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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전람회

다른 표기 언어 朝鮮美術展覽會

요약 조선총독부가 1922~44년에 걸쳐 해마다 개최한 대규모 종합전람회.

약칭 '조미전' 또는 '선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1부 동양화, 2부 서양화 및 조각, 3부 서예로 구분했고, 1932년에는 서예를 없애고 공예부를 신설했다.

설치배경

일제는 3·1운동으로 무단통치의 한계가 드러나자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전체 식민지통치구조를 안정적이고 유화적인 것으로 정비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 근대미술의 일본화를 목적으로 문화정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미술학교 설립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토대로 조선미술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려 했다. 그러나 1921년 조선인 미술가 단체인 서화협회가 전시회를 개최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일본의 관전인 문부성전람회(문전)와 제국미술전람회(제전)를 본떠 조선미술전람회를 설치했다.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 따르면 조선의 미술발달을 돕기 위해 매년 1회 개최한다고 하고 전람회의 부서 구분에는 전통적인 조선의 회화가 하나의 장르로 독립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화를 포함하는 동양화부를 두었다. 또한 출품작의 요건에는 치안풍교를 해치는 작품의 출품을 금하고 있어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인 선전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심사위원의 구성은 일본의 관전 출신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심사위원장은 정무총감이 맡았으며, 초기에 서(書) 및 사군자부의 심사위원에 조선인을 참여시켰을 뿐이다. 이들 심사위원의 구성이 일본인 미술가들에 편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사료의 심한 차별지급, 일본인 수상자의 상장에 조선인 심사위원의 이름을 지우는 일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평의원, 심사참여와 같은 자격을 조선인 미술가에게 부여하여 일본인 미술가 중심의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려 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일본인 미술가로는 가와이 교큐도[川合玉堂],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유키 소메이[結城素明], 이케가미 슈호[池上秀], 마에다 세이손[前田靑]과 같은 일본 화가와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미나미 군조[南薰造], 다나베 이타루[田邊至], 이시히 하쿠테이[石井柏亭], 고바야시 만고[小林萬吾], 나카자와 히로미쓰[中澤弘光]와 같은 양화가들이 있고, 조선인 미술가로는 서 및 사군자부에 이도영·김규진·김돈희가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동양화부에서는 이상범·김은호가 한때 심사참여자격으로 작품 심사에 관여했다.

초기에 실시한 참고품제도는 이후 출품작가의 창작방향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가와이 교쿠도의 〈폭포〉, 시모부라 간잔[下村觀山]의 〈나무들 사이의 가을〉과 같은 근대일본화와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의 〈백부용 白芙蓉〉,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의 〈욕장에서〉와 같은 일본식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작품경향

1922년 제1회 전람회에서는 403점이 출품되어 215점이 입선되었고, 제6회부터는 1,200점이 넘는 출품작과 20일에 달하는 전시기간, 약 3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으로 대규모의 미술전람회로 성장해갔다.

1932년 무감사제도를 도입하자 여기서 제외된 일부 중견미술가들이 반발하여 한때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무렵 관전으로서의 선전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그 규모나 권위는 계속 유지되었고, 점차 군국주의 체제가 강화되면서 시국의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이 자주 등장했다. 또한 1932년 제도개편에 따라 조선의 향토미술을 장려한다는 취지 아래 공예부가 신설되고부터는 향토색을 드러내며 일본인의 이국취미에 부합하려는 경향들이 확산되어갔고, 소재 및 내용상 뚜렷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당시의 미술가나 미술비평가들은 그들 가운데 진보적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조선 내 최대규모의 미술전람회인 선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로 작품을 출품하거나 인상기를 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선전이 갖는 문제점이 점차 드러나자 출품을 거부하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심사원이 관학파인 점, 전람회의 원동력이 총독정치에 있는 점, 그리고 심사제인 까닭에 자유대담한 작품의 출품 및 진열이 불가능한 점 등을 들어 민족문화의 정당한 발달을 위해서는 출품할 수 없음을 역설한 평론가와 이에 동조한 미술가들도 있었다.

특히 1930년대초에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김주경·윤희순 등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동양화부에서는 실경산수, 전통적인 관념산수, 화조화, 인물화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일본인의 이국취미에 부합하는 조선의 풍물이나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도 있었다. 양식적으로는 단일시점에 의한 투시원근법을 적용하여 사실성을 획득하는 성과도 남겼으나 섬약하고 장식적인 필선과 감각적인 색채, 무표정한 인물의 얼굴, 과도한 근경 중심적 화면구성은 원경을 간략하게 처리하는 등 일본화의 영향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1920년대 중반경부터 두드러졌고 이후 1930년대에는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산수화의 이상범, 인물화의 김은호·이영일·김기창 등이 이런 경향을 보이며 상위에 입상하면서 주요화가로 떠올랐고 이후 화단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서양화의 경우 초기에는 고희동·나혜석과 같은 일본의 미술학교 졸업생을 포함한 극소수의 화가들만 참여했으나 그 수효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제3회 이후에는 동양화보다 많은 작품이 출품, 입선했고 1930년대에는 그 작품수가 동양화의 약 3배에 이르렀다.

풍경·정물·인물을 포함하여 신변의 일상생활과 같은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출품되는 가운데 한동안 세잔의 영향을 받은 강신호와 같은 화가의 작품이 특선을 하는 등 관전으로서의 경직된 분위기가 개선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지속되지 못했고 점차 좌상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화나 풍경, 정물이 안정된 구도, 충실한 데생, 중후한 색채 등을 특징으로 하는 아카데미즘 경향을 짙게 나타냈다.

그리하여 역동적인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고 정태적 인물상이나 한적한 풍경, 정물을 주로 그리는 풍조가 만연했으며, 이인성·김종태·김인승·심형구 등이 선전에서 상위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화단의 중심적 화가로 성장했고 이들의 작품경향이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편 조각에서는 인체중심의 작품들이 제작, 출품되면서 근대조각의 새로운 흐름을 이루게 되었다.

인물 두상이나 흉상, 전신 나상을 충실한 형태묘사에 바탕을 두고 작품화했으며 김복진·이국전·윤효중 등이 주요조각가로 활동했다. 전통시대 봉건적인 사대부의 수양을 위한 방편의 의미를 강하게 띠었던 서예 및 사군자의 경우 초기에는 조선인의 복고적인 취향을 수용·조장하면서 선전의 한 부서로 편입되어 손재형·황용하·이병직·이응로 등이 상위에 입상하면서 이름을 떨쳤으나, 1932년 서예의 공모가 폐지되고 사군자는 동양화부에 편입됨에 따라 그 의미가 약화되었다.

그리고 조선 전통공예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이를 부흥시키고 조선적인 향토예술의 장려를 위해 설치한 공예부에서는 김진갑과 김봉룡·강창원·이남이가 각각 나전칠기·건칠·금속공예 작품으로 수차례 특선했다.

영향

1922년부터 23회에 걸쳐 개최되는 동안 선전은 미술가의 등용문으로서 미술가 배출을 촉진하고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일면도 있으며, 일본미술의 경향을 유포시키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고 엄격하고 정태적인 아카데미즘 미술을 확산시켰다. 또한 추천작가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관전의 권위를 배경으로 한 미술계의 엘리트층을 만들게 되었다.

나아가 조선의 미술이 일본 미술의 아류이면서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식민지미술로 재편되게 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는 민족의식과 현실의식을 지니지 못한 미술가들의 창작태도와 맞물려 동양화에서는 일본화와 소재 및 내용이나 양식상의 친연성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서양화와 조각도 일본 서양화와 조각의 아류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카데미즘 경향의 작품들이 주류로서 자리잡아갔다.

이로써 전체 미술계로 보았을 때는 미술이 다양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제약되고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대상인 전통과 단절되며, 미술의 현실대응력이 상실되는 등 근대미술의 중요한 문제점들을 제기하게 했다. 일제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식민통치권이 주도한 관전인 선전의 구조와 이를 통해 형성된 아카데미즘은 8·15해방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연결되면서 미술계의 일제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보다는 온존시키게 했고 바람직한 미술발달의 길을 저해한 측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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