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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19년 4월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한국이 진행했던 외교. 1917년 만국사회당대회, 세계약소국동맹회, 1918년 극동약소민족대회 등에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부당함과 한국의 독립에 대한 정당성과 의지를 설파했다. 1919년 2월에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한 외교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시작되어 1917년 8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 10월 뉴욕에서 열린 세계약소국동맹회, 1918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약소민족대회에 민족대표가 참가하여 일제의 한국주권강탈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한국독립을 호소했다.
같은 해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해 강화회의가 개최되자 여운형·장덕수·조동호 등은 12월 상하이[上海]에 온 미국 대통령 윌슨의 특사 크레인에게 '한국독립에 관한 요망서'를 제출하고 이를 강화화의와 미국 대통령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1919년 2월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이 조직되어 김규식(金奎植)을 파리 강화회의의 한국대표로 파견했다. 한편 미국의 교포단체인 대한인국민회에서도 이승만(李承晩)·정한경(鄭翰景)·민찬호를 강화회의 대표로 뽑아 파리로 파견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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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임시정부 수립 이전의 외교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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