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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부터 23회에 걸쳐 개최되는 동안 선전은 미술가의 등용문으로서 미술가 배출을 촉진하고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일면도 있으며, 일본미술의 경향을 유포시키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고 엄격하고 정태적인 아카데미즘 미술을 확산시켰다. 또한 추천작가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관전의 권위를 배경으로 한 미술계의 엘리트층을 만들게 되었다.
나아가 조선의 미술이 일본 미술의 아류이면서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식민지미술로 재편되게 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했다. 이는 민족의식과 현실의식을 지니지 못한 미술가들의 창작태도와 맞물려 동양화에서는 일본화와 소재 및 내용이나 양식상의 친연성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서양화와 조각도 일본 서양화와 조각의 아류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카데미즘 경향의 작품들이 주류로서 자리잡아갔다.
이로써 전체 미술계로 보았을 때는 미술이 다양하게 발달할 가능성이 제약되고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대상인 전통과 단절되며, 미술의 현실대응력이 상실되는 등 근대미술의 중요한 문제점들을 제기하게 했다. 일제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식민통치권이 주도한 관전인 선전의 구조와 이를 통해 형성된 아카데미즘은 8·15해방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연결되면서 미술계의 일제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보다는 온존시키게 했고 바람직한 미술발달의 길을 저해한 측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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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조선미술전람회의 영향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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