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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다른 표기 언어 Yemen , (아)al-Yaman 동의어 예멘 공화국, Republic of Yemen
요약 테이블
인구 35,219,853명 (2024년 추계)
수도 사나
면적 527,97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예멘 공화국 (Republic of Yemen)
기후 온대성기후
민족 구성 남아시아인, 아프로아랍인, 아랍인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이슬람교
화폐 예멘 리얄 (YR)
국화 커피나무
대륙 중동
국가번호 967
GDP USD 13,840,000,000
전압 100V / 50Hz, 230V / 50Hz
도메인 .ye

요약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수도는 사나이며 화폐는 예멘 리얄이다. 국영과 민간 부문이 혼합된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성장률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1인당 GNP는 중동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의료시설이 미비하며 초·중등교육이 무상으로 실시되나 성인 인구의 문맹률은 아직 상당히 높다.

예멘 국기

ⓒ Wasan Ritthawon/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90년 남·북 예멘이 통일되어 단일국가로 성립되었다. 수도는 사나이다. 남북방향으로 565km가량 펼쳐져 있으며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1,100km이다.

북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동쪽으로 오만과 경계를 이룬다. 남서쪽에는 아덴 만을 사이에 두고 지부티와 소말리아가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의 홍해 건너편에는 에티오피아가 있다. 남서부 해안 전체는 아라비아 해에 속한다.

아덴 바로 동쪽 965km 지점에 있는 인도양의 소코트라 섬, 소코트라 섬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군인 브라더 제도,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위치한 페림(바림) 섬, 홍해에 속한 카마란 섬을 포함한다.

지도
예멘

자연환경

대체로 홍해 및 아덴 만과 나란히 뻗어 있는 예멘의 주요지형은 좁은 해안평원,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예멘 고원, 북부 쪽에 넓게 펼쳐진 사막고원지대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너비 25~40km의 좁은 해안평야인 티하마 평원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쪽 방향으로 홍해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아덴 만 쪽에도 불연속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너비 8~16km의 해안평원이 자리잡고 있다. 예멘 서부의 티하마 평원 동쪽에는 해발고도 450~1,500m에 이르는 고원지대가 있다.

동쪽 방향으로 널리 펼쳐진 이 고원지대는 영구하천 와디 하드라마우트와 그 연장 부분인 간헐천 와디 마실라 등에 의해 형성된 건곡(乾谷)을 중심으로, 오만 국경 부근인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예멘 고원 북쪽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전국토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룹알할리 사막의 남쪽과 연결된 모래사막이 있다. 1982년 12월에는 옛날부터 큰 지진이 잦았던 사나 남쪽의 고원지대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약 3,000명이 죽고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강수량은 고도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동부의 해안저지대와 북부의 사막지역은 연평균강우량이 100㎜정도이고 남서부 고원지대는 400㎜ 남짓이지만 예멘 북부에 있는 고원지대에는 750㎜에 가까운 강우량의 분포를 보이는 때도 있다. 남부 해안에 있는 아덴에서 1월평균기온 25℃, 7월평균기온 32℃ 정도를 기록한다. 여름의 한낮 기온이 38℃가 넘는 경우가 많으며 상대습도는 80%가량이다. 고원지대는 여름에도 상당히 서늘하고 겨울에도 매우 추우며, 눈이 내리거나 서리가 내리는 경우도 잦다.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이 전반적으로 메마른 건조지대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멘 서부의 고원지대는 놀라울 정도로 토양이 기름지다. 비는 2번의 우기에 걸쳐 내리며 대체로 강우량도 적당해서 농경지 대부분에서는 별도의 관개시설 없이도 농사를 짓는다. 고원지대 및 중간 정도의 고도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계단식 대지와 와디 주변 평지의 비옥한 토질, 온화한 기후조건(아열대에서 온대)을 바탕으로 수수를 비롯한 곡물류와 감자 등을 상당량 생산하고 있다.

반면 예멘 남부와 동부 대부분은 식생(植生)을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다. 그러나 와디 하드라마우트 부근의 평지와 계단식 대지를 비롯해, 강줄기 주변에 자리잡은 몇몇 작은 밭에서는 농작물을 재배하며, 남부 해안과 가까운 고원지대의 곳곳에서는 가시관목·유향·몰약의 원료를 채취할 수 있는 수종(樹種)을 비롯해 키작은 나무 등 천연식생이 어느 정도 분포한다.

광물자원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사나 북쪽의 누쿰 산에서는 철광석을 채굴·제련하며, 북부지역에서도 상업성 있는 철광석 광상이 발견되었다. 석탄·구리·납·아연·니켈·금·은·우라늄 광상도 있으며, 살리프에서는 암염을 생산한다.

1980년대 중반 북동부의 마리브알자우프 분지에서 매장량이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전층이 발견되었다.

예멘 소코트라 섬(Socotra island)

ⓒ alex7370/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국민

예멘은 세계적으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지역이다. 출생률·사망률은 중동 전체에서 가장 높지만 연평균 인구성장률은 비교적 고른 편이다. 이것은 고대부터 예멘 지역의 인구증감에 큰 변수가 되었던 상당수의 취업 관련 이민의 동향과 어느 정도 연관된 현상으로 보인다. 인구는 2024년 기준 3,521만 9,853명이고, 인구밀도는 67명/㎢이다.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며, 인구의 1/3이 도시에 거주한다.

예멘인은 인종학상, 아랍인 혈통에 속하는 민족이다. 대체로 단일혈통이며, 정착농민·도시거주민(총인구의 1/4)·유목민 등 세 집단으로 구분된다. 주요 종교는 국민 절대다수인 98%가 이슬람교로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신도이고, 소수의 그리스도교도·힌두교도·유대교도들이 있다.

ⓒ Katty2016/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경제

예멘은 국영과 민간 부문이 혼합된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다.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성장률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1인당 GNP는 중동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바탕을 이루는 농업 부문은 GNP의 1/4을 담당한다.

전체 노동력 가운데 1/2가량이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예멘은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주요작물인 수수·감자를 비롯해서 대추야자·밀·포도·보리·옥수수·목화·기장·원예채소 등이 재배된다. 모카커피와 마취성 초목인 카트(khat)는 관개시설이 된 토지에서 재배해 수출한다. 양·염소·소 같은 가축을 방목한다. 염소 젖이 매년 우유 생산량의 2배 가까운 비율로 생산된다. 당나귀와 낙타는 시골지역에서 교통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어업은 대체로 소규모로 이루어지지만 정어리·고등어·오징어류의 어획량은 국내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아 알후다이다에 있는 공장에서 가공을 해서 수출한다.

커피 농장(coffee plantation )

예멘 커피 농장의 모습

ⓒ Mufaddalqn / WIKIPEDIA | CC의 BY-SA 3.0

공업 부문은 GNP의 1/10 정도를 차지하지만 고용비율은 노동인구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에 영국 소유였던 리틀 아덴 정유공장이 담당하는 부분이 전체 공업생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멘 정부는 외국의 차관으로 국내산업 다원화계획을 추진했는데, 전반적으로 생산량이 크게 신장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곡물가공을 비롯해서 시멘트블록·타일·벽돌 제조, 직조, 고무·플라스틱 제품, 소금, 음료수·낙농제품 생산 등을 하고 있다. 전력공급은 화력발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설·무역·서비스업 부문이 GNP의 절반 가까운 몫을 담당한다. 노동인구의 1/3가량 되는 인력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간선도로망은 개발이 미비한 상태이다. 도로 대부분이 포장되어 있지 않으며 관리상태도 좋지 않다. 1975년 수에즈 운하가 재개통되면서 아덴 항이 교역 중심지로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198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이 기대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연방의 어선 및 해군함정기지로 이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아덴 항이 담당하는 기능은 실제 갖추고 있는 수용력에 견주어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덴 외에는 알후다이다·알무카·살리프 항 등과 그보다 규모가 작은 항구가 주요항구로 꼽힌다. 국내선 공항이 여러 도시에 있으며, 아덴·사나·알후다이다·타이즈 등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예멘의 예산지출은 수입을 초과한다. 이때문에 예멘 정부는 러시아 연방, 중국과 부유한 일부 아랍 국가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연간 수출액은 수입액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상태이다.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조, 개인송금 등이 국제수지 불균형을 메우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커피·비스킷·포도·참깨·설탕·꿀 같은 식료품을 비롯해 가축·담배·가죽·석유제품 등을 주로 수출하며, 주요 수출대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일본·이탈리아·프랑스 등이다. 일본·러시아·네덜란드·미국·독일 등에서 식료품·가축·공산품·기계·운송장비·화학제품류 등을 수입한다.

예멘의 석유 산업

토지 장비를 사용하여 석유를 얻기 위해 시추 작업

ⓒ DNO / WIKIPEDIA | CC의 BY-SA 3.0

정치와 사회

예멘 공화국은 1990년 5월 22일 예멘 민주인민공화국(남예멘)이 예멘 아랍 공화국(북예멘)에 합병되면서 성립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됨에 따라 예멘의 정치 제도 및 체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 과도기적인 상태를 거치고 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통일 이전 남·북 예멘의 거물 정치인 5명으로 구성된 대통령 자문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국가 전체를 통치한다.

2년 6개월 동안의 과도기가 끝날 무렵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해서, 신생통일국가 예멘을 이끌어갈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신생 예멘은 다당제 의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부족법과 이슬람 법 양쪽에 바탕을 둔 법률체계를 갖추고 있다(→ 샤리아). 현재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이 나라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연방, 미국 등 여러 나라들에게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다.

예멘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며, 이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지금까지도 불량한 건강상태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 가운데 상당수가 아메바 이질, 세균성 이질과 말라리아·백일해·홍역·간염·임질·콜레라·폐결핵·장티푸스 같은 질병에 걸려 있지만 의료진과 병실이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아사망률이 중동에서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히며 평균수명도 남자 48세, 여자 51세에 지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은 무상으로 실시된다. 그러나 성인들의 문맹률은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초등학교 취학연령 아동의 1/3∼2/3가량만이 학교에 다니며,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사나대학교(1970)·아덴대학교(1975)가 있을 뿐이다. 예멘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 고대문화와 문명이 합류하던 지역이었다. 속담·민담·미신 및 신비주의 시가 등이 구전문학 형식으로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예멘의 역사, 이슬람 신학, 전기, 시 등 주로 문헌으로 남아 있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 patrice6000/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역사

북예멘이라고도 통칭되던 예멘 아랍 공화국은 현재 예멘의 홍해를 끼고 서쪽에 자리잡고 있던 국가로서, 수도는 사나였다.

예멘 민주인민공화국, 곧 남예멘은 아라비아 해에 속한 아덴 만을 따라 북예멘의 동쪽 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수도는 아덴이었다. 이 두 지역은 20세기 대부분의 시기에 토착세력과 외국세력 모두를 통틀어 각기 다른 통치권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때문에 계속해서 별도의 정치구역으로 갈라진 상태로 존속해왔다.

북예멘 지역에 있던 미네아(마인) 왕국은 일찍이 BC 4세기 무렵 이집트와 교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바빌로니아와 거래를 한 흔적이 엿보일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왕국으로서, 유향·후추 등 지중해 동부지역에서 소비되던 농산물 재배 및 수출을 통해 큰 번영을 누렸다. 미네아 왕국 남동쪽에는 사바 왕국이 번성했다. 마리브에 설치한 댐을 통해 넓은 지역에 효과적으로 물을 공급한 관개시설로 유명한 사바 왕국은 한때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BC 1세기 이후, 육로를 통해 이루어지던 향료교역이 수로 쪽으로 거점을 옮기고 마리브 댐이 황폐해지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한편 고대의 남예멘은 카타반 왕국과 하드라마우트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BC 1000). 이들 왕국은 유향과 몰약 거래로 큰 이윤을 남겼으며, 넓은 지역에 걸쳐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등 오랫동안 남예멘 지역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카타반 왕국은 BC 5세기말경 사바 왕국에게 멸망되었다.

그후 남(南)아라비아 전체는 히미아르 왕국(BC 100경~AD 525)의 영토가 되었고, 한동안 사나가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살기도 했다. 4세기 중반경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찾아들었으나, 히미아르 왕국은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고 이때문에 현재의 에티오피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 아비시니아에게 525년 멸망당하고 말았다.

575년에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7세기 중엽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나 칼리프에게 복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남예멘에서는 현지를 다스리던 통치자와 군사지도자들 사이에 패권다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북예멘 지역에서도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시기의 초반부터 분쟁이 있었다.

632년 반란이 일어났고, 9세기 후반쯤 시아파의 이맘 알 하디가 알리드 자이드 왕조를 세웠다. 이 왕가의 일족들은 1962년까지 북예멘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1173~1229년에는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가 예멘 지역을 통치했으며, 그후 1229~1451년에는 아이유브 왕조의 속국이던 라술 왕조에게 관할권이 넘어갔다. 라술 왕조가 통치하던 시기에 과학·농경·문학·건축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면서 황금기를 누리다가, 북예멘에 근거를 둔 부족으로서 남예멘 지역 상당 부분까지 세력을 넓혔던 타히르 왕조의 통치권 아래 들어갔다.

16세기초에 접어들면서 예멘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남예멘을 제외한 북예멘 지역이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된 상태로 있다가 1517년 예멘 전체가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635년 북예멘의 자이드 왕조가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남예멘까지 장악했으나, 자이드 왕조는 1735년이 지나면서 남예멘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남예멘 지역은 대립하는 부족 우두머리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세력권으로 분리된 상태에 있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 중반 개혁주의적 움직임을 보이던 와하비야 왕조의 세력과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가 추진하던 제국주의적 기도 등으로부터 아라비아 반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시 예멘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1872년이 되어서야 사나를 차지했는데, 그동안 무하마드 알리의 움직임이 영국을 끌어들여 1839년 영국이 아덴을 점령하는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아덴은 영국령 봄베이 주 관할 아래 있다가 1937년 영국 정부의 직할식민지 및 보호령이 되었다. 1914년 영국-투르크 사이의 협정에 따라 북예멘과 영국령 아덴 보호구 사이에 경계를 확정지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 문제는 1934년이 되어서야 해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투르크가 패전한 후 북예멘은 독립을 획득했다. 자이드 왕조가 아덴과 영국보호령을 포함한 예멘 지역 전체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으나, 1962년 북예멘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몰락하고 예멘 아랍 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다. 북예멘 정부는 기본적으로 부족적·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친(親)서방 경향을 띠고 있었지만 소련에서 원조를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덴 시는 1963년 창설된 남(南)아라비아 연맹에 속해 있었다.

발기인 역할을 맡고 있던 영국은 이 연맹에게 1968년까지 독립할 수 있게 한다는 약속에 따라 서서히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던 1967년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띤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이 약화되고 있던 연맹을 장악하고, 같은 해 남예멘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1970년에 예멘 민주인민공화국으로 개칭한 남예멘은 비(非)종교적인 마르크스주의 국가로서 북예멘과 계속 긴장상태로 대치했고, 1970, 1980년대에 걸친 기간에 여러 차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예멘은 북예멘에 비해 정치불안의 정도가 심각한 편으로, 여러 번의 쿠데타를 경험했으며, 1986년에는 짧은 기간 지속된 내란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는 참상을 겪기도 했다. 북예멘이 친(親)서방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던 반면, 남예멘 정부는 당시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9년 남예멘과 북예멘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의회가 이를 승인함에 따라 북예멘과 남예멘은 1990년 5월 22일 예멘, 또는 예멘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통일된 국가로 새롭게 탄생했다.

예멘 알후다이다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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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과 한국과의 관계

예멘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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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한국은 북예멘과 1985년 8월 22일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1987년 북예멘에 공관을 설치했다. 남예멘과는 1990년 5월 17일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1990년 5월 22일 예멘공화국으로 통일된 이후 1998년 12월에 주 예멘 대사관을 폐쇄했다가 2007년 12월에 재개설했지만 2015년 4월에 철수했으며 리야드 임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예멘은 1990년 12월에 주한예멘대사관 개설했다가 2001년 6월에 폐쇄하고 주일예멘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한국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통일 전의 남예멘과도 경제교류는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지금의 예멘과는 남한·북한 모두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1989년에 한국은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했다. 예멘은 1995년 2월에 체육청소년부 장관, 2004년 5월에 석유광물부 장관, 2005년 4월에 대통령이 방한한 바 있으며, 한국은 1991년 5월에 최광수 대통령 특사, 2002년 6월에 박용성 대통령특사(여수세계박람회 유치교섭), 2004년 7월에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문했다.

한편 북한은 북예멘과 1963년 3월에, 남예멘과 1968년 2월에 수교했으며, 북한은 주이집트 북한대사관, 예멘은 주중국 예멘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1982년의 지진으로 북예멘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예멘 중앙은행 총재에게 5만 달러의 구호금을 경제기술협력 차원에서 전달한 바 있다. 이후 예멘에 1991년부터 2017년까지 5,240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2018년에는 예멘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400만 달러를 국제기구를 통하여 집행했다. 2023년 기준 예멘의 대한국 수출액은 4,091만 달러, 수입액은 7,114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구리, 알루미늄, 철강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전기기기, 인조필라멘트, 플라스틱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EDCF 차관협정(2005년 5월 발효, 외교부전산화사업), EDCF 차관약정(2005년 8월 발효, 전기통신망확장사업), EDCF 차관약정(2009년 1월 발효, 고등기술훈련소사업)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문화교류로 2010년 10월의 한-예멘 수교 25주년 기념 문화축제, 2010년 11월의 대사배 태권도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2012년 5월에는 예멘 문화공연사절단이 2012 여수세계박람회장에 방한하여 공연을 열기도 했다. 2023년 기준 예멘에는 2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1,129명의 예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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