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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

다른 표기 언어 folklore , 民俗學

요약 대체로 문맹률이 낮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사회 내에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구전이나 모방을 통해 전해내려오는 문학과 유형문화재 및 하위문화들의 관습을 연구하는 학문.

문자를 갖지 않았거나 문맹률이 높은 사회의 민간전승을 연구하는 것은 민족학(ethnology)과 인류학(anthropology)에 속한다.

민속학이라는 용어는 때로 구비문학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민속학 연구는 19세기초에 시작되었다. 초창기 민속학자들은 시골 농부(특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나 현대문명에 비교적 물들지 않은 집단(예를 들면 집시)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의 목표는 그런 집단 내부에 보존되어 있는 유서깊은 관습과 신앙을 먼 옛날의 기원까지 거슬러올라가 인류의 정신사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야코프 그림은 민속학을 통해 중세 암흑시대의 게르만 종교를 조명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타일러 경과 앤드루 랭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인류학에서 얻은 자료와 민속학을 결합해 선사시대 인간의 신앙과 종교의식을 '재구성'했다. 이런 유형의 저서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이다.

민속학 연구과정에서 수많은 자료가 수집되었다.

1812년 그림 형제가 자신들의 첫 동화선집을 발표하자, 여기에 자극을 받은 유럽 전역의 학자들은 다양한 장르의 구비문학, 즉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민간설화, 담시(ballad)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민요, 구전 서사시, 민속극, 수수께끼, 속담 등을 기록하고 출판하기 시작했다. 음악과 춤 및 전통 미술과 공예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이루어졌고, 많은 기록 보관소와 박물관이 세워졌다. 이러한 작업에는 민족주의적 동기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한 집단의 민간전승은 그 집단의 민족적 동질감을 강화해주었기 때문에 정치적 독립과 국가의 통일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가운데서 한층 주목되었다.

민속학이라는 학문의 전개에 있어 그동안 모은 민속 자료가 비교분석을 위해 분류된 것은 중요한 발전이었다.

여러 분야의 기준이 마련되었지만, 그중에서도 F. J. 차일드는 담시의 분류기준을 마련했고, 안티 아르네와 스티스 톰슨은 민간설화나 신화의 줄거리와 구성 모티프들에 대한 분류기준을 마련했다. 카를레 크론을 중심으로 한 핀란드의 학자들은 이 분류기준을 이용해 '역사 지리적' 연구방법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특정한 설화나 발라드 및 수수께끼 등의 알려진 모든 이형(異型)을 수집장소와 날짜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그 분포유형을 연구하고 '원형'을 재구성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인류학 계통 민속학자들의 방법보다 더 통계적·실증적이었기 때문에 20세기 전반에 민속학 분야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특히 미국에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민속학의 관심은 이제 더이상 농촌사회에만 머물지 않았다. 도시에도 독특한 예술과 관습 및 가치관을 통해 나름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여전히 민간전승을 노동계급의 전유물로 보았지만, 다른 학파에서는 민간전승이라는 개념은 사회계층이나 교육수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공통된 전통을 유지함으로써 내적 유대를 나타내는 모든 집단을 '부족'(folk)이라고 불렀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요인은 직업, 언어, 거주지, 연령, 종교, 민족적 혈통 등 다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과거보다 현재를 더 강조하고, 민간전승의 기원을 찾는 것보다 현재적 의미와 기능을 조사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전통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 및 적응을 반드시 타락이라고 매도하지도 않았다.

'맥락적'(contextual) 분석과 '행위'(performance) 분석을 위주로 하는 20세기말의 민속학적 관점에서 볼 때, 특정한 이야기·노래·극·관습은 단순한 기록대상이나 같은 범주에 속하는 다른 것들과 비교되는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

각 행위는 한 개인과 그가 속해 있는 사회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하나의 사건이며, 행위자와 관객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기능주의적이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사건은 그것이 놓여 있는 전체상황을 고려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행위자의 경력과 성격, 공동체 내에서 그가 맡고 있는 역할, 그의 레퍼토리와 예술성, 관객의 역할, 공연이 행해지는 이유 등이 모두 그 행위에 민속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의 민속학

한국 민속학의 시발은 매우 멀리까지 거슬러올라가 고려시대 〈삼국유사〉 같은 자료도 민속학적 저술로 볼 수 있겠으나 민속학 연구가 가장 집중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에 의한 연구에서부터이다. 실사구시의 학문을 펼친 실학파들은 민중의 현실 가운데 생생하게 반영되는 여러 민속학적 조사보고를 전해주고 있다. 이후 개항기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한 연구가 있었으나 이들의 연구는 개괄적인 소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외국인의 인종우월주의가 바탕에 깔린 잘못된 편견이 주종을 이루었다.

일제 침략이 강화되면서 최남선(崔南善)·이능화(李能和) 등이 앞장서서 민속학을 연구했으며, 일본인 관학파들에 의해 일제 식민통치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조선의 풍수〉·〈조선의 귀신〉·〈조선의 점복과 예언〉 등 일본인 관학파들의 많은 연구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연구였다는 제한성을 지닌다. 그당시 한국인에 의한 본격적인 연구는 손진태(孫晉泰)와 송석하(宋錫夏) 등에 의해 추진되었고, 이들은 이후 한국 민속학의 초석을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해방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됨에 따라 민속학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연구되어왔다. 한국전설학회가 한국민속학회로 바뀌어 민속학 연구의 중추 역할을했으며, 인류학이 도입됨에 따라 한국인류학회가 결성되었고 다시 민속학회가 만들어져 민속학을 연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일찍이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으로 출발,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고고민속〉·〈조선고고연구〉 등의 잡지를 통해 민속학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 공히 민속학의 연구대상은 한민족의 문화와 풍습상에 따른 그 기원과 형성·발전을 밝히며, 현지조사방법을 가장 중시한다. 생업기술·민간신앙·민간예술·민속놀이·민속공예·의식주생활·명절·세시풍속·통과의례 등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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