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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기본 정보 오스트리아공화국, Austria Information오스트리아의 역사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크 왕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만들어진 오스트마르크 행정구가 오스트리아의 기원이다.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는 9세기 이후 오스트리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마자르인을 격파하고 신성 로마 제국을 건설했다. 15세기 이후에는...
- 수도 :
- 빈(Wien)
- 언어 :
- 독일어
- 화폐 :
- 유로 €, €1 ≒ 1,250원(2015년 7월 기준)
- 시차 :
-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서머타임 기간에는 7시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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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독일 연방의 붕괴새로운 독일 연방국 창설을 제안했다. 이 계획안에 의하면 북쪽에서는 프로이센, 남부 독일에서는 뮌헨(바이에른)이 주도권을 잡고, 독일 연방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프로이센은 이 동맹을 체결한 다음 날 프랑크푸르트 영방의회에 영방 개편안을 제출했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도전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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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및 농민 전쟁 시대의 오스트리아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1564~1576)는 보헤미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도나우 공국)의 지배자가 되었을 때,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을 거부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신교 세력이 크게 확산되었고, 독일 제국에서도 루터파 신교가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나 차지했다. 그는 1572년...
- 시대 :
- 근대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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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로마 황제 계승권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지지를 표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프랑스의 이같은 태도는 유럽 대륙에서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데 전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프랑스와 연합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1·2차 슐레지엔 전쟁 때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레지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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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Austrian Netherlands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 소유영토가 분할되면서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신성 로마 황제 카를 6세의 통치하에 들어갔는데 이 지역이 바로 1795년까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 알려졌다. 1715년에 안트웨르펜 조약(봉쇄조약이라고도 함)은 저지대 남부지역을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더라도 스페인의 지배를 받을 때와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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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아들 프리드리히 1세(1701∼13 재위)는 스스로 '프로이센의 왕'이라 칭했고, 그뒤 역대왕들은 군사적 통치를 계승하여 영토의 확장에 힘써 이 국가는 오스트리아 다음가는 강력한 영방국가로 발전했다. 특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3∼40 재위)와 프리드리히 2세(1740∼86 재위)는 서쪽으로는 라인 강으로부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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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와 한국과의 관계외교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1963년 5월에 국교를 수립했으며, 1966년 12월에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을 개설했다. 수교 이후 꾸준히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으며, 양국 간 교역규모는 29억 달러로 경제관계도 긴밀하게 발전해 오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국제무대에서 중립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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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자연환경오스트리아는 3개의 지리적 지역으로 나뉜다. 독일, 리히텐슈타인 공국, 스위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 알프스 산맥을 차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맥지역은 국토의 약 2/3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지역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산이 많은 주요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몇몇 산은 해발 3,000m 이상이며, 3,797m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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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비스마르크크리스티안 9세에 대항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과 국경이 맞닿는 곳에 새삼스럽게 새로운 독일인 소국가를 창설한다는 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독일인의 민족감정에 호소해 자기를 앞지르는 것을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1864년 1월 자유주의자들을 싫어하던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