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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반도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지만 이 지역이 구석기 시대 수렵민들의 본거지였다는 증거가 있다.
페르시아 만에서 나온 발굴물들은 아라비아가 일찍이 BC 3000년 수메르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이슬람 시대 이전 남아라비아(통일 전 남예멘의 옛 이름)에는 큰 왕국들이 번성했다. 남서부 모퉁이 지역에 성서에서 시바로 등장하는 사바 왕국을 비롯해 마인·카타반·하드라마우트 왕국 등이 수익이 많은 유향과 향신료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번성했다.
사바인들은 마리브에 댐을 세워 정교한 관개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사바 왕국은 BC 100년경 히미아르 왕국에 무너졌으며 AD 525년까지 남아라비아를 지배했던 히미아르인들은 그리스도교도인 아비시니아인들에게 함락되었다. 남아라비아에서 BC 400년경 낙타를 가축으로 길들이고 북부에서 유향과 몰약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남부에 있던 예멘과 오만 지역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BC 330년 반도 남부 산악지대를 잇는 도로망이 생겨났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나바테아인들이 홍해 연안을 거쳐 이집트와 시리아에 이르는 교역로를 지배했다.
아라비아의 주민들은 반도 바깥쪽 곳곳에서 온 여러 종족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반도내륙에는 홍해 부근 헤자즈 북부의 타무드족, 데단과 그 부근에 근거지를 둔 리히안족 같은 토착부족이 살고 있었다(리히안). 아라비아에 살지 않는 아랍인들도 오래 전에는 반도의 대부분 지역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지역을 지배했다.
외곽지역에 거주하던 나바테아인들과 팔미라인들이 북부와 중부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교역로를 냈으며 273년 팔미라가 무너지자 최초로 아랍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였던 트란스요르단의 라흐미드족이 이를 이어받았다. 528년 아라비아 북부 지역이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도 가산족의 손에 넘어갔다.
이슬람 시대는 622년 예언자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피신하면서 시작되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아라비아 전지역이 이슬람화되었다.
그러나 마호메트 후계자들 사이의 투쟁으로 우마이야 왕조가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뒤 이슬람의 정치적 중심은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후 아라비아에는 여러 소왕국들이 세워졌고 부족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으며 비(非)아랍 이슬람 강대국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이 16세기 아라비아 전지역을 지배하려 했으나 남부만을 잠시 점령했을 뿐 내륙지역과 페르시아 만을 침략하지는 못했다.
17, 18세기에 페르시아인들이 바레인을 침략했고 16, 17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오만을 지배하려 했으나 두 경우 모두 토착민 지도자들에게 패해 물러났다.
사우디인들이 와하비파의 영향으로 중앙 아라비아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영국은 페르시아 만에 보호령을 두기 시작하여 1798년 무스카트(뒤의 오만), 1820년 트루셜스테이츠(뒤의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1839년 아덴, 1899년 쿠웨이트, 1915년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보호령을 설치했다(영국사). 영국의 보호령이 된 적이 없었던 뒤의 북예멘 지역은 1934년 독립을 인정받았다.
사우디인들이 1927년 독립을 이룩했으며 1961년 쿠웨이트, 1967년 남예멘, 1970년 오만이 차례로 독립했다. 영국이 철수하자 1971년 바레인, 카타르가 독립했고 아부다비·두바이·아지만·샤르자·움알카이와인·라스알카이마·푸자이라 등 7개 수장국으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 연합국도 독립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1990년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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