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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다른 표기 언어 튀르키예공화국 , Republic of Türkiye 동의어 터키공화국, Republic of Turkey, 토이기, 土耳其, Türkiye, 터키, Turkey
요약 테이블
위치 아시아 서쪽
인구 86,260,417명 (2024년 추계)
수도 앙카라
면적 785,347㎢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튀르키예 공화국 (Republic of Türkiye)
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튀르크인(80%), 쿠르드인(20%)
언어 아랍어, 쿠르드어, 튀르크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이슬람교
화폐 튀르키예 리라 (TL) 환율계산기
국화 튤립
대륙 중동
국가번호 90
GDP USD 909,885,000,000
전압 220V / 50Hz
도메인 .tr

요약 지중해 동북쪽에 연해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 수도는 앙카라이며, 주요 인종은 지중해-튀르크인이며 튀르크어를 사용한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공존하는 개발도상국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으며, 산업·서비스 부문이 농업보다 우세하다. 목화나 담배 같은 환금작물은 수출용으로 중요하다. 전국토의 1/4을 차지하는 이 삼림지대는 지금까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호는 2021년까지 '터키'였으나 2022년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로 변경했다.

지중해의 동북쪽에 연한 국가. 공식 명칭은 튀르키예공화국(Republic of Turkiye)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북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조지아·아르메니아·이란,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그리스·불가리아와 접해 있다. 아시아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유럽 지역인 트라케는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 해, 다르다넬스 해협을 경계로 나누어진다. 튀르크어 국호는 'Türkiye Cumhuriyeti'이다. 2021년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국호는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었으나, 2021년 12월 '튀르크인의 땅'을 뜻하는 '튀르키예공화국(Republic of Turkiye)'으로 변경하고 2022년 국제연합(UN)에 국호를 '튀르키예'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2022년 6월 한국어 표기도 '튀르키예'로 변경되었다.

튀르키예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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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자연환경

아시아 튀르키예에는 평균높이 1,100m의 청년기 산지들이 북쪽과 남쪽에 우뚝 솟아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을 둘러싸고 있다.

카파도키아, 아나톨리아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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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북쪽의 폰투스 산맥과 남쪽의 토로스(타우르스) 산맥이 대체로 동서방향으로 뻗어있어 고원과 좁은 해안저지대를 구분하고 있다. 타우루스 산맥 동부에 있는 질로다이(4,116m)가 이 지역에서 가장 높다. 중앙 아나톨리아는 여러 개의 분지로 이루어진 반건조기후의 단층지괴(斷層地塊)이며, 동부 아나톨리아는 높은 산맥들과 튀르키예의 최고봉(5,137m)인 아리다이(아라라트 산)처럼 최근에 생성된 화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부 아나톨리아에는 산맥이 함몰된 곡상들에 의해 곳곳에서 끊어지면서 길게 이어져 있다. 이스탄불을 둘러싼 고원은 튀르키예 북서부의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이 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계곡들에 의해 깊이 개석되어 있다. 대서양 유역과 인도양 유역의 분수계는 동부 아나톨리아를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다.

주분수계(主分水界)의 서쪽과 북쪽 지역은 키질·사카리아 강을 통해 북쪽으로 흘러 흑해로 배수되며, 튀르키예 서부지역은 마르마라 해로 배수된다. 지중해로 흐르는 주요하천은 괵수·세얀·오론테스 강의 하류이다. 동부 산지에서 발원하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은 남동쪽으로 흘러 페르시아 만과 인도양으로 빠진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반 호(湖)는 커다란 염호로 크기가 자주 바뀌며, 배수구가 없다.

튀르키예는 다양한 토양 유형을 가지고 있으며, 북쪽과 남쪽의 습한 변방지역을 따라 적색과 적갈색 포드졸토 지대로 둘러 싸여 있다. 건조한 북서부 일대는 약산성의 황색 및 황갈색 포드졸토로 덮여 있다. 튀르키예는 기후상으로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바다와 산맥에 크게 영향 받아 내륙과 해안 지방이 서로 대조적인 기후를 보인다.

남해안과 서해안은 7월평균 최고기온이 25~30℃인 지중해성기후 지역이며, 흑해 연안지대는 따뜻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을 자랑하는 연평균강우량 2,438㎜의 다우지이다. 북동부 고원은 여름은 따뜻하지만 겨울은 평균기온이 -12℃까지 내려가는 혹한지이다. 중앙 고원지대는 대체로 여름에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춥고 습하다. 남부·서부·북서부의 넓은 지역은 지중해성 2차 식생의 짙은 잡목 덤불로 덮여 있다.

흑해 연안은 산림이 가장 울창한 지역이며, 건조한 아나톨리아 내륙지대는 짧은 풀과 관목으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이다. 늑대·여우·멧돼지·들고양이·담비·하이에나·곰·사슴·가젤영양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며, 물소·앙고라염소·낙타가 사육된다. 총국토면적의 2/5 가량이 가경지이며, 경작지의 절반 정도의 면적에서 곡류가 재배된다. 경작지의 약 1/8이 포도원, 과수원, 올리브 재배지, 채소밭 등으로 사용된다.

튀르키예 국민

튀르키예에는 선사시대 초부터 인종과 문화가 다른 많은 집단이 모여 있다.

이러한 현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동쪽으로부터의 튀르크족의 침입이었다. 그들이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이 나라의 인종 구성에서 지중해인종과 몽골인종의 혼혈로 이루어진 새로운 인종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인종은 지중해-터키 인종인 것으로 보이며, 서해안과 남해안에서는 지중해인종이 우세하다.

내륙과 동부 지방에는 고산족이 다수 섞여 있다. 인구의 90% 이상이 튀르크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주요 소수 언어집단은 쿠르드족과 아랍인이다. 인구의 7% 가량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시골 및 동부와 남부의 이주민들 사이에서 폭넓게 쓰이며, 인구의 약 1%가 사용하는 아랍어는 주로 남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쓰인다.

그리스어·아르메니아어·이디시어는 이스탄불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극소수의 주민들이 사용한다. 거의 모든 투르크인들이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수니파가 지배적이다. 소수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도들은 주로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 등지에 거주한다. 튀르키예 인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증가했으나 20세기말에 오면서 성장률이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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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경제

튀르키예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공존하는 개발도상국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으며, 산업·서비스 부문이 농업보다 우세하다. 튀르키예 경제는 20세기 후반기 동안 지속적인 팽창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GNP)은 11,114달러이다.

튀르키예, Turkish carpet

ⓒ wikipedia | Public Domain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6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2/5를 고용한다. 작물 대부분의 자급도는 양호한 편이다. 경작지 대부분이 평지 작물에 할애되고 있는데 밀과 보리가 가장 넓은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 목화나 담배 같은 환금작물은 수출용으로 중요하다. 좁은 해안저지대가 집중적으로 관개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작물로는 개암과 씨 없는 건포도, 과일(오렌지·레몬·멜론 등), 해외시장용 채소 등이 있다. 양과 그보다 적은 수의 소와 염소들이 영구 목초지에서 방목된다. 1970년대 말기에는 유제품과 육류 생산량이 국내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침엽수림이 대부분인 삼림지대가 흑해 주변에 펼쳐져 있다. 전국토의 1/4을 차지하는 이 삼림지대는 지금까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 광업은 주로 국유회사에서 운영하는데 경제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지방 단위로 채굴되는 철광석·석탄·갈탄·보크사이트·구리가 이 나라의 기간산업체들에 원자재로 공급된다. 튀르키예는 크롬철광의 주요 생산국이며 많은 양을 수출한다. 석유는 매장량이 적어 국내 수요의 일부분만을 충당하기 때문에 많은 외화를 들여 석유를 수입해야만 한다. 총전력의 절반 정도는 화력발전에, 나머지는 주로 수력발전에 의존한다.

제조업은 노동력의 1/7을 고용하며 GDP의 1/5을 차지한다. 지역적으로 재배되는 목화와 저임금 정책에 힘입어 모방사·직물·깔개 등을 포함하는 면직산업이 1960·70년대에 주요성장산업으로 떠올랐다. 석유화학산업이 1980년대초에 급속히 성장했다. 튀르키예는 중동지역에서 유력한 철강 생산국이며 엔지니어링 산업이 급성장해왔다. 관광업 역시 국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1947년에 제정된 노동조합법에 의해 합법화된 후 크게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많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서유럽(주로 당시의 서독)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중동 국가들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튀르키예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10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했으나, 석유 수입을 위한 과중한 지출에서 오는 국제수지 적자가 산업발전의 구조적인 결함과 결합되면서 1977년에는 높은 재정적자로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1978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엄격한 금융 규제를 가했으며, 1980년 정부에 의해 실시된 긴축경제계획이 주효한데다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액이 증가함으로써 튀르키예는 고질적인 무역 적자를 상당히 상쇄할 수 있었다.

튀르키예의 철도망은 총연장 8,400km를 넘지만, 도로망을 이용한 트럭 수송이 수송량을 주도한다. 이스탄불·메르신·이즈미르 항은 국제무역과 연안무역의 화물을 취급하고 석유화학제품 주요 해상 터미널은 이스켄데룬 부근에 있다. 국제공항은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 근처에 있다. 수출품은 농업제품에서 산업제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 섬유직물이 최대 수출품이다. 주요 수출 상대국은 독일·이탈리아·미국이다. 석유가 주요 수입품목이며, 독일은 기계와 장비의 주요공급국이다.

튀르키예 정치와 사회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이후 1923년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세운 공화국으로서 1946년까지 1당 국가체제를 유지했다. 이후 여러 정당들이 집권 경쟁을 벌였고 대부분 기간 문민 의회정치로 운영되었다.

1987년과 1995년 2차례 개정된 1982년 신헌법은 의회민주정치체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었으며 헌법상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튀르키예대의회(국회)에 의해 7년 단임으로 선출되고, 550명의 국회의원은 직접보통선거에 의해 5년 임기로 선출되도록 했다. 2007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에서 5년 중임으로 개정하고, 선출 방식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경했다.

2017년에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헌법을 개정했는데, 주요 골자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의 변경이었다. 이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정하고 중임이 가능하도록 했으나, 중임 임기중에 대통령이 조기선거를 통해 다시 당선되면 5년의 추가 임기를 재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여, 대통령이 사법 체계에 개입할 수 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의회의 견제 없이 공직자를 바로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튀르키예 공화국 성립시에는 인구의 10% 정도만이 글을 읽을 줄 알았으나 아타튀르크의 국민교육 강조 정책에 힘입어 20세기말에 오면서 문자해득률이 성인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 교육 체계는 초등교육에 한해 5년간의 무료의무교육을 제공하며 중등교육과정은 6년이다. 대학교 수준의 고등교육 기관이 20개 정도 있다. 정부는 보건복지정책을 관리하고 많은 병원과 진료소를 운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평균수명은 71세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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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문화

튀르키예의 장구하고 다양한 문화유산은 페르시아·아랍·비잔틴·오스만·서유럽 문명에 기반을 두었다. 아타튀르크의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대한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인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민족주의가 튀르키예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1971년 문화부가 창설되었으며, 정부는 극장·오페라·발레·음악·미술과 대중예술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 분야를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있다. 주마다 박물관이 세워져 있으며, 앙카라에 아타튀르크 문화센터가 있다.

튀르키예

전통 의상,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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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역사

BC 7000년 이전에 정착민들이 자리잡았던 아나톨리아는 BC 1900년경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톱카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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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강성한 국가를 세우고 번성하다가 BC 1200년경에 무너졌다. 그후 프리지아인과 리디아인에게 점령되었으나 동부지역은 토착왕조인 우라르투(아르메니아) 왕국 통치 아래 남아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BC 6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그 이후 그리스 헬레니즘 세력권 안에 들어갔다가 BC 1세기경에 로마에 넘어갔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양대 세력인 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과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뒤의 사산 제국) 사이의 완충국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으면서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11세기에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족이 동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 12세기에는 오구즈족의 일파인 카이족이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중부를 차지하고, 카이족의 오스만 1세가 오스만 왕조를 세웠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하는 초기 단계에 오스만 일족이 투르크족의 가지스(ghazis:비잔틴 제국에 대항해 싸우는 이슬람교 전사들)를 지도했다.

13~14세기 오스만족은 마침내 서부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발칸 국가들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동부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공국을 점령했다. 15세기에는 더 나아가 발칸 속국들을 직접 통치하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유프라테스 강(동쪽)과 헝가리(서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말경에는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발칸 제국과 중부 유럽의 헝가리,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술탄 쉴레이만 1세(1494~1566)의 통치 이후로는 정치적·행정적·재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718년경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서 투르크족을 축출했으며, 러시아는 1783년에 크리미아를 합병했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에 발칸 제국 대부분과 이집트의 통치권을 잃었다. 19세기말에는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분파에게 지방자치를 용인했던 밀레트(비이슬람 종교자치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여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1908년에 젊은 투르크인들이 혁명으로 제국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발칸 제국에서의 군대와 영토 상실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튀르키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가담했다. 전후 아라비아의 여러 속주와 일부 지역을 잃었지만 격렬한 시민전쟁과 그리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생겼고, 케말 아타튀르크를 대통령으로 한 튀르키예 공화국이 탄생했다. 술탄제와 칼리프제는 폐지되고 아타튀르크의 지도 아래 현대화가 시작되었다.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의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이슬람의 지배적 역할을 축소하고, 튀르크어를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로 쓰도록 하므로써 튀르키예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을 축소시켰다. 또한 이후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된 국가통제 방식의 경제발전 정책을 마련했다. 1938년 아타튀르크 사망 후 불안정한 기간과 짧은 군부 통치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및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전후 서유럽과 제휴하고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받았다.

1952년에는 NATO에 가입했으며, 1953년에는 발칸 협정의 조인국이 되었고, 바그다드 조약(1955, 후에 CENTO로 이름이 바뀜)과 유럽 경제협력기구(OEEC) 및 유럽 의회에 가입했다. 1959년에는 그리스와의 3년에 걸친 키프로스 분쟁을 잠정적으로 해소했다. 1961년 튀르키예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며, 1963년에 유럽 공동시장의 준회원국이 되었다.

1963년말 키프로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과 튀르크인들 사이의 분쟁으로 키프로스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국제연합(UN)의 압력으로 전쟁이 억제되었다.

1987년과 1996년에는 영토분쟁으로 재차 갈등이 빚어졌다. 1974년 키프로스에서 그리스 군사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에 맞서 튀르키예군은 북(北)키프로스를 점령했다. 그후 국내정세 불안과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1980년 군부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2년 후 새 헌법이 대다수 유권자들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1983년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계엄령은 점차 해제되었다. 1983년 과격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의 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지속적인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튀르키예는 조국당의 투르구트 외잘 총리 재임기간(1983~89)중에 비교적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친이슬람계 복지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증가하는 가운데 중도파 정당들이 집권했다.

1982년 이래 내각책임제에 의해 정부가 운영되어 왔으며 대통령은 7년 임기의 간선제였으나, 200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직선에 의해 선출되도록 했다. 이 헌법에 의해 2003년부터 총리로 재임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 대통령 중심제 개헌안을 추진했는데, 2017년 개헌 국민투표에서 결국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이 개헌안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의 변경과 대통령의 임기를 5년 중임으로 하되, 중임 임기중에 대통령이 조기선거를 단행하여 당선되면 다시 5년의 임기 수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가 2018년 6월 24일에 실시되었고, 개표 결과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발표되었다. 헌법에 의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날 개표 결과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주도하는 정의개발당이 42.68%, 민족주의행동당이 11.28%, 쿠르드계 소수당인 인민민주당이 10.94%를 획득 원내 진출이 가능해졌다. 튀르키예 헌법에 의하면, 의회는 정당별 비례대표로 구성되며, 소수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10%이상 득표한 정당에서만 원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튀르키예와 한국의 관계

튀르키예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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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튀르키예는 1949년 8월 대한민국을 승인했으며, 1950년 6·25전쟁에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우방국으로서 1957년 3월 8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후 한-튀르키예 양국은 2012년에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 한국은 1984년 채문식 국회의장, 1989년 김재순 국회의장, 1990년 강영훈 국무총리, 1996년 이수성 국무총리, 2005년 노무현 대통령, 2008년 한승수 국무총리, 2009년 김형오 국회의장,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튀르키예를 방문했으며, 튀르키예는 1982년 에브렌 대통령, 1986년 외잘 총리, 1990년 에르뎀 국회의장, 1991년 아크불루트 총리, 2018년 5월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방한했다.

한편 튀르키예는 북한과 2001년 6월에 수교했다. 북한은 주 불가리아 대사관이, 튀르키예는 주 대한민국 대사관이 양국의 외교업무를 겸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1997년 기준 11억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의 교역액은 2018년에 이르러 약 72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2023년 기준 튀르키예의 대한국 수출액은 9억 4,464만 달러, 수입액은 63억 8,964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면역물품, 원자로 및 보일러, 니켈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테레프탈산, 면역물품, 폴리프로필렌 등이다. 한편, 한국은 튀르키예에 2018년 누계 29억 달러, 튀르키예는 한국에 3천 9백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이스탄불무역관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007년 5월에 협상 개시된 한국과 튀르키예의 자유무역협정은 총 7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3년 5월에 정식 발효되었다. 이 밖에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사증(비자)면제협정(1972), 문화협정(1974), 통상진흥 및 경제기술협력협정(1977), 항공협정(1979), 이중과세방지협정(1986), 투자보장협정(1994), 섬유협정(1997), 원자력협력협정(1999), 사회보장협정(2015 발효)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튀르키예에는 한글학교 4개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튀르크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2017년에 창립된 튀르키예한인회총연합회는 양국민의 친선을 증진하고 있다. 2011년에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 개원한 한국문화원은 한국의 문화·예술을 튀르키예 현지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튀르키예에는 2,697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튀르키예의 수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2,886명의 튀르키예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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