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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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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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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예배가 형성된 모태와 토양은 지중해 연안의 히브리 종교였다. 즉 그리스도교의 발상지인 팔레스타인에서 행해졌던 히브리 민족의 예배행위가 그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예루살렘의 성전예배와 디아스포라의 회당예배로 나누어 생각할 수는 있으나 그 뿌리는 하나이다.

BC 6세기의 바빌론 포로기 이전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을 예배했으며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심이었다. 하느님과의 화해는 이 희생제사의 속죄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실천했다. 안식일의 갖가지 규례가 율법으로 제정되어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그러나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는 이 성전 중심의 예배가 어렵게 되었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아 희생제사가 아닌 순수한 영적인 예배가 중요시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회고하는 예배, 즉 이집트에서의 유월절,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새로운 계약, 광야에서의 장막생활을 기념하는 회당예배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각지에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거기에서 안식일의 규례를 지켰다. 이런 예배 때마다 성서(토라)를 읽고 가르쳤다. 또한 함께 기도를 드리고 〈시편〉을 노래하는 예배 모임이 계속되었다. 바빌로니아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졌기 때문에 성전예배와 회당예배가 병존하게 된 셈이다. 그리스도교의 혁신적인 예배, '영과 진리를 드리는 예배'(요한 4 : 22)는 이와 같은 유대교의 전례에서 그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지중해 연안의 유대교에서 드리던 하느님 예배의 규례가 그리스도교 예배의 모태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확산되면서 초대교회의 예배 원형이 갖추어지게 되었다(사도 4 : 22~).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에 성전과 회당, 교도들의 가정에서 모임이 계속되었다. 후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생겨서, 안식일 규례가 아니라 '주의 날'의 예배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주일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증언과 그 축제가 중심이 되었다. 성서를 읽는 일과 사도의 가르침이 중요시되었고,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스도교도의 친교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이 항상 곁들여지게 되었고, 이런 요소들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심을 이루었다. 성서낭독도 초창기에는 율법서(토라)만 반복하다가 사도들의 편지(서신서)가 추가되었고, 후에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어록들이 본격적으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예배의식에서 성서를 이런 순서로 읽는 것은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설교'(강론)가 되었고, 빵을 떼는 규례가 감사의 전례인 '성찬'(Eucharist)이 되었다.

그리스도교 설교

그리스도교 신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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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을 핵심으로 한 이 '설교'와 '성찬'은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분리할 수 없는 2개의 축을 이루게 되었다. 이 2개의 축을 중심으로 찬미·친교·기도가 모여 하나의 축제를 이룬 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참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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