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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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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파주시는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옛 파주목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술이홀현이었으나, 고구려의 남하로 475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에 따라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봉성현으로 개칭, 교하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1018년(현종 9)에 양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고, 1183년(명종 13)에 서원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초 1393년(태조 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398년(태조 7)에 파평현을 병합, 면적이 확장되면서 원평군으로 개칭했으며, 1415년(태종 15)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459년(세조 5)에 정희왕후 윤씨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세기 중엽 영조대에는 장단에 있던 방영을 이곳으로 옮기고, 임진강 나루 임진보와 장산보에 성을 쌓고 관문과 돈대를 설치하며, 별장을 파견하는 등 지리적 중요성을 강화했다. 파주의 별호는 곡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5년에 한성부 파주군, 1896년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파주군의 광탄면·조리면·파평면은 그대로, 주내면·백석면이 주내면으로, 천현외패면·천현내패면이 천현면으로, 지곡면·오리면이 월롱면으로, 칠정면·마정면·운천면·신속면이 임진면으로 통합되었다. 교하군에 속했던 지석면·와동면이 와석면으로, 석관면·청암면이 청석면으로, 현내면·탄포면·신오리면이 탄현면으로, 아동면·현내면이 아동면으로 통합되어 파주군의 일부가 되었다.

1934년 와석면과 청석면이 합해져 교하면으로 개칭되었다. 1972년에는 장단군에 속했던 군내면·장단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되었으나 이곳은 임진강 북쪽에 위치하고 휴전선이 지나는 이북지역으로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1973년에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1951년 군의 행정중심지가 된 아동면이 같은 해에 금촌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주내면이 주내읍으로 승격된 후 1983년에 파주읍으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파주시로 승격되면서 금촌읍이 폐지되고 행정동인 금촌1동·금촌2동으로 분할되었다(→ 교하군, 파평현). 2002년 교하면이 교하읍으로, 조리면이 조리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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