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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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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논리적 구조

인간의 행동과 행위는 구별해야 한다.

같은 방향과 같은 속도, 같은 모양으로 달리는 두 사람이 있을 때 양자의 행동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달리는 사람은 도둑이요, 뒤에 달리는 사람은 경관일 때 전자는 도망행위이고 후자는 추적행위이다. 그 차이는 직업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도망행위는 현직경관의 경우에도 있을 수 있고 추적하는 행위는 일반 시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행동을 다른 행위로 만드는 것은 주체의 내적 의도이다.

자각된 내적 의도는 사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사고가 행위의 내적 기둥이라면 행위에는 논리적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고가 논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논리구조의 전형은 삼단논법이다. 따라서 행위의 논리구조로서 실천적 삼단논법을 살펴보면 그 고전적 전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내게는 A가 바람직하다(목적 A가 내게 의식되어 있음).

소전제:ⓛ 그런데 p, q, r, s가 내게 A를 실현시켜 줄 것이다(수단 열거). ② r는 이들 중 가장 쉽고 가장 아름답게 A를 실현시킬 것이다(수단 선택).

결론:때문에 r에서 A로의 경로를 고른다(행위의 현실태).

이 경우 목적은 의사가 병자를 치료하려 한다든가 정치가는 선정(善政)을 하려는 경우라면 자명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은 수단선택의 소전제이다.

이 경우에 금전과 같은 형이하학적 사물을 목적으로 세우든, 신과의 일치라는 형이상학적인 초월을 목적으로 세우든 그것은 자유이다. 인간은 자기의 능력을 수단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반성하면 된다. 그리고 행위의 윤리성은 목적 실현의 용이성이라는 기술적 효과보다도 효과가 있어야만 되지만, 그보다도 수단이 덕에 합치하는가 여부에 따라 정해진다. 우리는 이런 고전적 구조의 행위가 오늘날에도 사생활의 일상성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현대를 근세로부터도 나눌 때의 특수성은, 현대사회가 근세까지의 도구적 관련성을 더욱 확대하고 자기를 기술관계로 제시하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일찍이 수단으로 개발해 온 기술의 거대한 관련성 가운데 위치 지워진 개체에 지나지 않으며, 기계의 신호나 운행대로 관계 속을 왕복하는 객체로 되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행위의 논리적 구조는 어떻게 될까? 행위의 대전제로 자명한 것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수중에 넣고 있는 강력한 기술로서의 수단이다. 거기서 새로운 형식의 삼단논법이 다음과 같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대전제:수단 P가 우리의 것이다.

소전제:그런데 Pa, b, c, d를 목적으로 실현시킨다.

a가 이들 중 가장 효율이 좋고 가장 아름답게 기능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결론:때문에 P에서 a로 가는 길을 고른다(행위의 현실태).

고전적 논리구조에 비하면 전제가 역전된 것으로 보이는 완전히 새로운 실천적 삼단논법이다.

곧 대전제에는 목적이 아니라 거대한 수단, 예를 들면 전력이나 원자력, 거대자본 따위가 나 개인이 아닌 우리의 공유물로서 우리의 수중에 있다. 수단이 자명한 사회적 사실로 있고 게다가 이 수단으로 가능한 목적을 추출해 그 가운데서 목적을 고른다는 데 새로움이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전제가 되는 수단은 물리적 또는 경제적 힘이고 탐색되는 목적은 그 힘에 포함된다. 또 이처럼 행위의 논리구조 가운데서 초월적인 것이 배제된다는 점, 그리고 대전제의 경우에서나 소전제의 경우에서나 '나'라는 1인칭 단수 대신에 1인칭 복수인 '우리'가 이야기되고 있는 점은 행위의 논리구조 가운데서 개인의 인격적 책임이 배제되고 위원회로 상징되는 공동책임의 이름으로 사실상 인격책임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계적 관리체제의 법적 규제력으로 인간의 내면이 압축되어 행위의 세계로부터 초월과 책임이 박탈된다는 것을 뜻한다.

윤리학의 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행위의 목적을 수단적 기술로 받드는 한 인간의 존엄성도 사라진다. 목적정립의 자유를 둘러싸고 초월과 책임의 회복이 가능한가 여부에 현대윤리학의 한 과제가 있다.

행위의 존재론적 구조

행위가 내적 지향으로서 정신의 작용을 전제로 하는 이상, 정신의 작용영역에 주목하여 행위의 전체구조를 밝힌다면 초월 가능성의 유무가 명백하게 될 것이다.

대상과 상관적으로 생각된 정신의 작용영역은 상식적으로 안정된 일상세계를 첫번째 장으로 하고 개념 또는 기호에 따른 대상론적인 과학적 세계를 제2의 장으로 한다. 또 자기가 그 대상에 몰입·헌신하여 현상하는 사랑의 세계를 제3의 장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행위의 세계를 제4의 장으로 한다. 그런데 이 제4의 장인 행위의 세계는 병존하는 존재자가 양자택일의 대상으로서 모순으로 나타나는 이질적인 장이다.

자아는 다가오는 모순을 투시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떤다. 자아는 어떤 수단을 찾아 일상세계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자아를 이 불안의 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를 제4의 장에서 제1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실존적인 힘으로서, 정착자의 장으로서 제1의 장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초월적인 탈출이야말로 행위이므로 끌어올리는 힘 자체는 윤리의 보편적 입법과 탈출 가능한 보편적 타당성이라는 2가지 이념을 충족시키는 것으로서, 제2의 보편자의 장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초월의 수단인 힘은 자아의 인격 모든 것을 문제삼는 자아의 상징이다. 때문에 그 힘은 자기의 전인격을 바쳐도 좋은 것이며 제3의 장에 있어야 한다.

행위적 실존으로서 자아가 모순과 불안의 행위를 겪는 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의존하는 수단은 제4의 장을 넘는 곳에서 구할 수 있고 우선은 제1의 장에 있어야 했다. 동시에 제3, 4의 장에 각각 있어야 했다. 그러면 이 힘은 각기 다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3개의 힘은 똑같은 힘의 속성을 지녔는가. 그 힘을 추구하는 경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들은 결코 각각 별개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힘으로서 요구된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정리한다면 행위적 실존의 초과를 위한 힘이란 실재, 보편적 가치, 헌신의 대상이라는 3가지의 통일적 존재로, 앞에서 든 어떤 한정된 장소에도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 생의 모든 내재적 국면을 넘는 초월자라는 것이 된다. 때문에 우리는 행위의 여건, 그 행위가 실존적 심연에 깊게 뿌리 박은 것일수록 그만큼 강하게, 의식하든 하지 않든 세계초월자와 긴장관계에 서야 한다.

마치 그것을 상징하듯 행위의 한 장면으로서 양자택일의 결단은 항상 그 모순의 암흑에서 초월해야 한다. 따라서 논리구조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서는 부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초월도 행위의 존재론적 구조를 성찰할 때는 별도의 형태로 확실히 긍정된다. 어떤 행위이든 결단을 수반하는 한 초월이다. 그리고 이 작은 초월과 궁극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이상에서 논한 초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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