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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아프리카 서부 내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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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3,840,247명 (2024년 추계) |
수도 | 와가두구 |
면적 | 274,200.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부르키나 파소 (Burkina Faso) |
기후 | 사바나기후 |
민족 구성 | 모시족(40%), 부르키나파소족, 구룬시족 |
언어 | 모시어,프랑스어 |
정부/의회형태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 | 토착종교(69%), 이슬람교(7%), 천주교 |
화폐 | 세파프랑 (XOF)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번호 | 226 |
GDP | USD 14,607,000,000 |
전압 | 220~230V / 50Hz |
도메인 | .bf |
요약 서아프리카의 내륙국. 별칭은 부르키나, 옛이름은 오트볼타 공화국이다. 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과 서쪽으로 말리, 남쪽으로는 코트디부아르·가나·토고, 동쪽은 베냉·니제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목차
접기-
자연환경
-
국민
-
경제
-
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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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역사
-
부르키나파소와 한국과의 관계
- ┗ 외교
- ┗ 경제·통상·주요 협정
- ┗ 문화교류·교민 현황
자연환경
이 나라는 라테라이트성의 암석층으로 덮인 하나의 광대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대고원의 서부에는 사암질의 고원들이 반포라 단애와 접해 있으며, 이 단애는 해발 약 150m의 높이로 급격히 솟아 있다.
북부와 북동부에는 모래벌판 위로 암석구릉들이 솟아 있다.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대고원은 부르키나파소의 중요한 강들인 흑볼타·백볼타·홍볼타 강의 하곡들로 패어 있다. 남류하는 이들 강으로 북쪽에서 큰 지류 중의 하나인 수루 강이 합류한 뒤, 가나에서 하나로 합쳐져 볼타 강을 이룬다.
기후는 대체로 태양이 내리쬐는 뜨겁고 건조한 기후이다. 북부지역은 현지에서 사헬 기후라 불리는 반건조성기후를 나타내는데, 이 기후는 연중 3∼5개월 동안 불규칙하게 비가 내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성기후가 우세하다. 연강우량은 남부의 약 1,000㎜에서 북부의 250㎜ 미만 사이에 분포한다. 1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는 건조하고 냉량한 계절이고, 2월 중순부터 6월까지는 그늘에서의 온도가 최고 40℃까지 오르는 혹서의 계절이며, 6∼9월은 우기이다.
북부지역은 우기에는 주로 사바나 초원이며 고온건조한 북동풍인 하마탄이 부는 시기에는 반사막화된다. 남부로 가면 가시가 많은 관목들 대신에 여기저기 삼림지대가 나타난다. 물소·영양·사자·하마·코끼리·원숭이·악어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며, 볼타 강 일대에는 아프리카 수면병을 퍼뜨리는 체체파리와 눈이 머는 병을 옮기는 파리매(simulium fly)가 번식하고 있어 주거가 제한된다. 전국토의 약 1/10만이 경작 가능하며, 1/3가량은 목초지이다.
국민
부르키나파소의 인종 구성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원주민인 볼타종족은 총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모시족(族)을 중심으로 룬시족과 보보족, 로비족으로 구성된다. 둘째는 만데 종족에 속하는 몇 개의 부족이 있고, 셋째는 유목이나 반유목생활을 하는 풀라니족, 넷째는 외국 국적을 가진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이다. 볼타족과 만데족에 속하는 주민들은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해왔다.
부르키나파소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2.9%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는 1980년 721만 명, 2000년 1,229만 명, 2010년 1,647만 명으로 계속 증가해왔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384만 247명이며, 인구밀도는 87명/㎢이다. 1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약 45%를 차지하고, 도시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55%에 해당한다.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이고, 토착어인 볼타어와 모레어가 널리 사용된다. 특히 볼타어는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모시족이 사용하는 볼타어군의 모레어는 부르키나파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다. 종교로는 인구의 60% 정도가 이슬람교이며, 로마 가톨릭이 약 20%, 토속신앙이 15%으로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외에 개신교 5%와 나머지는 무교로 구성된다.
경제
부르키나파소는 주로 농업에 토대를 둔 혼합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빈번히 일어나는 혹심한 가뭄과 빈약한 자원 때문에 경제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산고용의 확대가 인구증가에 미치지 못하여 매년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로 이주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농업은 GNP에서 2/5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취업인구는 전체 노동인구의 약 9/10에 달한다. 농업생산은 자급용 식량생산을 위주로 하며, 여분은 환금작물로 판매되고 있다. 정부는 원면(수출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함)과 설탕·땅콩의 수출에 많은 투자를 해왔으나, 물이 부족하고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성과가 아직 미흡하다. 주식작물은 수수·기장·옥수수·쌀·카사바·고구마 등이다. 수출하기 위한 소·염소·양의 축산업이 행해지고 있으나, 수출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다.
푸라에서는 정부가 과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 탄광회사에 의해 금을 함유한 석영이 채취되고 있다. 북동부 탐바오에 있는 대규모 망간 매장지의 개발은 외국의 투자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공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지나지 않으며, 전체 노동인구의 약 1/8이 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은 그 발전속도가 매우 더디며, 농산물 가공업이 주를 이룬다. 전력생산은 거의 전적으로 수입석유에 의존한다. 서비스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이며, 전체 노동인구의 약 1/20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통신시설은 열악한 편이며, 도로개량사업에 필요한 경비는 거의 전적으로 유럽 개발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만성적이며 심각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가축과 농작물 수출은 가뭄에 의해 자주 타격을 입는 데 반해, 각종 소비재와 식료품·기계류·연료 등의 수입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부쳐오는 송금이 무역적자의 폭을 다소 줄여주고는 있으나,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해외원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와 사회
부르키나파소 공화국은 군사집단인 인민전선이 통치하고 있다. 최고의 정치권력은 이 집단의 의장에게 있으며, 의장은 군 최고사령관직도 맡고 있다. 신군부 지도자들은 경제에서의 민간부문 역할을 늘리고, 식량생산의 자급자족에 최우선권을 두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국민의 건강·위생 상황은 극도로 열악하다.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으며, 상당수 국민들이 나병·뇌막염·과립성결막염·주혈흡충병·사상충증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의료진의 부족으로 인해 환자들 상당수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사망률은 극도로 높으나 감소 추세에 있고, 평균수명은 남자 44세, 여자 47세이다.
교육은 공식적으로는 의무제이다. 그러나 전체 취학연령 아동의 1/4 정도가 실제로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반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74년에 설립된 와가두구대학교가 있다. 이 나라의 언론기관들은 모두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문화
부르키나파소는 풍부한 전승문화를 갖고 있어 다양한 종족의 문화를 보여준다.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에는 각 종족이 수도인 와가두구에 모여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선보이곤 한다. 와가두구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이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며,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들은 볼타인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
현재의 부르키나파소에 거주한 최초의 종족은 보보족·로비족·구룬시족으로 알려져 있다. 14세기 무렵 모시족과 구르마족이 현재의 부르키나파소 동부 및 중앙부에 정착했다. 야텡가와 와가두구의 모시 왕국은 20세기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1895년에 야텡가 일대를, 이어 1897년에는 구르마 지역을 보호령으로 삼았으며, 보보족 및 로비족의 영토를 합병했다. 이에 대해 독화살로 무장한 로비족은 1903년까지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다. 프랑스는 부르키나파소를 필요에 따라 몇 개의 행정구로 나누었으나, 각 종족의 족장은 그들의 지위에 그대로 두었다. 프랑스는 오트볼타(어퍼볼타)를 프랑스령 수단으로 합병한(1904∼20) 이후, 1947년에는 프랑스 연합의 해외 영토로 만들었다. 오트볼타는 1919년 하나의 독립된 식민지 단위가 되었으며, 1932년에는 코트디부아르 및 니제르, 프랑스령 수단으로 분할되었다.
1957년 오트볼타는 국회를 통해 스스로 자국 영토에 대한 통치위원회를 선출할 권리를 획득했고, 1958년에는 드디어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60년에는 독립을 획득한 뒤, 새 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모리스 야메오고를 선출했다. 야메오고 대통령은 1966년 육군 중령 상굴레 라미자나가 주도한 쿠테타에 의해 실각되었고, 1970년에는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었다.
라미자나는 훗날 자신의 군사정부를 해체하고 1976년 민간인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다. 1977년에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고, 1978년에 다당제를 위한 자유선거가 실시되는 등 의회민주주의의 복귀가 실현되는 듯했다. 라미자나는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1980년 사예 제르보 대령이 주도한 무혈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다. 제르보가 이끈 군사정부는 1982년 또다른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고, 이때 인민임시구제위원회(People's Provisional Salvation Council)가 구성되었다. 1983년 8월초에 총리를 지냈던 토마 상카라 대위가 쿠데타에 성공하여 국가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어 상카라 정부는 국명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개명했다.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던 열정적인 지도자 상카라는 1987년 10월 블레즈 콩파오레 대위가 주도한 쿠데타가 성공한 뒤 처형되었다.
부르키나파소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부르키나파소는 한국 정부와 1962년 4월에 수교했다. 한국은 1985년 1월, 주 부르키나파소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89년 5월에 폐쇄하고, 주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이 외교 업무를 겸하도록 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주 일본 부르키나파소 대사관이 한국과의 외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1997년 9월에 콩파오레 대통령이 방한했으며, 이후 외교부장관·경제부장관·기초교육부장관·통상산업부장관의 방한이 있었으며, 한국은 2012년 2월에 이상진 교육부 2차관이 방문한 바 있다.
한편 부르키나파소는 북한과 1972년 10월에 국교를 수립하고 외교 관계를 이어왔으나, 2017년 12월에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이행 차원에서 향후 북한과의 모든 상업적 관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1976년 이래 부르기나파소에 농기계·체육용품·학용품·의약품 등을 무상으로 원조해 왔다. 2023년 기준 부르기나파소의 대한국 수출액은 137만 달러, 수입액은 3,493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참깨, 동물성 및 식물성 지방과 기름, 천연진주 및 양식진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광물성 연료, 시안화나트륨 및 무기화학품, 자동차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의료기술협정(1970년 3월), 무역협정(1978년 10월), 투자보장협정(2010년 4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부르기나파소에는 39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부르기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와 보보디올라소 및 가야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43명의 부르기나파소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매년 현지에서 열리는 대사배 쟁탈 태권도대회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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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코트디부아르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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