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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아문 지계아문, 量地衙門전까지는 관찰사나 지방관이 선정하도록 하였다. 각 도의 양무감리는 해당 도내의 현직군수이거나, 군수가 아니더라도 양무에 밝은 자를 군직에 있더라도 차출하여 임명할 수 있었다. 양무위원은 군단위로 임명하여 처음에는 총재관의 관할 아래 있었으나 1900년부터는 양무감리의 감독하에 두었다. 조사위원은 양무위원...
- 시대 :
- 근대
- 성격 :
- 관서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1898년
- 폐지일 :
- 1902년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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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억 대년(大年), 趙泰億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8년 이조정랑을 거쳐 우부승지를 지내고, 다음 해 철원부사로 나갔다가 1710년 대사성에 오르고, 1711년 일본에 통신사로 차출되어 일본에 다녀 왔는데 이 때에도 막부의 어용화가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가 그린 조태억의 초상화가 전해진다. 그 뒤 이조참의 · 호조참의가 되었다가...
- 시대 :
- 조선
- 유형 :
- 인물/전통 인물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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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인관 검인관(檢印官), 鈐印官官) 또는 타인관(打印官)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예조좌랑이 당연직으로 임명되었으나, 후기에는 예문관·성균관·교서관·승문원의 4관 관원 중에서 차출, 임명하였다. 시권의 날인은 시권을 넣은 겉봉투에 하는 외타인(外打印)과 시폭(試幅 : 답안지)에 하는 내타인(內打印)이 있었는데, 전자는 시험 치르기...
- 시대 :
- 조선
- 성격 :
- 관직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조선시대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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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소 무위영(武衛營), 武衛所이의 책임자를 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라고 하고, 조영하(趙寧夏)를 이에 임명하여 숙위군을 지휘, 감독하게 하였다. 그 뒤 각 군영에서 가장 우수한 군병을 차출하여 무위소는 1,200여 명의 강군(强軍)이 되었다. 무위도통사는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훈련도감 등 3영의 제조(提調)를 겸하였고, 용호영(龍虎...
- 시대 :
- 근대
- 성격 :
- 관청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1873년 6월 20일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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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宣箋官내용 예문관의 4품 이상 관원 중에서 차출하였다. 국왕의 탄일과 정조(正朝)·동지의 하례식에서 전전관(展箋官 : 전문의 출납 담당자)·선전목관(宣箋目官 : 전문의 목록을 읽는 관원)과 함께 일을 보았다. 하례식 후반에 산호(山呼 : 만세 혹은 천세 삼창)가 끝나면 전전관 2인이 백관의 전문을 담은 전안(箋案)을...
- 시대 :
- 조선
- 성격 :
- 관직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조선시대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