대론적 시도는 그릇된 것이다. 몇몇 계몽주의자들의 가부장적 성향은 이들의 논리적 자가당착으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옳을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별도의 논문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칸트적 시민 개념의 프티부르주아적 한계는 근대적 임금 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다만 선대제하의 수공업자와 전근대적 종속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신역 봉사자 간의 구별(오늘날에는 별로 중요치 않은)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다. “물건(Opus)을 제작하는 사람은 (이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니면서도) 이 물건이 마치 자기 소유인 양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praestatio operae)은 물건 양도가 아니다. 집안 하인, 상점 하인, 날품팔이, 심지어 미용사도 단순한 서비스 봉사자이지, 물건 제작자가 아니다.

이들은 국가 구성원이 아니고 따라서 시민의 자격도 없다. 내가 나의 장작을 대주는 사람과, 내가 옷을 만들기 위해 나의 옷감을 대주는 재단사는 나에 대해 유사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전자는 후자와 구분된다.……후자는 자영업자로서 자기의 소유물을 다른 소유물(opus)과 교환하고,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허락한 능력의 사용(operam)을 교환한다.” 그러나 칸트는 한 템포 쉬고 나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시민의 개념적 범위를 규정짓는 것이 자의적임을 실토한다. “고백하건대, 자기 자신의 주인인 인간의 지위에 필요한 요건을 규정짓는 것은 뭔가 어려운 일이다.”각주53)

‘물건(opus)’과 ‘서비스(operam)’의 차이를 가지고 물건 제작자를 ‘시민’으로, 서비스 제공자를 ‘비시민’으로 규정하려다 스스로 어려움을 실토하는 칸트가 만약 종속된 처지에서도 가전제품에서부터 항공기까지 모든 ‘물건’을 제작하는 근대 임금 노동자를 만났다면 일대 개념적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칸트의 이 난관은 그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추상 명제의 ‘원리적 사실’에 기초한 그 자신의 계몽 이념에 불충실하게 시민 개념을 소유와 비소유, 물건과 서비스라는 ‘경험적 사실’에서 찾으려 시도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계몽 이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원리적 사실’의 구현을 가로막는 ‘경험적 사실’은 개념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타파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시민 개념이 고려해야 하는 유일한 경험적 사실은 지역 또는 영토의 지리적 한계다. 이에 반해 계몽 기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이라는 이념은 초지역적으로, 즉 세계 시민적으로 정초된 추상적 인간이다. 따라서 이 추상적 ‘인간’ 개념과 지연적 ‘시민’ 개념 사이에는 경험적 격차와 역사적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전제적인 관계에 있다. 추상적 인간이라는 이념이 그것의 구현을 위해 경험적 주권 국가의 현실적 시민을 필요로 하는 반면, 경험적 불가피성에 따라 임의적 국경과 국적법에 갇힌 시민 개념은 추상적 인간이라는 이념에 따라 국경을 넘어 세계 시민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민은 그 완성(추상적 인간 개념과의 합치)을 위해 영토 주권과 전쟁 상태를 지양하는 세계 시민적 국제 연합 체제의 출현을 요구한다. 따라서 계몽주의적 시민 공화국, 즉 ‘민주 조국’의 영토는 나중에 낭만주의자들이 가공으로 지어낸 폐쇄적 민족(ethnische Nation)의 땅, 즉 외국인의 체류, 이주와 자국민의 이민의 자유를 혈통적으로 배격하는 숙명적 땅일 수 없는 것이다.

칸트는 완전한 시민적 국내 체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세계 시민적 국제 체제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각주54) 국제 관계의 무법적 전쟁 상태는 대내적으로 인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해 국내적으로 시민 질서의 가일층적 발전을 저지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역으로 국제 관계에서 전쟁 상태가 종식되고 영구평화를 가능케 하는 세계 시민적 법질서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실현되는 공화국일 것을 전제한다. 칸트에 의하면 각국의 시민적 국내 체제의 발전과 세계 시민적 평화 체제의 발전은 상관관계가 있다. 칸트의 이러한 관념은 계몽주의 전통의 특유한 전쟁관을 매개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칸트는 인간 자유, 시민, 민주공화정적 조국 등의 개념을 배경으로 발전된 계몽주의적 반전론과 평화 이념을 그대로 수용한다. 따라서 전쟁을 원하는 전제적(專制的) 국가 원수와 평화를 원하는 인민의 상반된 입장에 기초해 전쟁을 비판하고 이 전쟁의 원인을 절대왕정의 ‘전제성(專制性)’이라는 국내적 요소로 돌리는 계몽 전통의 이러한 전쟁론은 칸트의 정치 기획에 그대로 집약된다. 군주는 비록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아무것도 잃는 게 없기 때문에 전쟁을 원하는 반면, 인민은 전쟁의 승패를 떠나 전쟁으로 야기되는 재앙적 폐해와 생명의 손실을 다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평화를 원한다. 칸트는 “공화제적이지 않은 헌정 체제”, 말하자면 전제군주정에서는 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거리낄 것 없는 일상사”라고 갈파한다.

“원수가 국가의 일원이 아니라 국가의 소유권자이고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연회, 사냥, 호화 성채, 궁궐 축제 등을 조금도 상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원수는 일종의 야유회처럼 사소한 이유에서 전쟁을 결정하고 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점잖게 이를 위해 늘 대기 중인 외교단에게 무심히 떠넘긴다.”
Zum ewigen Frieden각주55)

따라서 국내적 시민 사회의 정착과 국가들 간의 세계 시민 사회적 법 체제의 출현을 불가능케 하는 항구적인 전쟁 상태를 끝장내는 것은 전쟁을 둘러싼 전제군주와 인민의 정치적 이해 대립에 근거해 현실주의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영구평화의 국내적 전제는 평화를 원하는 인민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민 자치의 공화정의 확립이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적 국제 연합 체제의 수립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세계 시민 이념, 그리고 영구평화와 국제 연합의 기획

인류 보편의 역사적 경향과 국제 연합

칸트의 세계 시민 이념과 국제 연합적 평화 체제 구상은 프랑스 혁명 직전에 집필된 그의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1784)에서 처음 선보인다. 이 저작의 제7명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완전한 시민적 체제의 수립 문제는 합법적인 대외 국제 관계에 달려 있고 후자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각주56) 그러나 칸트는 이성적·공법적 국제 체제가 개인의 경건한 도덕심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보는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그러한 국제 체제가 인간의 투쟁과 적대의 비극적 고통과 피해 부담에 대한 비판적 반성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믿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였다.

칸트는 인간의 본성을 타인과 결속할 필요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기적으로 상호 갈등하는 “비사회적 사회성(ungesellige Geselligkeit)”으로 규정한다.각주57) 인간들을 합법적인 시민 체제, 즉 공동체의 수립으로 내몰았던 이 비사회성과 적대성은 다시 각국으로 하여금 국제 관계에서 야만적 자유 상태에 처해 있게 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각국은 타국으로부터 악행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개인적 인간들을 짓누르고 강요해 합법적 시민 상태로 들어서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말하자면 “자연”은 인간들의, 아니 커다란 사회들과 국가들의 “불화”를 이들 간의 “불가피한 적대성” 안에서 “안녕과 안전의 상태를 발견해내는 수단”으로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여러 전쟁을 통해, 이 전쟁을 위해 과도하게 긴장되고 결코 늦출 수 없는 군비 증강을 통해, 이로 인해 각국이 심지어 평화 속에서도 국내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을 통해 각국을 맹아적이고 불완전한 시도로 내몰고, 하지만 종국에는 수많은 황폐화, 전복, 철저한 국내적 세력 소진 후에 이성이 그러한 비극적 체험 없이도 말해줄 수 있었던 상태로 내몰 것이다. 즉, 야만인들의 무법 상태에서 벗어나, 각국이……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자기의 권력이나 자기의 법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커다란 국제 연합(Foedua Amphictyonum), 즉 통합된 권력과 통합된 의지의 법률에 따른 결정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국제 연합(Völkerbund)으로 들어서도록 내몰 것이다.”각주58)

바로 이 때문에 자연필연성을 뜻하는 ‘자연’은 인간의 주관적 이성을 통해 조화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주관적으로나마 이성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전쟁의 참화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초개인적 이성이 찾아오는 것이다. 인간이 비이성적인 존재, 즉 단지 감각적인 존재이거나 미치광이라면 전쟁으로 인한 참화를 반성 없이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보편사적 의도에 대한 칸트의 확신은 실은 인간의 아둔함과 비이성 속에서 이것의 결과에 대한 고통스러운 수난 체험을 통해 결국 관철되는 자연적 역사이성에 대한 믿음의 객관적 표현인 셈이다.

자연법적 역사이성에 대한 이 이성적 믿음은 칸트 이후 전개된 세계사에서 계속된 살인적 군비 경쟁, 무장 평화, 1·2차 세계대전의 천문학적 전화, 유럽 각국의 국내적 소진, 비극적 전쟁고, 전쟁의 만행, 재앙을 겪은 후 서유럽 국가와 인류가 달성한 국제연합(UN)과 유럽연합(EU) 체제의 출현 과정에서 그대로 적중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사회에서는 어떤 독재 국가도 국내 문제에서조차 야만적 자연 상태를 구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가 국제 연합과 국제적 공법 상태로 내모는 칸트의 긍정적 추동 요소들(공화제, 국제 무역, 공론장)만을 언급하고 반복적인 전쟁의 참화와 결부된 이성적 반성의 부정적 추동력을 망각한 채 전쟁의 공포와 잔악함, 1·2차 세계대전 등이 칸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인 양 나열하는 것각주59) 은 적절치 못하다. 더구나 칸트가 도덕과 정치의 일치를 ‘자연’의 감추어진 ‘의도’로부터 신비스럽게 설명하고자 했다는 비판각주60) 은 반복될 처절한 전쟁의 참화에 대한 불가피한 이성적 반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는 칸트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이 점을 고려하면 국제 연합과 관련된 칸트의 사상은 하버마스가 의도하듯 비판적 ‘재(再)정식화’의 이유가 아니라 적중한 역사 예견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칸트에게 아직 전쟁 범죄라는 것은 생소하고”,각주61) 따라서 칸트의 국제 정치관은 침략 전쟁이 불법화된 오늘날의 관점에서 낡은 것이라는 하버마스의 비판적 시사는 그릇된 것이다. 칸트는 백과전서에서 인용한 요쿠르의 정전론(正戰論) 및 이와 결부된 “지배자의 불가결한 의무”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평화 유지를 법적 의무로 과하는 “국제적 공법 상태”를 희망했던 것이다. 이 공법 상태란 전쟁이 법적으로 규제되는 상태를 뜻한다. 다만 칸트는 공법 상태의 당장 실현을 요구하지 않고 그것을 미래에 도달할 당위의 상태로 보았을 뿐이다. 따라서 이 칸트적 당위가 실현된 오늘날 전쟁 범죄에 대한 칸트의 관념 부재를 탓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 할 것이다.

칸트는 이 국제적 공법 상태가 구현되는 국제 연합의 이념을 오랜 자연법적 운행에 기초한 보편사적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칸트는 당대 현실주의자들이 평화 체제의 도래를 너무 가까이 잡은 생 피에르(C.-I. C. Saint-Pierre)와 루소의 평화론처럼 비웃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칸트는 야만적 인간이 마지못해 자신의 난폭한 자유를 포기하고 안전한 시민적 법 상태로 나아가도록 강제되었던 국내적 시민 체제 수립의 도정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국가들을 바로 이러한 결단으로 내모는 것은 “인간들이 처하는 고통의 불가피한 결과”라는 자연필연성의 논리로 반박한다.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혁명적 전복은 반복되어 국제 체제가 종국에 “대외적인 공동체적 약정과 입법에 의해 시민적 공동체와 유사하게 자동 기제처럼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그런 공동체 상태가 수립될 것이다”.각주62) 국가들 간의 야만적 자유 상태의 고통과 만행은 일단 “세력 균형 법칙”을 고안하는 것을 넘어 “공적 국가 안전의 세계 시민적 상태”를 도입할 것을 단계적으로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각주63)

그런데 세계 시민적 국제 체제를 보증하는 국제 연합의 미완 상태, 즉 국제 연합이 “반쯤 완성된 상태”에서는 인간적 본성은 “대외 복지라는 가상하에 저질러지는 가장 가혹한 만행”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문화 예술과 학문에 의해 도야하고 사회적 품위를 갖도록 문명화했을지라도, 국가들이 모든 힘을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에 사용하고 대내적 시민 형성의 노력을 끊임없이 저지하는 한 시민적 사고방식의 형성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시민적 자유의 침해는 반드시 모든 상공업 분야에서의 손실을, 따라서 대외 관계에서의 국력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의 제한은 점차 제거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종교의 일반적 자유도 용인될 것이다. 그리하여 광상(狂想)과 망상이 늘 침윤해 오더라도 “인류가 심지어 지배자들의 이기적인 확장욕에서도 끌어낼 수 있는 큰 자산으로서 계몽이 점차 생성된다”. 이 계몽은 상술한 바와 같이 점차 왕권에도 치올라 심지어 통치 원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령 세계 지배자들이 모든 돈을 전쟁 준비에 쏟아 붓느라 시민의 공적 교육 기관과 세계 선을 위해서는 낼 돈이 한 푼도 없지만, 이들도 인민의 취약하지만 점진적인 노력을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전쟁 자체가 양편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불확실한 기도고 국가가 갚을 길 없는 점증하는 채무 부담이라는 사후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탓에 내키지 않는 기도라면, 게다가 전쟁이 상업 관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타국에도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면, 이 타국들은 중재자로 나설 수밖에 없고 “미래의 커다란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데 착수하게 될 것이다.각주64)

종합하자면 칸트는 세계 정부에 이르는 세계사적 추동 수단을 전쟁 고통, 자유에 대한 시민의 계몽,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압박에서 찾고 있다. 칸트는 이 “미래의 커다란 국가 체제”가 당대에, 비록 조야한 기안에 불과할지라도 모든 국가들 안에서 이미 감지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칸트에 의하면 이것은 많은 “혁명” 후에 인간들의 모든 본래적 소질이 발전되는 “세계 시민적 상태”가 “자연의 최고 의도”로서 마침내 언젠가 성립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칸트의 이 “희망”은 민족주의적 광풍을 앞질러 정당화하는 헤겔의 국제 정치사상에서는 완전히 망실되고 만다. 시민 혁명이 연달아 실패한 독일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번창한 이 민족주의와 민족 국가는 계몽과 프랑스 혁명 이념에 대항하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신봉건 기획에서 전화되어 나온 것인바, 헤겔은 긴 세계사에서 보면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한 민족 국가들의 야만적 분방 상태를 영구적인 것으로 속단하고 계몽의 저 정치 기획을 일종의 공상으로서 폐기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도처에서 전면적 폭력 행위와 이것에서 비롯된 고통이 마침내 인민을 이성적 공법에 굴복시켜 공민적 헌정 체제에 들어서게 만들듯이 국제 관계에서도 주권 국가들 간의 전쟁의 고통이 세계 시민적 헌정 체제에 들어서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세계 시민 체제에서 칸트의 유일한 우려는 지금까지 초강대국들이 그랬듯이 “일반적 평화”의 이런 상태가 “가장 경악스러운 전제 체제”를 초래함으로써 자유에 훨씬 위험스러운 체제가 되는 것이다.각주65)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세계 국가(Weltstaat)가 아니라 국제 연합, 즉 세계적 국가 연합(Staatenbund)을 제안한다. 세계 정부적 전제 체제의 고통은 국가들에게 “한 원수하의 세계 시민적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약정된 국제법에 입각한 국제 연합(Föderation)”의 법적 상태로 나아가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각주66)

이 대목에서 하버마스의 칸트 해석의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버마스는 칸트가 이전에 개인의 법 주체성을 인정하는 ‘보편적 세계 국가’, ‘보편적 인간 국가’ 등을 말하다가 이제는 국제 관계에서 일개 시민의 법 주체성을 전제하는 세계 시민적 공법 상태를 부인하고 국가만을 주체로 설정하는 국제법적 “국제 연합론”으로 수정했다고 해석하는 듯하다.각주67) 칸트가 한편으로는 세계 시민적 공법 체제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주권의 존중에 기초한 ‘국제 연합 체제’를 영구평화 체제로 기안하는 것은 “칸트 역시 동시대의 경험 지평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다.각주68)

그러나 이 해석의 근거는 실은 매우 박약하다. 위에서 우리가 칸트 자신의 말을 직접 인용했듯이 칸트가 ‘세계 국가’를 지향하면서 ‘국제 연합’을 제안하는 것은 세계적 전제 체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 당대의 주권 국가의 이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세계 시민적 공법 상태를 뜻하는 ‘보편적 세계 국가’는 칸트에게서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실현을 추구하지 않을 뿐, 국제 연합을 세계 국가 이념에 따라 규제하는 “규제적 유토피아”로서 계속 간직된다.

영구평화의 조건

칸트는 법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① 한 인민 집단 안에서의 인간들의 시민법(ius civitatis) ② 국가들의 국제법(ius gentium) ③ 세계 시민법(ius cosmopoliticum). 이중에서 세계 시민법은 개인과 국가들을 모두 규제하는 법으로서 이들 상호 관계에서 모든 개인을 직접 “보편적 인간 국가”의 시민으로 간주한다.각주69) 칸트는 이 삼분된 법 체제를 당대의 법 상태로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평화의 이념”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으로서 추론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장차 점진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 혼동될 수 있는 것은 국가를 규제하는 국제법과 개인도 규제하는 세계 시민법이다. 오늘날 국제법은 이 두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즉 국가를 권리, 의무의 주체로 보고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보통 국제법과 달리 가령 국제법상의 해적 법규와 하이재킹 금지법은 개인, 단체, 국가를 가리지 않고 처벌하는 강행 법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후에 새로 생긴 국제 법규인 ‘인도에 반한 죄(crime against humanity)’로서의 ‘평화에 대한 범죄’와 ‘집단살해죄(genocide)’도 이에 책임이 있는 국가, 개인, 단체를 가리지 않고 처벌하는 법규다. 그 밖에 국제법적 차원에서 국가에 의무를 지워 개인이 속한 국가에 대항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유엔헌장〉의 인권 조항, 〈국제인권협약〉, 〈유럽인권협약〉 등이 있다. 이 법규들은 모두 칸트적 의미에서 세계 시민법인 셈이다.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1795)에서 이 세 법 체제의 구분에 따라 국내 사회, 국제 사회, 세계 시민 사회를 영구평화를 위해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로 전제되어야 하는 국내적 변혁의 내용은 “모든 국가의 시민적 헌정 체제는 공화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70) 그에 의하면 원초적 사회계약에서 유래하는 “유일한” 원리는 공화정의 원리다. 이 공화정의 원리는 국내적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파생적 효과를 낳는다.

“공화제적 헌정 체제는 법 개념의 순수한 원천에서 유래한다는 그 기원의 순수성 외에 원하는 결과, 즉 영구평화에 대한 전망을 갖는다.……‘전쟁이 나야 하는지 아닌지’를 결의하는 데 시민들의 동의가 (이 헌정 체제에서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듯이) 요구된다면 시민들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게임을 시작하는 것에 매우 신중하리라는 사실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전쟁이 나면 시민들은 “몸소 싸워야 하고, 자기 재산에서 전쟁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전쟁이 남긴 폐허를 애써 복구해야 하고, 과도한 전쟁의 만행에 더해 가까운 새 전쟁으로 평화를 무참하게 만드는, 변제할 길 없는 채무 자체를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각주71)

모든 국가의 국가 원수는 전쟁을 타인의 비용, 즉 인민의 비용으로 치르기 때문에, 전쟁으로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는 국가 원수는 전쟁 수행 여부에 관한 결정권을 갖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저 원초적 사회계약 이념의 실현, 즉 공화정이 물론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인민은 단순한 확장욕에서 또는 단순한 설욕을 위해서 국가 원수가 같이 겪지 않는 개인적 고통에 빠져드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각주72)

당대 프랑스 혁명에 적대적이던 프로이센 군주국 안에서 프랑스 혁명 이후 칸트가 조심스럽게 ‘노예의 언어’로 그 의미를 행정권과 입법권의 권력 분립 정도로 호도한 이 공화정은 실은 계몽주의에 공통적인 민주 조국 또는 ‘조국 정체’를 뜻하는 것이다.각주73) 공화정의 평화 지향성에 대한 칸트의 인식은 하버마스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각주74)

그러나 이 공화주의적 조국의 이념이 현실화되는 것은 당대에나 그 이후에나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영구평화의 조건이다. 시민의 자치가 구현되는 이 공화정이 관철되려면 전제군주정이 전복되거나 무력화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이 공화정의 시민 민주주의를 주도할 시민 집단과 시민 사회가 질적으로 발전되어 나와 새로운 ‘민중주의적’ 전제 체제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중유럽과 동유럽의 반동, 군주정의 존속, 나치즘과 파시즘 전제 체제, 공산당 전제 체제 등의 연이은 출현으로 칸트가 제시한 영구평화의 제1조건이 전일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다. 개도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민주공화국의 전일적 실현은 오늘날에도 요원한 일이다.

또한 이 공화국이 원래의 시민 기획에 따라 시민 공동체 소속이 바뀔 수 있는 계몽주의적 공화국 기획은, 주거지의 지연성에 의해 정해지는 ‘국민 국가’가 아니라 지연과 무관한 숙명적 혈통에 의해 정해지는 ‘민족 국가’가 중유럽과 동유럽에 여전히 존속하는 한, 유럽에서도 미완인 상태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민족 국가적으로 왜곡된 반편(半偏) 공화국들의 유혈 전쟁과 인권 파괴적 만행은 혈통과 종교를 초월하는 지연적 시민 개념과 칸트의 시민 공화국 테제를 구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명증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몽 기획은 일시적으로 지체와 퇴행을 겪기는 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점진적으로 실현되어온 셈이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전제주의를 분쇄한 전후(戰後)와 공산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공화국이 전 대륙을 거의 석권한 오늘날 국제연합(UN)과 유럽연합(EU)의 성립 및 재강화가 국가 간의 유혈 갈등을 완화하고 있는 것, 적어도 서유럽 국가들 간에 영구평화 체제가 정착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 점에서 공화국을 영구평화의 제1조건으로 삼는 칸트의 평화 기획은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영구평화를 위해 칸트가 제시하는 두 번째 조건은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국제 연합 체제(Föderalismus)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75) 국가들은 자연 상태에서, 단순한 병존만으로도 서로 손상을 입는 개체적 인간들처럼 판단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각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 자국과 더불어 시민적 체제와 유사하게 각자에게 자기의 법을 보장하는 체제에 들어갈 것을 타국에게 요구할 수 있고 또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국제 연합(Völkerbund)일 것이고, 연방 국가(Völkerstaat)일 필요가 없다”.각주76)

이 국제 연합 체제에는 아직 “모순”이 개재되어 있다. 모든 국가는 무릇 상(입법자)과 하(복종자, 즉 인민)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국제 연합 체제 안에서는 복수의 인민 단위들(Völker)이 여러 국가로 나타나면서 동시에 일국적 형태의 ‘단일한’ 인민을 이룬다. 그런데 한 국가 안에 융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이한 국가들을 이루는 복수의 인민 단위들의 상호 권리를 전제하는 한, 복수의 인민 단위들로써 서로 구별되는 이 ‘단일한’ 인민은 전제에 모순되는 것이다.

이 모순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국제 연합을 택한다. 그는 주권 국가들과 복수적 인민 단위들이 해소되어 전 지구적 단일 국가로 융합된 세계 정부, 즉 연방 국가(Völkerstaat)로서의 세계 공화국(Weltrepublik)이라는 적극적 이념을 이성의 유토피아적 지향으로서 간직하지만, 주권 국가의 관성 및 세계 국가의 전제주의적 타락의 위험 때문에 국제 연합이라는 소극적 이념으로 만족한다.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 순수히 전쟁만 잉태하고 있는 무법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는 이성에 따라……무법적 자유를 포기하고 공법적 강제 법률에 순응해 최종적으로 지상의 모든 인민 집단들을 포괄하는 (물론 점증하는) 연방 국가(civitas gentium)를 형성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세계적 연방 국가가 성립하면 국가의 자유 독립의 정신에 기초한 국제법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 집단들이 국제법의 이념에 따라 이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즉 테제에서 올바른 것을 가정에서 팽개칠 것이기 때문에, 세계 공화국이라는 적극적 이념 대신에 전쟁을 막고 이겨내는, 늘 자신을 확대하는 국제 연합이라는 소극적 대안만이 법을 꺼리는 적대적 성향의 분류를 그 폭발의 항구적인 위험과 함께 안고 억제할 수 있다.”각주77) 즉, 세계 국가의 이념은 인류의 꿈으로서 규제적 유토피아일 뿐, 자유의 관점에서는 위험한 구상인 반면, 국제 연합은 실현 가능한 기획인 것이다.

국제법의 이념은 상호 독립적인 수많은 주권 국가들의 “분리”를 전제한다. 이 분리 상태는 국제 연합이 출현해 적대의 폭발을 막지 않는다면 그 자체 전쟁 상태일지라도, 칸트에 의하면 이성의 이념에 따라 “보편 군주국(Universalmonarchie)”으로 발전한 한 강대국에 의한 여러 국가들의 통합보다는 나은 상태다.각주78) 칸트의 이 추가 설명은 이미 노발리스(Novalis), 슐레겔(A. W. von Schlegel) 등 낭만주의자들의 반동적 이데올로기 안에서 나폴레옹의 혁명 이념의 대항적 등가물로서 부유하던 “보편 군주국” 이념을 미리 배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에 의한 정복적 국가 통합을 거부하고 있다. 법률은 통치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점점 힘을 잃고, 이 “영혼 없는 전제 체제”는 선의 씨앗을 없애버린 후에 “무정부 상태”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한 나라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방식으로 영구평화 상태에 도달하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자연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자연은 인민들이 섞이는 것을 막고 인민들을 분리하기 위해 “언어와 종교의 차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이용한다. 이 차이는 상호적 증오의 성향과 전쟁의 구실이 되지만, 문화가 성장하고 인간들이 점차 가까워지면 “원칙의 보다 큰 합의”로, 그리하여 (자유의 묘지에서의) 저 전제 체제처럼 모든 힘들의 약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힘들의 균형을 통해서 “가장 생동감 있는 힘들의 경쟁” 속에서 산출되고 확보되는 국제 연합적 “평화의 합의”로 인도된다는 것이다.각주79)

“모든” 전쟁을 영구히 종식하려는 이 “평화 연합(Friedensbund)”은 “한” 전쟁을 종식하려는 “평화 조약”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연합은 국가 권력의 증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국가의 “자유의 유지와 보장”을 목표로 한다. “점차 모든 국가에 확장되어 영구평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이 국제 연합 이념의 실행 가능성(객관적 현실성)”과 관련해 칸트는 한 ‘강력한 공화국’이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본다. “행운으로 강력하고 계몽된 인민이 자신을 (본성상 영구평화의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화국으로 개편하게 되면 이 공화국은 다른 국가들을 위한 국제 연합적 결합의 중심점을 제공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공화국이 다른 국가들을 동화시켜 국제법의 이념에 따라 국가들의 자유 상태를 보장하고, 이런 종류의 여러 결합을 통해 이 공화국이 점차 확대되는 것이다.”각주80) 이 중심 국가의 역할을 실제 역사에서 미국 또는 프랑스 공화국이 담당한 셈이다.

칸트가 제시하는 세 번째 영구평화의 조건은 “세계 시민법이 정한 보편적 체류 숙박(Hospitaltät)의 조건”이다. 이 ‘보편적 체류 숙박’의 권리는 “타인의 땅에 도착했다는 이유에서 이 타인에 의해 적대적으로 대우받지 않을 외국인의 권리”를 뜻한다. 이것은 박애주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법적 권리의 의미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세계 시민적 ‘체류 허가’는 국가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법적 효과를 발휘하는 인권을 뜻한다. 외국인이 내국인의 장소에서 평화롭게 행동하고 내국인을 적대하지 않는다면 내국인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은 예의상의 “손님의 권리(Gastrecht)”가 아니라, 인간들이 지구 표면에 무한히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병존하는 것이 용인되고 아무도 한 장소에 있을 권리를 타인보다 더 가지고 있지 않은 “대지 표면의 공동 점유권”에 의해 “모든 인간들”에게 허용되는 천부인권적인 “방문의 권리(Besuchsrecht)”다. 이런 방식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도 상호 평화적인 관계에 들어서며 최종적으로 이 관계는 공법화된다. 이리하여 인류는 “세계 시민적 헌정 체제”에 더 접근할 수 있다.각주81)

지상의 인민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우월권을 얻는 세계 공동체가 “한 장소에서의 권리 침해가 모두에게 느껴질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세계 시민법의 이념”은 환상적인 관념이 결코 아니고, “공적 인권에 관한, 따라서 영구평화에 관한 국법과 국제법의 불문법전의 필수적 보충물”각주82) 인 것이다.

칸트는 이 세계 시민적 인권이라는 자연법적 이념을 주권 국가들의 상호 독립과 분리 속에서 필연적으로 관철시키는 현실적 매개 기제를 국가들의 “상업적 이기심”으로 규정한다. 각국의 의지가 국제법의 근거에 따라 간지와 강권에 의해 기꺼이 서로를 통합하고 싶은 인민들을 자연이 슬기롭게 분리시킨 반면, 자연은 또한 세계 시민법의 이념이 폭력과 전쟁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인민들을 “상호적인 이기심”으로써 통합한다. “상업 정신”은 전쟁과 양립할 수 없는 정신인데, 이 정신이 조만간 모든 나라의 인민들을 정복하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권에 종속된 모든 권력 중에서 “화폐 권력”이 가장 신뢰할 만한 권력이기 때문에 제국은 도덕의 추동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기심에 의해서 “고귀한 평화”를 촉진하고 전쟁이 어디서 발발하든 중재를 통해 전쟁을 막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자연은 “인간적 성향 자체 속의 메커니즘을 통해” 영구평화를 보장한다. 물론 이 보장은 “(이론적으로) 영구평화가 이룩된 미래를 점칠 정도로 충분한 확실성”을 갖지는 않지만, “실천적 의도에서는 충분하고 이 (단순히 가공적이지만은 않은)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 확실성”을 가진다.각주83)

물론 ‘상업 정신’의 평화 촉진 경향에 관한 칸트의 이 논변은 당대의 시대 조건상 자본 축적 메커니즘의 전쟁 유발 성향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제국주의 전쟁의 부정적 영향으로 자본주의가 궤도를 수정하고 세계 시장 체제가 국제법적 현실[세계무역기구(WTO)]이 된 오늘날 칸트의 예상은 결과적으로 다시 타당해진 셈이다. 전쟁의 제거와 영구평화의 보장을 의도하는 국제 연합 상태는 국가들의 ‘자유’, 즉 주권성과 합치되는 유일한 공법적 상태다. 따라서 정치와 도덕의 일치는 국제 연합적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칸트는 국제 연합을 초래하는 현실적 추동력을 경제의 상업적 세계화로 보는 한편, 국제 연합 체제를 받쳐주는 국제 공법적 원리를 저 계몽의 이념에 따라 다시 공론성과 결부시킨다. 공법의 모든 소재를 추상하면 남는 것은 “공개성의 형식(Form der Publizität)”뿐이고 이 공개성의 능력은 모든 권리 요구에 내포돼 있다. 이 공개성이 없다면 오직 “공개적으로 공표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정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 정의에 의해 부여될 수 있는 법적 권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법의 “선험적 공식”은 “다른 인간들의 권리와 관련되는 모든 행위는 이 행위의 준칙이 공개성과 부합되지 않는다면 불법이다”라는 것이다.각주84) 이 공식은 윤리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법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칸트는 공법과 관련해 공개성과 공론성에 선험적인 차원의 “본질 구성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각주85) 행위 의도가 공개되자마자 무력화되는 행위 준칙, 즉 공론적으로 공표되면 불가피하게 행위 의도에 대한 만인의 항의가 야기되는 그런 행위 준칙은 만인의 이 필연적이고 일반적인 저항을 바로 불의 때문에 받는 것이다.

이 소극적인 공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칸트는 국제 공법의 적극적인 선험적 원리를 도출한다. “(자신의 목적 달성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공개성을 필요로 하는 모든 준칙은 법 및 정치와 부합된다.”각주86) 정의로운 국제 정치와 국제법적 행위는 성공적인 실현을 위해 항상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세계 시민 사회의 세계 공론의 지원과 비판적 논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 정치적 행위의 세계 공론적 논의는 세계 시민 사회의 발전을 전제한다. 공개를 통해서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준칙은 세계 공중의 일반적 목적(행복)과 합치되지 않을 수 없다. 공중의 행복이 본래 정치의 과업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목적이 오로지 공론을 통해서만, 즉 준칙에 대한 모든 불신의 제거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국제 정치의 이 행위 준칙은 공중의 권리와도 합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민 공화제의 확산, 일단 유럽에서의 국제 연합의 창설, 세계 시민법적 체류 숙박권으로서의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칸트의 이 영구평화 기획은 프랑스 대혁명의 실패, 독일과 동유럽의 정치적 낭만주의, 혈통 민족주의, 민족 국가 등의 출현으로 일시적으로 유린된다. 세계 시민적 계몽 기획의 이러한 유린은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헤겔의 국제 정치사상에서 전형화된다. 그러나 중유럽과 동유럽을 휩쓴 혈통 민족주의와 민족 국가들의 광포한 유혈 갈등이 요동치는 급류의 한복판에서도 유럽 국제 연합의 계몽주의적 꿈은 소멸하지 않았다.

인종주의에 급속히 부식되어가던 19세기 말 독일의 사상계에서는 “좋은 독일성은 탈(脫)독일화(sich entdeutschen)를 뜻한다”라는 경구로 독일 민족주의를 탄핵하고 ‘민족 국가적 국경의 철폐’와 ‘유럽 국제 연합’ 이념을 주장한 반(反)시대적 철학자 니체의 중기(中期) 사상에서 국제 연합의 꿈이 소생한다.각주87) 또한 국제 연합 이념은 1차 세계대전 전야에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반전과 평화의 원칙으로서 외친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 슬로건에서도 다시 부활했다.

민족주의적 광풍 속에서 꺼지지 않은, 아니 민족 국가의 파멸과 재앙 때문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선 이 국제 연합의 평화주의적 계몽 이념은 국제연합(UN)과 유럽공동체(EC), 나아가 유럽연합(EU)의 성립으로 이제 좀 더 확장된 실현 기획을 얻고 있다. 세계화의 급류를 타고 있는 오늘날 경제의 상업적 세계화와 공론에 기초한 칸트의 이러한 국제 정치관을 반성적으로 음미해보면, 영구평화를 향한 그의 세계 시민의 이념은 많은 확실성을 얻었고, 또한 가일층적인 ‘경제의 세계화’ 및 위성 통신과 컴퓨터 통신을 통해 지구화된 매체 공론과 학술, 정보 관계의 국제화와 함께(비록 남북 대립의 국제 갈등을 겪겠지만)여전히 전망 있는 이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재강화되는 국제연합(UN)과 새로운 유럽연합(EU)이 존재하는 오늘날에는 사족이 되어버린 다음과 같은 예측으로 《영구평화론》을 끝맺고 있다. “비록 무한히 접근하는 ‘근사치일 뿐이더라도’ 공법 상태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의무이며 동시에 근거 있는 희망이라면, 실은 일시적인 휴전 상태에 불과함에도 지금까지 영구평화로 잘못 불려온 평화 조약, 즉 강화(講和)를 대체할 진정한 영구평화는 공허한 이념이 아니라 점점 해결되어 (바라건대 진보가 성취되는 시간이 점점 더 단축되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에 끊임없이 접근해나가는 과업인 것이다.”각주88) 《영구평화론》의 이 마지막 구절은 칸트가 국제 연합을 세계 국가의 공법 상태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일종의 ‘영구적 과도 체제’로 기안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따라서 주권과 내정 불간섭의 명시적 인정 속에서 실정법적 다수결 원칙과 인권 협약으로 ‘주권의 약화’를 추동해온 오늘의 국제연합(UN)에서 증명되듯이, 국제 공법 상태를 지향하면서도 국가 주권의 존중을 명시한 칸트의 국제 연합 기획은 불가피하게 끊임없이 심화되는 ‘주권의 약화’를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공법 상태와 주권 존중을 동시에 추구하는 칸트의 기획을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라고 해석하기보다는각주89) 주권 관념에 사로잡힌 당대의 주권자들을 안심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이 평화 기획에 귀 기울이게 하려는 ‘전술적 트릭’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법(‘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에 대한 죄’)이 선보이고 국제연합(UN)의 권한과 인권이 강화되는 오늘날도 세계 시민적 공법 상태가 아니라 “국제법에서 세계 시민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각주90)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시민 사회의 출현과 칸트

현대는 칸트의 말대로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아직도 ‘계몽 중인 시대’다. 국내 체제가 ‘반성적 근대화’, 즉 ‘제2단계 근대화’에각주91) 들어갔다면, ‘주권의 약화’가 이제 막 개시된 국제 관계 분야에서는 이제야 ‘제1단계 근대화’의 시대가 찾아들고 있다. 이른바 ‘탈근대적’ 국제 정치관은 주권의 세계 시민적 약화를 겨냥한 칸트의 계몽 이념에 대해 무지한 ‘허언’이든가 아니면 계몽과 근대화의 가일층적 진전에 대한 급진적 요구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 시민적 근대 기획은 앞에서 칸트의 계몽 이념에 따라 입증하고자 한 대로 아직도 미완의 상태에 있고, 세계사는 세계화 속에서 근대화의 궤도를 가고 있다.

칸트의 말대로 세계 시민적 공론을 향한 국가 행위의 공개성이 행위의 정의, 합법성 및 세계 시민적 공법성을 보증하는 ‘본질 구성적’ 형식이라면, 세계 시민 사회와 세계 공론의 발전만이 단위 국가의 국제 연합의 세계 시민적 성격과 인권 이념을 강화하는 길이다. 초보적 세계 시민 사회의 존재는 이미 경험적으로도 확증할 수 있다. 세계화는 ‘세계적 경쟁의 심화’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양식의 변화’이기도 하다.각주92) 경제적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경향’을 뛰어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무역 가능 재화는 195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8퍼센트이던 것이 1997년에는 17퍼센트로 증가했다. 금융 시장은 이미 ‘완전히 세계화된 경제’다.

따라서 세계화는 신우익의 ‘신화’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세계화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다.각주93) 또한 세계화는 경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사회적’ 세계화다.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역으로, 개인적 선호조차 세계적 파급을 낳는다.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정보 기술의 확산은 세계화 과정을 급격히 추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권은 이제 ‘당구공’이 아니며 서로 삼투한다. 주권들의 상호 삼투를 통해 개인들의 일상생활이 급변하고, 새로운 초국가적 체계와 세력들이 생겨난다.각주94)

동시에 세계적 통신 및 정보 교류 및 인적 교류 및 국제 협력의 증대와 함께 세계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국제 협력 기구의 수가 폭증하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겨우 20개의 정부 간 국제기구와 180개의 초국가적 비정부기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300개의 정부 간 국제기구와 약 5,000개의 초국가적 비정부기구가 존재한다. 결국 ‘세계적 시민 사회(global civil society)’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세계적 관리 기관(global governance)’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각주95)

이에 따라 ‘국경’이 ‘보다 막연한 프런티어’로 변하면서 엄격한 국경을 가진 ‘영토 국가’로서의 국민 국가는 본질적으로 변형된다. 중세의 국가들은 국경이 아니라 프런티어를 가졌었다. 이제 다른 이유에서,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나라의 국경이 다시 프런티어로 변하고 있다.각주96) 다른 지역들과의 연계와 온갖 종류의 초국가적 집단에의 연루 때문에 영토 국가는 프런티어 국가가 되고 있는 중이다.

세계 시민 사회가 초보적으로나마 존재하는 오늘날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주권성을 내세우며 국제 정치에서 무법적 자유와 야만을 구가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 어떤 국가가 칸트의 세계 시민적 보편성 주장, 즉 보편적 인권의 가치 주장을 서구중심주의로 매도하고 자국의 인권 침해를 문화적 특수성을 이유로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논리적 자가당착인 것이다.

서구중심주의라는 논거는 인권 이념을 서구중심주의로 매도하는 나라에서 자행되는 전근대적인 인권 유린적 관행을 정당화하는 위험과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적 특수성이라는 논리의 핵심은 자국 문화의 특수성을 주장함으로써 서구 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부인을 통해 서구 문화에 대한 자국 문화의 대등성을 주장하는 데 있다. 이 논리는 이러한 문화적 동등권 주장을 통해 서구 문화의 산물인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자국 문화 속에 내포된 인권 유린 요소를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주장은 가령 힌두교 문화권의 인권 유린에 항의하는 현지 인권 단체의 투쟁적 요구와 인권 유린의 희생자인 현지 피압박 주민의 요구를 무시한다.각주97)

이 문화적 특수주의 논리는 서구 문화와의 동등성 주장을 뜻하는 한 결국 자국 문화가 적어도 동물들의 문화가 아니라 서구인과 ‘동일한’ 인간들의 문화임을 전제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과 민족의 보편적 동등권을, 즉 특수주의 논리로 부정하는 세계 시민적 인권을 자가당착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문화적 특수주의는 이와 같은 자가당착적 결론에 도달한다.

나아가 미분화된 문화 개념에 입각한 특수성 주장으로써 세계 시민적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 심지어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李光耀)처럼]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중대한 오해의 소산이다. 근대 문화는 적어도 세 개의 차원으로 분화되어 있다. 이른바 정치 문화(politische Kultur), 민족 문화(ethnische Kultur), 개인 문화(persönliche Kultur)가 그것이다.각주98)

이 분화된 문화 영역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고 요소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지만, 제각기 고유한 내용을 중심으로 분립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차원은 모두 각각 특유의 방식으로 보편성과 관계한다. 일단 민족 문화와 개인 문화는 어떤 민족과 개인이 다른 민족 및 개인과 높낮이를 따질 수 없이 대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에서 인권의 한 조항인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외적’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보편적 가치는 어떤 내용, 즉 종교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간여하지 않고 내용적 간섭을 절제하지만, 종교를 민족 문화에 귀속시키느냐 개인 문화에 귀속시키느냐 하는 형식 문제는 보편적 가치가 결정한다. 근대의 인권 선언은 일찍이 종교의 자유를 개인의 양심 문제로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반해 각국의 정치 문화는 근대의 개막과 함께 민족 문화에서 분화, 형성된 것으로서 근대의 보편적 가치와 ‘내적’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각국의 정치 문화는 각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인권을 인정하고 민주적 토론 질서와 합의 방식을 수락하며 국제법, 국제 관행, 국제 예양에 따라 서로 관계하는 한에서 경험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높낮이를 갖는다. 특정 국가의 정치 문화는 인권, 민주주의, 공론의 발전 정도와 세계 시민적 가치 개방의 정도가 높을수록 수준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정치 문화의 고유 사항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는 대체로 민족 문화의 특수성 논리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만약 근대적 정치 문화의 발전이 민족 문화의 어떤 요소에 의해 저해된다면, 이 저해 요소는 민족 문화 속에 침전되어 전수된 전근대적 정치 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이 요소만큼은 근대화를 위한 정치 혁명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나머지 요소들은 그대로 민족 문화로 남아 독자적 발전을 겪고 정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족 문화는 정치 문화의 보편적 ‘내용’을 독특한 민족 문화적 색조로 채색한다. 이런 이유에서 내용상 보편적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민주 정치가 제각기 다른 색조와 특색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특색을 의식적으로 추구할 필요는 없다. 민족 문화는 싱가포르가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도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듯이 절로 특색을 갖춰가기 때문이다. 민족 문화적 특색은 지리와 풍토, 음식과 취향, 습관과 풍속, 풍류와 쾌락의 발전과 재창조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문화적 특색을 ‘의식적으로’ 강조하는 순간, 은연중에 세계 시민적 보편 가치에 저항하는 정치 병리적 히스테리와 외국 문화에 대한 퇴행적 경계심이 싹트게 된다.

엄중한 국경으로 둘러싸인 영토·주권 국가가 무국경의 ‘프런티어 국가’로 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각국의 국민은 다문화와 이중·다중 국적을 용인하는 세계주의적 ‘잡종 국민’이 되고 있다.각주99)

이제 우리는 세계주의적 자세와 타문화에 대한 관용의 덕목을 개발해야 한다. 바로 이런 시대에 민족주의적 반외세주의는 쇠망에 이르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우리 체제가 다문화주의적·세계주의적 개방성을 갖추더라도 우리의 종교, 언어, 풍속을 중심으로 짜인 특색 있는 민족 문화의 ‘자연적’ 재창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다종교의 오랜 생활 경험을 통해 다문화주의와 세계주의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언어와 종교’ 등 문화에 의해 자연적으로 구분된 국가들의 사해동포적 연합을 추구하는 칸트의 세계 시민법 이념은 ‘지배 문화’에의 동화가 아니라 ‘다문화’를 예고하는, 분리와 통합의 변증법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사상적 선구성이다. 칸트의 말대로 18세기 말이 ‘프리드리히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진정 ‘칸트의 시대’다.

더 읽을 자료

김정주, 《칸트의 인식론》(철학과현실사, 2001)
포스트모던적 사상 분위기 속에서 칸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장학자의 전문적 칸트 연구서다. 인식론에 초점을 맞춘 저작으로서 칸트 철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철학 일반을 전공하려는 사람에게도 철학적 사고의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카울바하, F.,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 백종현 옮김(서광사, 1992)
20세기 후반의 칸트 철학계를 대표하는 카울바하의 전문적 칸트 총괄서다. 입문서를 거친 사람에게 다음 단계의 교재로 좋다. 칸트의 순수 철학뿐만 아니라 사회철학과 정치철학 부분도 망라하고 있다.

한국칸트학회 엮음, 《포스트모던 칸트》(문학과지성사, 2006)
포스트모던 시대를 정리하면서 여러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계 속에서 해석되고 활동한 칸트를 조감한 책이다. 한국 철학자들에 의해 하이데거, 라캉, 레비나스, 리오타르, 들뢰즈, 푸코, 아도르노, 아렌트, 하버마스, 로티 등의 칸트 이해가 개별적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획기적인 칸트 철학 관련 저작으로 대우받을 만하다.

한단석, 《칸트철학사상의 이해》(양영각, 1983)
평생 칸트를 연구한 한단석 교수의 칸트 입문서다. 서술의 균형과 해석의 치밀성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전문적인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흠이라면 범위가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등 순수 철학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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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1999년 《계간 사상》 여름호에 실린 〈칸트의 계몽기획과 정치사상 : 21세기 세계시민 이념을 향하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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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집필자 소개

195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자랐다.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1984년 「헤겔의 전쟁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1991년..펼쳐보기

출처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 저자강정인 외 | cp명책세상 도서 소개

'계간 사상' 1999년 봄호부터 2003년 봄호까지 '서양 근대사상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 16편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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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이마누엘 칸트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강정인 외,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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