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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메리카의 후고전기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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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9세기경 마야 문명은 하부지역 중앙의 서쪽 경계에서부터 쇠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세기 동안 이런 문화적 마비상태는 점점 동쪽으로 퍼져갔으며 마야 문명은 완전히 쇠퇴하여 몰락했다. 외래의 침입은 하나의 요인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규모의 농민봉기가 있었다는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 유일한 사실은 하부지방 중앙에 살던 주민들이 대부분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점이다. 인구팽창과 토지의 심각한 남용이 이런 비극을 낳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렇듯 찬란했던 문명이 쇠퇴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고전기 문화의 성격

고대 중앙 아메리카 문명은 900년경부터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도착 또는 1521년 그가 아스텍족을 정복한 때까지 지속되었다.

10세기는 저지대 마야 문명의 대대적인 붕괴시기였지만 역사적 기록을 보면 중앙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거대 제국을 세웠던 톨텍족의 생성기이기도 하다. 스페인 정복기의 중앙 아메리카에는 가지각색의 말을 쓰는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다양한 이들 민족집단들은 공통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사적 기원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 지역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나는 문화를 이룩했다.

경제적 기반은 고도로 생산적인 농업이었지만 기본 연장은 원시적인 돌이나 나무도구였다. 주식은 옥수수였으며 콩이 주요단백질원이었다. 많은 작물들이 특수한 환경에서만 재배되었기 때문에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 행위의 종류에 따라 수많은 신들로 특수화된 다신교였다. 또한 점성술적인 목적에 바탕을 둔 천체 및 천체의 운동에 대한 관찰도 중시되었다. 260일을 주기로 하며 주술적인 의미를 갖는 달력과 365일로 된 태양력 등 2개의 주요역법이 중앙 아메리카 지역 전체에서 발견된다.

900~1200년의 것으로 보이는 멕시코 중부의 유적이 푸에블라의 촐룰라, 모렐로스의 호치칼코, 이달고의 툴라 등 3곳에 남아 있다. 테오티우아칸의 쇠퇴는 부분적으로 이들 중심지의 하나 또는 3개 모두의 발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툴라의 예술과 건축은 테오티우아칸 후기의 예술이나 조각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며 예술작품의 주제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관념과 행위양식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아스텍 문명

1519년 스페인의 정복기에 중앙 아메리카를 지배한 것은 아스텍족이었다.

이들의 고향은 면적 약 8,600㎢의 분지(해발 2,100m)로 최고높이 5,400m에 이르는 산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농작물 재배에 부적합한 토양과 지형뿐만 아니라 높은 고도 탓에 이 분지의 절반만 노동집약적 농업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1529년 무렵 이 지역은 100만~150만 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는 늪지나 호수의 매립,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들, 새로운 영농기술, 전문적인 관개이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이런 기술들이 인력과 단순한 손도구만을 이용해 얻어졌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스텍족이 살던 분지에는 주요자원들이 있었는데 지역 내 소비와 교역을 위해 개발되었다. 석재도구를 만드는 데 이용된 흑요석, 현무암, 물새, 물고기와 기타 수산물, 목재를 제공하는 소나무숲 등이 주요자원이었다. 한편 높은 고도 때문에 목화, 종이원료, 열대 근채류 및 과일, 담배, 고무, 카카오, 꿀, 금속, 비취, 터키 등 열대산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스텍족이 다른 부족을 정복하게 된 주요동기는 이들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사회정치 조직체들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위계 수준에 따른 구별이었다. 아스텍의 사회정치 조직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더 복잡해졌다. 공동생활을 하는 1쌍의 성인과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사회조직의 기초를 이루었다.

아스텍의 경우 적게는 몇 세대, 많게는 몇 백 세대에 이르는 많은 가족들이 칼풀리라는 복잡한 성격의 집단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칼풀리는 아스텍 제국의 행정단위이기도 했다. 수장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가족 우두머리들의 회의를 통해 칼풀리는 중앙정부에 대한 납세, 부역, 군대 단위 역할을 했다. 칼풀리 위에는 국가가 있었다. 모든 가족 우두머리들이 국가의 지배자인 관리들에게 충성과 존경을 바치고 납세의무를 수행했다.

사회계층은 생득적인 지위를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종적인 이동이 인정되기도 했다.

아스텍의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 전제요건으로서 희생물과 고행을 강조했다. 성직자들은 큰 존경을 받지만 단조로운 생활을 해야 했으며, 참회의 의미에서 일부러 피를 흘리는 등 자기희생을 하기도 했다(→ 색인:희생제의). 각 신전과 신은 부수적인 사제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고 각 사제는 일정한 의무를 지녔다.

아스텍족은 현재의 세계 이전에 4개의 세계가 있었다고 믿었다(→ 색인:창조신화). 4개의 태양으로 불리는 이 세계들은 그때 살던 인간과 함께 전부 대변동에 의해 파괴되었다. 새로운 5번째 세계의 사람들인 아스텍족은 태양이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태양에 '풍요'를 선사하기 위해 전쟁을 치를 신성한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안녕과 생존이 태양에 대한 피와 심장의 공양에 달려 있다는 관념으로 연결되었으며, 한편 태양에 한정되었던 공양은 그들이 섬기던 모든 신에게 확대되었다(→ 색인: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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