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사택지적 보물 제1845호, 砂宅智積碑
    백제 의자왕 때의 사택지적이 남긴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유일한 금석문이다. 일본인들이 부여신궁을 세우기 위해 쌓아놓았던 돌무더기 속에서 1948년에 발견되었다. 높이 102㎝, 폭 37.9㎝, 두께 29㎝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비면은 길이 7㎝인 정방형 선으로 금을 그어, 각 행에 모두 14자씩 4행으로 모두 56...
    도서 다음백과 | 태그 백제
  • 부여 사택지적 (관련어 사택지적비)
    2014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45호로 승격되었다.문화재청고시제2014-142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420호, 775면, 2014-12-31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비석이며, 높이 102센티미터, 너비 38센티미터, 두께 29센티미터인 에 56자가 남아 있다. 1948년 부여읍 관북리 ...
    도서 위키백과
  • 부여 사택지적 扶餘 砂宅智積碑
    내용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자왕 때의 대신 사택지적이 남긴 이다. 1948년 역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황수영(黃壽永)과 홍사준(洪思俊)이 부여에서 발견하여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는 대좌평(大佐平)을 역임하였던 사택지적이 말년에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만든...
    시대 :
    고대/삼국/백제
    유형 :
    유물
    분야 :
    역사/고대사
  • 사택지적 砂宅智積
    의자왕이 왕권중심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내좌평(內佐平) 기미(岐味) 등 고명지인(高明之人) 40여명을 섬으로 추방한 정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강화된 왕권의 대귀족(對貴族) 통제력에 말미암은 것이다. 사택지적는 그가 만년에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만든 것이다. 참고문헌
    시대 :
    고대/삼국/백제
    경력 :
    대좌평
    유형 :
    인물
    직업 :
    관리
    성별 :
    분야 :
    역사/고대사
  • 사택지적
    귀족 정보 사택지적(砂宅智積, ?~?)는 백제의 귀족이다. 대성팔족(大姓八族)의 사택씨(砂宅氏/沙宅氏), 또는 사씨(沙氏) 가문 출신으로, 나지성(奈祗城)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일본서기》에는 대좌평 지적(智積)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여 사택지적
    도서 위키백과
  • 있는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 414년)와 충청북도 충주의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 480∼481년)이고, 백제 석비로 대표적인 것은 충청남도 부여의 사택지적(砂宅智積碑, 654년)이다. 신라 석비로는 경상북도 영천(永川)의 청제비(菁堤碑, 536·798년)와 충청북도 단양의 적성비(赤城碑, 545∼551년), 경상남도 창녕...
    시대 :
    선사
    유형 :
    개념
    분야 :
    예술·체육/서예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문화 황금기로의 초대
    이를 포함해 백제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제2 전시실이다.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 전에 꼭 살펴볼 것이 백제의 대표적인 금석문, '사택지적'다. '사택지적'이라는 인물이 남긴 이 비석은 부여 부소산 남쪽의 돌무더기에서 발견됐는데, 화강암을 잘 갈고 네모 칸을 친 뒤 글자를 새겨두었다. 지금은...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 국립부여박물관 부여고적보존회, 國立扶餘博物館
    土陶製品)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유물로는 1937년 규암면 외리의 한 백제 절터에서 출토된 문양전(文樣塼)을 비롯하여, 1950년에 발견된 사택지적(沙宅智積碑), 부여지방의 여러 건물지 등에서 출토된 연화문와당(蓮花文瓦當),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에서 출토된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시대 :
    현대
    유형 :
    단체
    분야 :
    예술·체육/회화
  • 내지성 奈祗城
    내용 「사택지적(砂宅智積碑)」에 나오는 지명으로, 백제 의자왕대에 대좌평(大佐平)을 지낸 사택지적(砂宅智積)이 만년(晩年)에 은퇴하였던 곳이다. 이 지역은 백제 팔성귀족(八姓貴族)의 하나인 사택씨의 세력기반이 된 지역으로 생각된다. 내지성의 위치에 대해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내지리 혹은 대전...
    시대 :
    고대/삼국/백제
    성격 :
    고지명
    유형 :
    지명
    분야 :
    역사/고대사
  • 백제의 문화
    계율종 승려였다. 한편 도가사상도 일찍이 전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배층 사이에는 신선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던 듯하다. 산경문전이나 사택지적에도 도교사상의 영향이 발견된다. 또 백제는 낙랑·대방의 한인과 접하면서 일찍부터 한문과 유교를 접했다. 그리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대에 역사서인...
    도서 다음백과 | 태그 백제
  • 백제의 성씨
    제작된 부여 융(隆)의 묘지(墓誌)에도 여융(餘隆)이 아니라, 부여 융(扶餘 隆)으로 기록되어 있다. 흑치상지 묘지명에 보이는 ‘흑치’라는 성, 그리고 〈사택지적(砂宅智積碑)〉에 등장하는 사택(砂宅) 등이 그 예이다.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백제의 왕족과 귀족들은 단성(單姓)보다는 복성을 더 많이 가지고...
  • 대통사 대통지사(大通之寺), 大通寺
    이라고 한다. 백제에는 전륜성왕으로 자처한 성왕이 있고 성왕의 아들은 위덕왕(威德王)이고 성왕의 손자로 법왕(法王)이 있고 지적이란 이름을 가진 사택지적(砂宅智積碑)도 남아 있다. 창건 목적도 무령왕의 명복을 빌고 새로 태어난 창(훗날 위덕왕)의 건강을 위해 세운 절로 보면서 창건 시기도 무령왕의 삼년상...
    시대 :
    고대/삼국/백제
    유형 :
    유적/건물
    분야 :
    종교·철학/불교
이전페이지 없음 현재페이지1 2 다음페이지 없음

멀티미디어9건

사택지적비
사택지적비
사택지적비
사택 지적비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
부여 사택지적비
부여 사택지적비
부여 사택지적비
충남 부여 발견 사택지적비 탁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