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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학생들에 의해 조직·전개되는 다양한 운동.
대개 학생운동의 주체는 대학생이다.
넓은 의미로는 학생자치활동·교육환경개선운동과 같은 교육운동과, 사회봉사활동·문화활동 등과 같은 사회문화운동도 포함된다. 좁은 의미로는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운동을 가리키며, 경우에 따라서 농민운동·노동운동과 연결되어 사회 변혁운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학생운동의 기원은 서양 중세 대학의 학생조합을 통한 자치운동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공관(空館) 등과 같은 실력행사에서 찾을 수 있으나, 학생운동이 정치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학생운동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나, 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차이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개발도상국, 사회주의 국가 등에서 나타나는 학생운동의 양상은 다를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인종차별 반대, 대학제도 개혁 등과 같은 문제와 고도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소외의 제문제에 대한 반발을 들 수 있고, 이론적으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같은 후기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에서의 학생운동을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 신좌파운동(new left movement)이라고도 하며, 1960, 197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들 국가가 대부분 식민지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식민통치 당시에는 자주독립을 위한 학생운동이 전개되었고, 독립 후에는 새로운 독재권력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학생운동이 주류를 이룬다.
이 유형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계층들은 독립 후의 상황이 식민지의 유제(遺制)를 완전하게 청산하지 못하고, 여전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에는 기존 정치세력 가운데 학생들의 변혁운동을 담보할 만한 정당세력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운동이 보다 정치적인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학생운동이 소련·중국·동구권으로 구분되었으나, 사회주의권이 해체되는 현재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운동과 자본주의 체제 또는 개방 체제로 나아가려는 학생운동이 대립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학생운동의 발생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각각의 정치적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나, 이밖에도 대학생 집단이 가지는 신분상의 특징, 청년기 대학생의 심리적 특징, 대학교육의 특징에서 원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대학생 집단은 아직 생활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로서 계급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특수성을 가지며, 대학생은 예비지식인으로서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현실을 비판하기 쉬운 심리적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K. 알러백은 학생집단이 청년시기의 연장으로서 이 시기에 긴장이나 문제의식 등이 자유롭게 표출됨을 지적했고, 학생집단의 동질성과 결합하여 어떤 특정집단에 종속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높은 지적 순수성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대학교육이 사회의 지배층을 양성하는 최고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기존의 사회를 온존시키는 내용이 아니라 사회의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론적인 안목을 제공한다는 특성을 가지는 것도 대학생의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나 대학생집단은 전문적인 정치운동단체와는 달리 일정기간 동안 유지되며, 그것도 매년 구성원이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유지되기가 어렵고, 정치적인 비판활동을 넘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전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정치적인 변화가 있어도 학생이 정치권력을 잡는 경우는 없다. 한국에서 4·19혁명을 전후하여 나타난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일반적인 특성과 함께 일제의 강점과 8·15해방 직후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요인에 의해서 학생운동 초기부터 정치운동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학생운동은 시대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전개되었고, 각 시기마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학생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것은 한국의 전통사상은 물론 민족주의, 민족자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리스도교 사상, 종속이론, 혁명이론 등 다양한 외래사상이었다.
일제강점기의 학생운동은 미국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시한 것과 국내 정치상황의 영향으로 1919년 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만세를 부른 사건이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3·1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2·8독립선언).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이 민족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무렵에는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학내에서는 각종의 동맹휴교를 전개하여 민족차별교육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이후에도 학생운동은 계속 이어졌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학원이 군사훈련장화되고 학생들이 학병으로 징집됨으로써 외형상 학생운동은 단절된 듯이 보였다.
8·15해방 이후에는 남북한이 각각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상황에 놓이게 되자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목적으로 학생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후 좌우 세력의 이념대립으로 분열되기도 했다. 신탁통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 단독정부수립 등에 관하여 좌우로 분열되었다.
이후 좌파 계열의 학생운동은 미군정의 탄압 등으로 세력을 잃었고, 주로 민족운동 계열의 학생집단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이 반공이념을 내세워 독재정치를 계속하자 학생들은 다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4·19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분단상황의 극복을 위해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다시 민족주의의 이념을 내세우게 되어 1963년 공화당 정권이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한일회담반대운동을 전개했다.
1960, 1970년대는 이러한 민족주의·민주주의의 이념에서 학생운동이 전개되었고, 공화당 정권이 반공 이데올로기로 학생운동을 탄압하자 점차 소규모화·지하화하게 되었다. 한일회담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로 종신집권하려 하자 학생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은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박정희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 몰락 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집권을 획책하자 1980년 광주시민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으켰으며, 이때 곳곳에서 격렬한 학생시위가 계속되었다.
이후 학생운동은 1985년 총선거를 전후해서 활발히 활동하다 군부에 의해 지하화하던 노동운동·농민운동과 결합되어 반독재투쟁을 넘어 노동자·농민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운동으로 발전했다. 1987년 개헌반대와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6월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때는 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학생운동은 학내외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운동에까지 관여하게 되었고, 학생조직도 소규모 그룹에서 전국적인 학생회 조직을 이용하여 거대한 규모로 발전했다. 또한 이념적으로도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이론에 입각한 반제국주의·반독재 운동, 그리고 노동단체·농민단체·재야정치단체 등과 함께 공개된 정치운동을 전개했다. 이밖에도 민중들의 문화에 애착을 가지고 다양한 민중예술 운동도 병행되었다. 1990년을 전후로 학생운동의 정치적인 성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이제까지는 소홀히 취급되었던 교육문제·학생후생문제·등록금문제와 같은 학내문제와, 사회분야에서도 환경문제·문화활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학원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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