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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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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공예는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나 금속공예품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으며 신라적인 미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신라토기는 회청색의 경질토기로 3세기말경의 원삼국시대 회청색토기에서 발전된 것이다. 그릇의 종류는 굽다리접시[高杯]·뚜껑접시[蓋杯]·짧은목항아리·긴목항아리·그릇받침[器臺]·토우와 각종 이형토기 등이 있고, 표면에 물결무늬·집선무늬[集線紋]·고리점무늬[圓卷紋] 등의 기하학적인 문양 외에 말·사슴·사람 등을 음각선으로 시문했다. 고구려나 백제의 토기에 비해 그릇 모양과 문양이 조방하며 원시적인 조형성을 보인다.

금속공예품으로는 각종 장신구·마구·용기 등이 있으며, 이들은 여러 가지 세공술로 장식되어 있어 당시 공예기술의 수준이 높았음을 알려준다. 장신구류는 금관·귀걸이·목걸이·허리띠[銙帶]·신발 등으로 신라의 금속공예를 대표한다. 금관은 경주뿐 아니라 신라의 세력권이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재료는 금·은·동이며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순금제의 관은 주로 왕릉에서 출토되며, 그중 대표적인 것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발견된 것인데, 내관과 외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금관총금관).

특히 둥근 테두리 위에 출자형입식 3개와 사슴뿔형 입식 2개를 세운 외관은 신라의 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의장으로 고대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의 관모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있다. 귀걸이에는 굵은고리식[太環式]과 가는고리식[細環式]이 있으며, 특히 굵은고리식 귀걸이에 보이는 누금기법은 화려함이 돋보여 신라 금속공예 기술의 뛰어남을 알려준다. 허리띠는 비단띠나 가죽띠 표면에 여러 장의 금속제 띠꾸미개를 못으로 박은 허리띠로, 여러 줄의 띠드리개[腰佩]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띠드리개에는 끝장식이 달려 있는데 장규형판과 곱은옥이 가장 많고 이외에 장도·물고기·침·침통·향낭·숫돌 등이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도안화된 것들이지만 숫돌의 경우는 실물을 단 것도 있다. 무기로는 철로 만든 대도·도자·검·도끼 등이 있으며, 특히 대도에는 자루와 칼집에 금·은으로 화려한 장식을 했는데, 이는 착용자의 권위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나온 칼은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칼과 의장이 전혀 다른 서방식 칼로 자루와 칼집이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단검은 동아시아에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고신라와 서역지방과의 문물교류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 가운데 하나이다.

호우총에서 출토된 금동합에는 광개토대왕의 명문이 있어 고구려와의 교류를 직접적으로 증명해준다. 또한 신라의 고분에서는 여러 종류의 유리제품이 출토되고 있는데, 근동지방의 시리아나 페르시아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생각되므로 고대 근동과 신라를 연결짓는 또다른 자료이다. 이상에서 신라미술은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각 분야에 걸쳐 비교적 독자적인 양식을 뚜렷이 확립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미술은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엄격한 면이 있고, 토속화·단순화의 경향이 뚜렷하지만 통일기에 이르면 이러한 속성들을 불식하고 국제적이고 화려하며 섬세한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준다.→ 통일신라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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