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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
조선에서는 우리나라의 농법을 조사하여 저술한 농서가 간행되었다. 최초의 책은 세종 때의 관찬농서인 〈농사직설〉이다. 이 책은 이후 계속 보완되었고, 효종 때는 다시 〈농가집성〉이 간행되었다.
그밖에 개인의 저술도 많이 유포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금양잡록〉·〈임원십육지〉·〈산림경제〉 등이 있다. 수리시설과 벼농사의 보급도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조선 후기까지 꾸준한 성장을 보였다. 윤작법이 행해지고 면화재배·양잠도 발달했다. 후기 논농사에서는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그 결과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밭농사에서는 견종법이 보급되고 인삼·담배 등 특용작물이 재배되었으며, 고추·감자·고구마가 도입되었다.
천문·기상
농학의 발달과 함께 천체관측·기상·시간측정·수학·측량 등에 대한 국가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에 세종 때는 간의·앙부일기·혼천의·자격루 등 각종 관측기구와 시계를 만들었다. 역법도 중국의 역법을 참조하여 조선시대의 좌표에 맞는 역법인 〈칠정산내편〉·〈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
후기에는 청나라를 통해 서구 역법을 수입하고, 일월식 계산법을 터득하여 완전한 역법체계를 이룩했다. 세종 때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세조 때는 토지측량기구인 규형과 인지의(印地儀)를 만들었다. 이같은 사업과 양전·공법·악기제작과정에서 수학도 크게 발전했다. 후기에 홍대용 등의 실학자들은 지구자전설을 주장했다.
군사무기
고려말에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격퇴한 이후 화약무기체제가 크게 발달해 완구(碗口)·총통(銃筒) 등 각종 화포가 생산되고 꾸준히 개량되었다. 화포는 특히 해전에서 큰 위력을 보였다. 임진왜란 때는 비격진천뢰와 화차가 만들어졌고, 이후에는 조총도 생산되었다.
병선의 개량에도 노력하여 중기에 판옥선이 개발되고,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이 큰 활약을 했다.
의학
세종 때 국산약재를 정리한 〈향약집성〉이 편찬되었다. 광해군 때는 허준이 〈동의보감〉을, 허임이 〈침구경험방〉을 저술하여 이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후기에는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여 사상의설을 주장했으며, 정약용은 〈마과회통〉에서 종두법을 소개했다.
기타
인쇄술에서는 금속활자가 계속 발전하여 세종 때의 갑인자를 비롯한 많은 활자가 주조되었으며, 후기에는 민간에서의 상업용 인쇄도 발달했다.
17세기 이후로 청나라에서 자연과학의 지식과 천문기기, 세계지도, 자명종 등이 수입되어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 정약용·최한기 등의 실학자들에 의해 거중기 등의 기기가 소개·이용되었으며, 이들의 세계적 인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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