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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다는 것은 덕이 없는 생활로 인간이 지칠 줄 모르고 자기를 확장함으로써 상호부정에 빠지는 일이 예상되는 것만으로도 명백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실은 이미 덕과는 무관하지 않다. 거기에 인간이 있는 이상 인간적 판단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항상 상대적이지만 선악의 경계를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능적으로 직선적인 확실한 행동을 하는 데 안주하는 동물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만약 어떤 생물적 효과를 덕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적 덕은 결단에 주저함이 생긴다는 탈본능적인 국면 위에 성립해야 한다. 그래서 단순한 무력이나 건강이나 생식력 등은 설사 그게 인간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들에 관해 비로소 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그것들의 효력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목적성과 관계지워진 경우이다. 따라서 인간사색의 원점은 덕의 발생론적 시각에서 보면 실로 목적정립의 자유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행위의 논리구조에서는 부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목적정립도, 윤리학은 덕론에서 다시 긍정할 수밖에 없다.
목적성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덕론을 구성해보면 종래와는 다른 덕의 계층론이 전개된다. 그것은 인간생존의 기본적 사실로서 윤리적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 성(性)의 목적론적 해석에서 시작한다. 키케로가 〈의무에 관하여〉에서 "남성적인 아름다움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듯이 덕에도 성적 형용사를 붙일 수가 있다.
생명적 덕에는 남성적인 덕으로서의 용기와 여성적인 덕으로서의 우아함 등이 있다. 마치 부모나 그에 상응하는 남녀가 서로 도와 아이를 키우듯이 현실적인 성별과는 따로 남녀 어느 쪽의 내부에서도 남성적 덕과 여성적 덕은 서로 도와 인간을 완성시키며 별도의 덕을 형성한다. 곧 생명적 덕의 상호보완성으로, 영적인 덕으로서의 신앙·희망·사랑·성실·숭고함과 같은 초월적인 덕이 육성된다. 인간에게 성의 존재의의는 단지 종족 보존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같은 영적 덕의 실현을 위하여 생명적 덕이 상호보완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덕의 목적론적 질서가 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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