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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으로, 그는 1863년 1월 1일 파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올림픽 대회를 부활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1892년 11월 25일 파리에서 개최된 스포츠 경기연맹(Union des Sport Athletiques) 회의에서 국제경기의 신기원을 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94년 6월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경기에 관한 협의에는 9개국 49개 조직을 대표하는 79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했고, 이 회의에서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 대회 부활의 가능성을 개진했다. 후일 쿠베르탱은 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된 그리스의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와 뉴저지대학(후에 프린스턴대학교)의 교수인 미국의 윌리엄 M. 슬론 등의 협력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올림픽 대회의 부활에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가 끝났을 때, 올림픽 대회의 부활을 둔 투표가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끝나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고 쿠베르탱은 덧붙였다.
처음에는 1900년 파리에서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데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6년이라는 기간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개최지와 개최 날짜를 변경하여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겨지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896년 4월에 올림픽 경기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반대는 없었지만 아테네인들의 개최 거절 등을 포함하여 상당한 무관심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들이 남아 있었다.
쿠베르탱과 14명의 신임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냈고, 1896년 4월 첫주에 그리스 왕에 의해 올림픽 대회가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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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올림픽 대회의 부활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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