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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피렌체
마사초
Massacio출생 | 14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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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28년 |
흔히 천재적인 예술가가 탄생하면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렇게 혜성과 같이 등장한 천재들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이 무슨 정해진 운명의 장난처럼 보인다. 많은 천재가 혜성과 같이 등장해 충격과 파란을 일으키다가, 젊은 나이에 불현듯 세상을 등졌다. 조르조네(Giorgione, 1477~1510, 33살)가 그랬고,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 37살)가 그랬으며,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39살)가 그랬고, 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37살)도 그랬다. 마사초(Massacio, 1401~1428, 27살)도 그런 인물이다. 세상의 뭇 천재가 그러하듯이 마사초는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손에 꼽히는 극소수의 걸작을 남기고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15세기 초반에 그가 피렌체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제2의 조토가 다시 피렌체에서 탄생했다고 열광했다. 그의 많지 않은 작품들은 동시대와 후대의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일종의 미술 교과서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수많은 피렌체의 후배 예술가가 마사초가 남긴 브랑카치 채플(Brancacci Chapel)의 프레스코 작품 속에서 르네상스의 정신을 발견했다. 브랑카치 채플이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또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성 삼위일체〉는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르네상스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서양미술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초기 작품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가 있으나 그것은 마솔리노(Masolino da Panicale, 1383~?1447)라는 인물과 공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피렌체에 있는 마사초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브랑카치 채플과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두 점뿐이다. 그러나 마사초는 이 두 작품으로 서양미술사의 방향을 결정지었으며,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하는 기본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마사초는 15세기 피렌체의 비아 콰트로첸토를 빛낸 인물이다. 건축가의 길에 브루넬레스코가 있었고, 조각가의 길에 도나텔로가 있었다면, 화가의 길에는 마사초가 있었다.
마사초의 본명은 톰마소 디 조반니 카사이(Tommaso di Giovanni Cassai)이고, 아레초 인근 마을에서 1401년에 태어났다. 카사이라는 가문의 이름은 마사초의 조상들이 장식장 가구를 만드는 목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마사초의 아버지는 법률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공증인으로 일했던 아버지를 일찍 잃은 마사초는 1417년에 피렌체로 이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마사초가 정식으로 예술가들의 길드에 가입한 것은 스물한 살 때인 1422년의 일이지만, 그가 누구 밑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코, 그리고 예술 이론가 알베르티가 함께 활동하고 있던 피렌체에서 마사초는 15세기 르네상스 정신이 태동하는 과정을 목격했을 것이고, 그 주역으로 성장해간다.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마사초는 1423년 무렵에 로마와 피사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고대 예술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고 한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마사초는 프레스코 전문 화가였던 마솔리노와 함께 산토 스피리토 성당과 인접해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브랑카치 채플에서 유명한 프레스코화를 제작한다.각주1) 1424년 무렵에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자 정치가였던 펠리체 브랑카치(Felice Brancacci)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마솔리노는 헝가리의 귀족에게서 새로운 작품 주문을 받아 피렌체를 떠나게 되었다. 마사초가 프레스코 작업을 전담하게 되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작업은 계속 지연되었다. 작품의 주문자였던 브랑카치 가문에서 작품 대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제시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은 도심에서 아르노 강을 건너, 피렌체의 남서쪽에 있는 작은 성당이다. 외관상으로는 무척 남루해 보이고 정면 파사드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피렌체를 방문하는 사람은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으로 불리는 마사초의 브랑카치 채플을 꼭 방문할 필요가 있다. 마사초의 프레스코 연작을 감상하기 위해서 예약은 필수적이다. 피렌체의 후미진 곳에 있지만 르네상스 미술 애호가에서부터 학생 단체 관람객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또 실내 공간도 협소하다 보니 한 번에 최대 20명 정도만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브랑카치 채플에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작품은 왼쪽 상단에 그려져 있는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인 그림이다. 마사초 이전에 어느 누구도 아담과 이브를 이런 식으로 그리지 못했다. 아무리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이라고 해도 아담과 이브를 이런 식으로 참혹하게 그리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신학 체계에 따르면, 예수는 ‘제2의 아담’이기 때문에 아담의 이미지에는 예수의 고귀한 신적 이미지가 겹쳐져야 했다. 아담은 예수의 《구약성경》적인 모델이었다.
한편 이브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원형적 모델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곧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신성과 거룩함의 표상이다. 따라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아담과 이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장엄하고 우아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까? 마사초가 그린 아담은 수치심에 사로잡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고, 이브는 부끄러운 나신을 웅크리며 절망의 탄식을 뱉어낸다.각주2)
마사초는 단 사흘 만에 이 신성모독이 가득한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를 그렸다고 한다. 20대의 젊은 화가 마사초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빨리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이토록 처절한 아담과 이브를 그렸을까? 낙원에서 절망의 세계로 추방되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수치를 당하고 뼈저린 좌절을 경험한 인간의 솔직한 모습에서 우리는 왜 브랑카치 채플의 프레스코화가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으로 불리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발견으로 촉발되었다.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와 바로 붙어 있는 왼쪽 상단의 그림도 마사초의 작품이다. 마사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의 제목은 〈세금을 바침〉이다. 〈마태복음〉 17장 24절의 이야기를 시각화한 이 작품은 한 그림 안에 세 개의 장면이 동시에 포착되어 있다. 가운데 예수와 사도들이 모여 있는 장면에서 유대인 관리가 예수에게 세금을 바칠 것을 요구하자, 작품 왼쪽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은 성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생선의 입에서 동전을 꺼내는 장면이 보이고, 다시 작품의 오른쪽에 관리에게 세금을 바치는 성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피렌체 시민에게 요구되던 세금 납부의 중요성 때문에 이런 주제의 그림이 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수와 베드로도 세금을 바쳤으니, 우리도 피렌체 정부에 세금을 바치자!
미켈란젤로가 10대 소년 시절, 마사초의 이 그림을 따라 그렸던 습작이 아직도 남아 있다. 베드로가 유대인 관리에게 세금을 건네는 장면이다. 조각가로 성장할 소년 미켈란젤로는 마사초의 회화 작품을 마치 조각처럼 그렸다. 베드로의 모습이 마치 조각상을 보고 그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 작품은 브루넬레스코의 선원근법을 배경에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브랑카치 채플의 〈세례를 베푸는 성 베드로〉는 정면 오른쪽 상단에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베드로는 〈세금을 바침〉에서 관리에게 세금을 바치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다. 그래서 이 작품 역시 마사초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례를 베푸는 성 베드로는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다. 세례를 받는 남자는 무릎까지 올라온 시냇물에 몸을 담근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벗고 있는 그의 몸은 추위 때문에 잔뜩 긴장해 있다. 목 주위의 근육을 움츠리는 것은 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쓰는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마사초는 이 작품에서 아무리 거룩한 성 베드로 앞이라고 해도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찬물을 뒤집어쓰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마련이라는 솔직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세례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아예 노골적으로 추운 겨울에 옷을 벗고 찬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데 대한 후회를 담고 있다.
이것은 신성모독에 가까운 표현이다. 성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이다. 따라서 성당이나 수도원 그림에 성 베드로가 그려져 있으면 그것은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사초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세례를 베푸는데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렸다. 일상의 거룩함이 종교적 권위에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는 인간의 가치가 시각화된 것이다. 인간은 추위 앞에서 몸을 떠는 본능에 충실하면서 성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정신이다.
브랑카치 채플의 정면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자선을 베푸는 성 베드로와 성 요한〉과 정면 왼쪽 하단의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도 마사초의 작품이다. 왼쪽 하단의 〈테오필로스 아들의 부활〉은 마사초가 시작했지만, 후대에 필리피노 리피가 완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선원근법의 입체감을 모든 화면에 적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의 제일 오른쪽에서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은 마사초가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마사초는 1426년에, 피사로 주 작업장을 옮겼다. 피사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중앙 제단화 작업이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피사에서 조각을 하고 있던 도나텔로와 교류했고, 도나텔로의 친구였던 브루넬레스코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선원근법의 이론적 창시자였던 브루넬레스코와의 친분으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 삼위일체〉도 제작하게 되었다. 피사의 카르미네 성당과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분주하게 오가면서 마사초는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브랑카치 채플의 프레스코화도 틈틈이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서 활동하던 옛 동료 마솔리노의 연락을 받고 피렌체를 갑자기 떠난다(1428). 마사초는 정체불명의 이유로 로마에서 급사했는데, 바사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실력을 시기하던 동료 화가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마사초가 임종하기 한 해 전에 그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성 삼위일체〉는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코가 고안한 선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회화 작품이다. 브랑카치 채플에서 개괄적으로 사용되었던 선원근법이 가상의 깊은 공간까지 확대되고 있다. 평평한 이차원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임에도 네 개의 차별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주문자 두 명이 두 손으로 모으고 있는 아래 공간, 성모 마리아와 세례요한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공간, 그리고 성부 하느님이 아들 예수를 두 팔로 잡고 있는 위쪽 공간이 각각 분리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 하단의 무덤으로 그려진 부분도 마치 실제로 해골과 무덤이 입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십자가 아래를 소실점으로 작품의 상단과 하단의 시점이 모아져 완벽한 선원근법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성 삼위일체〉이므로 그림 속에 표현된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부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린 성자 예수 뒤에 서서 죽어가는 아들을 붙들고 있다. 성부 하느님을 그림으로 직접 표현한 것은 의외의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금지 규정(출애굽기 20장 4절) 때문에, 중세 화가들은 성부 하느님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 알프스 산맥 이북의 북 유럽 화가들이 성부 하느님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런 금기조항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성령은 비둘기나 빛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례다. 이 작품에서는 성부와 성자 사이를 날고 있는 비둘기로 표현했다.
마사초의 이 작품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조형예술의 3대 장르인 회화, 건축, 조각의 삼위일체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먼저 상단의 건물은 완벽한 건축의 모델을 보여준다. 이차원 공간에 펼쳐진 삼차원의 건축이다. 가운데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성부, 성자, 마리아, 요한, 작품의 주문자 두 명)은 회화의 완벽한 표현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품 하단의 해골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의 조각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형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마사초는 이 작품을 통해 구현한 것이 아닐까? 참고로 작품 하단의 해골 위에 적혀 있는 라틴어 문구는 이런 뜻이다. “지금 모습의 나는 원래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당신도 나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
마사초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미완성으로 남겨진 브랑카치 채플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급부상으로 경쟁 가문 중의 하나였던 브랑카치 가문이 1436년에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면서, 브랑카치 채플 작업은 영원한 미제로 남겨졌다. 마사초도 로마에서 비명(非命)에 숨을 거두었고, 작품을 주문했던 가문도 피렌체에서 궤멸되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작품은 약 50년 후에 마사초의 제자로 자처하던 필리피노 리피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1771년의 대화재 때 작품이 거의 훼손되는 불운이 이어졌다. 최근 심혈을 기울인 복원 작업이 완료되어 마사초의 걸작이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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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Vasari, The Lives of the Artists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p. 105, 108.
글
출처
피렌체를 알면 인문학이 보인다! 단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메디치, 조토, 카라바조 등의 피렌체 천재들이 이뤄낸 르네상스 시대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창조 에너지의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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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사초 –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김상근,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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