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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방의 별자리를 상징적인 동물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 북쪽에 현무를 그렸다.
중국에서는 한대와 남북조시대에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 등과 연결되어 유행하여 무덤과 석관·석비 등에 사방의 수호와 벽사를 목적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에는 한대에 전래되었으며, 고구려 무덤의 수호신으로 적극 수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도상과 화법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기로 나뉘어 발전했다. 약수리고분과 삼실총 등의 초기 사신도들은 초보적 상태를 보이나 무용총과 고산리 1호분 등에는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강서대묘, 강서중묘, 통구사신총, 진파리 1호분, 통구 4호분, 통구 5호분 등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사방의 별자리를 상징적인 동물상으로 나타낸 것으로 동쪽에는 청룡을, 서쪽에는 백호를, 남쪽에는 봉황과 비슷하게 생긴 주작을, 북쪽에는 뱀이 거북을 감고 있는 현무를 그렸다.
중국에서 전국시대 말기에 천문오행사상을 배경으로 대두되었으며, 한대(漢代)와 남북조시대를 통해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 등의 조류와 결부되어 유행했다. 주로 무덤과 석관·석비·화상석·와전·동경 등에 사방의 수호와 벽사를 목적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에는 한대의 한사군 문화를 통해 전래되었으며, 고구려에서 무덤의 수호신으로 적극 수용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도상과 화법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기로 나뉘어 발전했다.
약수리고분과 삼실총 등의 초기(4세기~5세기 전반) 사신도들은 묘주초상의 상단이나 하단에 부속물로 작게 표현되었는데, 몸체의 부피감이 없고 비례가 맞지 않는 등 초보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채색은 먹선의 윤곽에 선명도가 떨어지는 갈색이 주조를 이루었다. 무용총과 고산리 1호분 등의 중기(5세기 중엽~6세기 중엽) 사신도들은 초기와 같이 종속적인 부속물로 작게 다루어졌으나, 동물 몸체의 비례와 구도에서 보다 사실적인 모습과 함께 생기있고 율동적인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묘사법에서도 필선에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있고, 세부묘사에 관심을 두는 등 보다 진전된 화법을 보여준다.
후기(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이르러 고구려 사신도는 도교적 색채의 대두와 더불어 강서대묘, 강서중묘, 통구사신총, 진파리 1호분, 통구 4호분, 통구 5호분 등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고분에 보이는 사신도는 종래의 부속물적 위치에서 현실 네 벽의 중심화제로 부각되었으며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형태와 세련된 묘사,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 등은 우리나라 고대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발전된 고구려 후기의 사신도 양식은 공주의 송산리고분과 부여의 능산리고분 그리고 일본의 다까마스즈카[高松塚]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백제와 일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에도 수락암동 1호분에서처럼 사신도가 12지신상과 함께 다루어졌고, 석관에 조각되는 등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왕릉의 내부장식과 민화의 소재로서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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