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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에드먼드 버크에 의하여 주도된 온건한 영국의 보수주의만을 소개하고 조제프 드 메스트르(1753~1821)가 시조가 된 중유럽 보수주의를 빠뜨린다면 보수주의 사상의 전체 조감도는 균형을 잃고 말 것이다.
버크의 보수주의가 역사를 통한 진화를 옹호했던 반면, 메스트르의 극단 보수주의는 경험을 토대로 한 진화와 개선을 거부했다. 두 사람 모두 1789년의 혁신노선에 대항하여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려 했지만 수호하려는 전통은 각각 명백히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곧 전자가 천부적인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대혁명의 이념구도를 공박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자는 전통적인 권위에 시각을 맞추어 프랑스의 혁명을 참담한 문명파괴의 폭거로 단정지었다(권위주의). 메스트르의 추종세력은 버크주의자들의 입헌주의 내지 의회중심주의와 동떨어진 전통 엘리트의 권위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사실상 이러한 태도는 보수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반동적인 망상으로 매도될 만한 것이었다(반동적 운동). 하지만 우리가 라틴 보수주의를 전체주의의 단편으로 규정할 때, 그것은 지나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운데 그들이 강조하는 전통의 권위가 개인의 인성이나 문화의 영역에까지 확장된 것이 아니라 다만 종교와 정치 문제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상이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장 반동적인 보수주의자들조차도 전체주의 나치당원이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게 된다.
프랑스 혁명이 좌절된 후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당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대변자가 되었다.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이념을 대신하여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왕좌와 제단으로'라는 보수주의 슬로건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메스트르는 세습군주제의 복원을 기도했으나 그것은 구체제와는 다른, 보다 종교적이고 덜 경망스러운 색채를 띠었다. 혁명과정에서 프랑스군이 사보이(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피에몬테사르데냐의 프랑스어권 지역)를 침공하자 망명생활을 시작했으며, 향후 14년 동안 모스크바 주재 사르데냐 대사를 지내면서 차르 절대군주제의 영향을 받으며 왕정복고주의자로서의 신념을 굳혀갔다.
복고적이든 진화적이든 간에 모든 보수주의자들은 공동체의 분열을 막고 유기체적 통일성을 담보하는 군주정치의 기능을 인정하고 있지만, 메스트르주의자들이 가치의 측면에서 군주제를 절대화한 것과는 달리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실질적 필요, 즉 효용성을 높이 평가했다.
메스트르와 대륙의 보수주의자들은 군주제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천상의 신이나 지상의 국왕이 설령 잘못되었다고 하여도 인간은 그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해야만 한다"는 극단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우리는 주권자가 법규로서 통치하는 지역범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통치자의 법은 다소 가혹하고 부당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영역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런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역은 이곳 말고도 도처에 마련되어 있으므로……우리의 가정이, 주인이 존재하고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에 순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주인의 본성이 어떠하든 간에 그를 저버리는 것보다 사랑으로 섬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권위주의에 입각한 일련의 추론과정은 "만유의 주인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어린양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져야만 한다"는 역설적인 논리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복고주의자의 주장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온화한 성품의 메스트르가 가졌던 동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잔혹한 권위에 대한 반항은 더욱더 잔혹한 고통을 몰고 올 것이다. 메스트르는 프랑스의 혁명으로부터 당장 먹기에는 쓴 약으로 느껴지지만 전통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유럽을 보다 심각한 혼란으로부터 구제하는 처방전이라는 교훈을 얻어내게 되었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정치관은 질서를 천사로, 혼돈을 악마로, 혁명을 원죄로 대치시킨 한편의 신학적 드라마였다.
루소의 계약 관념에 현혹된 경박하고 미숙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나 상스러운 나폴레옹식의 독재체제를 열망하지만 결국 죄의 대가에 합당한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죄를 범한 유럽에는 고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1810). 일련의 수난을 통하여 유럽은 가부장적인 그리스도교 왕국이야말로 가장 순도 높은 질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심지어 군주들조차도 질서라는 배를 자유주의적 혁신으로 동요시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유럽은 '개혁'이라는 말을 들먹이는 세력을 충분히 의심해야만 한다. 〈교황에 관하여 Du Pape〉(1817)에서 메스트르의 공동체 질서관은 심도를 더해간다. 계층구조적 피라미드의 질서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정점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정점에 놓여야 할 것은 잡다하게 많은 세속 군주들이 아니라 로마 교황의 신성한 권위 속에서 결합을 이룬 세속적·영적 권력이다.
혁명 이후의 사회혼란은 혁명이념의 지지자들마저도 당혹시킬 정도의 심각성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따라 사회안정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메스트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만찬담화 Soirées de Saint-Petersbourg〉(1821, 미완성)에서 보다 확고한 신앙과 강력한 치안력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교황과 법규집행인'이라는 자신의 잘 알려진 공식을 다른 언어수단으로 집약시킨 것이었다. 그에게 신앙을 베푸는 교황은 공동질서의 긍정적인 보루임이 분명했으며 소요를 진압하는 집행관은 부정적인 보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지식인이었던 메스트르는 사회 내 인텔리겐치아를 모반적이고 오만무례한 무질서의 선동가로 규정지었다.
세속 안에서 교권주의를 칭송했지만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중세교회의 교부들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경멸했던 합리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메스트르는 영적인 통찰력이나 맹목적인 전통의 수긍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성을 연역논리의 단계에 따라 독자적이고 합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부조리와 창조주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자신은 결코 인정한 적이 없지만 우리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를 볼테르적 계몽주의의 최후의 관념론자로서 특징지을 수도 있다. 볼테르 이상으로 혹은 자코뱅주의자들과 비견될 정도로 메스트르는 순수하고 선험적인 절대이성을 신봉하고 있었으며, 18세기의 파괴적인 연역논리는 마침내 메스트르에 이르러 자기부정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된다. 순수이성은 선험적인 권위와 질서를 확인함으로써 바야흐로 자멸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이념을 이와 같이 버크와 메스트르를 기준으로 대별할 수 있다고 해서 양자의 중요성이나 영향력이 동등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는 설명은 아니다.
사실 조제프 드 메스트르나 반자코뱅주의 저작들은 결코 에드먼드 버크의 고전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의 혁명에 대한 반론을 공식화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그의 논리는 복고주의 세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보수주의자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심지어 문자 그대로 차용되어졌다. 메스트르의 경직된 위계적 보수질서가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빛이 바래기 시작한 반면 버크의 보다 융통성 있는 보수주의 이념은 서유럽 제 정당들의 행태에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특히 영국과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운동에서 '점진주의 필연성'이라는 페이비언주의자들의 언명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 이후 프랑스 보수주의는 〈악시옹 프랑세즈 L'Action Francaise〉의 편집주간으로서 전체주의적 색채가 농후했고 결국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샤를 모라스로부터 〈미국 민주주의론 Democracy in America〉의 저자로서 가장 버크적인 입장에서 대혁명과 인민투표적 대중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알렉시스 드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즉 모라스와 토크빌 사이에는 반자코뱅주의의 대부 이폴리트 아돌프 텐과 민족주의에 근사하지만 유기체적 근원을 강조했던 소설가 모리스 바레스가 있고, 1843년 이후 〈종교계 L'Univers Reglieux〉의 편집을 담당했고 근대 산업사회의 문제들에 메스트르의 권위적 질서를 적용했던 교권주의자·복고주의자인 루이 프랑수아 뵈이요가 있다(텐, 바레스). 메스트르와 뵈이요보다 교권주의 성향이 약하지만 대표적인 극우주의자로서 국가체제를 강조했던 모리스 드 보날드는 나폴레옹의 제국과 부르봉 가의 왕정복고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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