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부채

다른 표기 언어 fan

요약 부채는 고대시대부터 더위를 식히거나 공기를 순환시킬 때, 의식을 거행할 때나 의상의 부속품 등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대표적인 종류로는 둥글부채와 접부채가 있다. 초기 부채는 모두 둥글부채였고, 모양은 다양하지만 나뭇잎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둥글부채는 아시리아·인도·고대 중국의 의식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다란 손잡이에 금속판을 입힌 흰깃털부채는 중세 교회의식에서 부제가 들고 파리를 쫓는 데 이용했다. 둥글부채의 다른 변형은 깃발부채이다. 작은 깃발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흔히 직사각형인 부채면이 손잡이 한쪽에 고정되어 있다. 접부채는 부챗살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챗살은 손잡이 끝에서 대갈못이나 핀으로 고정된다. 부챗살 위에는 종이나 천을 입히되 부채를 펴거나 접을 수 있도록 주름이 잡혀 있다.

부채(fan)

ⓒ zenkota/wikipedia | CC BY-SA 3.0

고대부터 전세계에 걸쳐 더위를 식히거나 공기를 순환시킬 때, 의식을 거행할 때나 의상의 부속품 등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대표적인 종류로는 둥글부채[團扇]와 접부채[拉扇]가 있는데 접부채는 부챗살(바깥쪽 부챗살 2개는 '가드'라고 함)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은 손잡이 끝에서 대갈못이나 핀으로 고정된다. 부챗살 위에는 종이나 천을 입히되 부채를 펴거나 접을 수 있도록 주름이 잡혀 있다. 접부채를 변형한 '브리제'(프랑스어로 '쪼개짐'이라는 뜻) 부채는 부챗살이 칼날처럼 더 넓적하고 꼭대기가 리본이나 실로 묶여 있으며 부채를 활짝 펴면 부챗살들이 서로 부분적으로 겹쳐서 부채면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그림으로 남아 있는 재료에 의하면 초기 부채는 모두 둥글부채였고, 모양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나뭇잎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 부조에는 새의 깃털을 손잡이 끝에 방사상으로 고정시킨 깃털부채가 묘사되어 있다. 둥글부채는 아시리아와 인도 및 고대 중국의 의식행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다란 손잡이에 금속판을 입힌 흰깃털부채(flabellum)는 중세에 교회의식에서 부제가 들고 '파리를 쫓는 데'이용했다. 둥글부채의 또다른 변형은 깃발부채이다.

작은 깃발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흔히 직4각형인 부채면이 손잡이 한쪽에 고정되어 있다. 인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발견된 이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도 인기를 모았는데, 아마 동양에서 유럽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동양의 부채

중국일본에서는 부채가 일상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부채를 들고 다녔으며, 제각기 특정한 목적에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부채가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조정 신하들의 부채와 무사들의 부채가 서로 달랐고, 공식 다도를 위한 부채는 무대에서 사용하는 부채와 달랐다.

극동지방에서는 부채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 장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중국과 일본에서 만든 고급 부채의 장식은 사실상 어떤 것도 따라갈 수 없는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었다. 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부채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능공들의 일이었고, 기껏해야 솜씨좋은 장식가들이 이 작업을 맡았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많은 위대한 화가들이 부채 장식에 재능을 쏟았으며 예술작품들은 항상 실용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 송(宋)나라말까지는 분명 둥글부채가 더 흔한 유형이었지만, 명나라(1368~1644) 때 접부채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접부채는 극동지방에서 발명되었고(7세기에 일본인이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음), 유럽에는 중세에 동양의 접부채가 몇 개쯤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양의 동양식 부채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마 15세기에 중국까지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인이었을 것이다.

그후 이것의 수입은 계속 늘어났고 17세기말에는 엄청난 양의 중국 부채와 그보다는 적은 양의 일본 부채가 유럽에 전해졌다. 이런 부채들은 품질 차이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유럽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었기 때문에, 동양의 기준에서는 대부분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었으나 복잡하고도 솜씨좋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앞다투어 동양 부채를 사들였다.

서양의 부채

서양에서 부채 장식의 양과 양식은 유럽의 유행에 따라 달라졌는데, 17세기 벽화를 소규모로 복제한 장식이 있는가 하면 바깥쪽 부챗살을 진주모로 만든 단순한 주름 부채도 있었다. 19세기초 30년 동안은 부챗살의 길이가 약 20㎝였지만, 빅토리아 시대에는 50㎝ 이상으로 크기가 커졌다. 1900년경부터는 부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채

부채, 스페인

ⓒ 2015, All Rights Reserved.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부채

한국 부채의 기원은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 털부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부채를 사용한 예가 보이듯 고려시대 초기에 이미 부채가 있었으며, 특히 한국의 부채는 국교품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하여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올수록 부채는 더욱 정교해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한국의 부채는 형태에 따라 둥글부채와 접부채로 나뉜다. 둥글부채에는 공작선·파초선·태극선·연엽선·오색선·진주선·송선·세미선 등이 있다. 접부채에는 승두선·사두선·어두선·합죽선·반죽선·외각선·내각선(변죽의 바깥쪽에 대나무 또는 보통나무를 2개 합치고 안쪽에 뿔을 댄 부채)·삼대선·이대선·죽절선·단목선(변죽에 붉은 박달나무를 사용한 부채)·채각선·소각선·광변선(부채살도 많고 퍼짐이 반원 모양으로 넓게 퍼지는 부채)·협변선·유환선·무환선 등이 있다. 이 명칭은 부채 모양과 부챗살의 재료, 부채바탕의 꾸밈, 부속품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러한 부채들은 대개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단오에 많이 준비되었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 따르면, 단오날에 공조에서 단오선을 만들어 진상하면 왕은 이것을 각 궁의 재신과 시종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단오부채). 단오날의 액막이인 애호란 이것이다. 또 호남·영남의 방백과 절도사의 외관 혹은 내관이 그 지방의 특산품으로 부채를 궁중에 진상하고 조관과 친지에게 선사하는 풍속이 있었으니 전주와 남평이 그 명산지로 유명하다. 부채를 받은 이는 대개 부채에 금강산 1만 2,000봉을 그리거나 버들가지·복사꽃·연꽃·나비·흰붕어·해오라기 등과 글씨를 써 가지기도 했다.

부채의 쓰임은 의례용·장식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백색과 흑색·황색을 좋아했으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은 여러 빛깔의 색선을 사용하기도 했고, 혼례 때 신랑은 푸른 부채, 신부는 붉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상중일 때는 흰 부채를 사용했다. 주로 여름철에 바람을 일으키는 데 썼으나 숯불을 피울 때나 해가리개 혹은 파리나 모기를 쫓는 도구로도 널리 이용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공예

공예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백과사전


[Daum백과] 부채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