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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북도 중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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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54,138 (2023) |
면적 | 1,521.94㎢ |
행정구역 | 1개읍 13개면 10개동 |
사이트 | http://www.andong.go.kr/main.do |
요약 경북 중북부에 있는 시.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안동군이 되었고 1963년에는 안동시로 승격했다. 한국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며 전통문화 유산이 풍부한 고장이다. 봉정사·도산서원·병산서원 등의 유적이 남아있고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면적 1,520.91㎢, 인구 154,138(2023).
대한민국 경상북도 중북부에 있는 시.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며 전통문화의 유산이 풍부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 풍천면 마애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 봉정사 등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들이 곳곳에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하회마을은 경주시 양동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행정구역은 풍산읍·와룡면·북후면·서후면·풍천면·일직면·남후면·남선면·임하면·길안면·임동면·예안면·도산면·녹전면·중구동·명륜동·용상동·서구동·태화동·평화동·안기동·옥동·송하동·강남동 등 1개읍 13개면 10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42개동). 시청소재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15이다. 면적 1,520.91㎢, 인구 154,138(2023).
연혁
삼국시대 이전에 창녕국 등 소국(小國)이 있었던 것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했다.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지가 되었던 이 일대는 이 고을 호족인 김선평·권행·장길 등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한 공으로 940년(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이곳에 피난해 머물렀던 공으로 이듬해에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안동의 별호는 석릉·고령·화산·능라·지평·일계·고장 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안동군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이 신안동시로 승격되었다가 곧 안동시로 개칭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안동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안동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안동시를 이루었다. 1997년 9개동을 중구동·명륜동·동구동·서구동으로 통폐합했으며, 1998년 중구동·동구동을 중구동으로, 용상동·송천동을 용상동으로, 서구동·강남동을 서구동으로 통합했다.
2005년에는 법상동의 법정동을 폐지하면서 법상동·금곡동·화성동을 서구동으로 통합하였고, 서구동의 법정동인 정상동·정하동·수상동·수하동을 옛 강남동으로 신설했다. 2008년 어담출장소, 삼계출장소, 서부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인구
통합 이전 안동군은 1960년대 이후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인구유출이 이루어졌다. 1960~80년에간 48%의 감소를 보였으며 통합 이전까지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한편 통합 이전의 안동시 인구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1965년 6만 1,640명에서 1975년 3만 3,809명이 증가해 1965~75년에 54.8%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80~90년에 1만 4,908명만이 증가해 18%의 증가율을 보임으로써 인구증가가 둔화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통합시를 이루어 19만 4,210명을 기록했으나, 통합 이후에 감소추세가 지속되었다. 1년 후인 1996년에 19만 2,472명, 2008년에는 16만 7,300명으로 감소했다. 인구감소는 주로 읍·면 지역에서 두드러지며 이촌향도에 의한 인구유출이 계속된 것으로 파악된다.
2019년까지 16만 명을 유지했던 안동의 인구는 2023년 15만 4,138명으로 감소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26.7%가 분포하며 중심시가지가 있는 동지역에 73.3%가 분포하고 있다. 용상동(2만 1,799명), 옥동(2만 942명)과 송하동(1만 5,785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도산면(1,496명)의 인구가 가장 적다.
안동시 연혁
삼국시대 이전에 창녕국 등 소국(小國)이 있었던 것으로 〈대동지지 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고타야군을 설치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지가 되었던 이 일대는 이 고을 호족인 김선평·김행·장길 등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한 공으로 940년(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되고, 995년(성종 14) 행정구역 개편 때 길주로 승격되었다.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안동부는 임하군·예안군·의흥군 등 3개의 속군과 일직현·은풍현·감천현·봉화현·안덕현·풍산현·기주현·흥주현·순안현·의성현·기양현 등 11개의 속현을 관할하는 대읍이었다.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로, 1202년에 대도호부로, 1308년에 복주목으로 계속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복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홍건적의 침입으로 1361년에 왕이 이곳에 피난해 머물렀던 공으로 이듬해에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576~81, 1776~8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안동의 별호는 석릉·고령·화산·능라·지평·일계·고장 등이었다. 고종대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안동부 안동군, 1896년에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로 감천면을 예천군에, 재산면·소천면·춘양면·내성면을 봉화군에 이관하게 되어 면적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1914년에 군면 폐합에 의해 예안군이 폐지되어 안동군에 편입됨으로써 면적이 다시 확대되었다.
1931년 읍면제를 실시함에 따라 안동군 부내면이 안동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안동읍이 신안동시로 승격되었다가 곧 안동시로 개칭했다. 1983년에는 안동군의 남후면 일부와 와룡면 일부가 편입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안동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안동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안동시를 이루었다.
안동시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지맥이 시의 동·서에 걸치면서 북동쪽에는 산지를, 남서쪽에는 비교적 평탄한 침식분지를 이루어 놓았다. 시계를 따라 파리봉(497m)·산성산(845m)·두름산(485m)·사일산(649m)·계명산(537m)·화부산(626m)·산지봉(890m) 등이 동쪽에, 불로봉(482m)·갈미봉(548m)·천등산(574m)·보문산(643m)·검무산(332m)·봉화산(401m)·삼표당(444m)·향로봉(327m)·기룡산(508m)·황학산(782m) 등이 서쪽에 솟아 있다.
낙동강이 시의 중앙부를 남류하면서 안동호를 이룬 후 중심시가지를 가로질러 서류하면서 미천(眉川)·송야천(松夜川) 등을 합류하고 서부일대로 흐른다. 반변천·안기천·안막천 등도 낙동강에 흘러든다.
시를 흐르는 낙동강은 하상이 높아 평탄한 곳의 대부분은 모래사장을 이루며, 주변에 넓은 평야를 이루었다. 풍산읍과 풍천면에 이 지역의 최대 평야지대인 풍산평야가 있다. 풍산평야는 낙동강의 소지류인 상리천과 매곡천에 의해 이루어진 충적평야이다. 중심시가지는 대체로 높이 200~400m의 산지로 둘러싸인 침식분지이다. 기후는 내륙분지인 지형적 요인과 대륙성기후의 영향으로 한서의 차가 심하다. 통합 전 안동시 지역 연평균기온 12.6℃ 내외, 1월평균기온 -3.1℃ 내외, 8월평균기온 26.4℃ 내외로 여름은 몹시 무덥다. 연평균강수량은 924㎜로 비가 적다.
한편 통합 전 안동군 지역은 연평균기온 12.1℃ 내외, 1월평균기온 -2.3℃ 내외, 8월평균기온 25.1℃ 내외이며 연강수량은 976㎜ 내외로 소우지역이다. 그러나 강수량의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내려 홍수의 피해가 잦다. 안동댐의 건설 이후 주변 지역은 오전에 안개가 심하며, 가을철의 일조시간이 줄어들었다. 식생은 한국의 중앙에 위치하여 활엽수림계에 속하는 산림대이나, 소나무와 활엽수 및 참나무 등이 함께 서식하는 혼효림을 이루고 있다.
인구
통합 이전 안동군은 1960년대 이후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계속적으로 인구유출이 이루어졌다. 1960년의 인구는 23만 2,377명이었으나 1970년은 18만 5명으로 10년간 23% 정도의 감소율을 보였다.
1970~80년에는 25%의 감소를 보였으며 1980~90년에는 41%의 감소를 보여 인구유출이 더욱 심화되었다. 1990년 기준 인구이동은 도내보다는 도외지역으로의 전출인구가 많았다. 풍산읍(1만 2,274명)·풍천면(7,766명)에 지역 전체인구의 22% 정도가 분포했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남선면(3,185명)·남후면(3,287명) 등이었다. 한편 1995년 통합 이전의 안동시 인구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1965년 6만 1,640명에서 1975년 9만 5,449명으로 3만 3,809명이 증가해 1965~75년에 54.8%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74~76년에는 6,772명만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안동댐 수몰지구의 이주현상 때문이다.
1980~90년에 1만 4,908명만이 증가해 18%의 증가율을 보임으로써 인구증가가 둔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 11만 6,932명, 통합시를 이룬 1995년에는 19만 4,210명으로 증가했고 1년 후인 1996년에 19만 2,472명, 2008년에는 16만 7,300명으로 감소했다. 인구감소는 주로 읍·면 지역에서 두드러지며 이촌향도에 의한 인구유출이 계속된 것으로 파악된다. 2000년 이후 소폭의 인구 증가 추세를 유지했으나 2018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하여 2019년 마지막으로 16만 명 대를 유지하고 2023년 기준 15만 4,138명으로 감소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26.7%가 분포하며 중심시가지가 있는 동지역에 73.3%가 분포하고 있다. 용상동(2만 1,799명), 옥동(2만 942명)과 송하동(1만 5,785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도산면(1,496명)의 인구가 가장 적다.
안동시 산업과 교통
총 경지면적 220.64㎢ 가운데 논은 93.08㎢, 밭은 127.56㎢로 밭이 많으며, 경지율은 14.5%이다(2013). 벼농사는 풍산평야가 있는 풍산읍과 풍천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콩·옥수수·감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옥동·용상동과 낙동강 주변지역에서는 수박·멜론·무·배추 등의 시설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1976년에 안동댐의 완공으로 관개체계가 확충되면서 농산물의 생산량이 늘어났다. 이들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과학적인 영농법이 보급되어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많다.
임하면·서후면 일대에서는 안동포의 재료인 대마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이곳의 땅은 모래와 찰흙으로 이루어져 삼이 대가 가늘고 마디가 곱게 갈라져 고급 안동포를 짤 수 있다고 한다. 한우·돼지·닭 등의 가축사육과 양잠·양봉도 이루어진다. 특히 안동 한우는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맛이 좋고 뒤끝이 깨끗하다는 안동소주가 특산물로 생산되며 상품으로의 가치가 높다. 2012년 가행광구는 38개소로 연간 12만여t의 석회석과 2,400t의 장석, 13만여t의 사문석이 생산되고 있다.
공업은 생산시설의 기반이 취약하여 매우 낙후되었다. 용상동과 명륜동에 염색공장·엽연초공장·한국벨트·대한주물 등의 소규모공장이 있다. 2012년 기준 84개의 공장에서 2,031명이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
공업은 생산시설의 기반이 취약하여 매우 낙후되었다. 용상동과 명륜동에 염색공장·엽연초공장·한국벨트·대한주물 등의 소규모공장이 있다. 2012년 기준 84개의 공장에서 2,031명이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 예로부터 경상도 북부지방의 중심지로서 상업이 발달했다. 총 2개의 정기시장이 있으며, 1970년 이후 개점한 안동백화점·새안동백화점과 경북유통이 개설한 대형 연쇄점을 중심으로 상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부동·동부동·서부동 등이 시의 중심부를 형성하면서 상가 및 금융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본래 안동시는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중앙선이 시의 일직면·와룡면·북후면을 거쳐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지방 교통 및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철도국이 영주로 이전되고 경북선이 이곳을 지나지 않게 되자 발전이 다소 정체되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영덕-안동-김천 간의 동서간선로의 고속화 공사가 완료되어 명실상부한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주-대구, 예천-영덕, 청송-봉화 간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시내의 4차선 도로는 고속터미널 앞을 지나는 국도에 불과하여 늘어나는 자동차로 인한 교통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도로총길이 972.409km, 도로포장률 93%이다(2012).
안동시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국보 4, 보물 34, 사적 2, 천연기념물 7, 중요민속자료 25, 중요무형문화재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64, 기념물 17, 무형문화재 5, 민속자료 45), 문화재자료 74점,등록문화재 1점 등이 있어 유물·유적이 상당히 많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2곳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와룡면 가구리의 선돌, 남후면 하아리의 민무늬토기 등이 있으며, 일직면 조탑리에 100여 기의 고분군에서는 금목걸이·귀걸이·마구 등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풍악산성(豊岳山城)·개목산성(開目山城)·선성산성(宣城山城) 등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고분인 신안동고분군과 옥동고분군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제15호)·봉정사대웅전(보물 제55호)·봉정사화엄강당(보물 제448호)·봉정사고금당(鳳停寺古今堂, 보물 제449호)·개목사원통전(開目寺圓通殿, 보물 제242호) 등을 비롯해 신세동7층전탑(新世洞七層塼塔, 국보 제16호)·동부동5층전탑(보물 제56호)·옥동3층석탑(보물 제114호)·이천동3층석탑 등이 있으며, 불상으로는 안기동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천동석불상(일명 제비원미륵, 보물 제115호)·서악사지인왕석상(西岳寺址仁王石像)·안정사석조여래좌상·옥산사지마애불좌상·마애동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있다.
탑으로는 안동조탑동5층전탑(보물 제57호)·대사동모전석탑(大寺洞模전石塔)·나소동3층석탑·임하동십이지3층석탑·하리동모전3층석탑 등이 있으며, 건축물로는 안동석빙고(安東石氷庫, 보물 제305호)·임청각정침군자정(臨淸閣正枕君子亭, 보물 제182호)·선성현객사(宣城縣客舍,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추원재(追遠齋)·사월동초가토담집(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4호)·토계동향산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호)·이육사생가·원촌동치암고택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도산서원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 보물 제210호)·병산서원(屛山書院)·호계서원(虎溪書院), 유성룡을 모신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 등이 있으며, 건축물로는 안동양진당(安東養眞堂, 보물 제306호)·안동의성김씨종택(보물 제450호)·안동소호헌(安東蘇湖軒, 보물 제475호)·안동김씨종택·하회원지정사(河回遠志精舍) 등이 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2019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다른 지역의 7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요 유물로는 하회탈 중 9개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 보물 제484호)·안동권주종가문서(보물 제549호)가 있다. 그밖에 고려의 개국공신들인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을 모신 북문동의 안동태사묘3공신유물(보물 제451호)과 암벽에 새겨진 수려한 해서체의 글씨로 유명한 월영대(月映臺,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 성곡동의 이육사시비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남후면 광음리의 안동구리의 측백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252호), 길안면 송사리의 송사동의 소태나무(천연기념물 제174호), 길안면 용계리의 용계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175호), 안동녹전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5호), 안동임동면의 상수리나무(천연기념물 제288호), 안동와룡면의 뚝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4호)가 있으며, 안동하회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유교문화의 본고장으로 서원·사찰·고적 등이 주요 문화관광자원을 이루며, 풍천면의 하회마을·부용대·백운정, 임하면의 경포대, 길안면의 도연폭포·제비원·학가산 등이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특히 민속촌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에는 많은 민속자료와 전통기와집·하회탈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성곡동에 안동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보전하기 위한 안동민속촌이 있다. 이곳에는 석빙고를 비롯해 조선시대 양식의 민가와 민속자료 등이 있으며, 민속촌 주변에는 8만 3,000여 그루의 꽃나무를 심은 용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안동 댐의 준공으로 조성된 안동호와 함께 관광자원이 개발·정비되어 관광도시로도 발전하고 있다.
안동시 교육과 문화
이황·유성룡을 비롯한 유학의 명현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예로부터 예안향교·도산서원·호계서원·병산서원·역동서원·고산서원 등 향교와 서원이 발달했으며, 그밖에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송천동의 안동향교(安東鄕校), 송현동의 임천서원(臨川書院)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안동초등학교가 1909년 개교했다. 이밖에 1918년 도산면에 도산공립보통학교, 1919년 풍남공립보통학교, 1921년 일직공립보통학교·임하공립보통학교 등이 각각 세워졌다.
2025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40개소, 초등학교 33개교(분교장 포함),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3개교와 가톨릭상지대학교, 안동과학대학교, 국립경국대학교 등이 있다. 농아 특수학교로 안동진명학교와 지적장애아 특수학교인 안동영명학교가 있다. 이 지역은 사학이 일찍부터 발달했으며, 고등학교가 중심시가지에 모여 있어 읍·면지역의 중학생들이 중심시가지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시립도서관과 학생도서관이 지방교육과 문화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가톨릭 안동 교구에서 설립한 문화회관과 학생회관에서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돕고 있다. 안동문화원에서는 안동민속축제를 주관하는 등 지방문화 진흥에 힘쓰고 있다.
민속놀이로는 별신굿놀이·풋굿·지신밟기·놋다리밟기·편싸움·화전놀이 등이 있으며, 매년 열리는 안동민속축제 때 동신제를 지낸다. 설화로는 견훤에 관한 <합전교전설>·<제비원미륵불전설>·<상아동의 진모래설화>·<열녀서씨설화>·<아기장수설화>·<공민왕설화>·<시정잡배갈로덕섭이설화>등이 전해진다. 민요로는 놋다리밟기에 부수된 노래인 <둥둥헤이노래>·<실감기노래>·<놋다리노래>와 <저포송>·<어사용>·<덜구소리> 등이 있다.
2023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3개소, 병원 3개소, 의원 76개소, 요양병원 7개소, 치과의원 45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44개소가 있으며,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556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3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36개소, 여성복지시설 2개소, 아동복지시설 2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3개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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