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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3. 10. 11, 프랑스 부아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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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3. 3. 7,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작가.
프랑스 내에서 교황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옹호하는 과격한 교황지상주의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정기간행물 등에 기고하며 지방 언론에서 재능을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으나, 1838년 로마 여행중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곧바로 변증법적 신학에 빠졌다.
1843년 〈위니베르 L'Univers〉지의 편집자가 되었고, 이 신문의 지면을 이용해 자신의 '교황지상주의' 주장을 펴나갔다. 프랑스 제2공화정(1848~52)에 곧 실망을 느끼고, 나폴레옹 3세와 제2제정(1852~70)을 지지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1859년 이탈리아에 군대를 출정시킴으로써 교황 피우스 9세의 주권을 일시적으로 위협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뵈이요는 나폴레옹 3세의 이탈리아 정책을 계속해서 반대했고, 결국 1860~67년 〈위니베르〉지는 정간조치 당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 기간중 로마에 머물렀다. 공의회는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고 이것은 교황지상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공의회가 끝난 후 그는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위한 최선의 길은 부르봉 왕가를 복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878년에 이르러 건강이 나빠지긴 했지만, 프랑스의 교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화해와 타협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고 산업화를 경멸했으며 부르주아가 세운 제도와 프랑스 혁명에서 파생된 모든 것을 혐오했다. 그는 재능 있는 작가였고 여론의 화살이 반대파에게 무자비하게 돌아가도록 조작하는 데 명수였다. 그가 반대파로 지목한 사람 중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가톨릭교도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열의가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로 교황 피우스 9세로부터 질책을 당했다. 〈전집 Oeuvres complètes〉(1927~38)에는 그가 쓴 소설과 전기문·서신·시와 변증법적 신학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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