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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6. 5. 17, 스페인 마드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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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1. 2. 28, 이탈리아 로마 |
국적 | 스페인 |
요약 스페인의 왕(1886~1931 재위).
의회를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다 제2공화국 옹호자들에게 폐위당했다. 알폰소 12세의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섭정 아래서 곧 왕이 되었다. 활달하고 머리가 좋았지만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어머니 때문에 극단적인 종교적·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일찍이 궁정생활에서 오는 권태에 반발하여 평생 스페인 군대에 애착을 가졌다. 1902년 16세 생일에 친정할 권리를 넘겨받았다. 알폰소는 자신의 권위를 만끽했다. 계속되는 선거에 입각해 보수당과 자유당이 번갈아 내각을 구성하는 체제를 지켰지만, 내각을 교체하려는 목적에서 점점 더 간섭함으로써 정치는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1902~23년에는 내각이 33번이나 바뀌었고, 의회제도는 계속 불신되었으며 알폰소의 인기도 떨어졌다.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오이게니아와 결혼하던 날(1906. 5. 31) 악명높은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난 뒤로 암살음모가 계속되었지만 그때마다 알폰소는 용기있는 행동으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
안토니오 마우라 정권의 붕괴(1909)로 알폰소의 지위는 더욱 위험해졌고 의회제도도 무너질 조짐을 보였다. 알폰소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용의주도하게 중립을 지키고 인도주의를 내세워 많은 활동을 함으로써 비난을 면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의회를 없앨 방법을 찾으면서 1인독재체제를 세우려고 했다. 1921년 모로코 전쟁에 직접 개입했으나 크게 패함으로써 뒤이어 설치된 조사위원회로부터 정면으로 비난받았으나 이 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하기 1주일 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1923. 9. 13) 덕분에 굴욕적인 상황을 모면했다.
그러나 알폰소는 의회제도의 전복에 합세하고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정치에 운명을 맡김으로써 스페인 군주제의 존립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프리모 데 리베라가 1930년 1월 실각하자 다마소 베렌게르 장군은 알폰소를 구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알폰소는 선거라는 모험을 피하면서 입헌군주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결국 지방자치선거 실시(1931. 4)에 동의했고, 그 결과 주요도시에서는 거의 공화주의 정당들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들은 왕의 퇴위를 주장했으며 군부도 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알폰소는 퇴위를 거부했지만 스페인을 떠나야 했다(1931. 4. 14).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그에게 시민권을 다시 주고 1932년에 몰수된 재산을 돌려주었으나 알폰소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셋째 아들 돈 후안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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