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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재산관계를 규율하는 사법(私法).
사법은 사인(私人) 상호간의 사회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며, 이러한 생활관계는 크게 재산관계(또는 경제관계)와 가족관계(신분관계)로 나눌 수 있다.
재산관계는 자기보존을 위해 재화를 획득하고 이를 지배하는 데 관한 관계이며, 가족관계는 종족보존을 위해 남녀의 결합에 의해 친족집단을 형성하며 승계(承繼)하는 관계이다.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사법을 가족법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구별에 대응하여 권리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법상의 권리인 사권은 그 내용이 되는 사회적인 생활이익에 따라 재산권·가족권·인격권(人格權)·사원권(社員權)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재산권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이익의 향수를 목적으로 하는, 따라서 금전으로 평가될 수 있는 권리의 총칭으로서, 물권(物權)·채권(債權)·무체재산권(無體財産權)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재산권을 인간의 물건에 대한 권리로서 정의하는 데는 약간의 난점이 있다. 법은 권리·특권·권한 및 그 상호·적대 관계 등을 추상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재산법 역시 분쟁을 해결하고 또 분쟁을 미리 회피하여 거래를 체결하기 위한 원리·정책·규범 들을 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산법의 특별한 점은 사회구성원간의 '물건'에 관한 관계를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간의 물건에 대한 법적 관계의 총체라고 재산법을 재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재산을 뜻하는 property는 어원적으로 볼 때, 프랑스의 propriété 거쳐 라틴어의 proprietas에서 온 말이다. '물건의 특유한 성질' 또는 '소유권'을 의미하는 proprietas는 '특유한' 혹은 '자신의'를 의미하는 형용사 proprius에서 나왔으며, 이것은 '공동의'(communis), '타인의'(alienus)와 반대되는 의미이다.
proprius는 라틴어의 pro·prae·prope, 그리스어의 pró·prín, 산스크리트의 pra와 같은 인도유럽어의 어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어근은 '……앞에', '……에 인접하여', '……을 위하여'를 의미하므로 서구에서 property라는 말은 법률 용어로 쓰이기 전에도 이미 어떤 개인 또는 물건을 집단 또는 타인으로부터 구별하는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영어에서 처음으로 property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 보통 라틴어 proprietas가 가지는 2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이전에는 법적 권리의 객체라는 근대적인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으며, 간혹 그렇게 쓰이는 경우에도 개인이 소유한 물건 또는 물건의 집단이라는 맥락에서였다. 그렇다면 재산법에 대한 현재의 서술적인 정의는 사적 소유권이라는 통상적인 함축을 탈피하여, 물체를 둘러싼 관련법규라고 하는 'property'라는 단어의 비교적 현대적인 용법으로부터 추출된다.
서술적인 의미로서의 재산법이 모든 법체계에 존재한다면, 비서구사회의 극도로 다양한 재산법체계가 말해주는 것은 서술적이 아닌 재산개념은 그것이 바탕이 되어 있는 문화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영어의 property라는 말에 대한 논의가 보여주듯, 서구에서도 역사적으로 이 개념은 상당히 변화해왔다. 그러나 서술적인 의미로서의 재산에 대한 법적 개념을 특징짓는 1가지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떤 물건을 점유·사용·양도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하나의 법적 인격에게 포괄하려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로마 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되었는데, 영미법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먼저 인류학적인 연구성과에 따라 서구에서 출현한 재산법체계의 특색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출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의 모든 사회는 개별 구성원에게 일정한 종류의 물건에 대한 상당한 범위의 통제권을 부여한다. 둘째, 각 사회는 사망한 구성원의 통제하에 있었던 물건의 처분을 위한 일정한 종류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셋째, 사회가 특별히 세심하게 재산법을 만들어내는 유형의 물건과 그 사회의 경제체계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
넷째, 서구법체계와 같은 식으로 재산권을 일반화하는 비서구사회는 거의 없다.
현대 인류학에 따르면 서구적 재산권 관념이 진보적인 것이라거나 문명의 힘이 필연적으로 발전한 형태라는 견해는 옳지 못하다. 따라서 서구 재산법의 특징인 재산권의 포괄적인 경향의 등장을 살펴보면 그 출발점은 로마 법이다.
로마 법은 물건의 소유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이 현저했을 뿐 아니라, 이후 모든 서구 법체계의 특징인 물권법과 채권법의 근본적인 구별을 낳았다. 한편 중세 영국에서는 소송체계가 물권과 채권 사이의 명확한 분리를 방해했다. 19세기에 소송방식(forms of action)이 폐지될 때까지는 로마 법에서와 같은 구별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방식이 폐지되기 이전에 이미 영국법에서도 로마 법에서처럼 재산권을 단일한 개인에게 포괄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경향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철학사상 혹은 사회적 이해관계의 영향이 아닌 보다 기본적인 어떤 것이 필요하다. 로마 법 및 영미법 체계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제(機制)로서 출발했다. 소유자는 물건에 대한 모든 권리·특권·권한을 가진다고 가정하는 것이 편리하므로 양(兩) 법체계에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을 수 있다. 이 경향은 소유권에 대한 입증책임의 배분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물건에 대한 분쟁이 일어나면, 양 체계는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상대방이 반대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소유자는 그 물건에 관한 모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분쟁해결 기제가 서구법 체계에만 특유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의 재산 관념은 매우 독특하다. 이 분쟁해결 수단이 개별 재산권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 것은 역사의 우연한 산물이었다. 즉 개인의 물건에 대한 관계를 집단의 물건에 대한 관계보다 중시한 사회상태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법학의 출현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로마 법과 영국법에서 개인적 재산권 관념이 등장한 것은 가족의 재산상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법률가의 전문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한편 재산권 개념의 근대적인 발전의 출발점은 17세기의 사변법학(思辨法學)이었다.
네덜란드의 사변법학자 휘고 그로티우스는 수용권(收用權) 이론을 통해,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수용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공적인 목적과 적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무엘 폰 푸펜도르프는 재산권의 적법성을 위해서는 점유와 국가의 승인, 양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존 로크는 소유권은 노동으로부터 기인하는 천부적인 권리이며, 국가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인민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영국에서는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등에 의해 새로운 견해가 등장한다.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자원배분이 있어야 하며, 사적 소유권이 거래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근대경제이론의 소유권 개념은 이들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게오르크 빌헬름 F. 헤겔은 이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을 재산권에 적용하여, 재산권의 보호는 인간의지의 보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19세기 중반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선언(1847)에서 자본가들이 무산자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 소유권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19세기초의 프랑스 민법전(일명 나폴레옹 법전, 1804)은 로마 법의 영향, 특히 16∼19세기에 걸쳐 활발하게 계수된 로마 법의 전통에 입각한 재산권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독일 판덱텐 학자들(Pandectists)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19세기말의 독일민법전(1900 발효)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 두 법전은 이후에 만들어진 각국의 법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컨대 서구의 재산법에 있어서 대륙법 체계와 영미법 체계 사이의 차이는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 두 체계가 역사적으로 매우 달랐고 현재에도 용어나 법적 장치에 있어서 차이가 명백하다 하더라도, 두 체계는 실제로 동일한 결과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재산법은 사회의 경제·가족 구조, 정치체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서구의 산업화되고 관료화된 민주주의가 20세기에 와서 더욱 상호의존적이고 유사하게 되어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미법 체계와 대륙법 체계의 차이의 기초를 이루는 역사적인 상위점은 현대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오늘날의 사회는 그 개념적인 출발점이 다르더라도 동일한 법적 해결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수렴 경향에 이바지한 것은 대부분의 변화가 입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서구에서 전통적으로 입법은 역사가 법에 부과한 개념상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대부분은 공법(公法)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공법은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사법을 구분짓는 개념형성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상위로부터 대체로 자유롭다. 공법이 개념적 의미에서의 재산법에 대해 중요성을 더해감에 따라, 두 체계의 실제적인 결과가 거의 일치될 수 있었다.
또한 20세기말 서구에서는 사적 재산권의 법적 개념과 실제적 중요성에 대한 점진적 침식이 나타나고 있다.
사적 재산권 개념에 대한 공격이 특히 두드러진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재산권'과 '시민권' 사이의 분쟁에서 시민권을 옹호하는 많은 판결들이 나왔으며, 금지명령에 따른 구제로 대표되는 재산법의 법규가 재화 배분의 효율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 책임법규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적 재산권 제도가 서구에서 곤경에 처해 있다는 다른 예들이 있다.
즉 환경법의 발전은 소유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특권을 크게 제한했다. 또한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다 심각한 현상은 서구 전역에서 가족간의 유대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높은 어음할인율, 재산축적 및 상속에 대한 중과세(重課稅) 등은 개인의 재정적인 안전의 원천으로 재산을 사용하는 서구인들의 전통적인 태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발전과 사적 재산권 개념 자체가 직접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재산법이 현재와 다가올 세대의 재정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제공한 전통적인 장치들이 그러한 변화들로 인해 점차 부적합한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에서의 변화는 서구적 재산 관념의 특색이라고 할 포괄적 경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포괄적 경향은 또한 재산권과 시민권의 갈등과도 관련이 있다. 이 경향은 재산권이 광범위하게 다른 권리를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하여, 그것이 차별적으로 쓰이는 경우에도 1차적으로 보호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현대의 변화는 포괄적 경향에 내재하는 긴장과도 관련되어 있다. 현대법이 이와는 다른 결과에 도달한만큼 그것은 동시에 이 경향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현대의 논란과 변화에 있어서 재산권의 서술적 정의는 문제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재산권의 개념과 제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서구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은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가 19세기와 20세기초에 걸쳐 포괄적 경향이 보여준 극단으로부터의 변화인지 아니면 기본적인 경향 자체의 반전인지는 다음 세기에 해결해야 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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