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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1224(또는 1225)년 로마에서 나폴리로 뻗은 도로가 지나는 아퀴노 근처 로카세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황제와 교황이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던 이 변경지방에 소규모 중세 장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롬바르디아 태생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를 침공한 노르만족의 후예였다.
그의 장원에 속한 사람들은 교황세력과 황제세력이 남부 이탈리아에서 벌인 내전기간 동안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위해 복무했다. 그의 가족은 어린 소년이었던 토마스를 집 근처에 있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보내 수도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의 가족은 토마스가 언젠가 대수도원장이 되어 가문에 이익을 가져오기를 원했을 것이다. 9년 뒤인 1239년 수도원에서 영적인 생활과 문화적 생활을 보낸 청년 토마스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당시 황제는 수사들이 교황에게 너무 복종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수사들을 추방했다.
그뒤 그의 가족은 황제가 얼마 전에 세운 나폴리대학교로 그를 보냈는데,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그리스어·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된 과학저서들과 철학저서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는 30년 전에 설립된 탁발수사설교단, 곧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수사들에 대한 전통적인 부자 관계 형태의 조직을 버리고 민주적인 형태의 탁발수도회(단체와 개개인이 가난하여 자선을 구걸할 수밖에 없는 수도회)로 탈바꿈했으며, 기도와 육체노동 중심의 수도생활로부터 설교와 교육 중심의 보다 적극적인 생활로 나아갔다.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함으로써 그는 그가 태어난 봉건세계와 그를 양육한 수도원적인 영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결심의 의미심장함을 보여주는 극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그의 지혜로운 선배들은 그를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당시 가장 우수하고도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파리로 보냈는데, 그 직후 그의 부모는 파리로 가는 길목에서 그를 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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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초기생애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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