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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의 완성자

몽테스키외

Montesquieu
요약 테이블
출생 1689년
사망 1755년
대표작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몽테스키외(Montesquieu)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정치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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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을 쓰기까지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 하면 우리는 곧바로 ‘삼권 분립(separation of powers)’과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란 개념을 연상하게 된다. 두 개념은 몽테스키외의 역작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에 나타난 주요 개념이다. 그러나 삼권 분립과 견제와 균형이 왜 필요하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법이 지녀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우리는 마땅한 답을 떠올릴 수 없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법의 정신》이란 책을 구했다 하더라도, 몽테스키외가 20년에 걸쳐서 쓴 방대한 노작인 이 두꺼운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법의 정신》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와 해석은 다양하다. 이 책이 20년에 걸쳐서 집필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체제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부터 집필 기간과 상관없이 일관된 이론 체계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다. 필자는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의 ‘정신’은 ‘자유’이며, 삼권 분립과 견제와 균형은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법의 정신》은 ‘자유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몽테스키외를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법의 정신》을 중심으로 그의 정치사상을 밝혀보고자 한다.

몽테스키외의 본명은 샤를 루이 드 스콩다(Charles-Louis de Secondat)이다. 그는 1689년 보르도 근처에 있는 라 브레드에서 태어났다.각주1) 하급 귀족에 속하는 그의 집안에서는 관리, 군인, 성직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젊어서 군인으로 종사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부모에게서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라 브레드의 영지도 그의 어머니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몽테스키외는 4남매 중 맏아들이었는데, 그가 7세 때 어머니는 몽테스키외의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

몽테스키외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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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는 태어나자마자 당시의 교육 풍습에 따라서 평민의 집으로 옮겨져 3년 동안 그 집에서 자랐다.각주2) 이후 그는 본가로 돌아와 가정교육을 받았고 11세 때 쥐이 학교에 입학하여 당시의 신학문인 지리학, 과학, 수학, 프랑스 역사 등을 배웠다. 쥐이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보르도 대학에 진학했으며 1708년 학위를 딴 후에는 법률 훈련을 받기 위해 파리로 갔다. 몽테스키외는 1713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715년 잔 드 라르티그와 결혼한 그는 1716년 자손이 없었던 백부의 유언에 따라 백부의 땅과 관직, 작위를 상속받았다. 몽테스키외는 대지주이자 남작이 되었으며, 보르도 고등법원의 고등법원장이 되었다.

몽테스키외는 법복 귀족으로 활동하는 한편,각주3) 1716년부터 보르도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연과학 및 역사와 정치 이론에 관한 자신의 관심을 넓혀갔다. 1721년에는 익명으로 《페르시아인의 편지(Lettres persanes)》를 출판했는데, 이 소설이 큰 인기를 얻어 몽테스키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소설은 프랑스를 여행 중인 페르시아 출신의 주인공 위스베크와 그의 친구 리카가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에 거주하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위스베크가 자신의 하렘에 속해 있는 내시 및 여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몽테스키외는 이 소설에서 루이 14세 치하에 있는 18세기 전반 프랑스 사회의 정치와 사회 풍속을 풍자하면서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출판된 이후, 몽테스키외는 고등법원장으로서의 활동을 서서히 줄이고 대신 파리 여행을 즐겼다. 1725년 그는 보르도 고등법원장직을 팔았으며, 1728년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1728년에 파리로 떠난 몽테스키외는 1731년에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이태리 등을 여행하고 영국에 2년 동안 머물렀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몽테스키외는 영국 의회에 벌어졌던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고, 영국 정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루소 연구의 대가이기도 한 슈클라(J. N. Shklar)는 몽테스키외에게 있어 영국 여행이 지닌 사상적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지성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단순히 몽테스키외의 개인적인 경험을 만족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몽테스키외의 전반적인 지성적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은 그에게 법치주의와 정치적 자유는 실천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며,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어떤 방식을 취하든지 그 두 가지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각주4)

1731년에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 1748년에 《법의 정신》을 출판하기 전까지 몽테스키외는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으며 궁극적으로 《법의 정신》으로 귀착되는 자신의 연구 주제에 매진했다. 그는 1734년에 《로마인의 위대함과 그 쇠락의 원인에 관한 고찰(Considé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écadence)》을 익명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나중에 《법의 정신》에 편입된다.

그래서 《로마성쇄 원인론》은 《법의 정신》의 도입부 혹은 《법의 정신》을 위한 예비적 저술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고 소홀하게 취급되기도 했다. 슈클라는 두 책이 고대 정치와 근대 정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은 같지만, 전자가 ‘철학적 역사서’라면 후자는 사회적 규칙을 분석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고 평가하고 있다.각주5)

《법의 정신》을 출판한 이후 몽테스키외는 더 이상 새로운 연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명성을 즐기면서 한가롭게 여생을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법의 정신》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대응하여 자기주장을 옹호하는 평론을 쓰면서 《법의 정신》의 개정판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1755년 파리에서 창궐했던 열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다.

법의 정신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으로서의 자유

몽테스키외가 과연 서양 사상사에 있어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에 관해서는 매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혹자는 그를 사회학자 혹은 선구자적 사회학자로, 혹자는 그를 이 두 가지 자질을 겸비한 사상가로 파악하고 있다. 플라므나츠(John Plamenatz)는 몽테스키외의 사상이 지닌 이중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법의 정신》에는 실로 두 명의 몽테스키외가 들어 있다. 때때로 귀가 얇고 신중하지 못하지만 편견 없는 사회학도로서의 몽테스키외와, 자유를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정치 형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자유 애호가로서의 몽테스키외가 그것이다.”각주6) 몽테스키외가 사회학자의 속성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 어디에 우선성을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아롱(Raymond Aron)은 몽테스키외가 사회학의 선구자라고 주장한다. 아롱에 따르면 몽테스키외는 인간 사회에 무한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도덕, 관습, 사상, 법률 및 제도의 형식 등을 편견 없이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하고 설명한 후 일견 조리 없어 보이는 다양성의 배후에 놓인 하나의 질서, 혹은 역사적 진리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회학자였다.각주7)

우선 몽테스키외는 베버가 말하는 이념형이란 개념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이미 정치 질서를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이라는 세 가지 이념형을 사용하여 파악했다는 점에서, 다음으로 그가 법의 본질적 의미를 피지배자에 대한 명령권이나 강제권에서 찾지 않고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관계”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학자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것이다.각주8) 몽테스키외에게 있어서 법은 “사물들의 필연적인 관계”인데, 여기서 필연적이라 함은 법칙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몽테스키외는 사물에는 물질적인 사물과 도덕적인 사물이 모두 포함되는데, 법의 형성에는 기후는 물론 토양의 성질, 물의 과다, 산맥, 하천, 평야의 분포, 바다의 원근, 천연적 항구의 존재 여부 등의 물리적 요소와 도덕, 관습, 습속 등과 같은 도덕적 요소가 모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몽테스키외를 사회학자로 보는 입장과는 달리, 그를 정치철학자로 파악하는 입장이 있다. 슈클라, 리히터(Melvin Richter), 팽글(T. L. Pangle) 등의 학자들은 《법의 정신》이 지닌 정치 이론적 성격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슈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과 설명을 시도하는 사회학자로서의 몽테스키외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에 대한 규범과 기준을 제공하려는 철학자로서의 몽테스키외를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위대한 정치 이론서와 마찬가지로, 《법의 정신》은 적어도 세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철학적·역사적·논쟁적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철학적 목적은 법의 구조를 정의하고, 몇 개의 일관된 제목 아래 다양한 사회적 규칙과 절차를 분류해서 이것들이 주어진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각주9)

리히터는 몽테스키외의 공인된 의도는 개별적인 법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법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리히터는 이러한 몽테스키외의 문제의식은 정치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제기해왔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측면에서 그를 정치철학자로 부각시키고 있다.각주10) 팽글은 몽테스키외를 홉스, 스피노자, 로크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철학자로 판단하면서, 몽테스키외 정치철학의 핵심은 인간의 “자유 혹은 안전(freedom or security)”을 보장해주는 정부 형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각주11) 필자는 몽테스키외를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보고, 《법의 정신》을 자유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법의 정신》을 관통하는 가장 큰 원칙은 “정치적 자유는 오직 온건한 제한정부(moderate government)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건한 제한정부라고 해서 항상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항상 남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권력이 남용되지 않을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모두 권력을 남용하려 했고, 권력자는 한계점을 발견할 때까지 권력의 남용을 계속한다는 것은 영원히 관찰되어왔다.”각주12)

이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자유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즉 법이 있는 사회에서 자유는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을 행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행하지 않도록 강제되지 않는 데에 존재한다.……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시민이 법이 금지하는 것을 행할 수 있다면 다른 시민도 그와 같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자유일 수가 없다.”각주13)

여기서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니라 법이 규정한 바를 추구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소극적 자유다. 공포에 기초한 전제정(despotic government)은 시민이 회피해야 할 최악의 정부 형태다. 공포가 시민의 안전감(sense of security)을 해치는 감정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포를 벗어난 자유로운 시민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안전이며, 이 안전은 개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보장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자유는 다름 아닌 안전을 의미한다.

전제정에서는 독재자와 신민 사이에 어떤 ‘중간 계급(intermediary class)’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독재자가 신민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독재자는 자신의 변덕과 자의에 근거해 주위의 어떤 힘으로도 완충되지 않는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신민 혹은 시민이 독재자의 자의적 권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재자의 직접적인 권력 행사를 차단하거나 완충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독재자가 신민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고 생각해보자. 만일 이 신민이 방탄조끼를 입었다면 그 조끼는 총알이 주는 충격을 덜어줄 것이고, 그 결과 신민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신민에게 방탄조끼라는 완충 장치가 없었다면 그는 생명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온건한 제한정부는 권력의 자의적·직접적 행사를 막는 완충 장치로서의 법, 제도, 전통, 관습, 중간 세력 등을 지닌 정부 형태다. 몽테스키외는 온건한 제한정부를 구성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전제정부에 반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사랑과 폭력에 대한 증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제정부에 복종하고 있다. 이것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온건한 제한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권력을 결합하고, 규제하고, 배합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우리는 소위 하나의 권력이 다른 강한 권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이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입법의 요체인데, 이것은 우연이나 사리분별을 통해서는 거의 만들어질 수 없다.
The Spirit of the Laws각주14)

시민과 권력자 사이에 직접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권력 행사의 장애물이나 완충 장치가 많을수록 시민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몽테스키외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완충 장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첫째, 기본법, 자연법, 현행법 등을 포함하는 법과 제도이며 둘째, 귀족과 같이 권력자와 시민 사이에 존재하면서 권력이 행사되는 경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중간 계급 혹은 중간 세력의 존재다. 전제정은 이 두 가지 장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인민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이와는 달리 공화정이나 군주정은 모두 온건한 제한정부의 성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민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과 그 작동 원리로서의 덕성, 명예, 공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Politica)》을 고대의 정치학 개론서라고 한다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근대의 정치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치학 일반에서 《정치학》이 중요한 만큼이나 《법의 정신》도 중요하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정치 체제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론에서는 인간이 어떤 정치 체제에서 사는가에 따라서 인간 영혼의 모습이 달라지고, 어떤 영혼을 지닌 사람이 사는가에 따라서 정치 체제의 유형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정치 체제를 철인왕정,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배자의 수와 공공선을 지향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체제를 분류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지배하는 왕정, 소수가 지배하는 귀족정, 다수가 지배하는 혼합정을 공공선을 지향하는 좋은 체제로 제시하고 있고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을 각각의 좋은 정체가 타락하여 생긴, 공공선을 해치는 나쁜 체제로 제시하고 있다.

몽테스키외에게도 정치 체제의 분류는 매우 중요한데 이 분류는 그의 정치 이론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의 세 가지 정부 유형을 제시하면서 각각의 정부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공화정은 국민 전체 혹은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이며, 군주정은 단 한 사람이 통치하지만 고정된 제정법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정체다. 이와는 달리 전제정에서는 통치자 한 사람이 법이나 규칙도 없이 자신의 의지나 변덕에 따라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각주15)

공화정은 민주정과 귀족정으로 다시 나누어지는데 민주정은 국민 전체가 주권을 갖는 정치 체제이며, 귀족정은 국민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치 체제다. 공화정과 군주정은 온건한 제한정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전제정은 그렇지 못하다. 몽테스키외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영국 정치 체제(English regime)는 위의 세 가지 형태 중 어느 하나와도 딱 부합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몽테스키외는 실질적으로 정부 유형을 세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공화정, 군주정과 마찬가지로 영국 체제는 제한정부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은 각각 체제의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 원리는 한 체제가 최상의 조건으로 작동될 수 있게 하고,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을 활기차게 만드는 ‘열정(human passions)’이다. 공화정은 ‘덕성(virtue)’이, 군주정은 ‘명예(honor)’가, 전제정은 ‘공포(fear)’가 각각 체제를 움직이는 원리로 작동한다. 몽테스키외는 공화정에 관심이 많았으며 공화정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공화정은 고대 스파르타 공화정이나 로마 공화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공화정을 근대 공화정, 고대 스파르타 공화정이나 로마 공화정을 고대 공화정이라고 부른다면 근대 공화정이나 고대 공화정은 덕성을 작동 원리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같다. 하지만 고대 공화정이 ‘도덕적 덕성(moral virtue)’을 강조하고 도덕적 시민을 교육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하여 근대 공화정은 도덕이나 종교적 요구와는 분리된 ‘정치적 덕성(political virtue)’을 강조하고 도덕적 시민보다는 애국심을 지닌 훌륭한 시민을 교육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고대의 덕성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이상을 지향하지만 근대의 덕성은 현실적인 공공 이익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몽테스키외에 의하면 공화정에 있어서 “정치적 덕성은 ‘극기심(a renunciation of oneself)’이며,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덕성은 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사랑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 이익을 끊임없이 선호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사랑은 모든 개별적인 덕목들을 산출한다. 이 덕목들이란 단지 그러한 선호인 것이다”.각주16) 여기서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덕성을 ‘이익’이라는 물질적 개념과 ‘선호’라는 심리적 개념을 사용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입장은 덕성을 순수하게 도덕적인 측면에서 규정하려는 고대적 관점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정치적 덕성과 도덕적 덕성을 구별하고 있는 몽테스키외의 태도가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덕성을 종교나 도덕으로부터 분리하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인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각주17)

공화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크기가 작아야 하고 국가가 사치로 흐르지 않고 검소해야 하며 시민들 사이에 평등이 유지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적 덕성은 자기 자제(self-restraint)를 요구하며 엄격할 정도로 검소함과 평등을 요구한다. 하지만 안전과 안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비추어 볼 때 공화주의적 헌신은 항상 하나의 제약이며 인간 본성의 왜곡이다. 팽글은 이처럼 극단적인 극기심을 요구하는 공화정을 하나의 수도원으로 비유하고 있다. “공화주의적 시민의 삶의 대부분을 채우는 열정은 어떤 종류의 맹목적인 헌신과 비슷하다. 자기 부정을 위한 ‘자기 부정(self-renunciation)’인 것이다.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공화국은 대단히 무의미하고 광신적인 금욕주의적 삶의 방식을 표상한다.”각주18) 엄숙한 덕성에 대한 공화주의적 요구가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양립할 수 없다면 공화정은 현실 세계에서 수립되고 유지될 가능성이 별로 없게 된다.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공화정은 과거 로마에 대한 회상에 불과하고, 이미 과거의 것으로 당대의 현실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으나 몽테스키외는 도덕적 덕성 대신에 정치적 덕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토대에 기초해서 근대 공화정을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고대 공화국에서는 ‘덕성과 부(virtue and wealth)’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 공화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업이나 교역은 제한되어야 하고, 부의 집중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근대 공화국에서는 덕성과 부, 덕성과 상업이 양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몽테스키외가 새롭게 규정한 공화정의 덕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끔 하는 가운데, 공공 이익의 우선성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는 달리 몽테스키외는 상업의 발달이 덕성을 순화하며 인간성을 발전시켜준다고 하는 독창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분명히, 민주주의가 상업에 기반하고 있을 때 개인들은 거대한 부를 지닐 수 있을 것이지만 그들의 습성은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업의 정신(the spirit of commerce)은 검약, 경제, 절제, 노동, 지혜, 안정, 질서, 규칙성의 정신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이 확산되고 있는 한, 이 정신이 형성한 부는 어떠한 나쁜 효과도 갖지 않는다.
The Spirit of the Laws각주19)
상업은 파괴적인 편견을 치유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습속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상업이 존재하고, 상업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부드러운 습속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일반적인 법칙이다.……상업의 법칙(the laws of commerce)은 습속을 파괴할 수 있고 또한 같은 이유로 습속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한편으로 상업은 순수한 습속을 타락시키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상업을 비난한 중요한 주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매일 보아서 알듯이, 상업은 야만적인 습속을 세련되게 만들고 순화시키고 있다.
The Spirit of the Laws각주20)

몽테스키외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있는 고대 공화국을 이념적으로 상찬하고 있지만, 그런 공화국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 현실적인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는 상업 공화국(the commercial republic)이 순수한 습속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경향을 지녔다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상업 공화국이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체제이며 부의 증진, 합리성의 증진, 온순함의 증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개인들이 상업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되면 절제적이 된다는, 다시 말해 상업과 덕성이 양립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몽테스키외의 상업 공화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근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군주정에 관한 몽테스키외의 이론의 배경에는 절대주의적 프랑스 왕정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놓여 있다. 프랑스 절대주의 왕정은 루이 14세 때 그 정점에 도달했는데, 이것은 중간 세력인 귀족의 힘이 약화됨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군주정의 작동 원리인 명예는 남과 구별되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야망인데, 몽테스키외는 이 명예가 근본적으로 하나의 편견이며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한다.

명예는 군주정체의 모든 부분을 움직이게 만든다. 명예는 모든 부분을 결합시키는 일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믿고 있는 가운데, 공동선을 위해 일하게 된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국가의 모든 부분을 지도하는 명예가 ‘위선적 명예(a false honor)’라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 위선적 명예는 진실된 명예가 그것을 지닌 개인에게 유용하듯이, 위선적 명예를 지닌 공중에게 유용하다.
The Spirit of the Laws각주21)

고전 정치철학에서 명예는 군인들의 기개, 용기와 연관되어 논해졌는데, 용기는 사주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하나였다. 군인들은 명예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명예에 대한 고전적 정의에서 벗어나, 명예의 원리를 이익과 결부시켜 파악하고 있다. 그의 관점은 “명예는 위선적인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로 요약될 수 있다. 명예를 행동 원리로 하는 개인은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 경제적으로는 부의 축적에 힘쓰며, 정치적으로는 높은 관직을 얻기 위해 권위에의 복종을 미덕으로 삼게 된다.

즉 악에 근거한 명예가 부와 복종이라는 합리적이고 유익한 사회적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공익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는데, 이 같은 맨더빌의 주장은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명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유효하다.

군주정에서 군주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억제하여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제한정부적 성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법과 귀족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귀족은 군주와 인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집단으로서, 귀족은 군주의 권력에 맞서서 대항할 수는 없어도 군주의 강력한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몽테스키외는 명예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귀족 신분이 바로 군주정의 핵심이며, 귀족 신분이 없으면 군주정은 전제정으로 변화된다고 강조한다. “군주가 없으면 귀족이 없고, 귀족이 없이는 군주가 없으며, 오직 전제군주가 나타날 뿐이다.”각주22)

영국 정치 체제에 나타난 제한정부의 이념 -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

방대한 양으로 구성된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가 영국 정치 체제를 논하는 부분은 단지 11권의 6장과 19권의 27장, 두 장뿐이다. 흔히 영국 정치 체제에 관한 부분은 영국 정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기술이라기보다는, 영국 체제의 특성을 뚜렷이 나타내 보이기 위한 이념형적 설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영국 정치 체제를 칭찬해 마지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영국 체제를 가장 모범적인 정치 체제로 생각했으며, 영국 체제를 프랑스에 도입하려고 생각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몽테스키외는 영국 정치 체제를 좋은 정치 체제의 하나로 보았을 뿐, 가장 좋은 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제한정부에서는 시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프랑스 군주정도 영국 정치 체제와 마찬가지로 시민의 자유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시민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는 체제의 유형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유형에 상관없이, 그가 살고 있는 체제가 어느 정도 제한정부적 성격을 가졌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몽테스키외는 11권의 6장에서 영국 체제를 설명하면서 그와 관련된 네 가지 정치 이론을 제시한다. 권력 분립, 혼합 정부, 균형 법제, 견제와 균형에 관한 이론이 그것이다.각주23) 그는 19권 27장에서 영국의 정당 제도와 아울러 정당 제도의 선행 요건으로서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논한다. 몽테스키외가 영국 체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된 모든 사항에 대한 세세한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이 글에서는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에 관한 이론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도록 한다.

몽테스키외가 권력 분립에 관한 이론의 선구자는 아니다. 몽테스키외에 앞서 로크는 국가의 기능을 크게 입법권과 집행권으로 나누는 이권 분립론을 주장했다.각주24) 로크는 사법권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는 사법권을 집행권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크와는 달리 몽테스키외는 사법권을 하나의 권력으로 독립시켜 사법부에 독자적 기능을 부여했는데 이런 의미에서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론은 독창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국가의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입법권이란 법을 제정하는 권력이며, 행정권은 법을 집행하는 권력이며, 사법권이란 집행된 법을 당사자의 요구가 있을 때 심판하는 권력이다. 몽테스키외는 삼권 분립이 없이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입법권이 행정권과 결합되어 한 사람 혹은 하나의 행정 단체의 수중에 놓여 있을 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전제적인 법률을 만드는 군주 또는 원로원이 법률을 전제적으로 집행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재판권이 입법권과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배하는 권력은 자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권이 행정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약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에서 주요한 사람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동일한 단체가 이 세 가지 권력, 즉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 공공의 결정을 집행하는 권력, 죄나 개인의 쟁송을 심판하는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The Spirit of the Laws각주25)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권력 분립이란 용어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 의미는 권력은 ‘기능(function)’의 차원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기능이 필요한데, 이 세 기능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므로 그 기능에 따라 권력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하나의 정부 기관은 단 하나의 포괄적인 기능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의미는 영국에서 입법권은 하원, 상원, 왕에게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권력 분립이란 용어를 일관되지 못하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의도했던 것은 첫 번째 의미의 기능적 분리다.

그러나 단순히 삼권 분립만으로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 세력을 형성하는 세 축인 평민, 귀족, 군주 간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며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사이에도 권력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 세력이나 세 권력 기관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월한 세력이나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다른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한 부분의 이익이 전체 사회를 압도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균형의 개념과 연관하여 몽테스키외는 혼합 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혼합 정부는 평민, 귀족, 군주 등의 정치 세력들이 추구하는 각기 다른 이익들이 대표될 수 있도록 조직되기 때문이다.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권력 간의 균형은 적절한 혼합 정부의 형태를 통해서 혹은 균형적인 헌정 제도의 완비를 통해서 추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만을 가지고서는 권력의 균형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한다. 그래서 새롭게 고안된 정치적 장치가 바로 권력의 견제라는 메커니즘이다. 견제는 한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견제는 어떤 의미에서, 세 권력 기관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권력 분립의 대원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견제 장치에 의해서 행정부는 입법부의 입법 과정에 개입하여 의회에서 통과된 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입법부는 행정부에 의한 권력의 집중 현상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몽테스키외의 권력 분립 이론은 한마디로 “권력을 나누고 제한하라”라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기능적으로 분리된 권력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작용해야만 권력의 독점화 경향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자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가 정치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가 루소와 더불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와, 그가 로크와 더불어 미국 연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학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평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근대 서구 세계를 형성했던 두 가지의 역사적 대혁명에 사상적 족적을 남긴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사상이 프랑스 혁명에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가 이미 시효를 상실한 봉건적 귀족 제도를 옹호하려고 했다는 설과, 절대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자유의 보장이라는 기치 아래 새로운 정치 체제를 조심스럽게 모색했다는 설 등이 대립되고 있으나 정치적 덕성에 기초한 근대 민주주의 공화정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은 루소의 여과를 거쳐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몽테스키외에 대한 루소의 평가에는 찬양과 비판이 섞여 있다. 루소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정치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그의 정치 이론은 단지 기존 정부의 실증적 권리를 옹호하는 데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정치 질서의 창출에 관한 원칙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위대하면서 쓸모없는 학문(정치학)을 설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유일한 근대 이론가는 현명한 몽테스키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권리의 원칙에 대해 논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는 기존 정부의 실증적 권리를 논하는 데 만족했다.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원칙에 대한 연구와 기존 정부의 실증적 권리에 대한 연구만큼 다른 것은 세상에 없다.
Emile각주26)

루소의 정치사상은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몽테스키외가 논하고 있는 실증적 권리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규범적 차원에서 정치적 권리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또 다른 제목은 《정치적 권리의 원칙(Principles of Political Right)》인데 이 제목이 잘 말해주듯이 루소는 기존의 정치 질서가 아닌 정당한 정치 질서(이것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가 지녀야 할 원칙을 새롭게 제시했다.

몽테스키외의 사상적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 연방주의 헌법의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에 잘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각주27) 해밀턴(Alexander Hamilton), 메디슨(James Madison), 제이(John Jay)가 뉴욕시의 신문에 기고한 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이들은 로크와 몽테스키외를 주로 인용하면서 연방주의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연방주의자들은 억압적 정부의 출현을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권력 분립과 대의제의 원칙에 입각하여 권력 구조를 설계하려 했다. 이들은 로크에게서 권력 분립과 제한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교훈을 얻었으며 몽테스키외에게서 삼권 분립, 권력의 견제와 균형, 혼합정, 상업 공화국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해밀턴은 연방주의 국가가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몽테스키외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부분에 일정하게 분배된 권력,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 적법 행위를 하는 한 직책이 보장되는 판사들로 구성된 법원, 국민이 선택한 대표에 의한 의회. 이 모든 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발견물이거나 또는 완전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에 중대한 진보가 이룬 장치들이다. 이것은 공화주의 정부의 우월성을 유지하고 그 결함을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페더랄리스트 페이퍼》각주28)

몽테스키외는 그에게 사상적으로 빚을 졌다고 인정한 헤겔을 포함하여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특히 콩스탕(Benjamin Constant)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콩스탕은 입헌 군주제 이론을 개진했는데, 그는 입헌 정부가 피치자의 자유를 법률적으로 분명히 인정해야 하고, 정치적 공직자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법률 절차를 통해 피치자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는 비교분석의 방법이나 그 주제의 포괄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모방하고 있다.

몽테스키외를 사회학자로 파악하고 있는 아롱은 토크빌을 몽테스키외적 스타일을 계승한 사회학자로 파악하고 있다. 아롱에 따르면 토크빌은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 속에서 구분했던 여러 가지 카테고리를 사용해 미국 사회를 정치·사회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중적인 몽테스키외의 모습(사회학자로서의, 정치사상가로서의)이 토크빌에 의해 답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가 지닌 사회학자의 측면을 부각시키려고 한 아롱 역시 “몽테스키외의 정치철학의 본질은 자유주의다”라고 평가하고 있는데,각주29) 이 평가는 토크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몽테스키외는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였으며 이성, 정의, 자유 등의 개념에 근거해 보다 나은 정치 사회를 설계하고자 했다. 그는 이성, 정의, 자유를 중요시했지만 이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정치 체제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이성에 근거하여 보편적인 정치적 기준을 추출해낼 수 있지만 한 국가에 적합한 정치 체제는 자연환경과 같은 물리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오직 이성에 근거해서 최선의 정치 체제를 수립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몽테스키외는 필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리적 환경과 합리적 사고의 결과로 나온 보편적인 정치적 기준이 적절하게 섞이고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 국가에 적합한 정치 체제가 탄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법의 정신》은 수없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 개별적인 정치 체제 중에서 어떤 체제가 보편적인 정치적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공화정이든 군주정이든 그것이 온건한 제한정부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 좋은 정치 체제라고 보았다. 온건한 제한정부가 본질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시민의 자유와 안전인데, 온건한 제한정부를 강조하는 몽테스키외의 이론에서 우리는 근대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읽을 자료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에 대한 외국 학자의 단행본 연구서가 아직 한글로 번역된 적이 없다. 번역본을 통한 몽테스키외에 관한 소개는 플라므나츠의 정치사상사 연구나 아롱의 사회사상사 연구에 나타나 있듯이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에 관한 국내 연구가 보다 진작되고 집적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법의 정신》과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몽테스키외와 관련된 몇 편의 연구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롱, 레이몽, 《사회사상의 흐름》, 이종수 옮김(홍성신서, 1980)
아롱은 이 책에서 몽테스키외를 필두로 하여 총 7명의 사회학자(콩트, 마르크스, 토크빌, 뒤르켕, 파레토, 베버)의 사회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몽테스키외를 사회학의 선구자로 보고 있는 아롱은 몽테스키외의 사상에 대한 분석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아롱은 몽테스키외 정치사상의 본질은 자유주의에 놓여 있음을 받아들이지만, 그의 결정적인 공헌은 정부 형태의 분석과 사회 조직의 연구를 결합시킴으로써 정치 체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데 있다고 강조한다.

장세용,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한울아카데미, 1995)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에 관한 국내 학자의 유일한 연구서다. 주로 《법의 정신》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페르시아인의 편지》 및 《로마성쇠 원인론》에 관해서도 분석하면서 몽테스키외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몽테스키외가 정치 사회의 본질, 즉 법률과 정부 유형에 관한 고찰을 통하여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을 근대 자유주의의 성립과 연결 지어 논하고 있다.

플라므나츠, J., 《정치사상사 1 : 마키아벨리에서 몽테스키외까지》, 김홍명 옮김(풀빛, 1993)
플라므나츠는 《법의 정신》에는 일반 원인을 탐구하는 사회학자로서의 몽테스키외와 자유가 보장되는 정치 체제를 연구하는 정치사상가로서의 몽테스키외가 드러나 있음을 지적하면서 후자, 즉 자유주의 정치사상가로서의 몽테스키외를 부각시켜 설명한다. 저자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단순히 제한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식’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을 따라 논의를 전개한다. 근대 정치사상의 흐름에서의 몽테스키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홍태용, 《몽테스키외와 토크빌》(김영사, 2006)
몽테스키외와 토크빌의 정치사상을 교양적 수준에서 다룬 책으로, 이 책을 통해 대학생이나 일반인들도 쉽게 몽테스키외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몽테스키외의 기본 관점을 프랑스의 군주정이 전제정이 되지 않고 온건한 군주정이 되기를, 혹은 군주정의 외양을 가지지만 공화정의 내용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표 및 삽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일목요연하게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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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2001년 《사상》 가을호에 실린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법의 정신》을 중심으로〉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참고문헌

  • ・ 아롱, 레이몽, 《사회사상의 흐름》, 이종수 옮김(홍성사, 1980)
  • ・ 장세용,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한울아카데미, 1995)
  • ・ 플라므나츠, 존, 《정치사상사 : 마키아벨리에서 몽테스키외까지》, 김홍명 옮김(풀빛, 1993)
  • ・ 해밀턴, 알렉산더·매디슨, 제임스·제이, 존,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김동영 옮김(한울아카데미, 1995)
  • ・ Locke, John, Two Treatises of Government Book II : 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New York : New American Library, 1965)
  • ・ Montesquieu, The Spirit of the Laws, M. C. Anne·C. M. Basia·S. S. Harold (trans.·eds.)(Cambridge : Cambridge Univ. Press, 1989)
  • ・ Pangle, T. L., Montesquieu’s Philosophy of Liberalism(Chicago : The Univ. of Chicago Press, 1973)
  • ・ Richter, Melvin, The Political Theory of Montesquieu(Cambridge : Cambridge Univ. Press, 1977)
  • ・ Rousseau, J.-J., Emile, Allan Bloom (trans.)(New York : Basic Books, 1979)
  • ・ Shackleton, Robert, Montesquieu : A Critical Biography(Oxford : Oxford Univ. Press, 1961)
  • ・ Shklar, J. N., Montesquieu(Oxford : Oxford Univ. Press, 1987)

김용민 집필자 소개

1974년에 강원도 춘천의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2009년 5월 당시 진행하던 C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에서 ‘이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오프닝과, 그 무렵 ‘20대, 너희에게 ..펼쳐보기

출처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 저자강정인 외 | cp명책세상 도서 소개

'계간 사상' 1999년 봄호부터 2003년 봄호까지 '서양 근대사상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 16편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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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몽테스키외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강정인 외,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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