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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나이지리아 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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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주 13,076,900명 (2016 추계) |
면적 | 주 20,131㎢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 | 나이지리아 |
요약 나이지리아 북부에 있었던 역사상의 왕국, 전통적인 토후국이며 주.
카노 왕국은 하우사족의 토착민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역사서로 1890년대에 출판된 〈카노 연대기 Kano Chronicle〉에 의하면 하우사족의 전설적 시조인 바야지다(아부야지두)의 손자 바가우다가 999년 하우사 바콰이(7개의 진정한 하우사 제국)의 하나로 건설했다.
그 수도는 가제마수 왕의 재위기간(1095~1134)중 북쪽의 셰메에서 지금의 카노 시가 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말리 제국의 말링케족 학자들이 1340년대에 이슬람교를 이 지역에 들여왔으며, 카노에서 최초로 이슬람교를 신봉한 하우사 왕은 야지(1349~85 재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400년경 카노가 자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이슬람교는 패전의 원인으로 매도되었으며, 카나제지 왕은 이슬람교를 배척했다. 그러나 1450년대에 말리의 새로운 교사들이 들어옴으로써 이슬람교는 세력을 회복했다. 다우다 왕의 재위기간(1421~38)에 카노는 동쪽에 있는 보르누 왕국의 조공국이 되었으며, 아브둘라히 부르자가 다스리는 동안(1438~52) 이 왕국과 교역 관계를 수립했다.
낙타 대상(隊商)들은 카노의 하우사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모하만 룸파(1463~99 재위) 치하에서 가장 융성했다. 룸파 왕은 쿠르미 시장을 설치하고, 주마아트 사원(현재 복원되어 있음)을 건축했다. 또한 사하라 횡단무역에서 카노의 주된 경쟁국인 카치나(북서쪽으로 148㎞ 떨어져 있음)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것을 발단으로 카치나와 카노 사이에는 끊이지 않고 전쟁이 계속되었다. 룸파의 통치하에서 아랍 문자가 다시 전래되었고, 행정체계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성문화되었다.
카노는 1513년경 송가이 제국의 무하마드 1세 아스키아에게 점령된 후 송가이의 조공국이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카노는 남쪽에 있는 다른 하우사 왕국인 자자우에 조공을 바쳤다. 카노는 1653, 1671년 남동쪽의 주쿤족(콰라라파족)에게 패한 후 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카치나에 빼앗겼다. 1734년에는 다시 한 번 보르누 왕국에 조공을 바쳤다.
1804년 풀라니 지하드(jihād 聖戰)의 지도자 우스만 단 포디오가 하우사 군주들에 대한 반란을 지휘했고, 1807년 카노 시가 점령되었다. 단 포디오의 한 제자 술라이마누(술레마누)가 카노의 초대 토후가 되었으며, 그의 후계자로 술리바와 혈통을 지닌 에미르 이브라힘 다보(1819~46)가 현재의 왕조를 창설했다.
1820년대에 카노는 서아프리카 최대의 상업 세력이 되었다. 북쪽으로 사하라를 횡단하여 널리 트리폴리·튀니스·페스까지 카노의 가죽과 면제품들이 운반되었으며, 다시 바다 건너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유럽에서 카노의 붉은 염소가죽 제품은 모로코 가죽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880년대에 이르러 교역로 주변의 정세가 변한데다가 노예무역이 종식되고 유럽인들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진출하여 카노의 교역이 쇠퇴했다.
1893년 서북서쪽으로 373㎞ 떨어진 소코토에서 '사르킨 무술미'(신도들의 사령관)인 아브두라만(아브두)이 모함만 투쿠르를 카노의 토후로 정하자 카노의 풀라니족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1894년 이 싸움에서 이긴 알리유 바바는 새로 권좌에 오른 사르킨 무술미인 무하마두 아타히루 1세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그러나 1903년 영국이 카노 시를 점령하자 무하마두 아바스 아브둘라히를 카노의 토후로 지명했다. 카노 토후국은 1903년 영국에 의해 창설된 카노 군(郡)의 토후국들 가운데 가장 크고 인구가 많았다.
카노 주는 1967년부터 카노 군 전체를 차지하면서 1968년에 주로 제정되었고, 1975~76년 주를 재편할 때도 변동을 겪지 않았다.
주의 남부는 사바나 수목지대이고, 북부는 관목지대이다. 카노-찰라와-하데지아 강들이 흐르며, 물이 잘 흡수되는 사질(砂質) 토양은 주요 수출품인 낙화생(땅콩) 재배에 알맞다. 그밖에 목화·양파·인디고·담배·아라비아고무가 생산되며, 기장·수수·콩·광저기·카사바·옥수수는 자급용으로 재배된다. 널리 가축사육이 이루어지며, 짐승가죽과 가죽제품도 수출된다. 철·주석·컬럼바이트가 채광되며, 소량의 우라늄이 남부에 매장되어 있지만 채굴되지 않는다.
카노 주에는 주도인 카노 시와 구멜·하데지아·카자우레 시가 있다. 주민 대부분이 하우사족 또는 풀라니족이나, 마구자와족(정령을 숭배하는 하우사족의 일파), 나이지리아인, 아랍 상인, 유럽인도 소수 있다.
카노·구멜·하데지아·카자우레·라노·비르닌쿠두·우딜은 카노 주의 시장 중심지들이다. 라고스-응구루 간 간선철도와 고속도로가 카노 주를 가로질러 카두나 주와 바우치 주로 이어진다. 카노 시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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