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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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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부르키나파소에 거주한 최초의 종족은 보보족·로비족·구룬시족으로 알려져 있다. 14세기 무렵 모시족과 구르마족이 현재의 부르키나파소 동부 및 중앙부에 정착했다. 야텡가와 와가두구의 모시 왕국은 20세기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1895년에 야텡가 일대를, 이어 1897년에는 구르마 지역을 보호령으로 삼았으며, 보보족 및 로비족의 영토를 합병했다. 이에 대해 독화살로 무장한 로비족은 1903년까지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다. 프랑스는 부르키나파소를 필요에 따라 몇 개의 행정구로 나누었으나, 각 종족의 족장은 그들의 지위에 그대로 두었다. 프랑스는 오트볼타(어퍼볼타)를 프랑스령 수단으로 합병한(1904∼20) 이후, 1947년에는 프랑스 연합의 해외 영토로 만들었다. 오트볼타는 1919년 하나의 독립된 식민지 단위가 되었으며, 1932년에는 코트디부아르 및 니제르, 프랑스령 수단으로 분할되었다.

1957년 오트볼타는 국회를 통해 스스로 자국 영토에 대한 통치위원회를 선출할 권리를 획득했고, 1958년에는 드디어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60년에는 독립을 획득한 뒤, 새 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모리스 야메오고를 선출했다. 야메오고 대통령은 1966년 육군 중령 상굴레 라미자나가 주도한 쿠테타에 의해 실각되었고, 1970년에는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었다.

라미자나는 훗날 자신의 군사정부를 해체하고 1976년 민간인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다. 1977년에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고, 1978년에 다당제를 위한 자유선거가 실시되는 등 의회민주주의의 복귀가 실현되는 듯했다. 라미자나는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1980년 사예 제르보 대령이 주도한 무혈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다. 제르보가 이끈 군사정부는 1982년 또다른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고, 이때 인민임시구제위원회(People's Provisional Salvation Council)가 구성되었다. 1983년 8월초에 총리를 지냈던 토마 상카라 대위가 쿠데타에 성공하여 국가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어 상카라 정부는 국명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개명했다.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던 열정적인 지도자 상카라는 1987년 10월 블레즈 콩파오레 대위가 주도한 쿠데타가 성공한 뒤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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