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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와 조선시대에 관직제수의 토대가 된 관계.
고려의 산계
958년(광종 9) 이전에 중국 당나라의 문산계를 도입하여 통직랑(通直郞) 등의 관계를 사용하면서 비롯되었다.
995년(성종 14)에 전부터 사용해오던 문산계에 당·송나라의 산계를 가미하여 종1품 개부의동삼사사(開府儀同三司事)에서 종9품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는 22계 이상(29계로 추정)의 문산계와, 종1품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에서 종9품 배융부위(陪戎副尉)에 이르는 29계의 무산계를 제정해 운영했다. 그뒤 문종대 문물제도의 전반적인 정비에 수반되어 당시의 관계를 고치면서 종1품 개부의동삼사사에서 종9품 장사랑에 이르는 29계의 문산계와, 종1품 표기대장군에서 종9품 배융부위에 이르는 29계의 무산계를 정립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관등(官等)과 관직이 서로 뒤섞여 사용되었기 때문에 관등과 관직의 구별이 어렵다. 고구려에서는 대대로(大對盧)에서 자위(自位)에 이르는 14관등이, 백제에서는 좌평(佐平)에서 극우(克虞)에 이르는 16관등이, 신라에서는 이벌찬(伊伐飡)에서 조위(造位)에 이르는 경위(京位) 17관등과 악간(嶽干)에서 아척(阿尺)에 이르는 외위 11관등(통일 후에는 경위로 일원화)이, 태봉에서는 대광(大匡)에서 보윤(保尹)에 이르는 9관등이 각각 운영되었다.
고려시대에도 918년(태조 1)에는 서발한(舒發翰)·이찬(伊飡) 등 신라계 관등과 대재상(大宰相)·중부(重副) 등 태봉계 관등이 혼합되면서 919년부터는 태봉의 9관등이, 937년(태조 19) 이후에는 태봉의 9관등이 세분·확장한 삼중대광(三重大匡)에서 중윤(中尹)의 16관등을 각각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식의 문산계가 도입되는 958년경까지는 16관등이 고려의 공식적인 관계로 통용되었고, 958년부터는 중국적인 문산계와 고려적인 16관등제가 병용되었으며, 995년경 이후는 중국식의 문산계·무산계가 국가의 공식적인 산계로 운영되었다.
문종대에 정립된 고려의 산계는 그후 몽골의 지배, 몽골 지배의 극복, 문종관제로의 복귀 등과 관련되어 1275년(충렬왕 1)·1298년(충렬왕 24, 충선왕 즉위)·1298년(충렬왕 24)·1308년(충렬왕 34, 충선왕 복위)·1309년(충선왕 1)경·1310년(충선왕 2)·1356년(공민왕 5)·1362년(공민왕 11)·1369년(공민왕 19)·1372년(공민왕 21)에 걸쳐 변천되면서 계승되었고, 조선의 개창과 함께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다. 그 변천을 보면 무산계는 변동이 없었지만 문산계는 정2품계 이상이 폐지, 정1~2품계가 신치·복치, 종3품 이상은 상·하 2계씩이고 정4품 이하는 1계씩으로 조정 및 관계명이 전면적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의 산계는 비록 명칭상 문산계와 무산계로 구비되었으나, 중국의 당·송나라 및 조선과는 달리 문반·무반 모두가 문산계를 적용받았고, 무산계는 향리 등에게 적용되는 등 미숙한 부분이 존재하기도 했다.
조선의 산계
1392년 개국과 함께 고려 공민왕대 이후의 문·무 산계를 계승·보완하여 정1품(上)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에서 종9품 장사랑에 이르는 30계의 문산계와 정3품(上)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종8품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이르는 20계의 무산계를 구비하면서 성립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관직제수를 보면 고려의 문산계가 문반·무반 제수의 관계로 통용된 것과 달리 문반과 무반제수의 관계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이러한 산계제의 운영은 고려보다는 중국의 당·송나라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때의 문·무 산계는 1436년(세종 18)에 무산계도 문산계와 같이 정9품·종9품에 각각 1계씩을 두어 22계로 정비되었다. 〈경국대전〉의 편찬과 함께 동반관계는 정1품(上) 대광보국숭록대부에서 종9품 장사랑의 30계와, 서반관계는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에서 종9품 전력부위(展力副尉)에 이르는 30계(정1품에서 종2품은 문반관계와 동일)로 정립되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이 동반·서반 관계 이외에 정1품 군(君)에서 종6품 감(監)에 이르는 종친의 제수를 위한 정1품(上) 현록대부(顯祿大夫)에서 정6품(下) 종순랑(從順郞)의 22종친계, 정1품 위(尉)에서 종3품 첨위(僉尉)에 이르는 의빈(依賓)의 제수를 위한 12의빈계, 정6품 전악(典樂)에서 종9품 부전성(副典聲) 등에 이르는 공상천예·조예·소유·나장·장수 등 잡류의 제수를 위한 정6품 공직랑(供職郞)에서 종9품 전근랑(展勤郞)의 10동반 잡직계와 파진군·팽배·대졸 등의 제수를 위한 정6품 봉임교위(奉任校尉)에서 종9품 근력부위(勤力副尉)의 10서반 잡직계, 평안도·함길도의 토관(土官) 제수를 위한 정5품 통의랑(通議郞)에서 종9품 시사랑(試仕郞)의 10동반 토관계와 정5품 건충대위(建忠隊尉)에서 종9품 탄력도위(彈力徒尉)의 10서반 토관계가 각각 규정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동반관계·서반관계·종친계·의빈계·잡직계·토관계는 〈대전회통〉 편찬과 함께 종친계·의빈계가 동반관계로 통합되고, 동반관계에 정1품의 상보국숭록대부가 새로 설치되고, 가정대부(嘉靖大夫)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개칭되는 변화를 겪으면서 한말까지 계승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에 수반된 근대식 관제개혁과 함께 동반관계·서반관계·잡직계·토관계 모두가 정1품(上) 대광보국숭록대부에서 9품 종사랑(從仕郞)의 12계로 통합·축소되면서 칙임관(정1품~종2품)·주임관(3~6품)·판임관(7~9품)의 각급 문관과 대장(大將:정1품·종1품)·부장(副將:정2품)·정령(正領)·부령(副領)·참령(參領)·정위(正尉:모두 3품)·부위·참위(6품)의 무관제수를 토대로 하다가 조선의 멸망과 함께 소멸했다.
산계별 지위는 산계 보유자의 신분과 관련되었는데, 토관·잡직계의 승계는 동반·서반 관계와 동일하게 규정되었으나, 정5품과 정6품이 한품일 뿐만 아니라 문·무 관직에 제수될 때는 1계를 내려 제수되는 등 동반·서반 관계보다 열등했다.
또 동반·서반 관계에서도 외형적으로는 대등하게 규정되었지만, 동반의 통정대부 이하를 보유한 자가 탄핵 등과 관련되어 좌천되면 절충장군 이하를 받는 등 동반관계가 서반관계보다 우월했다. 그외에 산계보유자의 신분에 있어서 양반이 산계를 보유할 경우는 양반임이 명확하지만, 중인·평민·천민으로서 산계를 보유할 경우의 신분이 어떠했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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