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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선언문을 기초해달라는 김원봉의 요청으로 1923년 민중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했다. 그가 이회영·김창숙·유자명·이을규 등 무정부주의에 공명하는 사람들과 빈번한 접촉을 하고 있었던 만큼 이 선언에는 무정부주의적 양상이 나타난다. 이무렵 그는 베이징대학교 도서관에서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연구하며, 리스쩡[李石曾]·리다자오[李大釗]와 관계를 맺었다.
1924년 베이징에서 이규준(李圭駿)이 창단한 다물단(多勿團)의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해 3월 베이징 근처 스덩옌[石燈庵]에서 수도승 생활을 하며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여, 1925년 〈동아일보〉에 〈낭객의 신년만필〉·〈전후삼한고〉·〈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 등을 연재 발표하기도 했다.
1927년 2월 민족통일전선으로 조직된 신간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타이완[臺灣] 사람 린빙원[林炳文]의 소개로 무정부주의동방연맹에 가입하고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는 한편 기관지인 〈동방 東方〉에 논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무렵 무정부주의 이념을 소설화한 〈용과 용의 대격전〉을 발표했다.
1928년 5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의 선전잡지 발간과 폭탄제조소의 설치자금 마련을 위해 활동하던 중 타이완에서 외국위체위조사건(外國爲替僞造事件)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다롄[大連]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5월 다롄 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복역중이던 1931년 신백우와 안재홍의 주선으로 〈조선일보〉에 〈조선사〉·〈조선상고문화사〉가 연재되었다. 1936년 2월 감옥에서 뇌일혈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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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신채호의 무정부주의 활동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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