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동방정교회 주교단을 대표하는 수석주교. 세계 약 3억 명으로 추정되는 정교회인의 정신적인 수장이다. 비잔티움 주교구의 주교가 기원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이전하고 명칭을 '새 로마'라고 변경하자,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리스 지역을 독립 관구로 지정하면서 관할 구역이 확장되었다. 터키 이스탄불 북부 성게오르기우스 성당을 총대주교좌 성당으로 삼고 있으며 그리스 북부와 유럽,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한국 등을 관할하고 있다.
개요
동방정교회 자치 독립교회들의 명예 수장. 공식 직함은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관구 대주교 및 세계 총대주교'이다. 4세기 말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비잔티움 주교구가 모체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에 대주교구로 격상되었으며, 6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로마 교황에 맞서는 세력으로 존재했으며, 현대 들어서도 약 3억 명에 이르는 동방정교회의 정신적인 수장이다.
역사
4세기말경의 한 전설에 따르면 비잔티움의 주교구는 성 안드레아가 세웠으며, 그의 제자인 스타키스가 초대 주교가 되었다(38~54).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긴(330) 직후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폴리스, 또는 제2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새 로마(new Rome)'로 바꾸었다. 그러자 주교구가 대주교구로 격상되었고, 과거에는 비잔티움이 속해 있던 대도시 헤라클레아 페린투스가 이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한 구역이 되었다.
381년에 열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이제 새 로마가 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는 로마의 주교 다음 가는 명예와 특권을 갖는다고 인정했다. 칼케돈 공의회(451)는 이를 비준했고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의 관할구역에 넣었다. 6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의 공식 직함은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관구 대주교 및 세계 총대주교'였으며 이 무렵부터 '세계 총대주교'라는 통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7세기에 시작된 이슬람교도들의 영토 정복이 성공하자 총대주교의 영적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고 점령지역에 있는 동방정교회 총대주교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해야만 했다. 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머무는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후임주교 선출은 총대주교가 맡아서 했다. 비잔티움 정통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동유럽으로 전파되어 불가리아·세르비아·루마니아·러시아에 이르렀으며, 동방 그리스도교의 명예 대표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로마의 교황 수위권 주장에 맞서는 분명한 도전 세력이 되었다.
867년 포티오스 총대주교는 로마 교황 니콜라오 1세의 찬탈행위를 비난했으나 니콜라오의 후임 교황인 요한 8세와 화해했다(879~880). 두 교회는 1054년 또 한 차례 충돌하여 1964년이 되어서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당시 아테나고라스 1세)와 로마 교황(바오로 6세)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제4차 십자군전쟁 때(1204) 라틴인들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점령당한 뒤 총대주교좌는 니케아로 옮겨졌다(1206). 그러나 황제 미카일 8세 팔레올로구스가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자 총대주교좌는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갔다.
1453년 이 도시는 투르크에게 넘어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오스만 정부는 세계 총대주교인 겐나디오스 2세를 피정복민인 동방정교회 교도들의 지배자로 인정함으로써 그의 권한은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관할 영토와 발칸 제국들, 또한 멀리 있는 영토에까지 점점 확장되었다.
이러한 권한은 예레미아스 2세가 모스크바 자치교회(1593)의 총대주교좌를 선언하고, 그리스(1833)·루마니아(1865)·세르비아(1879)·불가리아(1870)·알바니아(1937) 민족교회들이 자치권을 선포하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관할권 안에 있는 교구는 더욱 축소되어 1922년 소아시아와 트라케에 있는 약 150만 명의 그리스인들이 터키에 의해 에게 해 건너로 쫓겨가자 소아시아에는 그리스도교도들이 거의 없어졌다.
현황
총대주교에게 직접 속해 있으나 터키에 있는 그의 교구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교구뿐이며, 그 대교구에 칼케돈, 테르코스, 부유카다, 이므로스아다시·보즈카아다 섬 등에 있는 4개의 교구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총대주교가 아토스산 수도원, 파트모스에 있는 복음사가 성 요한 수도원, 북부 그리스에 있는 몇 개의 교구, 도데카네세에 있는 4개의 주교관할구, 크레타 섬에 있는 자치교회에 대해 명목상의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북부 일부와 유럽, 남·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수도대주교 교구, 핀란드 자치교회, 에스토니아 사도 정교회, 한국 정교회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통제하에 있다. 1586년 이래로 총대주교는 이스탄불(과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북부의 파나르에 있으며, 하기아소피아 성당과 그 유적지는 이슬람교도에게 빼앗겼으므로 성 요르고스 성당을 총대주교의 성당으로 삼았으며 총대주교는 수도대주교 회의에서 선출된 터키인이어야 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종교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 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