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이슬람권의 해적

다른 표기 언어

아라비아 근해는 옛날부터 해적의 출몰로 유명했는데, 〈코란〉에 '모든 배를 강탈하는 왕'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홍해 입구의 페림 섬, 아덴 만 앞바다의 소코트라 섬 등도 해적의 근거지로 이름이 높았고, 특히 페르시아 만 방면의 카타르 반도에서 마산담 곶에 이르는 지방은 해적해안으로 불릴 정도로 아랍계 해적의 주무대였다. 또 그 주변지역의 주민들을 총칭하던 자와스미(Jawasmi)라는 말은 해적의 별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들의 생업은 해적행위, 그 쾌락은 살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적들은 악명이 높았고, 중세의 아랍·페르시아의 항해자들은 이들에게 큰 고통을 당했다. 인도의 서해안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미 1세기에 플리니우스도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인도로 가는 길에 해적이 많기 때문에 궁수 부대를 배에 승선시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13세기의 마르코 폴로는 인도 구자라트 지방의 해적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14세기에는 이븐 바투타가 인도의 해안에서 해적과 마주쳤던 일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의 전사가 해적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다.

1798년에 아라비아의 자와스미가 영국의 밧세인호를 약탈한 것을 시작으로 자주 동인도회사의 배를 습격하자, 영국은 조직적으로 해적소탕에 나서 1819년에 본거지인 케슘을 함락하여 해적선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영국이 페르시아 만을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토대로 해서였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알제리·튀니지·트리폴리 등이 이슬람계 해적의 본거지로 스페인·영 국의 해상세력과의 충돌이 계속 벌어졌다. 오스만 투르크의 명제독이며 '붉은 수염 바르바로스'라고 불리던 하이렛딘(1546 죽음)도 본래는 형과 함께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적이었으나, 튀니지의 술탄을 섬기게 되면서 후에 알제리를 공략하여 그 지배자가 된 사람이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법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이슬람권의 해적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