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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북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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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499,883 (2024) |
면적 | 672.78㎢ |
행정구역 | 4개읍 9개면 7개동 |
사이트 | http://www.paju.go.kr/index.do |
요약 경기도 북서부에 있는 시. 1970년 미군기지 철수 대규모 신도시의 건설이 시작된 지역이다. 1995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2000년대부터 인구가 급증했다. 북부에는 임진강이 연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하류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면적 672.78㎢, 인구 499,883(2024).
경기도 북서부에 있는 시. 1996년 파주시로 승격되었다. 서울과 개성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임진강과 한강 하류를 끼고 있다. 관서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었으나 현재는 북부에 군사분계선이 지나며 임진각·판문점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문산읍· 조리읍·법원읍·파주읍·광탄면·탄현면·월롱면·적성면·파평면·군내면·장단면·진동면·진서면·교하동·운정1동·운정2동·운정3동·금촌1동·금촌2동·금촌3동 등 4개읍 9개면 7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시청로 50이다. 면적 672.78㎢, 인구 499,883(2024).
연혁
지금의 파주시는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옛 파주목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술이홀현이었으나, 고구려의 남하로 475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봉성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초 1393년(태조 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398년(태조 7)에 파평현을 병합하면서 원평군으로 개칭했다.
1459년(세조 5)에 정희왕후 윤씨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세기 중엽 영조대에는 장단에 있던 방영을 이곳으로 옮기고, 임진강 나루 임진보와 장산보에 성을 쌓고 관문과 돈대를 설치하며, 별장을 파견하는 등 지리적 중요성을 강화했다. 파주의 별호는 곡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파주군의 광탄면·조리면·파평면은 그대로, 주내면·천현면·월롱면·임진면·와석면·청석면·탄현면·아동면 등으로 통합되어 파주군의 일부가 되었다.
1934년 와석면과 청석면이 합해져 교하면으로 개칭되었다. 1972년에는 장단군에 4개면이 파주군에 편입되었으나 이곳은 임진강 북쪽에 위치하고 휴전선이 지나는 이북지역으로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1973년에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1951년 군의 행정중심지가 된 아동면이 같은 해에 금촌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주내면이 주내읍으로 승격된 후 1983년에 파주읍으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파주시로 승격되면서 금촌읍이 폐지되고 행정동인 금촌1동·금촌2동으로 분할되었다. 2002년 교하면이 교하읍으로, 조리면이 조리읍으로 승격되었다. 2003년에는 운정신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2011년 5월 군내출장소의 명칭을 장단출장소로 변경하였다. 7월에는 교하읍이 교하동, 운정1·2·3동으로 분동되었고 금촌3동이 신설되었다. (→ 교하군, 파평현)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정체지역이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 기지촌이 형성되면서 전형적인 여초지역이었으나 1970년 후반의 일부 미군철수와 그에 따른 기지촌의 쇠퇴 이후 대규모 신도시 건설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6만 5,066명, 1985년 16만 4,917명, 1990년 18만 5,046명으로 1980~90년에 12.1%가 증가했다.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3만 5,641가구에서 4만 3,562가구로 22.2%가 늘었다.
2000년대 들어 2000년 19만 3,719명, 2005년 26만 7,607명, 2010년 36만 4,223명으로 10년간 인구가 급증하여 90% 증가를 나타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49만 9,883명으로, 가구수는 22만 1,066가구이다. 1995년 5만 3,542가구에서 약 3배 증가했다. 운정3동(6만 9,350명)·운정2동(6만 4,693명)·운정1동(4만 8,538명) 순으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장단면(721명)에는 거주하는 인구수가 적다(2024).
연혁
지금의 파주시는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옛 파주목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술이홀현이었으나, 고구려의 남하로 475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에 따라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봉성현으로 개칭, 교하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1018년(현종 9)에 양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고, 1183년(명종 13)에 서원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초 1393년(태조 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398년(태조 7)에 파평현을 병합, 면적이 확장되면서 원평군으로 개칭했으며, 1415년(태종 15)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459년(세조 5)에 정희왕후 윤씨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세기 중엽 영조대에는 장단에 있던 방영을 이곳으로 옮기고, 임진강 나루 임진보와 장산보에 성을 쌓고 관문과 돈대를 설치하며, 별장을 파견하는 등 지리적 중요성을 강화했다. 파주의 별호는 곡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5년에 한성부 파주군,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파주군의 광탄면·조리면·파평면은 그대로, 주내면·백석면이 주내면으로, 천현외패면·천현내패면이 천현면으로, 지곡면·오리면이 월롱면으로, 칠정면·마정면·운천면·신속면이 임진면으로 통합되었다. 교하군에 속했던 지석면·와동면이 와석면으로, 석관면·청암면이 청석면으로, 현내면·탄포면·신오리면이 탄현면으로, 아동면·현내면이 아동면으로 통합되어 파주군의 일부가 되었다.
1934년 와석면과 청석면이 합해져 교하면으로 개칭되었다. 1972년에는 장단군에 속했던 군내면·장단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되었으나 이곳은 임진강 북쪽에 위치하고 휴전선이 지나는 이북지역으로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1973년에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1951년 군의 행정중심지가 된 아동면이 같은 해에 금촌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주내면이 주내읍으로 승격된 후 1983년에 파주읍으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파주시로 승격되면서 금촌읍이 폐지되고 행정동인 금촌1동·금촌2동으로 분할되었다(→ 교하군, 파평현). 2002년 교하면이 교하읍으로, 조리면이 조리읍으로 승격되었다.
자연환경
시의 동부에는 500m 내외의 산들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중부에는 구릉지, 서부에는 한강 하류와 임진강에 의한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동부산지에는 감악산(紺嶽山:675m)을 최고봉으로 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노고산(老姑山:401m)·팔일봉(八日峰:443m)·앵무봉(鸚鵡峰:622m)·개명산(開明山:520m)이 차례로 솟아 연천군·양주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남부 고양시와의 경계에는 우암산(牛巖山:329m)·명봉산(鳴鳳山:248m)이 있다.
북부에서는 임진강이 연천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곡류하고 한강과 만나는 하류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노고산 북쪽에서 발원한 노리천은 북동부를 곡류하여 파평면을 지나 임진강에 흘러든다. 앵무봉 일대에서 발원하는 문산천은 파주읍 봉암리에서 연풍천과 합류한 다음 북류하여 문산읍에서 임진강에 유입한다. 곡릉천은 남서부 충적평야를 북서류하여 교하면에서 한강 하류로 흘러든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서부지역과 각 하천 중·하류에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1℃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397.8㎜ 정도로, 광주산맥이 양쯔 강[揚子江] 유역과 화북지방에서 동진해오는 저기압을 가로막아 임진강 다우지를 이루며, 임진강 중·상류에는 집중호우가 잦다. 산지에는 주로 6·25전쟁 이후에 심은 수령이 어린 소나무·젓나무·떡갈나무·참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정체지역이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6만 5,066명, 1985년 16만 4,917명, 1990년 18만 5,046명으로 1980~90년에 12.1%가 증가했다.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3만 5,641가구에서 4만 3,562가구로 22.2%가 늘었다. 6·25전쟁 이후 기지촌이 형성되면서 전형적인 여초지역이었으나 1970년 후반의 일부 미군철수와 그에 따른 기지촌의 쇠퇴로 1990년에는 남녀성비가 103:100이 되었다. 1990년 185,046명이었던 인구는 1991년에는 162,120명으로 급속히 감소하였다. 하지만 대규모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인구가 다시 점점 증가하여 2024년 기준 49만 9,88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산업과 교통
총 경지면적은 206.93㎢이고, 쌀·배추·무·부추·참외·딸기·배·사과 등이 주요농산물이다. 특히 배는 법원읍과 파평면을 중심으로 생산되며, 특용작물로는 인삼·버섯·양봉 등이 유명하고, 땅콩·참깨·들깨 등도 재배된다. 인삼은 군내면·적성면에서 많이 재배되고, 버섯은 파주읍·교하읍·법원읍과 적성면·광탄면에서 많이 재배된다.
축산업으로는 한우·젖소·닭·오리·칠면조 등을 주로 사육하는데, 특히 젖소의 사육이 활발하다. 식품가공·제지·섬유·전자 등의 제조업이 발달했다. 특히 교하읍에 있는 파주출판단지는 출판사·인쇄소·물류창고 등 출판 관련 업체들이 들어서며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유적·유물·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2, 사적 11, 천연기념물 2),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7, 무형문화재 2, 기념물 18), 문화재자료 8점, 등록문화재 5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월롱면의 파주덕은리주거지 및 지석묘군(사적 제148호)과 교하리·다율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이 있다.
불교문화재는 광탄면 용미리의 파주용미리마애불입상(보물 제93호)을 비롯하여 광탄면의 구룡사, 보광사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호), 파평면의 미타사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파주향교·적성향교·자운서원(경기도 기념물 제45호) 등이 있다. 능묘유적으로는 조리읍 봉일천리의 공순영릉(사적 제205호), 탄현면 갈현리의 장릉(사적 제203호), 탄현면 금승리의 황희선생묘(경기도 기념물 제34호)와 유적비, 법원읍 동문리의 이이선생묘(경기도 기념물 제15호) 등이 남아 있다.
그밖에 교하읍 한강 하류 재두루미도래지(천연기념물 제250호), 적성면의 물푸레나무(천연기념물 제286호)와 임진각, 자유의 다리, 통일동산, 판문점 등의 안보관광지가 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 파주향교·적성향교·자운서원 등이 있었으며, 시내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7년 교하면 교하리에 개교한 사립 선성학교(지금의 교하초등학교)이다. 그뒤 1909년 파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파주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사립 명륜학교(지금의 적성초등학교), 1914년에 사립 문창학교(지금의 문산초등학교)가 차례로 문을 여는 등 일찍부터 근대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7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99개소, 초등학교 57개소, 중학교 25개소, 고등학교 18개교, 전문대학 3개교가 있다. 공공도서관으로는 12개관이 있으며, 총 2,373개 좌석과 81만 1,992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2013). 문화행사로는 파주문화원이 주관하는 율곡문화제가 매년 10월에 열린다.
이 지방의 특색 있는 민속놀이로는 원평민속농악놀이가 있다. 전설로는 <장자못 전설>·<여음탄 전설> 등의 지명유래담이 전하며, 민요는 다른 경기도지방과 마찬가지로 <모내기소리>·<범벅타령> 등의 노동요와 타령요가 계승되고 있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11개소, 의원 167개소, 요양병원 14개소, 치과병원 108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396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5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80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2개소, 여성복지시설 2개소, 어린이집 493개소, 아동복지시설 2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3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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