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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를 써서 인쇄하는 일은 동양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북송시대에 심괄(沈括)이 쓴 〈몽계필담 夢溪筆談〉으로, "경력년(慶曆年), 즉 1041~48년에 필승(畢昇)이라는 선비가 아교와 진흙으로 글자를 새겨서 책을 찍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나무활자·주석활자 등을 만들어서 책을 찍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활자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이미 주자(鑄字)로 책을 찍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고려 문종(1047~83 재위) 때의 기원설, 1102년(숙종 7) 기원설, 1219~29년(고종 16) 기원설 등 3가지 설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책 중에서 1377년(우왕 3) 7월에 청주목 밖의 흥덕사에서 주자로 찍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본이다.
고려 때부터 나무활자 인쇄술이 발달했으며, 금속활자도 발명되었다. 고려시대 인쇄술의 전통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1403년(태종 3) 2월 13일 주자소를 설치했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여 책을 찍었다. 그로부터 중앙의 관서나 지방의 관아, 민간에 이르기까지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는 일이 흔해졌다. 이러한 전통은 개화기를 전후하여 서양의 근대적 활자 제조의 기술이 들어온 뒤에도 이어졌으며, 오늘날 알려진 활자의 종류는 약 350종이나 된다. 한국의 활자는 도장을 파듯이 글자 하나하나를 새기는 나무활자와 오지활자가 발달했으며, 해감 모래에다 나무활자로 자국을 찍어서 그 자리에 쇠물을 부어 만드는 주조법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모래에다 찍은 자국은 한 번의 활자 주조가 끝나면, 또다시 글자 자국을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활자 주조의 속도가 매우 느렸다. 이것은 짜놓은 판틀 위에 종이를 얹고, 말털다리게로 문질러서 찍어내는 수작업의 인쇄술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양의 근대식 활자 주조는 강철로 만든 글자틀에다 납물을 부어 여러 번 계속하여 쉽게 주조하는 방법을 썼으며, 또 포도주를 짜내는 압축기를 활용한 기계 방식의 인쇄술로 책을 찍었다. 따라서 서양에는 대량 인쇄와 고속 인쇄가 가능해졌다. 서양에서 활자를 처음 만든 것은 금속세공업자라고 한다.
그들이 화폐나 메달을 조각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강철에다 글자를 새겨 활자를 주조했다고 한다. 서양 인쇄술의 시조라고 불리는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1445년경 발명한 활자의 주조 방법과 인쇄술을 보면, 먼저 쳐서 누르는 법으로 활자의 모형을 만들고, 2개의 L자 모양의 주형(鑄型)에다 쇳물을 부을 구멍을 만든 다음, 이 주형에다 모형의 위치를 정확하게 맞추고, 납을 주원료로 하는 합금을 흘려넣어 활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원고에 맞추어 활자를 배열하여 판틀을 짠 다음, 그 판면에다 유지성(油脂性) 잉크를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얹고 종이 전부를 세게 누르면, 종이에 잉크가 묻어서 인쇄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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